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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순정리론 제77권
8. 변정품(辯定品) ①
1.5. 미ㆍ정ㆍ무루의 세 등지에 관한 제 문제
1) 등지를 처음 획득할 때의 방편
이와 같이 정려[지(支)]의 [실제적] 본질에 대해 이미 개별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렇다면 정(淨) 등의 등지(等至)는 어떻게 처음으로 획득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부를 성취하지 않고서 획득하는 경우
정(淨)등지는 이염과 생(生)에 의해
무루(無漏)등지는 이염에 의해
염(染)등지는 생과 물러남에 의해 획득된다.
全不成而得 淨由離染生
無漏由離染 染由生及退
논하여 말하겠다.
8근본등지(4정려와 4무색정)를 각기 상응하는 바에 따라, 만약 전부를 성취하지 않고서 획득하는 경우라면 [이러하다].
온갖 정등지(淨等至)는 두 가지 인연에 의해 획득된다. 첫째는 이염(離染)에 의해 획득되니, 이를테면 하지에 있으면서 하지의 염오를 떠날 때가 그러하며, 둘째는 수생(受生)에 의해 획득되니, 이를테면 상지로부터 몰하여 자지에 태어날 때가 그러하다.
아래 일곱 등지가 모두 그러하지만, 유정지(有頂地)의 경우는 그렇지 않고 오로지 이염에 의해서만 획득될 뿐이니, [유정지에는 더 이상] 상지가 없기 때문에 상지로부터 몰하여 그곳에서 생을 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만 근본등지에 한정시켜 설한 것은, 모든 근분정(近分定)은 염오를 떠나지 않았을 때라도 전부를 성취하지 않는 경우라면 가행에 의해서도 획득되기 때문이다.40)
무엇을 막기 위해 [본송에서] ‘전부를 성취하지 않고서’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인가?
이미 성취한 자가 다시 그 일부를 획득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이니,41) 예컨대 가행에 의해 정(淨)의 근본등지를 획득하거나, 물러남에 의해 그것의 순퇴분정(順退分定)을 획득하는 때가 그러한 경우이다.42)
그럴 때 이러한 뜻에 근거하여 이와 같이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염에 의해 정등지[淨定]를 획득하고, 이염에 의해 그것을 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물러남에 의해 획득하고, 물러남에 의해 버리며, [수]생에 의해 획득하고, [수]생에 의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순퇴분정이 그러하다. 바야흐로 초정려의 순퇴분에 포섭되는 선정은 욕계의 염오를 떠날 때 획득되며, 자지의 염오를 떠날 때 버리게 된다. 또한 자지의 염오를 떠나는 것에서 물러날 때 획득하며, 욕계의 염오를 떠나는 것에서 물러날 때 버리게 된다. 또한 상지로부터 자지에 태어날 때 획득하며, 자지로부터 하지에 태어날 때 버리게 된다. 나아가 그 밖의 정려지(地)와의 포섭관계에 대해서도 마땅히 이치에 맞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루등지(無漏等至)는 다만 이염에 의해 획득되는 것으로, 이를테면 성자는 하지의 염오를 떠날 때 상지의 무루등지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역시 다만 전부를 성취하지 않은 경우에 근거하여 설한 것으로,43) 만약 이전에 이미 성취한 자라면, 그 밖의 다른 때에도 역시 획득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진지(盡智)의 단계에서 무학도를 획득하고, 근기를 단련[練根]할 때 유학과 무학의 도를 획득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밖의 가행과 물러남에 의해 획득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모두 이치에 맞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44)
그리고 비록 정성이생(正性離生, 견도위)에 들어감에 따라 근본의 무루등지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는] 결정적인 사실이 아니니, 차제증자(次第證者)는 그때(견도에 들 때) 아직 근본정을 획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는 다만 결정적으로 획득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논설한 것으로, 성자는 하지의 염오를 떠날 때에만 필시 결정코 상지의 근본 무루정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염등지(染等至)는 수생(受生)과 물러남에 의해 획득되니, 이를테면 상지로부터 몰하여 하지에 태어날 때 하지의 염등지를 획득하며, 아울러 이러한 지(地)의 이염(離染)에서 물러날 때 이러한 지의 염등지를 획득한다. 즉 [염등지는] 이염에 의해, 가행에 의해 획득되는 일이 없으니, 이와 같은 두 때에는 능히 염오를 버리기 때문이다.
2) 세 등지의 상생(相生) 관계
어떠한 등지와 무간에 몇 가지 등지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루등지는 다음찰나 선(善)등지를 낳는데
위 아래로 세 번째 등지까지만 이를 뿐이며
정등지가 다음찰나에 낳는 것도 역시 그러하지만
그것은 아울러 자지의 염등지도 낳는다.45)
無漏次生善 上下至第三
淨次生亦然 兼生自地染
염등지는 자지의 정ㆍ염등지를 낳고
아울러 바로 아래 한 지(地)의 정등지를 낳으며
죽을 때 정등지는 일체의 염등지를 낳고
염등지는 자지와 하지의 염등지를 낳는다.46)
染生自淨染 幷下一地淨
死淨生一切 染生自下染
논하여 말하겠다.
무루등지(無漏等至)는 다음 찰나에 자지와 상ㆍ하지의 선(善)등지를 낳는다. 여기서 ‘선’이라고 하는 말은 정등지와 무루등지를 모두 포섭하는 말로서, 염등지와는 극히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필시 그것을 낳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지와 하지의 경우 각기 세 번째 등지까지만 낳을 수 있을 뿐으로, [그 이상은] 멀기 때문에 능히 초월하여 네 번째 등지를 낳는 일이 없다.47) 따라서 무루의 일곱 등지(4정려와 아래 3무색정, 유정처에는 무루가 없음) 중에서 초정려로부터는 무간에 여섯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와 제2ㆍ제3정려 각각의 ‘정’과 무루가 바로 그것이다. 무소유처로부터는 무간에 일곱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와 하지의 여섯 가지와,48) 상지(즉 유정처)의 정등지가 바로 그것이다. 제2정려로부터는 무간에 여덟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와 상지의 여섯 가지와,49) 아울러 하지의 두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식무변처로부터는 무간에 아홉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와 하지의 여섯 가지와, 아울러 상지의 세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0) 제3ㆍ제4정려와 공무변처로부터는 무간에 열 가지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상지와 하지의 여덟 가지와, 아울러 자지의 두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1)
그리고 유지(類智)는 무간에 능히 무색정을 낳을 수 있지만, 법지(法智)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니, 소의와 소연이 하지이기 때문이다.52)
정등지(淨等至)로부터 생겨나는 것도 역시 그러하며, 아울러 각기 자지의 염오등지도 낳을 수 있다.53) 따라서 유정처의 정등지는 무간에 여섯 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의 정ㆍ염등지와, 하지(무소유처와 식무변처)의 정ㆍ무루등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초정려로부터는 무간에 일곱 등지를 낳을 수 있고, 무소유처로부터는 여덟 등지를, 제2정려로부터는 아홉 등지를, 식무변처로부터는 열 가지 등지를 낳을 수 있으며, 그 밖의 등지(제3ㆍ제4ㆍ공무변처)로부터는 열한 가지의 등지를 낳을 수 있다.54)
염등지(染等至)로부터는 무간에 자지의 정ㆍ염등지를 낳을 수 있고, 아울러 바로 아래 한 지(地)의 정등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지의 번뇌에 핍박되어 하지의 정등지에 대해서도 역시 존중하는 마음을 낳기 때문에 염등지로부터 바로 아래 지의 정등지가 낳아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루등지와는 극히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그것을 낳을 수 없다.
만약 염등지와 정등지에 대해 능히 올바로 요지(了知)하였다면, 능히 염등지로부터 하지의 정등지를 낳을 수 있을 것이며, 그럴 경우 이러한 정등지는 [염등지가 아니라] 그 반대로 정등지로부터 생겨난 것이 될 것이니, ‘올바로 요지하는 것’은 바로 정등지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염오등지는 능히 올바로 요지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 같은 염등지로부터 정등지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인가?
선행된 원력(願力) 때문이다. 즉 일찍이 원하여 말하기를 “차라리 하지의 정등지를 획득할지언정 상지의 염등지는 구하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선행된 원력의 세력이 상속(相續)에 따라 일어났기 때문에 그 후 염등지로부터 하지의 정등지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먼저 [몇 시에 일어날지] 원을 세우고 잠자리[睡眠]에 들어야만 능히 기약한 시간에 깨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상에서 설한 정등지와 염등지가 염등지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만 선정에 들어있을 때의 청정과 염오를 근거하여 설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생(生)정려에서의 정등지와 염등지가 염등지를 낳는 경우라고 한다면, 그렇지가 않다.55) 즉 목숨을 마칠 때, 생득(生得) 즉 태어나면서 획득한 정등지는 각기 무간에 일체의 염등지를 낳을 수 있지만, 만약 태어나면서 [획득한 것이] 염등지라면 각기 무간에 자지와 일체 하지의 염등지를 능히 낳을 수 있을 뿐 상지의 염등지를 낳지 않으니, 하지를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 정등지의 네 가지와 그 상생관계
[앞에서] “정등지로부터 무간에 무루등지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그렇다면 일체 모든 종류의 정등지가 다 [무루등지를] 낳을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정등지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이를테면 바로 순퇴분(順退分)과
순주분(順住分)과 순승진분(順勝進分)과
순결택분(順決擇分)에 포섭되는 것이 그것이다.
淨定有四種 謂卽順退分
順住順勝進 順決擇分攝
이는 순서대로 번뇌와 자지와
상지와 무루에 수순하는 것으로
서로를 견주어 보면 순서대로
두 가지 세 가지 세 가지 한 가지를 낳는다.
如次順煩惱 自上地無漏
互相望如次 生二三三一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정등지(淨等至)에는 모두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순퇴분(順退分)에 포섭되는 것이며, 둘째는 순주분(順住分)에 포섭되는 것이며, 셋째는 순승진분(順勝進分)에 포섭되는 것이며, 넷째는 순결택분(順決擇分)에 포섭되는 것이다. 선정의 경지에는 각기 [이러한] 네 가지가 존재하지만 유정지만은 오로지 세 가지이니, 거기서는 더 이상 상지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으로, 그러한 [유정]지에는 순승진분에 포섭되는 등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중에서 오로지 네 번째 [순결택분에 포섭되는 정등지]만이 능히 무루등지를 낳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네 종류의 등지에는 바로 다음과 같은 특징[相]이 있기 때문이다. 즉 순퇴분은 능히 번뇌에 수순(隨順)하며,56) 순주분은 능히 자지[의 정등지]에 수순하며, 순승진분은 능히 상지[의 정등지]에 수순하며,57) 순결택분은 능히 무루등지에 수순한다. 그래서 모든 무루등지는 오로지 이 같은 순결택분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네 종류의 정등지에 대해] 유여사(有餘師)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순퇴분(順退分)이란 거기에 머물다가 물러나야 하는 등지이며, 순주분(順住分)이란 거기에 머물며 물러나지도 않고 또한 역시 승진하지도 않는 등지이며, 순승진분(順勝進分)이란 거기에 머물다가 능히 승진하는 등지이며, 순결택분(順決擇分)이란 거기에 머물면서 성도를 일으키는 선정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순결택분이란] 거기에 머물며 [4]제 통달(通達, 즉 견도)에 수순하는 등지로서, 이것에 의해 무간에 능히 이생(離生)에 들 수 있다”고 말하였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여기서의 결정적인 뜻은 말하자면 모든 성도는 반드시 이와 무간에 생겨난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무간에 반드시 능히 성도를 낳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와 다르다고 한다면(다시 말해 “순결택분의 뜻이 반드시 무간에 성도를 낳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오로지 세제일법(世第一法)만을 순결택분이라고 이름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유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순퇴분이란 온갖 번뇌와 아래위로 서로 뒤섞여 있는 등지이니, 염ㆍ정의 등지가 돌아가며 현전하기 때문이다. 순주분이란 능히 추(麤) 등의 여러 행상으로써 하지를 버리고 등지며[棄背], 정(靜) 등의 여러 행상으로써 자지를 섭수하는 등지이며,58) 순승진분이란 자지보다 뛰어난 상지의 공덕을 관찰하는 등지이며, 순결택분이란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무루등지와 무간에는 어떠한 분(分)이 현전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설하기를 “순퇴분을 제외한 세 가지 분과 통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치상 실로 두 가지 분이 [현전하니], 이를테면 뒤의 두 가지(순승진분과 순결택분)가 그것이다. 즉 초등지(超等至) 등을 수습하는 모든 이에게는 오로지 순결택분만이 가장 견고하고 수승하기 때문이다.59)
그런데 모든 유가사(瑜伽師)들은 [네 종류의 정등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만약 관행자(觀行者)가 자지의 선정에 대해 능히 잘 통달하지도 못하고 항상 안주하지도 못하면, 상지의 선정을 능히 흔구(欣求)할 수도 없으며, 자주 하지에 수순하는 생각이 현행하게 되는데, 그러한 이의 등지(等持)를 ‘순퇴분’이라고 한다. 혹은 자지의 이염(離染)에서 물러남으로 말미암아 획득하는 등지를 ‘순퇴분’이라고 한다. 즉 이러한 [순퇴분의] 선정을 성취하는 보특가라를 일컬어 ‘물러나는 자[退者]’라고 하는 것으로, 이는 마치 소의 행동거지[牛行]를 성취하는 이를 일컬어 ‘소’라고 하는 것과 같은데, [여기서는] 사납게 발끈하여 돌이키기 어려운 행동[兇勃難迴]을 ‘소의 행동거지’라고 말하였다.
또한 자지의 선정에 탐착하여 버리려고 하지 않으며, 상지의 선정에 대해 능히 흔구(欣求)하지도 않으면, 그러한 이의 등지를 ‘순주분’이라고 하며, 자지의 선정에서 비록 오래 머물 수 있을지라도 탐착(耽著)하지 않으며, 상지의 선정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견인하면, 그러한 이의 등지를 ‘순승진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지와 상지의 선정 모두에 대해 탐착하지 않으며, 대개는 싫어한다는 생각[厭想]으로 머물러 끊어지게 하려고 하면, 그러한 이의 등지를 ‘순결택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온갖 유정으로서 순퇴분에 안주하는 자는 대개 마음이 광대한(많은) 과보에 계박되어 있으며, 온갖 유정으로서 순주분에 안주하는 자는 자주 자지의 선정에 머물면서 능히 상지의 선정을 추구하지 않으며, 온갖 유정으로서 순승진분에 안주하는 자는 점차로 그 밖의 다른 뛰어난 선정을 추구한다. 그런데 순승진분에는 모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자지의 수승한 공덕을 [견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지의 수승한 공덕을 [견인하는] 것인데, 만약 능히 이러한 공덕을 견인하는 등지라면 이를 ‘순승진분’이라고 이름하였다. 여기에는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싫어하는 것[厭]이며, 혹은 좋아하는 것[欣]이다.60) 그리고 온갖 유정으로서 순결택분에 안주하는 자는 온갖 유정이 [향수하려는] 낙(樂)을 끊고 무루등지를 닦는다.”
이상의 사실을 일컬어 네 가지 분(分)에 안주하는 자들의 차별이라고 한다.
만약 번뇌에 수순하는 등지를 ‘순퇴분’이라고 이름한다면,61) [더 이상 번뇌에 수순하지 않는] 온갖 아라한에게 어떻게 물러나는 일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들에게 여전히 순퇴분정이 존재하여 [물러남이] 현행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니, 그들은 염오를 떠나고 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이 같은 논란이 있을 수 있을지라도 여기에는 진실로 어긋남이 없다. 즉 순주분 중에 순퇴분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역시 ‘순퇴분’이라는 명칭을 설정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도 물러나는 경우가 있으니,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논설한 바와 같다.62)
나아가 이러한 네 가지 분(分) 상호 간의 상생(相生)관계에 대해 살펴보면, 첫 번째 순퇴분은 능히 두 가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순퇴분과 순주분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 순주분은 순결택분을 제외한 세 가지를 낳을 수 있으며, 세 번째 순승진분는 순퇴분을 제외한 세 가지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순결택분은 한 가지를 낳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자신의 분이 바로 그것으로, 그 밖의 분은 낳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이는 설하기를, “순승진분도 역시 낳는다”고 하였다.
4) 초등지(超等至)의 수습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정등지와 무루등지는 다 같이 능히 상ㆍ하지를 초월하여 세 번째 등지까지만 이를 수 있다.63) 그렇다면 관행자는 어떻게 초(超)등지를 닦는 것이며, 그것의 가행위(加行位)와 성만위(成滿位)의 차별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두 종류의 선정을 순(順)ㆍ역(逆)ㆍ
균(均)ㆍ간(間)ㆍ차(次)하고, 초(超)하니
간ㆍ초에 이르는 것을 [원만한] 성취라고 하는데
세 주(洲)의 이근의 무학이 닦는 것이다.
二類定順逆 均間次及超
至間超爲成 三洲利無學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정의 선(善)등지는 두 종류로 나누어지니, 첫째는 유루이며, 둘째는 무루이다.
[이러한 유루와 무루의 등지로서] 상지로 나아가는 것을 ‘순(順)’이라고 하며, 하지로 되돌아가는 것을 ‘역(逆)’이라고 하며, 동류(同類)를 [일으키는 것을] ‘균(均)’이라고 하며, 이류(異類)를 [일으키는 것을] ‘간(間)’이라고 하며, 서로 인접하는 것을 [일으키는 것을] ‘차(次)’라고 하며, 한 단계[地]를 뛰어넘는 것을 ‘초(超)’라고 한다.64)
이를테면 관행자는 초등지[超定]를 닦을 때, 먼저 유루 8지(地)의 등지에 대해 순(順)ㆍ역(逆)ㆍ균(均)ㆍ차(次)로서 현전 수습(數習)하고, 다음으로 무루 7지(유정지를 제외한 나머지)의 등지에 대해 순ㆍ역ㆍ균ㆍ차로서 현전 수습하며, 다음으로 유루와 무루의 등지에 대해 순(順)ㆍ역(逆)ㆍ간(間)ㆍ차(次)로서 현전 수습한다. 그리고 나서 다음으로 유루의 등지에 대해 순(順)ㆍ역(逆)ㆍ균(均)ㆍ초(超)로서 현전 수습하고, 다음으로 무루의 등지에 대해 순ㆍ역ㆍ균ㆍ초로서 현전 수습하는데, 이때를 초등지를 수습하는 가행이 원만하게 된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유루와 무루의 등지에 대해 순ㆍ역ㆍ간ㆍ초로서 현전 수습할 때, 초등지가 성취되었다고 말한다.65)
여기서 ‘초(超)’라고 함은 단박에 두 가지를 뛰어넘는 것을 말하는데, 첫째는 지(地) 즉 선정의 단계를 뛰어넘는 것이고, 둘째는 법(法)을 뛰어넘는 것이다. 즉 [‘초’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능히 한 단계를 뛰어넘어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것으로,66) 네 번째 등지는 너무 멀기 때문에 능히 초월하여 그것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초등지는 오로지 북구로주를 제외한 욕계의 세 주(洲)에서만 닦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남ㆍ여로서 불시해탈(不時解脫)의 온갖 아라한과 통하는 것으로서, 요컨대 무쟁(無諍)과 미묘한 원지(願智) 등의 변제정(邊際定)을 획득한 자만이 능히 [등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 뿐 그 밖의 다른 이는 뛰어넘을 수 없으니, 그들(불시해탈)은 선정이 자재하기 때문이며, 번뇌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시해탈(時解脫) 역시 번뇌가 없을지라도 선정이 자재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온갖 견지(見至)의 성자는 선정이 자재하다고 할지라도 번뇌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능히 초등지를 닦을 수 없다. 그리고 승해작의(勝解作意)로도 능히 무간에 초등지를 닦을 수 없으니,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이다.
5) 등지의 소의신
이러한 온갖 등지(等至)는 어떠한 소의신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모든 선정은 자ㆍ하지신(身)에 의지하고
상지신에 의지하지 않으니, 무용하기 때문이며
오로지 유정지에 태어난 성자만은
하지의 선정을 일으켜 나머지 번뇌를 멸진한다.
諸定依自下 非上無用故
唯生有頂聖 起下盡餘惑
논하여 말하겠다.
모든 등지(等至)는 자지와 하지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상지의 몸에 의지하여 하지의 등지를 일으키는 일은 없으니, 상지의 몸으로 하지의 등지를 일으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이며, [상지의 몸] 자체에 수승한 선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하지의 선정은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이며, 이미 버렸기 때문이며,67) 싫어하여 훼손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특상[總相]은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보다 자세하게 논설해 본다면, 성자로서 유정지(有頂地)에 태어난 자는 반드시 자지의 나머지 번뇌를 멸진하기 위하여 무루의 무소유처를 일으키는데,68) 자지(유정지)에서는 성도를 흔락(欣樂)하며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로지 무소유처만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가장 인접하여 가깝기 때문으로, 그것을 일으켜 현전시키면 [유정처의] 나머지 번뇌도 모두 멸진하게 되며--무루도를 떠나 그러한 공능을 갖는 도는 필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나머지 번뇌를 끊을 때 비로소 아라한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정처와 무루의 무소유처는 9지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나고, 유루의 무소유처는 8지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유루와 무루의 식무변처는 7지의 몸에 의지하고, 공무변처는 6지의 몸에 의지하며, 내지 초정려는 2지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나니, 이를테면 자지와 욕계이다. 그러나 만약 유루[신]에 의지하여 성취하는 경우라면, 무루도를 일으킬 때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선정]은 9지의 몸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6) 등지의 경계
온갖 등지 중의 어떤 등지는 어떠한 경계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미등지는 자지의 계(繫)를 반연하고
정ㆍ무루등지는 일체를 두루 반연하지만
근본등지로서 선의 무색정은
하지의 유루법을 반연하지 않는다.
味定緣自繫 淨無漏遍緣
根本善無色 不緣下有漏
논하여 말하겠다.
미등지[味定]는 다만 자지의 유루법(즉 전 찰나의 淨등지)을 반연할 뿐이니, 유루법은 바로 계박되는 것[所繫事]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계박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3유(有, 욕ㆍ색ㆍ무색유)에 포섭되는 것임을 나타낸다. 즉 [미등지는] 무루법을 반연하지 않으니, 애(愛)의 행상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만약 무루법을 애[미](愛味)하였다면 그것은 번뇌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69) 또한 상지의 법도 반연하지 않으니, ‘애’의 계(界)ㆍ지(地)가 다르기 때문이며, 하지의 법도 반연하지 않으니, 이미 그것에 대한 탐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정(淨)과 무루(無漏)의 등지는 다 같이 능히 자지와 상ㆍ하지의 유위법과 무위법을 두루 반연하니, 그것은 다 경계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차별이 있다고 한다면, 무기의 무위는 무루등지의 경계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70)
오로지 어떤 법에 대해 [자지와 상ㆍ하지의 유위법과 무위법을] 능히 두루 반연하는 것이라고 설한 경우, 소연이 되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니, 앞에서 이미 논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지에 포섭되는 선(즉 정과 무루)의 무색정은 하지의 온갖 유루법을 반연하지 않으니, 하지의 법은 적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근본정으로서 선의 무색정은 지극히 적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경에서는 무색정 모두에 대해 일체의 하지를 초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온갖 정려에 대해서는 그와 같이 설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즉 근본의 무색정은 하지의 계(繫, 즉 유루법)를 반연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를 초월하였다’는 말을 설하였던 것이지만, 온갖 정려 중에는 [하지의] 지(智)를 두루 반연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하지를 초월하였다’고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무색정에 대해] 이미 ‘색상(色想) 등을 초월하였다’는 말을 설하였기 때문에 [‘하지를 초월하였다’고 함은] 다만 소연을 초월한 것에 근거하여 설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초월이 이계(離繫)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색상 따위뿐만 아니라 ‘일체를 초월하였다’고 말했어야 하며, 또한 정려에 대해서도 마땅히 ‘초월하였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지에 포섭되는 선의 무색정으로서] 자지와 상지의 법을 능히 반연하지 않는 것은 없다. 비록 하지의 무루법도 역시 능히 반연할지라도 다만 유지품(類智品)의 도를 반연할 뿐 법지품(法智品)의 도는 반연하지 않으니,71) [근본지에 포섭되는 선의 무색정은] 다만 능히 자지의 모든 대치[全治]를 반연할 뿐이기 때문으로,72) 법지품이 모든 대치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설한 바와 같다. 또한 법지품의 도가 무색계를 능히 대치하는 것(예컨대 원분대치)이라 할지라도, 이는 객(客)으로서 주(主, 주된 도)가 아니다.
[근본지에 포섭되는 선의 무색정은] 역시 또한 능히 하지법의 멸(滅)도 반연하지 않는다.73)
그리고 이미 무색의 근본정(根本定)이 하지[의 유루법]을 반연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였지만, 이에 준하여 볼 때 근분정(近分定)에는 하지를 반연하는 공능이 존재하니, 그러한 무간도는 필시 하지를 반연하기 때문이다.
7) 단혹(斷惑)의 등지
미(味)와 정(淨)과 무루(無漏)의 세 등지 가운데 어떠한 등지의 힘이 능히 온갖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루등지가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있으며
아울러 온갖 정(淨)의 근분정도 능히 끊는다.
無漏能斷惑 及諸淨近分
논하여 말하겠다.
무루의 온갖 선정은 모두 다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의 정등지[本淨]조차 번뇌를 끊을 만한 공능이 없거늘, 하물며 온갖 염오등지(미등지)가 능히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즉 근본의 정등지는 하지의 번뇌를 능히 끊을 수 없으니, 이미 그것의 염오를 떠났기 때문이며, 상지의 번뇌를 능히 끊을 수 없으니, 그것은 자신보다 수승한 것이기 때문이며, 자지의 번뇌를 능히 끊을 수 없으니, 자지의 번뇌와 동일한 계박이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은 자신을 대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74)
만약 정(淨)의 근분정(近分定)이라면 역시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있으니, 그것들은 모두 바로 아래 단계[地]의 번뇌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75) 그렇지만 중간정(中間定)에 포섭되는 정등지의 경우에는 역시 능히 번뇌를 끊을 수 없다.76)
8) 근분정(近分定)
근분정(近分定, sāmantaka samāpatti)에는 몇 가지가 있으며, 어떠한 수(受)와 상응하는가? 미(味) 등의 세 등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근분은 여덟 가지로, 사수이고 정등지인데
첫 근분정만이 성법, 혹은 세 등지를 [갖추고 있다].77)
近分八捨淨 初亦聖或三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근분정(近分定)에도 역시 여덟 가지 종류가 있으니, 8근본정(根本定)에 들어가는 문(門)이 되기 때문이다.
일체의 근분정은 오로지 사수(捨受) 한 가지와 상응할 뿐이니, 힘써 노력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며,78) 아직 하지의 두려움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8근분정은 모두 정등지(淨等至)에 포섭되며, 오로지 첫 번째 근분정만이 무루등지와도 역시 통하니,79) 미착함이 없는 이염(離染)의 도이기 때문이다. 즉 위의 일곱 근분정에는 무루등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자지의 법을 싫어하거나 등지는 일[厭背]이 없기 때문이며, 오로지 첫 번째 근분정만이 무루등지와 통한다고 한 것은 자지(즉 욕계)의 법을 싫어하고 등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선정의] 경지[地, 즉 욕계 미지정]는 많은 재환(災患)의 세계(즉 욕계)와 매우 가까이 있기 때문이며, 모든 욕탐은 심(尋)ㆍ사(伺)로 말미암아 일어나는데, 이러한 경지에는 여전히 심ㆍ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연유에서 『비바사(毘婆沙)』에서는 모든 근분지에는 결생(結生)의 마음이 존재한다고 설한 것인가? [근분지에] 염오한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생할리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근분지도 미(味, 즉 염오)등지와 상응하는 일이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첫 번째 근분정에] 정(定)등지의 염오함[定染]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부정하였을 뿐, 생(生)등지의 염오함[生染]을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바사』와] 상위하지 않는다.
혹은 유여사(有餘師)는 이와 같이 설하였다.
“첫 번째 근분정에도 역시 선정의 염오함(즉 味등지)이 존재하니, 아직 근본정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역시 이에 대해 애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미지정(未至定)에는 세 종류(미ㆍ정ㆍ무루)의 등지가 모두 존재한다.”80)
9) 중간정려와 근분정의 차이
[그렇다면] 중간정려(中間靜慮, dhyānāntara)와 온갖 근분정에는 차별되는 뜻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역시 또한 다른 점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그 뜻에 역시 다른 점이 있으니, 이를테면 모든 근분정은 바로 이염의 도로서 근본정에 들어가는 원인이 되지만, 중간정려는 그렇지 않다.81)
그밖에 또 다른 점이 있으니, 게송으로 말하겠다.
중간정려에는 심(尋)이 없으며
세 등지를 갖추었으며, 오로지 사수이다.
中靜慮無尋 具三唯捨受
논하여 말하겠다.
첫 번째 근본정과 근분정은 심(尋)ㆍ사(伺)와 상응하며, 위의 일곱 가지 선정 중에는 모두 심ㆍ사가 존재하지 않지만, 오로지 중간정려에는 ‘사’만 존재하고, ‘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초정려보다는 뛰어나지만 제2정려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바로 이러한 뜻에 근거하여 ‘중간’이라는 명칭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지에는 중간정려가 존재하지 않으니, 어떤 한 경지를 오르내리는 이와 같은 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즉 중간정은 초정려에 포섭되는 것이면서도 그것과는 차별되는 점이 있으니, 이를테면 이것은 심(尋)을 감(減)함으로써 ‘중간’으로 설정된 것이다.
감하여 무슨 차이를 성취하였기에 중간정은 초정려에만 존재하고, 상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어찌 계경에서 ‘일곱 가지 [선정에] 근거가 되는 선정[七依定]’에 대해 설하였다고 하지 않겠는가?
미지정과 중간정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계경과 정리(正理)에 의해 [알게 되었다].
먼저 미지정의 경우, 예컨대 계경에서 “온갖 유정으로서 아직 초정려 등에 능히 들지 못한 자라 하더라도 구족하여 안주하며 성혜(聖慧)에 의해 현법 중에서 온갖 누진(漏盡)을 획득하는 이가 있다”고 말하였으니, 만약 미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혜는 무엇에 근거하여 생겨날 것인가? 또한 『소사마계경(蘇使摩契經)』 중에서도 설하기를 “혜해탈(慧解脫)한 자로서 근본정을 획득하지 못한 이가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이들도] 선정(이를테면 미지정)에 근거하여 혜해탈을 성취하였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따라 미지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중간정의 경우, 예컨대 계경에서 유심유사(有尋有伺) 등의 세 가지 삼마지가 존재한다고 설하였기 때문이다.82) 즉 경에서 설하기를 “초정려는 심ㆍ사와 함께 하며, 제2정려 등에는 심ㆍ사가 모두 종식되었다”고 하였는데, 만약 중간정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선정을 유사무심(有伺無尋)의 상태, 즉 ‘사’만 존재하고 ‘심’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것인가? 심ㆍ심소는 점차적으로 종식되기 때문에 이치상 마땅히 유사무심의 상태가 존재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대범왕(大梵王)이 바로 세계의 주(主)라면, 중간정을 떠나(배제하고서) 무엇으로 수승한 원인을 삼았을 것인가? 이에 따라 중간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는 미지정과 중간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주 설하지 않았으니, 이 두 가지는 바로 초정려에 포섭되기 때문으로, 초정려에 대해 설하였으면 이미 그것을 설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로지 첫 번째 근분정만을 미지정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은, 그 밖의 근분정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러한 [첫 번째] 근분정은 선행한 선정에 편승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다. 또한 여기에 머물고 나서도 애미(愛味)를 일으키지도 않는데, 바로 이 같은 뜻에 근거하여 ‘미지(未至)’라는 명칭을 설정하게 된 것이다. 즉 상지 선정의 가장자리[邊, 즉 상7지의 근분]에 대해서는 ‘미지정’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니, 그것들은 모두 선행된 선정의 세력에 편승하여 생겨났으며, 아울러 거기에 머무를 때에는 이미 애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바사자(毘婆沙者)들은 이와 같이 설하고 있다. “아직 근본정의 경지[本地]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미지’라는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 이는 바로 근본정의 공덕이 아직 현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중간정려는 미(味) 등의 세 등지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동일한 생처(生處, 즉 ‘生’의 초정려)에 별도로 계속(繫屬)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극하게 중간정을 수습한 자는 미래 응당 대범처(大梵處)에 태어나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 역시 근본정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등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지(즉 ‘定’의 초정려)에서 애(愛)를 일으켜 그것(중간정)을 탐하는 것은 아니니, 미착되는 것에 차별이 있듯이 능히 미착하는 것에도 역시 차별이 있기 때문으로, 여기에도 참으로 애미(愛味)할만한 수승한 공덕이 존재하기 때문이며,83) 무루정이 생겨나면 역시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역시 [근분정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사수(捨受)와 상응하니, [여기에는] 세 가지 식신(識身)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낙수가 존재하지 않으며, 희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미 초정려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고--그렇지만 초정려에 대한 애탐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 힘써 노력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며84)--이 같은 사실에 따라 이를 ‘고통행(苦通行)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설하였다85)--, 또한 우수(憂受)와 고수(苦受)와 [상응하지] 않는 것은 이미 욕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중간정은 한결같이 사수와 상응한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정은 능히 대범처(大梵處)의 과보를 초래하니, 많이 닦고 익힌 자는 대범천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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