성유식론 제9권
16.1. 수습위(1), 분별할 수 없다, 출세간ㆍ전의
다음 수습위(修習位)의 양상은 어떠한가?198)
[얻는 바가 없고, 분별할 수 없다]
게송(『삼십송』의 제29)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얻는 바가 없고, 사량 분별할 수 없네.
그것은 출세간의 지혜라네.
두 가지 추중(麤重)199)을 버림으로써
문득 전의(轉依)200)를 증득한다.
논하여 말한다.
보살은 이전의 견도로부터 일어나서 나머지 장애를 끊고 전의를 증득하기 위해 다시 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힌다.
이 지혜는 소취(所取)ㆍ능취(能取)를 멀리 떠났기 때문에 “얻는 바가 없고 사량 분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혹은 희론을 떠났기 때문에 “얻는 바가 없다”고 하고,
신통한 작용이 측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량 분별할 수 없다”고 이름한다.
이것은 ‘출세간의 무분별지혜’이다.
[출세간]
세간201)을 끊었기 때문에 출세간이라고 이름한다.
2취(取)의 수면은 세간의 근본이고, 오직 이것만이 능히 끊으므로 홀로 출세간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혹은 출세간이라는 명칭은 두 가지 뜻에 의해 건립되는 것이니, 자체[體]가 무루인 것과, 진여를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지혜만이 이 두 가지 뜻을 갖추기 때문에 홀로 출세간이라고 이름한다.
나머지 지혜는 그렇지 않으니, 곧 10지(地) 중에서의 무분별지혜이다.
[두 가지 추중을 버린다]
이것202)을 거듭 닦음으로써 ‘두 가지 추중(麤重)’203)을 버린다.204)
두 가지 장애의 종자에 추중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체성이 자재하지 못한 것[無堪任]으로서 미세함과 가벼움에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영원히 소멸시키기 때문에 게송에서 ‘버린다[捨]’고 말한다.
[전의]
이것으로써 능히 저 두 가지 추중을 버리므로 문득 광대한 ‘전의(轉依)’를 증득할 수 있다.
‘의(依)’는 의지처[所依]를 말한다.205) 곧 의타기성이다.
잡염법과 청정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잡염법이란 허망한 변계소집성을 말한다.
청정법이란 진실한 원성실성을 말한다.
‘전(轉)’이란 두 가지 부분[二分]206)을 전환해서 버리고[轉捨] 전환해서 얻는 것[轉得]을 말한다.
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혀서 근본식 중의 두 가지 장애의 추중을 끊음으로써, 능히 의타기성 위의 변계소집성을 전환해서 버리고, 의타기성 위의 원성실성을 전환해서 증득한다.
번뇌를 전환함으로써 대보리를 얻고, 소지장을 전환해서는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한다.
유식의 도리를 성취하는 의의는 유정에게 이러한 두 가지 전의의 증과를 증득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혹은 ‘의(依)’는 곧 유식의 진여이다.207) 생사와 열반의 의지처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범부는 전도(顚倒)되어 이 진여에 미혹하기 때문에 아득한 옛적부터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성자는 전도됨을 떠나서 이 진여를 깨달음으로써 문득 열반을 얻고 궁극에 이르러 안락하게 된다.
거듭 무분별지혜를 닦아 익혀서 근본식 중의 두 가지 장애의 추중을 끊음으로써, 능히 진여에 의지하는 생사를 전환하여 단멸하고, 능히 진여에 의지하는 열반을 전환하여 증득한다.
이것은 곧 진여가 잡염을 떠난 성품임을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청정하지만 모습은 잡염이기 때문에, 잡염을 버린 때를 가정적으로 새롭게 청정함[新淨]이라고 말하니, 곧 이 새롭게 청정함을 ‘전의(轉依)’라고 이름한다.
수습위 중에서 장애를 끊고 증득한다.208)
이 지위에서 역시 보리를 증득하지만, 이 부분의 게송의 의미가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게송의 의미는 다만 유식의 성품을 전환하는 것만을 나타낸다.
2승의 만위(滿位)를 해탈신이라고 이름하고,
대모니(大牟尼)209)에 있는 것을 법신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전의를 증득함]
어떤 것이 두 가지 전의(轉依)를 증득함인가?210)
10지(地) 중에서 열 가지 뛰어난 수행[十勝行]을 닦고,
열 가지 무거운 장애[十重障]를 끊어서 열 가지 진여를 증득한다.
두 가지 전의를 이것에 의거해서 증득한다.211)
198)
다음에 5위(位) 중 제4위인 수습위(修習位), 즉 수도(修道)에 관하여 해설한다.
199)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의 유루종자(有漏種子)를 가리킨다.
추중(麤重)이란 유루종자라는 뜻으로서, 그것들이 강강(强剛)해서 조유(調柔)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부른다.
200)
전의(轉依)에서 전(轉)은 전사(轉捨)와 전득(轉得),
즉 변계소집성을 전사하고 원성실성을 전득하는 것이고,
의依는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의 소의(所依)가 되는 의타기성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7식의 근본적인 소의이며 지종의(持種依)인 제8식이 완전한 정화를 통해 전환됨으로써 번뇌장ㆍ소지장의 종자를 전사하여 열반ㆍ보리를 전득하는 것이다.
201)
2취(取)의 수면(隨眠)을 말한다.
202)
10지(地) 중에서의 무분별지혜이다.
203)
두 가지 추중(麤重)은 종자ㆍ종자가 아닌 습기(習氣)를 말한다. 유식 교의에서 습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훈습(熏習)의 기분(氣分)의 뜻으로서 종자에 사용된다.
둘째는 관습(慣習)의 기분의 뜻으로서, 번뇌의 자체[體]가 이미 다한 이후에 그 습관성이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후자(後者)의 의미이다.
204)
소지장(所知障)의 종자의 추중과 종자가 아닌 습기의 추중은 10지(地)의 각 지위에서 별도로 단멸한다.
번뇌장의 종자의 추중은 금강심(金剛心)에서 비로소 없애고, 종자가 아닌 습기의 추중은 역시 각 지위에서 단멸한다.
205)
다음에 전의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異說]를 서술한다.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06)
잡염분과 청정분을 말한다.
207)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08)
이 지위에서 장애를 끊고, 금강심(金剛心) 이후에 불과(佛果)를 증득한다. 이 지위에서 곧 증득하는 것은 아니다.
209)
진여(眞如)ㆍ유식성(唯識性)을 가리킨다. 모니(牟尼, muni)는 적묵(寂黙)으로 번역한다. 모든 잡염을 적정하게 그치고[寂止] 고요하기[黙靜] 때문이다.
210)
다음에 『삼십송』의 제29게송을 세 부문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해설한다.
211)
10지(地)는 경유하는 지위[位]이고,
열 가지 뛰어난 수행[十勝行]은 닦은 원인[因]이며,
열 가지 무거운 장애[十重障]는 단멸하는 법이고,
열 가지 진여는 관조하는 법이다.
이 네 가지 원인[因]에 의거해서 두 가지 전의(轉依)의 뛰어난 증과[妙果]를 얻는다.
10지와 열 가지 뛰어난 수행은 『삼십송』 제29게송의 처음 2구(句)를 자세히 해설하는 것이고,
열 가지 무거운 장애는 제3구를,
열 가지 진여는 제4구를 널리 해설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