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다.
불리지 않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시인 하만스타인(Hamanstenin)의 이 말이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며칠을 꼼짝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건만 그렇다고 막상 나서려면 이런저런 핑계가 발목을 잡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그랬고 딱히 갈 곳이 없기도 했다. 내게도 마음을 울려주는 종소리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날씨도 꾸물꾸물하니 밖으로 나다니기는 그렇고 실내면 좋겠다 싶었다. 진천을 오가면서 이정표만 보았던 ‘종 박물관’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하만스타인 덕분이다. 집을 나서기를 잘했다고 응원이라도 하듯 구름이 서서히 밀려나더니 햇살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어제 내린 눈으로 젖은 땅은 은빛 융단을 깔아주었다.
진천이 낳은 민족문학 시인 포석 조명희의 생가터가 있는 벽암 사거리를 지나 백곡저수지 방향으로 들어섰다. 저 멀리 저수지 제방이 보이고 박물관 입구에는 맞은편 공원으로 이어지는 출렁다리의 붉은 줄이 눈길을 끈다. 가을을 밀어낸 자리에 퇴색한 잡초와도 조화롭다.
어떤 환란도 모두 받아줄 듯 구불구불 휘어진 소나무 저편에 종각이 보인다. 생거진천대종각이다. 마침 직접 타종을 체험할 수 있어 두 손으로 줄을 잡고 소망 하나 담아 당목을 조심스레 밀어보았다. 생각보다 웅장한 소리가 울창한 솔숲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솔바람을 실어온다. 머릿속까지 닿은 공명에 취하여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바닥에 진천이 낳은 인물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방문객을 맞는다. 신라 김유신은 물론 송강 정철, 포석 조명희, 조선 문인이자 화가 강세황, 항일독립운동가 이상설…. 과연 넓지 않은 진천 땅에 참 많은 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무슨 소망을 담았을까? 작은 어깨를 맞대고 오종종 매달린 종들이 모여 커다란 종 모형을 만들었다. 건강, 합격, 취업, 사랑…. 모든 이들의 기원이 이루어지길 빌며 나도 소망 한 자락을 얹는다.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 모형이 옥색 치마를 입은 여인처럼 신비로운 자태로 서 있다. 어릴 적 엄마, 아빠를 따라 종종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던 때라 광고만 끝나면 곧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나를 잠재우지 못한 영화가 있었다. 에밀레종. 영화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음산한 어둠 속에서 펄펄 끓는 쇳물과 스님들의 긴장된 표정, 아기 엄마의 애타는 눈물은 아직도 생생하다. 대여섯 살 정도였음에도 너무 슬퍼서 울먹울먹 흐느꼈던 기억이 난다. 에밀레종의 전설은 전설일 뿐 천장에서는 쇳물주조과정을 끝내고 거푸집을 벗어내는 장면이 영상으로 연출되고 있다.
신라 경덕왕은 성덕대왕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종을 만들기로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혜공왕 7년(771년)에 이르러 34년이란 긴 각고 끝에 완성하게 된다.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밖을 둘러싸고 있어서 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가 없고, 아주 큰 소리는 천지 사이에 진동하고 있어서 들어서는 그 울림을 들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가설을 세워 세 가지 진실의 오묘함을 보듯이, 신종을 매달아 놓아 일승의 원음을 깨닫고자 하니라.
-성덕대왕신종 명문 中-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의 분위기에 걸맞게 문양이 화려하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 1,000자가 넘는 명문은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소리 또한 세계 어느 종에서도 낼 수 없는 맥놀이라는 울림이 있어 이는 기술을 뛰어넘어 과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안으로 들어가니 시대별로 범종의 소리를 구별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인 상원사종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맑고 울림이 많아 태평성대 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말하는 듯하다. 밝은 선禪의 소리다. 다음은 고려 내소사의 범종 소리를 들어보았다. 실내인데도 아득하게 들린다. 호국불교의 전성기에 걸맞게 소리 또한 여유롭다. 조선시대 해인사 종소리는 깊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다. 아무래도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펼치던 시대라 은근하게 울림을 전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소리의 느낌은 따로 들으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미세한 것 같지만 이 작은 차이마저 섬세하게 구현해 종을 만든 것을 보면 분명 우연은 아니리라. 소리의 비밀은 무엇일까.
종의 종류는 참 많다. 어렸을 적 선생님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종부터 뎅겅~ 뎅겅~ 시간을 알려주던 학교 종, 땡~ 땡~ 교회 종, 소의 귀밑에 달았던 워낭…. 그뿐인가. 자전거 종도 있고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방울도 종의 일종이다. 또 악기의 기능을 갖는 악종도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종의 종류만큼 소리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서양의 종은 주로 위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람이 종신鐘身 안에 있는 줄을 당겨 소리를 낸다. 아래로 쏟아낸 소리는 그대로 사방으로 흩어진다. 서양의 종소리는 그냥 소리일 뿐이다. 범종은 바닥 가까이 낮은 곳에 있어 당목을 쳐서 밖에서 안으로 소리를 전한다. 그 소리는 바닥에 파놓은 움통에서 숨을 고르고 난 연후에 세상 밖으로 나온다. 서양의 종소리가 하늘을 나는 새의 노래라면 범종의 소리는 세상을 품는 영혼의 소리다.
우리나라 범종의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맥놀이 현상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여운 때문이다. 맥놀이 현상은 범종에 새겨진 마디선과 비천상과 같은 문양에 의하여 서로 다른 소리가 발생하며 서로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란다. 문양은 멋있으라고 장식으로 넣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겉만 보고 판단했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더니….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을 묘사하였다 한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문양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병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공양자상이다. 이는 성덕왕에 대한 아들 경덕왕의 효심을 그린 것이라 한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것은 고려시대의 하늘을 나는 천인을 그린 비행비천상이었던 듯하다. 이렇듯 문양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면 당목이 닿는 당좌에 새겨진 문양도 그냥 새긴 것은 아니리라.
서양의 종과는 다르게 범종은 바닥에 명동鳴垌을 만들어 놓았다. 움통이라고도 하는 이 명동은 종구鐘口에서 빠져나온 소리를 메아리로 만들어 다시 종신鐘身 안으로 반사시킨다. 이렇게 숙성된 소리가 긴 여운을 만들어 낸다. 우리도 일방으로 말을 쏟아내면 감정이 극에 달하기 십상이다. 내 안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곱씹어 나온 소리는 남에게 공감으로 전달되어 맥놀이를 이루며 여운은 오래 남게 마련이다.
범종에서 잡음이 섞이지 않은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은, 맨 꼭대기에 있는 음통音筒이 고주파음을 걸러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도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모두 방출하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기에 거르고 삭여서 말을 정화시켜야 감동을 준다. 모든 일은 혼자가 아닌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범종에 맥놀이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공명이 있어야 맥놀이처럼 울림으로 관계를 이루지 않을까.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다. 그렇구나. 그냥 있으면 존재자에 불과하다. 종은 울려야 존재의 의미를 이룰 수 있다. 세상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디딜 때 존재의 의미는 걸음만큼 커지는 것이다. 내가 오늘 종 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향한 것도 하만스타인의 말이 내게 맥놀이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박물관을 나오면서 생거진천대종 당목을 당겨 더 힘껏 쳐본다. 꺼질 듯 이어지는 맥놀이가 시야를 적시며 퍼져나가다 어느새 다시 내게로 온다. 긴 여운에 향기가 묻었다.
첫댓글 맥놀이-. 종소리 들리는 듯!
종소리와 촛불을 가까이 하면서 경주박물관을 자주 찾았죠. 박물관 대문 들어서서 건물 오를쪽 구석에 모셔놓은 성덕새왕신종. 그 앞에 서서 한참 머물기도 했고-. 한달에 두세번 찾았던 경주박물관이었죠. 그 종소리를 글에서 듣는 기분입니다. 10여 년 가까이 되었을 진천 종박물관 방문에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관심 댓글 감사합니다.
종박물관은 청주에서도 가까운 곳이고 주변에도 가 볼 만한 곳이 많으니 1일코스로 다녀오실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