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부부 두쌍이 휴일이라고 하남스타필드를 구경하러 온다해서 만났다가 영화까지 보게되었다.
다수의사에 따라 1987이란 영화를 보게되었는데 난 사실 이영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6월항쟁이 박정희의 싸우면서 건설하는 수출보국 구호이래 1987당시까지 이십여년간을 통제적 권력에도 참을만큼 참아내던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순환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대세적으로 확산되어 필연적으로 맞딱뜨려야 할 사태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영화의 주인공과같이 박수받아야할 선각자들이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앞장서 물꼬를 열어준것은 높이 평가하고 칭송할 일이지만 그시기 수많은 시민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 시민들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시대의 대세적 흐름을 타고 자기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행동을 했을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사람들은 고성장을 이어가던 그시기에 정치적자유를 위한 데모보다는 총화단결해 선진국으로 가기위해 참아야한다며 자신의 정치적의사를 표로서만 행사한 사람도 많았었다.
남들이 다 나설때 몇번의 시위에 참가했던 시민보다는 조용히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계몽활동을 해서 80년대 중산층을 두텁게하는데 상당히 기여한 대학생들을 더 높게 평가한다.
6월항쟁기에 수많은군중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마치 무슨 독립운동을 보듯 연출된것을 보게될것이라는 것은 그시대를 살았던 기성인의 한사람으로서 후세에게 어딘지 자화자찬으로 너수레 떠는것일것 같아 이 제목의 영화를 그다지 보고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쨋거나 다같이 보게되어서 보았는데, 영화란 참 관객의 감정을 몰입시켜서인지 일행이 아닌 내 옆자리 여성관객은 눈물을 많이도 훌쩍이고 있었다.
극적인 요소를 빼고 기사화되었던 사건들은 생각보다 극적인요소가 별로 가미되지 않은채 있는그대로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영화로 시위장면을 보니 그때의 생각이 문득떠올랐 다.
1987년 초여름은 시청뒤 무교동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 최루탄때문에 꽤나 불편할때었다. 미문화원,시청,민추협이 있던 평창빌딩등 회사 주변엔 늘 경찰병력이 상주해있다시피 하였고 업무상 하루에도 몇번씩 사무실을 들락거리던 나로서는 종종불편함을 느꼈었다.
그해 4월 호헌발표 이후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시민의 시위참여로까지 급속하게 확산되었는데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한 1987년 6월에는 나도 우연히 시위에 몇번 소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가 한 토요일에도 영등포시장로터리에서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었다.
6월26일쯤으로 기억되는데 시위중심부로 들어갔다가 주도자들의 연설을 듣는와중에 사진을 찍은기자와 실갱이가 붙어 카메라를 빼앗아 필름을 뽑아버리는 일이 생겼다. 당시 나를포함해 주변에 있단사람들은 대다수가 넥타이를 찬 직장인들이었기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면 곤경에 처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생한 일이었는데 그래서 나도 좀더 조심해야겠다 싶어 중심부에서 빠져나와 군중 뒷쪽으로 가 소극적으로 적당히 참여하다 시간되면 돌아갈요량이었다.
그런데 시위지휘자는 갑자기 모두 뒤로돌아 영등포역을거쳐 시청으로 진군하자고 외졌고 군중은 곧바로 뒤로 돌았다. 어영부영 뒤에섰던 사람들이 앞서기 싫어 상당수 이탈해 빠져들 나갔는데 나는 옆에섰던 사람들이 같이갑시다하며 어떨결에 스크럼을 짜는바람에 거부도 못하고 맨앞 두번째줄 한가운데 끼이게되었다.
200여미터 앞 경찰서입구쯤에는 바리게이트를 치며 청자켓헬멧대원들이 이미 전경들 앞에 도열해 있었다. 경찰이 떠들어대는 경고음은 시위대의 구호때문에 들리지는 않았고 행진할수록 불안한 마음은 점점 가중되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알마안가 최루탄이 쏘는소리와함께 동시에 헬멧부대들이 뛰어오는것이보이자 앞열은 오합지졸이 되었고, 여기저기튕기는 초루탄이 내발앞에 떨어져 튀어오를때 엉것결에 발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폭음과함께 순식간에 얼굴을 확덮친 화기를 느낀채 잡히지 않으려고 어디로든 달리는데 아무것도 보이질 앓았다.
첨엔 눈을 뜰수없거나 최루탄연막이 앞을 가린줄 알았다.
필사적으로 더듬어 간곳이 골목인줄은 느끼고있었지만 세상은 빨갛게만 보일뿐 숨을 쉬는것은 문제없는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더듬어 한참을 걸어가니 희미하게 보이기시작했다. 지나는 사람에게 내눈이 어텋게 된거냐구 물었더니 혀를차며 빨리병원가보라고 했다.
10분여쯤 뒤애 시장앞 연흥극장옆 약국셔터문이 반쯤 열린게 보였다.
들어가니 치료나 상담중인사람이 예닐곱명이나 있었고 까운입은사람도 몇명있었다.
내 눈을 보이며 우려스럽게 묻자 대게는 시간지나면 좋아지는데 충혈이 많이되었으니 일단 응급조치는 해줄테니 안과를 한번가보라 하셨다. 돈도받지않았다.
식염수로 닦아내고 응급조치를 받고나니 괜찷아지는것 같았다.
스스로 놀랬으니 후회도 되면서 그만하자라는 당위성을 열심히 찾아뇌까렸다. 주말에 일찍 집에나 가서 놀 것이지 학생도 아니고 빽도없는 놈이 신문기사에 얼굴이라도 찍히면 뮈좋을게 있다고 하는생각도 들고, 눈텡이라도 날아가면 누가보상해 준다고 나대나, 무슨 운동권도 아닌데 객기일
뿐이었던 거지.... 자숙하라는 신의 뜻이었던거야.... 이런생각을 하면서 그만 돌아가리라 하니, 아무것도 얻은것 없이 한방된통 얻어맞고 찌그러져 되돌아가는것 같은 감정에 부아가 나기도 했지만, 나말고도 많은사람들이 그러고 있다는것이 한편은 위로가되었다.
얼마시간이 지나지않아 눈이 괜찮다고 생가되면서 안도하고 그중 한놈 성규를 찾으려고 전화를 했었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날 정신이 없어서 성규를 만나서 헤어지 된건지 만나려고했다가 헤어진건지 기억이가몰가몰하다
얼떨결에 몇번 시위에 참여하게되었다가
얼떨결에 영화를 보게되고 얼떨결에 그추억 한장면과 마주치게 되니 별것도 다 추억이 되는구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