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사진을 잘 찍는다는 말을 듣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진에 찍히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지만, 찍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지요. 환한 대낮에 움직이지 않는 풍경을 찍는다든가, 유명 여행지에 가서 포토 포인트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는 고정된 자세는 가끔씩 눈을 감은 사진들이 나와서 그렇지 적정노출에 구도만 잘 잡으면 별다른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문제는, 사진을 찍는데 겨우 1초 2초 정도만 포착순간이 허락되는 짧은 순간을 잡아내지 않으면 중요한 장면을 날려버리기 쉬운 세례식 사진이 특히 그렇습니다.
성당 세례식 사진의 순서는 일반적으로 1. 씻김(물붓는) 예식, 2.크리스마 성유 도유, 3. 흰 옷 입힘. 4. 성체모심, 5. 단체기념사진 등으로 정리됩니다. 그 중에서 최고로 어려운 조건은 이마에 물을 붓는 세례예식이 으뜸이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이마에 붓는 물이 얼굴 측면으로 흐르도록 고개를 한 쪽으로 숙이고, 그 옆으로 수녀님들이 들고있는 물쟁반과 수건이 세례자의 얼굴에 바짝 붙습니다. 신부님은 한 손으로 세례자의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이마에 물을 붓습니다. 이런 혼잡한 상황들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좀처럼 틈을 허락하지 않죠. 게다가 신부님의 제의 넓은 소매자락까지 세례자의 얼굴을 가릴 때마다 그걸 피하면서 카메라 뷰파인더 안으로 세례자의 얼굴을 확보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긴장감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세례자 수가 많은 성당에서는 보통 두 분의 신부님이 세례를 주시는데, 제대 앞쪽 좌우로 서신 두 신부님간의 어깨 거리는 불과 1m도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왼 손으로 세례수를 붓는 분도 계시고, 오른 손으로 붓는 신부님도 계시지요. 그렇다고 세례식 전에 신부님은 어느 쪽이시냐고 여쭤보기도 곤란하지만, 어느 쪽인지 안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든 사람은 처음 세례를 받는 앞 줄 사람들을 놓치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신부님 왼쪽 어깨 쪽이 자리인가 싶었는데 아니구나 싶어 오른쪽 어깨 방향으로 자리를 속히 이동하고 나면 그 사이 첫 사람의 세례가 끝나고 마는데, 이 때 세례식 사진촬영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을 놓쳤다는 당혹감에 급격한 멘붕이 와서 자신감이 흔들리기 십상입니다.
자신감이 흔들리면 지금 초점포인트가 어디에 맞았는지, 사진의 수평이 크게 기울어졌는지, 너무 가까운지 그 반대인지 등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옵니다. 다음 사람도 놓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셔터만 누르기 바쁘죠.
이러한 멘탈붕괴를 이겨내지 못하면 세례자에게 맞아야 할 카메라 초점이 신부님의 장삼자락이나 뒷머리, 물병 등 엉뚱한 곳에 맞기 십상이라 정작 중요한 세례자의 얼굴에 맞아야할 초점이 흐려지는 초점이탈의 아웃포커싱 현상이 오거나, 초점이 성당의 벽면에 맞아 벽은 뚜렷하고 사람은 흐려지는 등의 실패한 사진이 나와 깊은 한숨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사진을 보고 있을 때면 뭐... 그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 그 자체죠.ㅎ
성당 신자석에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는 다른 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놓치기 쉬운 장면은 '찰칵' 하고 한 두 장만 찍는 게 아닙니다. 단셔터 사진에만 의존해서는 원하는 순간의 사진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죠. 그래서 초당 4~5장, 혹은 10~20장을 연속해 찍는 고속연사 카메라로 셔터를 날립니다.
저는 전자셔터 옵션을 사용했을 때 초당 40장의 사진이 연속으로 찍히는 Canon EOS R8 미러리스 기종을 씁니다만, 사람들이 정지되어 있는 단체 기념사진도 그냥 10~20장 연속셔터로 찍습니다. 단셔터로 한 번씩 눌러 서너 장만 찍으면 그 중에서 교차로 눈을 감은 분들이 있어 포토샵으로 감긴 눈 이식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거든요.
단체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렇게 눈 감지 마라, 여기를 보아라, 하나 둘 셋.. 하고 찍어도 나중에 파일을 열어보면 예외 없이 한 두 사람은 꼭 눈을 감거나 아니면 눈동자가 강 건너 가족들을 쳐다보는 분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기관총을 발사하듯 그렇게 연사셔터를 날리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로 사진 저장폴더를 열어보면 세례자는 35명인데 사진파일 수는 2천여 장에 육박합니다. 그 중 가장 적합한 사진만 남기고 나머지를 지우는 시간도 장난이 아니죠.
사람이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면 처음엔 어둡게 느껴지다가 빛을 받아들이는 눈의 동공이 점차 커지면서 처음보다는 훨씬 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기계는 그런 게 없거든요. 어두운 상황에 맞춰 조리개를 열거나 셔터속도를 느리게 조절해 카메라에 빛이 더 많이 들어오도록 조절합니다. 아니면 ISO 수치를 높이거나 셔터속도를 늦춰 어두운 조명환경에 대응하기도 하죠.
우리 서원동성당은 생각만큼 내부 조명이 밝지 않아 실내사진을 찍기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는 플래쉬 발광을 번쩍번쩍 할 수도 없죠. 노출은 주로 반자동이나 수동모드를 선택하는데 모든 사진들이 적정노출로 고르게 잘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찍힌 사진도 어둡고 밝고 들쭉날쭉 합니다. 이러한 사진들을 사진보정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노출로 일일이 손을 보는 작업을 거칩니다.
두 분의 신부님들이 서있는 틈을 밀치고 들어가 거리를 확보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신부님 가까이서 어렵게 틈을 찾아 찍는 사진들은 너무 가까이에서 찍다보니 상대적으로 세례자의 얼굴이 크게 나올 수밖에 없죠. 세례식 사진은 두 분의 세례신부님들 옆에서 두 사람의 사진사가 찍어야 하기에 한 사람은 좀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으니 생각할수록 갑갑한 일입니다.ㅎ
우리가 TV나 영화를 보면 세례식이나 결혼사진 등이 아주 아름답게 나옵니다. 이것은 완벽한 조명 세팅에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 찍은 중에서 베스트 장면만 선택한 결과죠. 그런데 서원동성당 사진반의 셔터 기회는 조명이고 뭐고 딱 한 번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한 번의 기회도 나름 잘 살리면서 찍었다는 만족감도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사진을 찍는데 보람이 있었던 일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그 중 하나는 예전에 독산1동성당에서 가족 한 사람이 견진을 받는다고 해서 기념 스냅사진이라도 찍어줄 게 없을까 싶어 카메라를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목에 묵직한 DSLR 카메라를 걸고 구석에 서있는 제 폼이 좀 그럴듯 해 보였는지ㅎ) 갑자기 저쪽에서 카메라를 든 형제님이 저한데 다가오더니 "오늘 행사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느냐." 하고 묻는 거예요. 의아한 저는 "왜요? 선생님 카메라로 찍으시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었더니 오늘 사진을 찍으러 오기로 한 지정 사진사가 급박한 사정으로 펑크를 내서 카메라를 들고 나오긴 했는데 자기는 솔직히 잘 찍을 줄 몰라서 큰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군요. 아무 걱정 마세요. 저는 서원동성당 행사 담당 사진사인데 제가 주교님 사진이랑 단체사진 모두 책임지고 찍어드릴게요."
그랬더니 그 형제님이 저를 보시는 눈빛이 마치 예수님을 보듯 우러러 보는 그런 감격스런 표정이더라구요.ㅎ
암튼 그 날 서울대교구 류경촌 (디모테오) 주교님께서 견진주례로 오셨는데 개인사진, 단체사진 등등 잘 찍어 드리고는 수고비라도 주시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고 나서 며칠 후 "다음에도 필요하면 연락하시라."며 사진파일 전부를 이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세례식 사진을 찍으면서 상처 받았던 일도 있죠.
지난 세례예식이 끝나고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 세팅을 마쳤는데 카메라 앞에서 어떤 나이 든 아주머니 한 분이 아까부터 카메라 앞에서 화면을 가리고 자신의 가족인지 사진을 자꾸 찍는 거예요. 사람들은 제대 앞에 아까부터 서있는데 저도 빨리 사진을 찍어야 하겠기에 뒤에서 점잖게 말씀을 드렸죠.
"죄송하지만 단체사진 따로 안 찍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카메라로 찍으니까 큰 사진으로 다 나오거든요."
그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저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이 카메라하고 저거하고 같은 줄 아세요?"
그래서 저도 "아, 다른가요?" 했더니
"그럼, 당연히 다르지요. 사람이 왜 그렇게 부정적이세요?"
저는 뭐가 다른지 물어볼까 하다가 공격적인 말투에 괜히 말다툼으로 번질 것 같아서 입을 닫고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생각했습니다.
그 분의 휴대폰이 혹시 5천만 화소급이라는 갤럭시S2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화소수가 높은 휴대폰이라도 천만화소의 DSLR보다 화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분의 영성은 몇만 화소 급일까? 하고 말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마저 말을 가릴줄 모르는 그 분을 보면서 종교를 가진, 신앙생활을 한다는 그 사람의 머리에는 몇 급수의 영성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신앙인들은 어째서 조금도 변화되지 않는 걸까.. 하고 말입니다. 이 것은 제 개인적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신앙적 의문이기도 합니다.ㅎ
세례식 사진을 정리하면서 드는 짧은 푸념을 짧게 적는다는 것이 쓰다보니 쓸데없이 길게 끄적이게 되었군요.
하지만 사진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뭐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쓴 글이라 넓은 양해를 구합니다.ㅎ
지난 주 세례식 사진 중에서 가장 눈길이 머무는 사진을 한 장 남기면서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