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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을 선언한 프로야구 ‘3인방’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가장 먼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한 김광현은 샌디에이고로부터 200만 달러(약 22억 원)의 포스팅 시스템 입찰액을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12월 12일까지 샌디에이고 구단과 연봉 협상에 들어간다. 강정호는 아직 넥센 히어로즈에서 공식적으로 포스팅 시스템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12월 즈음 입장 표명이 있을 전망이다. 양현종은 17일 오전 KIA 타이거즈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미국 프로야구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요청했고, 앞으로 KBO의 입찰 공고와 메이저리그로부터 결과물이 전달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KIA는 “양현종의 꿈을 존중한다는 게 구단의 개인 방침”이라며 “터무니없는 금액이 아니라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은 물론 국내 언론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기하며 ‘빅3’에 대해 다양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평가와 전망도 제각각이고 수많은 ‘설’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리’ 차원으로 ‘빅3’의 앞날을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본다. 인터뷰에 응한 메이저리그 전문가로는 송재우(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대니얼 김(SPOTV 해설위원, 전 클리블랜드 스카우트 및 신시내티 레즈 스카우팅 코디네이터), 그리고 메이저리그 현지의 A 씨(A 씨는 인터뷰에 응하는 대신 익명을 요청했다)이다.
![]() 김광현은 샌디에이고와의 연봉 협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게 될까? 기대에 못미친 포스팅 금액이었지만, SK와 김광현은 '도전'을 선택했다.(사진=연합뉴스) |
1. 김광현의 포스팅 금액 200만불은 많다? 적다?
송재우(송): 보는 관점에 따라 틀리겠지만, 김광현이 샌디에이고로부터 받은 200만 불의 입찰 금액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나오는 선수들도 200만 불의 몸값을 챙기려면 랭킹 15위 안에 들어야 한다. 류현진과의 비교로 인해 다소 초라한 액수라는 인식이 있지만 김광현의 성적과 커리어를 놓고 계산했을 때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한다.대니얼 김(김): 김광현은 안타깝게도 포스팅 시기를 너무 서둘렀다. SK에서 급하게 진행했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사정을 잘 아는 에이전트가 그 타이밍을 잡아줬어야 한다.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던 게 200만 불의 다소 아쉬운 포스팅 금액으로 연결됐다. 메이저리그는 시즌 종료 후 내년 예산을 세우고, 그 예산 안에서 선수를 팔거나 영입할 선수를 정한다. 그런데 SK는 지난 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메이저리그(MLB) 포스팅을 요청, 3일 KBO로부터 이를 전달받은 MLB 사무국은 6일 메이저리그 구단에 김광현을 포스팅 공시했다. 그때는 메이저리그 단장회의조차 열리지 않은 시점이고,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수뇌부 교체로 어수선했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아시아의 투수를 영입하는데 집중하기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수코치들은 김광현의 투구 폼을 선호하지 않는다. 류현진처럼 간결하고 유연한 투구폼을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도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리라 본다. 김광현은 이번 경험을 통해 자신의 구종이 단조롭다는 걸 인식하고 새로운 구종 개발에 나서야 한다. 듣기론 SK에서 김광현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안다. 샌디에이고와 연봉 계약을 체결한다면 투수 출신 감독 밑에서 스프링캠프 동안 새로운 구종 장착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A 씨: 내가 예상했던 금액이 나왔다. 한국 언론에서는 김광현의 몸값에 대해 500만 달러 이상, 최고 10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다며 몸값 부풀리기에 나섰지만 미국 현지에서 보는 적정가는 200만 달러였다. 샌디에이고에서 김광현에게 200만 달러를 제시한 것은 김광현을 선발 투수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선 SK가 김광현의 포스팅 머니로 1000만 달러를 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부분이 오히려 마이너스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왜냐하면 포스팅시스템은 입찰 금액을 놓고 메이저리그 팀과 팀들간의 경쟁이 붙는 것인데 SK에서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관심이 없는 팀들은 알아서 경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포스팅에 나선 시기가 너무 빨랐다.
2. 김광현은 샌디에이고와 어떤 계약을 맺을까
송: 포스팅 비용이 낮게 책정된 부분이 연봉에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류현진처럼 6년 계약은 어려울 것 같고, 짧게는 2년 또는 1+1의 계약 기간이 제시 될 듯하다. 김광현으로선 불리한 조건으로 장기계약을 하기 보단 계약 기간을 짧게 잡고 그 안에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 재계약할 때 유리한 금액을 끌어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김광현이 시애틀의 이와쿠마 히사시(33·시애틀 매리너스)를 롤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와쿠마는 2010년 시즌 종료 후 포스팅에 나섰다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연봉 협상 중 소극적인 구단 태도에 실망한 나머지 협상을 철회하고 이후 1년을 일본에서 더 뛰고 FA 자격을 얻은 다음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오른쪽 어깨 근육이 약하다는 이유로 연봉은 단 150만 달러(약 16억 원)였고, 보직은 불펜이었다. 절치부심 끝에 이와쿠마는 미국 진출 첫해인 2012년 6월까지 불펜투수로 적응기를 거친 뒤 선발진에 합류, 지난해 14승과 올해 15승을 거두며 거액의 몸값을 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김광현도 적은 연봉에 실망하지 말고 주어진 기간 동안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그 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면 된다. 단, 지금 샌디에이고의 투수진이 아주 좋은 편이다. 웬만큼 잘해선 그 안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선발진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볼티모어의 윤석민보다 더 좋지 않은 환경이다. 그걸 넘어서야 훌륭한 투수로 인정받을 것이다.
김: 위에서도 김광현의 투구 폼에 대해 언급했지만, 김광현과 양현종을 비교할 때 투구 폼은 양현종이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 양현종은 류현진처럼 투구 폼이 간결하고 피칭 후 발을 내딛는 지점이 일정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김광현의 단점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이걸 샌디에이고 측에서 모를 리가 없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는 상황에서 선수를 만족시킬 만한 연봉 액수를 끌어내기란 어렵다. 연봉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김광현과 샌디에이고의 궁합은 아주 좋아 보인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콜로라도만 빼면 투수친화적인 구장들이 대부분이다. 원정 다니기에도 좋고, LA와 샌디에이고가 차로 2시간 거리라 LA 한인들이 원정 응원을 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류현진과 같은 지구에 속한 팀이다 보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연봉의 주도권은 선수보다는 구단이 갖고 있다. 김광현과 에이전트는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17일 오전 양현종이 포스팅 시장에 나왔다. KIA는 '터무니 없는 액수'만 아니라면 양현종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3. 양현종은 김광현보다 몸값이 높을까?
반면에 양현종은 미국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그리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 물론 포스팅을 통해 해외진출에 나서기로 결론 난 시기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은 영향도 한몫할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양현종의 경기를 보기 위해 디렉터급의 스카우트가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양현종이 김광현에 비해 다양한 구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김광현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송: 양현종이 김광현보다 포스팅 금액이 높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양현종도 김광현처럼 꾸준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선발과 불펜 모두 가능성을 갖고 있다.
김: 양현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다. 선발투수로서 주무기가 4개나 된다는 건 엄청난 장점으로 부각된다. 최근 뉴욕의 지역 매체인 ‘뉴욕데일리뉴스’의 마크 페인샌드 기자가 1페이지 분량을 할애해서 양현종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는 기사를 통해 양현종에 대해 뉴욕 양키스가 관심을 갖고 있으며 3선발 급으로 2선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크 페인샌드 기자는 오랫동안 양키스를 담당한 기자이다. 그가 그 정도의 기사를 썼다는 건 뭔가 정보를 갖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양현종은 김광현보다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강정호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3인방 중 가장 늦게 포스팅 시장에 나가는 그의 앞날은 과연?(사진=연합뉴스)
4. 강정호의 앞날은 맑음?
김: 강정호는 잘 풀릴 것 같다. 강정호의 에이전트가 앨런 네로인데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앨런 네로는 베테랑답게 메이저리그 기자들과 친분이 두텁다. 언론 플레이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CBS 스포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강정호가 쿠바 선수였다면 1억 달러 이상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한 데에는 언론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대응한 내용이었다. 기자들로선 강정호를 인식하는데 ‘쿠바’와 ‘1억 달러’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리 현재 메이저리그의 유격수 시장은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강정호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편이다. 김광현보다는 포스팅 금액은 물론 연봉도 높게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A 씨: 강정호에 대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사이에서의 의견은 극과 극이다. ‘아니다’에서부터 ‘정말 좋은 선수이다’란 의견이 극명히 엇갈린다. 하지만 강정호 만큼의 파워와 방망이 실력을 갖춘 유격수를 찾기란 어려운 게 메이저리그의 현실이다. 내가 알기론 강정호의 에이전트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강정호의 경기를 한국에서 직접 봐주길 부탁했고, 그 덕분에 디렉터 급의 스카우트들이 목동야구장을 찾았다고 하더라. 그만큼 강정호 알리기에 적극적이라는 의미이다. 앨런 네로가 세인트루이스 구단과 친분이 깊다. 그래서 세인트루이스 얘기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워싱턴 내셔널스도 주전 유격수를 찾고 있다. 강정호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강정호의 포스팅 시기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고 본다. 메이저리그 윈터 미팅이 끝난 뒤인 12월 중순쯤 포스팅 절차를 시작할 것으로 보는데 이는 정말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윈터 미팅을 마치고 거물 FA들이 정리되고 나면 강정호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3인은 해외진출을 도모하는 ‘빅3’ 3인방이 서로 과정과 결과는 틀리겠지만 모두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이룰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의 의견을 기상도로 정리해본다면 양현종은 ‘맑음’, 강정호는 ‘아주 맑음’ 김광현은 ‘맑음+구름’ 정도의 날씨 상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일뿐, '날씨'는 언제든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정리=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