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일(월) 4일차
하루가 즐거우면 하루는 괴로운 법, 어제 밤늦도록 네팔 맥주 마시며 타멜거리를 쏘다닐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웠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현실로 돌아오니 ‘어제 내가 무슨 짓을 한거야?’ 싶었다. 내가 절대로 마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평생 술도 못 끊는데 마약을 어떻게 끊겠는가? 이다.
흔들리는 머리로 비틀거리면서 짐을 꾸리고 최대한 멀쩡한 걸음걸이와 표정으로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선라이즈 코티지로 숙소를 옮겼다. 언니는 새로 옮긴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드나 보다.
“와우, 이 집 너무 좋다. 부켄빌리아가 마당에 한가득이야.”
그랬다. 이 전 숙소가 지은지 얼마 안 된 현대식 호텔이라면 이 집은 지은 지 수 십년은 되어 다소 허름하기는 하지만 싱싱한 나무와 예쁜 꽃들이 만발한 넓은 정원이 있고, 특히 심은지 50년이 넘었다는 부켄빌리아 한 그루가 집 전체를 에워싸고 핑크빛의 싱싱한 꽃을 만발하고 있으니 진정 편안함이 느껴지는 숙소이다.
특히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2층에 있는 방으로 매우 넓어서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부잣집 안방처럼 큰 침대 두 개와 응접세트까지 있고 창문너머로 보이는 부켄빌리아 꽃무리가 방안을 더욱 환하게 비춰준다. 1일 숙박비 3만5천원으로 재벌이 된 기분이다.
“와, 이 책 너무 재밌어.”
언니도 힘들었는지 오후 내내 소파에서 뒹굴며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으며 보낸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계속 깔깔거리며 웃는다. 왜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한번도 소리 내어 웃어본 적이 없었던가? 재미있다고 속으로만 느끼고 마는 나하고 언니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물며 영화나 드라마를 볼때도 언니는 계속 리액션을 하는데 유전인 듯 언니의 딸과 아들도 리액션이 강하다. 사위는 나와 같은 부류이다.
어제 만난 세 분이 저녁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면서 작별인사를 하러왔다. 두 번밖에 안 만났지만 서운한 듯 내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천연기념물이라 귀하니까 좀 더 만지고 가세요.”
이런 농담도 유머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이듬이 안 좋을 것만은 아니다. 말이야 한국에 가서도 또 만나자고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약속은 다 부질없는 것임을 알기에 ‘다음에 어디 좋은데 여행 가시면 연락주세요.’ 하고 보낸다.
오후 늦게 내일 갈 더르바르 광장을 답사하고 오는 길에 감자, 양파 등 장을 보았다. 어제 길거리에서 만난 제주도에서 혼자 왔다는 아가씨를 오늘 초대했기 때문이다. 오겠다는 시간에 맞춰 밥과 된장국을 정성껏 끓여 준비를 다 해놓았는데도 제주도 아가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한번 해볼까?”
“아니, 그냥 놔두세요. 올 사람이었으면 진즉 오거나 연락이 왔을 거예요”
“못 올거면 전화나 문자를 주지.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밥 차려 놓고 기다리고 실망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난 반신반의,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이 오늘은 어디에서 또 누군가를 만날수도 있기 때문에 오면 좋고, 안 오면 말고 했기에 그리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는데 언니는 여느 때 보다 더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서인지 실망이 큰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창밖의 활짝 핀 부켄빌리아를 바라보며 먹는 한식은 며칠 동안의 느끼함을 달래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