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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성이씨 후손들이여 ! 원문보기 글쓴이: 松河22翰邦57
진성이씨 종택 방문 행사; 진청회 세진회 명진회, 2017. 5.20 토
1. 시조 생원 증밀직사 휘 碩 묘 ;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산 7번지 癸坐(기곡)
金鷄抱卵형 ∙기곡재사; 파천면 신기리 427번지(감람) 경북 민속문화재 제155호
∙시조 유허비; 신기리 진입 국도변-신기리 816-1
∙진보 李村유적비; 청송 진보면 이촌리 산1번지 30林
2. 2세 판전의사사 松安君 휘子脩묘;안동 서후면 명리 산 67번지 子坐(도솔원)
∙兜率院재사; 경북 문화재 자료 제588호(명리 247번지)/입구 송안군 유적비
∙송안군 유허비(안동 풍산 마애리) 송안군 手植 뽕나무/1383년 마라촌 이거
∙작산정사(안동 북후면 물한리 91번지) 송안군 묘우/강당 비해재, 무첨재/
∙경송정 ; 문경읍 갈평리 230-1 ∙晩年에 주촌에 터전을 열었다.
3. 3세 참의공 휘 云具 묘; 와룡면 주하리 산 163(주촌종택 동쪽 산)
∙주촌(두루)종택 ; 안동 와룡면 주하리 633번지/慶流亭(훈도 휘 演)/
流水閣(21세 이긍연 아호), ∙ 3세 증 사복시정 휘 云侯 묘 ; 와룡면 가구리 산 98 子坐(가막산) 配 숙인 안동권씨 묘; 북후면 도진리 산 119-1번지 子坐(도나리)
정통년간(正統年間,1436~1449)에 부정공이 두루에 정착하여 대종가를 창건
4. 4세 선산도호부사 贈戶曹參判 휘 禎 묘, 배 贈貞夫人 안동김씨 묘; 북후면 물한리 산70-1 ∙可倉재사; 물한리 89번지, 1430년 工役, 1607년 鄭逑 完文
∙주촌종택 향나무 600년 천연기념물 제314호;선산도호부사(4郡 최윤덕) 영변 약산성 귀향 때(1435년 10년생)/ 반달형 案山,1565년 선산부사할배 불천위
5. 5세 현감 휘 遇陽 묘 ; 안동 와룡면 가류리 산 87-1 子坐(도목)
配 恭人 청주이씨 묘 ; 와룡 이하리 산 125 酉坐(九老洞),경류정 1556년
二老村인데, 선산부사를 역임한 두 노인(이정: 진성인, 이유선: 영춘인) 두루종택;두루(주촌)-와룡면 주하동;4세 이정,9세 이희안(학봉의 고모부),10세 송간 이정회/낙금헌 이정백,21세 을미의병장 이긍연//구로동 임란 의병장 9세 송계 이형남//일직파 10.학천 이봉춘,12.從孫 개곡 이이송 13.증손 경옥재 이보(대곡파),17세 후산 이종수
5-2.풍산 마애: 9세 壺峰 이돈, 石峰 이회보-우율승무 찬성, 서인 소외당함
5-3.∙온혜 老松亭종택;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1454년에 노송정 건립
∙5세 贈吏曹判書 成均進士 眞城君 휘 繼陽 묘 =도산면 온혜리 산 219
配 영양김씨 노송정 춘천박씨 찬성공 埴/ 기암공 完/順으로
∙ 도산면 온혜리 樹谷재사 ;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10
온혜 노송정종택; 海東鄒魯,山南洛閩,廉洛關閩,樹谷齋舍, 고산 오미재사
노송정 이계양-찬성공 李埴-訓導公 李河-企庵 李完, 芝澗 이종도,11.龜巖 이홍중/찰방공
李宏-우암 이열도-이진남-증손 지와 李坽/李宬-李善道/4대 선성의병장 可山 이찬화
노송정 이계양(1424~88)은 단종 원년(1453)에 성균진사로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려는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벼슬길의 뜻을 접고 낙향하여 산수간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주촌(현 와룡면 주하리)에서 태어난 이계양은 혼인 후 예안 동쪽 부라촌(현 예안면 부포리)에 거주했다. 어느날 봉화 훈도(각 도의 군현에 배치하는 종9품 외관직)로 부임하다가 온혜를 지나면서 그곳의 산수가 마음에 들어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두루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다 신라재 고개에서 쉬는 도중 온혜에서 온 한 승려와 만나 함께 쉬면서 온혜지역의 풍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합치돼 함께 온혜로 돌아와 두루 살펴본 뒤 노송정 부근을 택지로 점지했다. 그 승려는 그곳 터가 귀한 아들을 낳을 곳이라 했다.노송을 사랑하여 소나무를 심고 노송정이란 이름을 붙인 뜻은 공자 말씀에 '세한이 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맨 나중에 시드는 줄 알겠도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라고 한 것과 중국 동진시대 도연명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와서 읊은 귀거래사(歸去來辭) 중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배회하도다(撫孤松而盤桓)'라고 한 데서 가져왔다. 노송정 현판은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 쓴 글씨다. 도산서원 현판을 쓴 이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시경 구절을 중용에서 인용한 '혼자 방 구석진 곳에 앉아 있어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게 한다'는 '옥루무괴 (屋漏無愧)' 현판은 해사(海士) 김성근이 썼다. 퇴계가 태어난 곳임을 비유해 '해동추로(海東鄒魯)'라 명명한 현판도 걸려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기에 학자들이 많이 태어난 곳을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한 데서 가져왔다. 또한 정자(程子)는 낙수(洛水)에서, 주자(朱子)는 민중(閩中)에서 태어난 사실을 빌려 '산남낙민(山南洛閩)'이라는 현판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노송정에 들어가는 문에는 '성림문(聖臨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퇴계 모친 박씨가 꾸고 퇴계를 낳았다고 해서 퇴계의 제자 학봉 김성일이 명명한 것이라 한다.
"나는 글에 대하여 먹을 때도 글과 더불어 함께 먹고 잠을 자도 함께 꿈꾸며, 앉아도 글과 함께 앉고 걸어도 글과 함께 걸어 잠시도 가슴에서 글을 잊은 적이 없다. 너희들도 이와 같아야 한다. 유유자적하며 세월만 보내다가 어떻게 성취를 바랄 수 있겠느냐.(吾於書, 食與俱嚥, 寢與俱夢, 坐與俱坐, 行與俱行, 未嘗頃刻而忘于懷, 汝輩乃如此, 悠悠度日, 何能有望於成就哉)"
퇴계가 부친의 행장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친의 가르침을 서술해 놓은 글이다.
퇴계의 조부는 "지금처럼 부지런하고 괴롭게 공부를 하는 것을 탄식하지 말라. 반드시 훗날 조상에게 다함없는 효를 바칠 수 있을 것이다.(莫嘆如今勤苦業/定知他日孝無疆)"라는 권학시를 남기고 있다.
6. 6세 호조참판 松齋 靑海君 휘 堣-수곡 동쪽(온혜리 산 219)
∙ 송재종택; 안동시 옥정동 423-5(북문 옥정길 65) 松堂
∙ 청량정사(淸凉精舍);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34=북곡리 245
∙ 애련정愛蓮亭 ; 안동시 성곡동 711(민속촌길 190)/ 온혜 松堂井
∙ 도계정사兜溪精舍;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36=토계리 642 /청음석淸吟石
7-4 ∙ 7세 온계종택(삼백당) ; 도산면 온혜중마길 20=도산면 온혜리 580
∙大司憲 貞愍公 諱 瀣 온계 묘 ;온혜리 산 124 빈소골(온혜리 979 서쪽 산)
∙취미헌翠微軒; 陶山面 溫惠里 1022(溫溪), 온계 신도비각
온계 이해, 삼백당 이유도,14.농은 이급, 3대 선성의병장 李仁和,단동파(13.挹芝軒 李見龍) 8-5.9-2신당파(주봉 이래,이충국) 10-2.노목파(원호,기호) 9-3,신천파(11.찬한,19石堂 李基東) 17.생원 新野 李仁行
7-6. ∙상계종택 ;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백운로 268)
∙ 文純公 휘 滉 퇴계 묘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산 24-20
상계(퇴계) 몽재 이안도, 청벽 이수연,2대 선성 의병장 이중린
상계; 이수연 이세윤 이귀응 이지순 이이순 이휘령 이휘재 이만희/
'공손히 생각하니 천년을 이어온 성인의 마음은(恭惟千載心)/ 가을 달빛이 차가운 물에 비춤이로다(秋月照寒水).' 남송의 대유학자 朱子의 시 '재거감흥(齋居感興)' 창설재(蒼雪齋)권두경(1654~1725)은 자신의 선조가 세운 봉화 닭실의 '한수정' 이름에 '추월'을 더해 '추월한수정'이라 명명했다. 또한 정자 안에 걸려 있는 '도학연원방(道學淵源坊)' '산남궐리(山南闕里) 해동고정(海東考亭)' '이운재(理韻齋)' '완패당(玩佩堂)' 등의 현판 이름도 창설재가 명명한 것이다. '보갑에 든 옥거문고(寶匣瑤琴)/ 줄이 끊어진 지 오래이네(絃絶多年)/ 퇴계 선생이 멀리 이어(先生遠紹)/ 그쳐버린 거문고 소리 다시 전하였네(輟響再專)/ 경전을 대한 매화창에(黃卷梅窓)/봄소식이 몇 번이나 돌아왔던가(幾回春信)/ 힘쓸지로다 후생들이여(勖哉後生)/ 오히려 여운을 다스려보세(尙理餘韻).'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는 것은 성인의 도학이 이어지지 못한 것을 상징한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진시황 때 분서갱유로 단절돼 그 글만 복원돼 전해오다 1천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송나라 때 정명도·정이천 형제가 공자의 도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밝혀내게 되었고, 남송 때 주자가 집대성함으로써 공자의 도학이 새롭게 전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후대에 정주학이라 불렀다. 고려 충렬왕때 회헌(晦軒) 안향에 의해 정주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200년이 지난 뒤 퇴계에 이르러 정주학이 완성된다. 이러한 상황을 창설재는 퇴계가 끊어진 거문고 소리를 다시 이었다고 비유하면서, 그 여운을 받아 다스리자는 뜻으로 이운재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완패당에 관한 창설재의 시도 전한다. 추월한수정과 인접해 있는 퇴계종택의 명칭인'퇴계선생구택(退溪先生舊宅)'이란 이름도 창설재가 당시에 붙인 것이다. 창설재가 창건한 추월한수정은 안타깝게도 1896년 일제의 방화로 인해 다 타버렸다. 그 후 1926년 상주 도남단소(道南壇所:도남서원이 대원군 때 철폐되면서 성현을 모시기 위해 제단만 설치했을 때의 이름. 현재는 서원이 복원돼 있음)에서 추월한수정을 복원하자는 도회(道會)가 열린다. 전국의 450여 문중이 성금을 내 2년여에 걸쳐 정자를 포함해 정침과 사당을 완성했다. 지금 정자에 있는 '산남궐리 해동고정'이라는 현판 글씨는 해강(海岡) 김규진이 썼고, '이운재'와 '완패당'은 해강의 제자인 홍락섭의 글씨다. 그리고 '도학연원방'은 퇴계의 15세 종손 이동은옹(98)의 숙부인 원대(圓臺) 이원태의 글씨다. '추월한수정'과 '퇴계선생구택'은 근세 설암체로 필명이 높았던 이고(貳顧) 이동흠이 썼다. 모두 복원 이후에 다시 쓴 글씨들로 퇴계의 글씨를 보는 듯 단정하다. 추월한수정의 대들보는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볼 때 시제를 걸던 나무를 100여명의 인부가 운반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이동은옹이 들려줬다. 창설재가 창건한 정자건물은 사라졌지만, 후학들의 복원을 통해 퇴계의 가르침과 혼을 전하고자 했던 그 마음과 업적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이갈암의 문인으로 유학에도 정통하고 시·서·화에 능했던 창설재는 퇴계의 언행을 모은 '퇴도언행통록'을 저술하고, '溪門弟子錄'을 정리하기도 했다.
9-3. 하계(동암 이영도) 토계 계남 원촌 단사 의인 부포리, 광뢰 이야순
1대 선성의병장 이만도, 이육사
하계; 이영도 이세사 이야순 이태순 이가순 이만각 이만도 이만규 이중업
단사; 이규 이수강 이세협/계남 이언순 이휘정 이만운 이중철/
원촌; 이귀운 이귀정 이효순 이휘교 이만인 이만유 이만현 이만정 이만용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東巖 諱 詠道 下溪종택(守拙堂) ;도산면 토계리 18-1
∙11세 忠淸道 觀察使 反招堂 諱 溟翼 반초당종택 ; 안동 녹전면 원천리
∙12세 忠簡公 懶隱 諱 東標 난은종택 向陽齋;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7세 處士 后山公 휘 宗洙 후산종택 ; 안동시 일직면 송리
**육사문학관
9. 진성이씨 주요 세거지(파명)
∙은풍파 ; 예천군 하리면(은풍면) 은산리 ∙동막파 ; 강원도 삼척시 근덕읍 동막리 ∙병방파 ;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 방계정芳溪亭
∙생현파 ; 영주시 안정면 생현리/정효각旌孝閣, 별묘別廟
∙국란파: 안동시 임동면 국란리 북쌍곡
∙주촌파 ;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 주촌(두루)/석탄정石灘亭, 송은정松隱亭
∙연곡파 ; 안동시 북후면 연곡리 ∙일직파 ; 안동 일직면 송리1리/ 후산정
∙사곡파 ; 의성군 사곡면 오상리(오동) 토현리 龜川/동강서당,구천강당
∙호동파 :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
∙망천파(마애파) ; 안동시 풍산읍 마애리/이로당怡老堂, 산수정山水亭
∙온혜종파 ;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老松亭, 요산정樂山亭,청계서원 터
∙백송파 ;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행솔이, 월포리/仙夢臺
∙원고파(영해파) ;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원고/永慕堂, 六怡堂
∙대죽파 ;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퇴계선생 외가)
∙원암파 ;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원암(온계 3子 외가)
∙신당파 ; 예천 호명면 내신리 내동 신당곡/ 節婦 평산신씨 與閣
∙노목파 ; 문경 마성면 외어리(늘목), ∙신천파 ; 영주시 이산면 신천리
∙옥천파(신야정파) ; 충북 영동군 학산면 서산鋤山리 호미실/永泉齋/칩와당
∙도산면 온혜 상계 하계 단사 계남 원촌 내살미 의인 섬촌 부포 태자/江亭, 樊南, 古溪亭 계남고택 ∙칠창파 ; 구미시 해평면 낙산리 칠창
∙오적파 ; 예천군 보문면 오암리 오치 ∙문경읍 갈평리
∙송당파 ; 안동 녹전면 원천리, 봉화 춘양면 의양리, 서벽리, 법전면 어지리
녹동(노루골), 문경시 영순면 의곡 3리 도연,예천 호명면 종산리 고산(고미)
∙후평파 ;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10.진성이씨 10大派
1.참의공파; 동막파/은풍파 생현파/병방파 이송천파 방계공파 의암파 귀재파
오상파/국란파 화지동파 사의파 답곡파
2.주촌종파(안동파) 연곡파/번곡파 주촌파(낙금헌파)/정로위파 아호파 이동파/일직파 대곡파 모계파/사곡파 토현파 안평파 이계파 구로동파 호동파
3.망천파(마애파) 항곡파 양현파 4.온혜종파(노송정 이계양)1)潛-寅 無後 4.(2)河-完(온혜종파),宏(백송파),宬(원고파) 5.(3)漪대죽파 6.(4)瀣온계파(백당파) 7.(5)신야공파(옥천파) 11-2영동파 10-2陶淵派 10-3선산파 9-2거창파/8-2동간정파(11.이장형,칩와당파) 10-2간저파 8.(6)滉 상계파 9.6-2 堣송당파;11-2서벽파 11-3 반초당파 8-2潔 道淵派 8-3冲 고산파 9-2녹동파 10.후평파
* 영남사림파(김종직); 신분내혼 지역내혼이나 1650년까지는 자녀균분상속제,
처가살이(솔서혼제)-정몽주,김종직,김굉필,이언적,김성일,유복기/ 자녀윤회봉사, 외손봉사/異姓雜居村(외손 사위)/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로 붕괴
**영남학파(퇴계 이후); 적장자 위주 상속, 가부장제도 정착, 친영, 세거지 중심
동성마을 형성, 입향조 현조 중심 문중 형성/안동 64종가,46위의 불천위가 존속 (유림 문중 公議 불천위가 많음-정경,공신,학행/소종가 문파 형성)
***不遷位제사, 서원 향사 강회를 통하여 결속 강화(재실 문중 시사)
1.학통 계승의 유형 1)혈연;친손이나 외손을 중심으로 전승된 경우(장흥효-이현일-이재-
이상정-유치명/가학-상계파,하계파,서애파,수암파,우복파,청계 학봉 무실 닭실)
2)지연;지역적 인접성(안동 동북부 남부/풍산 예천 문경 상주/성주 칠곡 인동)
3)통혼;조정(학봉 질서),조익(병파)/김영조(학봉 사위)과 김봉조,김응조
영남유림; 先祖 文集 발간+院祠設享/ 名祖 顯祖 문중형성 동성촌 세거지/족보 편찬
顯祖현조 종손 종택 불천위사당 家門 支孫 門中 門長 정자 문집 서원 재실 정려각
경상도 양반의 기준; 불천위, 퇴계문인, 문집, 의병, 과거 벼슬
영남사림파; 자녀균분상속제, 장가감/ 8고조도, 行狀 묘갈명 신도비 諡狀
영남학파; 적장자위주 상속, 가부장제, 친영, 세거지 형성, 입향조 현조 문중형성 ,
서원 발달, 시집옴, 불천위제사, 문집발간, 서원향사 강회 통하여 결속 강화(문중시사-재실) 名祖 顯祖 중시조,세거지 족보/농퇴 문순 삼태사 서차시비 屛虎是非,寒旅是非,孫李是非,嫡庶鄕戰,남인과 노론,예안사림과 안동사림,首賢
고향의 의미; 선산先山이 있는곳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보통 3대 이상 100년 이상) 태어난 곳은 安胎안태고향(보통 외가동네)/寓居우거-고향 떠나 잠시 사는 곳
혈연 지연 학연 통혼 세거지 불천위사당 서원 재실/가문 집안 조상과 고향마을을 대표 내앞김씨,검제김씨,닭실 가일권씨,하회유씨(혈연 성씨+지연 고향마을/학통/통혼 관계망) 보학/팔고조도,연줄혼인 대추나무 연 걸리듯; 통혼 富婚 落婚/祭文 墓碣銘 行狀 박약회 담수회 보인회 선비문화수련원 유종회 嶺宗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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