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의 소양 (계 7:11-12)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이 시간에 “사역자의 소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갖추어야 할 영적 소양이 있습니다. 본문은 천사들의 찬양입니다. 즉 구원 사역에 동참했던 천사들이 자기가 가진 영광을 자기가 받지 않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군들이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서로 섬기고 봉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이 부분 잘 해석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으며, 그것들이 그들의 소양이 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영광을 돌리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일군들이 어떤 영적 소양이어야 하는 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역자가 구비해야 할 영적 소양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뜻에는 언제나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여기 보면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처음 아멘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찬양에 대한 화답이요, 두 번째 아멘은 자신들의 찬양에 대한 아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단계 더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화법 자체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은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나는 시종 아멘만 있었습니다.
아멘이 무슨 뜻입니까? 아멘이 기도에 쓰일 때는 ‘진실로 이루어지이다.’하는 의미요, 말씀에 쓰일 때는 ‘동감입니다. 동의합니다. 믿습니다.' 명령에 쓰이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락의 의미입니다. 거기다 아멘의 귀한 점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일군들이 아멘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또 우리는 하나님의 종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씀과 사명 앞에서도 아멘만 해야지 요나처럼 자기 개성대로 나가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아멘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는 아멘만 하셨습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후1:18-20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아멘만 해야 참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시켜도 내 의향과 달라도 아멘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며, 내가 주인이 아니요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사역자가 구비해야 할 영적 소양은
2. 어떤 경우에도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낱말이 “찬송”입니다. 천사들이 찬송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찬송은 본래 하나님께 돌리는 노래이지만 왜 여기 영광 돌리는 목록 속에 두고 찬송을 돌릴까요? 그것은 일반적인 찬송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찬송의 은사를 주셨으므로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찬송의 은사를 주십니다. 시40:3에 “새 노래를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찬송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군은 찬양의 은사를 가져야 합니다. 성악가처럼 찬양 잘하라는 말이라기보다 매사에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역자는 하나님 하시는 일은 다 좋고 옳은 것이라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신나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도 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둠과 수렁에 그대로 두시기도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다 좋고 무언가 이유가 있으시고 다 잘하시는 일이라고 찬송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경이 중요한데 일할 환경을 주시지 않아도 막으셔도 하나님 하시는 일이라면 찬송해야 합니다. 대신 왜 막으셨을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알면 알수록 좋습니다.
사도 바울도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질병인지 마음을 찌르는 대적자인지 둘 다인지 그 이상인지 모르지만 이것들을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십니까? 고후12:9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하시는 일은 무조건 찬양해야 합니다.
요한에게 계시록을 허락하실 때 요한은 기성교회의 사역은 핍박으로 다 막히고 난폭한 죄수들이 우글거리고 외롭고 적막한 밧모섬에 내팽개쳐졌었습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이 일군으로 쓰시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통해 천국만 사모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의 날에 계시를 열어주시며 요한계시록이라는 놀라운 책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형통하든지 어렵든지 열으시든 막으시든 무언가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뜻을 찾고 찬송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사역자가 구비해야 할 영적 소양은
3.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그 다음 세 번째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에게 영광이 주어집니다. 낮춰만 놓으시면 일할 수 없으니까 영광을 주셔서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신이요 사자들입니다. 그 뿐 아니라 특별한 은혜로 보호하십니다. 이처럼 살리는 복음의 일군으로 일선 혹은 배후의 도움으로 주의 일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여주시는지 모릅니다.
고후3:7-9에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모두 천사도 흠모할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이 그 영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행 14장을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한 앉은뱅이를 고치자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무리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면서 바나바를 제우스라 바울을 헤르메스라 하면서 소를 끌어 오고 화환을 가져와서 사도들에게 제사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렀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몰라 지켜보다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 때 두 사도는 옷을 찢어 가슴을 보여주며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면서 말리고 전도하던 사건에서 보여주듯 찬송은 하나님만이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전도해 주어서 감사하다. 도와주어서 감사하다. 그래서 은인이라 칭송해도 그 찬송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전 재산을 드려 예배당을 건축한 어느 성도는 너무 자기를 은인으로 생각하니까 이러다가 하늘의 상도 잃겠다 싶어 옮겼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일 뿐 우리가 영광을 차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계22:8-9을 보세요.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 자질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참된 일군입니다. 그 다음 사역자가 구비해야 할 영적 소양은
4.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네 번째가 “지혜”입니다. 왜 지혜로워야 합니까? 너무나 악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너무나도 악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보다 교회 안이 더 어렵습니다. 언제나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의 30년 목회고백을 보니까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는 하나님 외에 내 편이 없다. 개척목회는 일꾼 없어 힘들고, 부임목회는 일꾼 때문에 힘들다. 목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입이 무거워야 한다. 일군이 필요하다고 아무나 세우지 말라. 처음 일군을 세울 때 필히 한 사람은 세우지 말라 나중에 왕초 노릇하기 쉽다.” 등등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기도하되 염려하지 않고 성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0:19-20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본문에 천사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돌렸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참으로 하나님 기쁘시게 그 뜻대로 사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아멘만 하십시다. 찬송하시며 달리시러 가셨듯 찬송만 하십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십시다. 그리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사랑 받고 칭찬 받는 귀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