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防波堤)
백금태
“나비”가 왔다.
태풍 주의보에 연이어 경보로 바뀌었다. 몇 십 년 만에 가장 센 위력의 태풍이라며 매스컴들이 앞 다투어 속보를 날린다. 깊어 가는 밤과 함께 ‘윙 윙 위이잉’ 창문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수평선 너머에 먹구름이 자욱이 몰려온다.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굉음이 울린다. 조용하던 바다가 울렁인다. 바다의 억센 손아귀에 휘감긴 바람이 성난 태풍을 부른다. 파도가 방파제를 후려친다. 파도는 기어이 끝장을 볼 듯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간다. 온 바다의 파도가 합세한 듯 거대한 파도 더미가 방파제를 덮친다. ‘우지직’ 방파제가 갈라진다. 뒤이어 내리친 파도에 방파제는 산산조각이 난다. 파도는 허연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나를 덮친다. 나는 소스라쳐 놀라 눈을 떴다. 밖은 아직도 세찬 비바람이 창문을 뒤흔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전화벨이 아파트 안의 정적을 갈라놓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수가. 삼심 분 전엔 뵙고 왔는데······.
퇴근길에 아버지의 병실에 들렀다. 아버지는 평생을 건강하게 사셨다. 고뿔이나 몸살 정도만 어쩌다 가볍게 지나가곤 했었다.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실 것 같았던 아버지셨다. 편찮지도, 돌아가시지도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흘러가는 세월을 멈출 수는 없는지 정초부터 병마는 아버지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 가는가 싶더니 급기야 입원을 하시기에 이르렀다. 무심하던 자식들은 그때서야 안달이 나서 밤낮으로 들썩 거렸다. 하지만 잿불처럼 사그라져 가는 아버지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지필 아무런 방안도 없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가늘게 떨리는 아버지의 깡마른 어깨를 감싸 안는다. 딱딱하게 뭉쳐진 어깨 위로 아버지의 지나온 세월이 모자이크가 되어 짜 맞춰진다.
어느 추운 설날이었다. 그해는 눈이 유난히 많이 내렸다. 눈바람이 칼같이 날을 세웠다. 차례를 지낸 후 아버지는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갓을 쓰신 후 집을 나섰다. 손에는 보따리가 들려져 있었다. 등 넘어 사촌 형님께 세배를 드리러 간다고 하셨다.
“얼마나 추울꼬, 밥도 얼어 버릴 텐데.” 어머니는 넋두리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아버지의 세배 인사 길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어졌다. 온 동네는 설날을 맞아 명절 기분에 들떠 시끌벅적했다. 널뛰는 아낙네들의 치맛자락은 하늘에 펄럭이고, 윷놀이꾼들의 고함 소리는 앞산 뒷산을 뒤흔들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두루마기까지 걸치신 후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버지는 땅거미가 내린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윗목에 밀쳐 둔 보따리를 살며시 풀어 보았다. 작업복 한 벌, 낫 한 자루, 먹다 남은 주먹밥 덩이. 아버지는 매일 산에 나무하러 가셨던 것이다. 명절이었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의 학비 걱정에 한가하게 쉴 수가 없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한복 차림으로 산에 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연탄도 귀하던 때라 나무는 땔감으로 잘 팔렸다. 겨우내 칼바람을 맞으며 마련한 땔감은 신학기 자식들의 학비를 대신해 주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항상 지게가 지워져 있었고, 그 위에는 팔 남매가 짐이 되어 올라앉아 있었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한 번씩 집에 들르는 날이면 아버지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자식에게 들려 보낼 돈을 빌리러 사립문을 나서곤 하셨다. 자식들에게 어려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등 뒤엔 힘겹고 고달픈 삶이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을 팔 남매의 무게. 무지몽매한 자식들이 지게의 무게를 어렴풋이나마 잴 수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등이 활처럼 굽은 후였다.
후려치는 파도에 온몸을 내맡긴 바닷가의 방파제처럼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자식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신 아버지는 팔 남매의 방파제였다.
병실에 들어서자 아버지의 눈길이 나에게 박힌다. 눈싸움이라도 하듯 아버지와 나의 눈 맞추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아기가 어머니의 모습을 눈에 익히려는 것처럼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새겨 놓으려는 듯 눈을 떼지 않으셨다. 나는 가만히 웃음을 보냈다.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해맑은 웃음이다. 힘없이 늘어뜨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쥔다. 나도 꼭 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 스스로 아버지의 손을 놓았다. 아버지께서 힘드실까, 피곤하실까 염려하며 놓았던 손이 다시는 잡지 못할 손이 되다니! 아버지의 손을 놓지 말걸, 못 가시게 꼭 잡고 있을 걸······.
“아버지, 내일 올게요.” 이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아버지의 따스한 눈길도, 따뜻한 온기도, 맑은 미소도 마지막이었다. 내일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아버지는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딸과의 약속을 어기셨다. 아버지를 붙잡고 따지고 싶어 부리나케 온 길을 되돌아 달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꽉 다문 입을 다시는 열지 않으셨다.
덜컹거리는 창문 너머로 성난 태풍에 내몰린 바다가 어린다. 파도는 허옇게 가슴 풀어 헤친 채 방파제를 후려친다. 시퍼렇게 멍이 든 방파제 위로 아버지의 깡마른 어깨와 휘어진 등이 어른거린다. 아버지는 덮치는 파도 더미를 온몸으로 안는다. 간밤의 태풍의 끝자락이 아버지를 삼키며 서쪽으로 내달린다. 에이(A)급 태풍의 곱절이나 되는 팔 남매의 태풍이 휘몰아쳐도 끄떡도 하지 않던 방파제였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밀려가는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해말간 웃음을 머금은 아버지께서 햇살을 타고 훨훨 날아가신다.
수필세계 (2015년 겨울 47호)
첫댓글 no
아버지를 방파제로 형상화 하려고 한 창작형식이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술법이 그 같은 작가의 창작의도를 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수필 문장의 대표적인 문제는 일대기적 서술법이다. 이 작품의 문장 서술도 아버지의 일대기를 적어 놓는듯한 인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창작문학의 문장은 형상적 문장법이어야 된다. 묘사법과 서사법 그리고 구성이 존재론적으로 어울리는 문장법이 형상적 문장법이다. 소설문장이 그 대표적 문장양식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토론해 주기 바란다.
읽으면서 작가가 창작을 제대로 알고 썼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그래도 혹시라도 카면서~~제목이라도 비유로 정했다는데 대해 순간 반가웠습니다~~
'자식들의 바람막이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 주신 아버지는 팔 남매의 방파제였다'를 뒤로 보내는 구성이었으면 좋겠고
서술법이 작가의 창작의도를 받쳐 줌이 약한 것 같습니다.
방파제처럼 8남매 태풍에도 꿈쩍 않으리만큼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병실에 누워 계시다 갑자기 돌아 가셨습니다. “태풍‘나비’의 거친 파도에 방파제가 무너지듯이 치명적인 ‘?’ 병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로 표현되었더라면 좋았을까요?
창작의 프레임(틀)이 약하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