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산 관룡사(觀龍山觀龍寺)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신라시대 8대 사찰 중의 하나로서 많은 문화재와 경치 좋은 사찰로 널리 알려졌지만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사기(寺記)에 따르면 349년에 창건되었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의 창건 설화와 같이 불교가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가야에 전해졌다는 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예증이 되기도 한다. 그 뒤 583년(진평왕 5) 증법(證法)이 중창하였는데, 보통 이를 창건으로 삼기도 한다.
삼국통일 뒤에는 원효(元曉)가 1,000명의 중국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고 대도량을 이룩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松坡)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서
화왕산(火旺山) 마루의 월영삼지(月影三池)로부터 아홉 마리의 용이 등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관룡산은 구룡산이라 하기도 한다.)
748년(경덕왕 7) 추담(秋潭)이 중건하였고, 1401년(태종 1)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당우가 소실되었다.
1617년(광해군 9)에 중창, 1704년(숙종 30) 가을의 대홍수로 금당(金堂)과 부도 등이 유실되고 승려 20여 인이 익사하는 참변을 당한 뒤, 1712년에 대웅전과 기타 당우들을 재건하였다.
1749년(영조 25)의 부분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 일부분 수정(의하면▶따르면, 그러나 등을 삭제함)
창녕 관룡사 사적기(경남 유형문화재 제183호)는 조선 영조9년(1733) 평해군수 신유한이 지었다.
위 백과사전이 수록한 내용은 이 사적기을 인용했을 것이다.
지도엔 관룡사 좌우에 관룡산과 구룡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1. 신라시대 8대 사찰을 인터넷 검색을 하였지만 원하는 답을 찾지 못 했다.
신라시대 8대 사찰은 어떤 사찰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2. 원효의 중국 승려 1,000명은 '척판암' 관련 설화에 나오는 중국 승려 1,000명과 일치한다.
3. 지리산 칠불암(요즘은 칠불사)을 아직 탐방하지 못하여 사찰에 대한 기록을 검색해 보지 못 했다.
- 장유화상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와 관련되어 있는데, 장유화상이란 인물이 실존했던 승려인지 확신이 안 선다.
4. 349년이면 가락국(김해) 5대 이시품왕 재위 기간이다. 창녕을 근거지로한 가야국(비사벌국)이 건립할 수도 있지만....
452년 8대 질지왕이 허왕후(김수로왕의 왕비/ 42년 가락국 창건)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왕후사'를 창건, 왕후사는
현재 장유사 밑의 그 터가 있다고 본다. 이때 왕후사를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 한다.
48년 허황옥(허왕후)가 인도에서 오빠(또는 동생)인 장유화상 등 여러 사람과 함께 가락국으로 와 수로왕과 결혼.
2대 거등왕이 부친과 모친, 자신을 위해 사찰을 세움.(모은암, 부은암(요즘 부은사), 자암 등, 장유화상이 건립)
틀니가 맞지않는다. 장유화상은 존재한 인물일까? 허왕후는 인도에서 왔을까? 서력 전후 인도에서 활거한 나라들이
모두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공부하여야 하지만...휴, 길이 멀다.
관룡사는 이번이 두번째이다.
15여 년 전에 동문산악회와 산행을 하면 스쳐 지나갔다.
가까운 곳이라 그리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타인의 창녕 관련 글을 읽고 관심을 가졌고, 1박 2일 일정으로 창녕군 내에 있는 전통사찰(8곳)을 돌아볼 요량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화왕산 산행도 체념하였다.
관룡사, 삼성암, 청련암, 극락암, 도성암, 창녕 포교당, 석불사, 법화사/ 삼성암, 청련암, 극락암, 법화사 등 4곳은 못 감.
차로 집 입구까지 갔다. 흐린 날이지만 관룡사가 멋진 경치를 가진 사찰임을 느꼈고 왜 자주 오지 않았는가 자책도 들었다.
보는 순간, 해남 미황사가 떠올랐다.
천천히 돌아봤다. 용선대 부처의 미소에 잡혀 용선대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석장승 / 경남 민속 문화재 제6호
어느 분의 글을 보니 사찰보다 이 석장승에 정감이 가더라고...... .
민간신앙을 불교에서 포용하면서 척사의 의미가 같은 사천왕을 대신하여 서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쉽다. 푸르른 날이었으면 감탄사가 연발 나왔을 것이다.
석문
뭐라고 읽지? 의미가 뭘까?
사찰 현판이 천왕문 위에 걸려 있다.
소조도 목조도 아닌 그림(탱화)이다.
범종루
어느 카페의 글을 읽었다.
관룡사는 다 좋은 데 이것을 보면서 한숨이 푹 나왔다고. 불교는 기복과 아무 상관이 없다.
'부처님 가피'가 뭐꼬? 내 생각엔 '부처님 가피'는 없다.
대한민국에 '한 가지 소원을 꼭 이루어 준다는 **사'가 엄청 많다. 그 사찰 다 돌아다니면 나는 대통령도 하고 재벌도 하고
교수, 판사, 검사, 뭐 못할 것이 없다.
현실 타협, 부정하거나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기복신앙은 의타심이다. 이런 의타심이 심해지면 사이비에 빠질 수도 있다. 이성은 마음에 있어야 하는데 절로 가 있다.
기복신앙을 강조하는 마군의 승려가 생길 수도 있다. 단지 이를 경계할 뿐이다.
삶은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어떠한 신도 나를 돕지 않는다.
대웅전 / 보물 제212호
목조 석가여래삼불좌상과 대좌 / 보물 제1730호
원음각 / 경남 문화재자료 제140호
약사전 / 보물 제146호
약사전 뒷벽 그림.
석조 여래좌상 / 보물 제519호
약사전 안 좌우 벽화
삼층석탑 / 경남 유형문화재 제11호
칠성각
산령각은 작고 아담하다.
응진전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 경남 유형문화재 제576호
부도 / 경남 문화재자료 제19호
석종형 부도 2기, 당호가 보이질 않는다.
용선대
용선대에서 본 관룡사
석조 여래좌상 / 보물 제295호
이쪽에서 보았을 때 미소가 귀엽다. 나를 미소짓게 하는 부처다.
옥천사지, 고려 말 승려였던 신돈과 관련된 사찰.
신돈, 그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연 그는 요승이었을까?
날이 맑은 여름이든 가을에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
계절에 따라 여러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사찰, 관룡사이며 관룡산이다.
첫댓글 보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