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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소리들 가운데 절반 정도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난청 때문에 겪어야하는 불편한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듣고 노래하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가슴은 수도 없이 쿵쾅거렸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과 절대 음감을 표현하는 것 말고는 버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쉬지 않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무수히 많은 청중들을 앞에 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돌아보면, 갖추지 못한 약한 부분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약한 부분들 때문에 가지게 된 다른 강한 부분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뇌성마비를 가졌던 시인宋明姬은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 ... /공평하신 하나님이 /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심지어 병들어 아픈 것까지도 감사하다고 노래했습니다. 은혜 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없음은 껍데기 밖에 볼 수 없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불행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없음 때문에 주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겸손할 수 있습니다. 더욱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의지할 수 있습니다. 없음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까지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Ehud는 오른 손에 장애를 가졌습니다. 오른 손이 제한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사용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칼을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연히 위험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왕궁을 마음대로 드나들더라도 따로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당신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그Shamgar는 농부였습니다. 그가 가진 무기라고 해봤자 소 모는 막대기가 전부였습니다. 반면, 그가 맞서 싸워야할 상대는 강력한 철기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누구도 그가 성민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습니다. 그야말로 놀라웠습니다. 무려 육백 명이나 되는 적군이 마치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오른 지 십팔 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멸망이 불과 1년 정도 남은 B. C. 587년의 일이었습니다. 선지자Jeremiah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바벨론 왕의 손에 완전히 넘어가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유다의 왕Zedekiah 역시 바벨론 왕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끌려가서 항복하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구원해 주실 때까지는 포로로 붙잡혀 있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과 맞서 싸워봤자 소용없으니 차라리 항복하라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거룩하게 재창조하시려는 여호와의 뜻이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 왕은 선지자의 외침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마침, 몇몇 관리들이 그동안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선지자를 고발했습니다. 왕은 그것을 빌미 삼아서 눈엣가시 같았던 선지자를 시위대 뜰에 가둬버렸습니다. 동시에 선지자에게는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너에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너에게 있느니라.’ 하리라”(렘32:7)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나멜이 왕의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선지자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무를 권리 곧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땅을 사라는 의미였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제안이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제 곧 바벨론의 강력한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소유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게 될 부동산을 사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지고 있었던 모든 재산을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어야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하나멜의 제안을 들은 즉시 단박에 거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지자는 달랐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게 되리라고 예언했던 땅을 평소 거래할 때처럼 정해진 가격을 다 지불하고 샀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향한 여호와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하나멜의 땅을 사라는 여호와의 명령에는, 여호와께서 남 왕국 유다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멸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채찍을 휘두르신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히 버리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거룩하게 재창조하시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지극히 작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완전히 멸망하게 될)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는 날이 반드시 도래하게 되)리라.”(렘32:15a)라는 여호와의 약속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민 이스라엘은 기회만 주어지면 습관처럼 여호와를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졌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벌건 대낮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정신없이 정부情夫와 놀아나기에 바빴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음란에 완전히 찌들어 있는 그들을 매를 들어 혹독하게 징계한 적은 있으셨어도 아주 포기하거나 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서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나 좋아하는데도 나 여호와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호3:1b)라는 명령에 따르면, 오히려 여전히 사랑하고 또 사랑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호3:2a)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값으로 내놓으셨습니다.
구원해 주셨습니다.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이런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무조건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렘32:27)라고 이어집니다. “능치 못한פָּלָה(팔라)”은 “특별하다, 경이롭다, 기이하다, 기묘하다, 비범하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다, 불가사의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등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전능하십니다.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나라가 진멸되어 폐허로 변하고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 같은 절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홀로 당신의 거룩한 경영을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당신 백성들을 위해서 타오르고 있는 여호와의 거룩한 열정Pathos 곧 의지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세상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습니다. 왕들과 고관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스스로 거룩한 백성으로 자처하는 남 왕국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하나같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타락하여 단 한 명도 여호와를 찾지 않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여호와께서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진멸시키겠다고 작정하신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겠다.”(렘32:38)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당신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세상 어떤 세력도 갈라놓지 못할 친밀한 교제를 완전히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겠다.”(렘32:39)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때문에 분열되었던 마음을 완벽하게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직 당신 한 분만을 경외하며 섬기는 마음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참다운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겠다.”(렘32:40)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복을 주기 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직 당신 한 분만 경외하는 마음을 부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32:41)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복을 부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완전히 뽑아버렸던 약속의 땅에 다시 심기 위하여 마음과 정성을 쏟아 붓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약속들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회복과 구원의 역사에는 저와 여러분의 선, 의지, 자격, 결단, 희생, 헌신, 수고, 봉사 등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같이 여호와께서 시작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루십니다. 여호와께서 완성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 작정하셨습니다. 시작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마침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이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게 쌓여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쌓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쌓이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쌓이게 될 것입니다. 한편, 사도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라고 외쳤습니다. “충만한πληρώματος”은 차고 넘치는 완전한 분량分量을 가리킵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직역하면 “은혜 대신에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고 또 받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받은 은혜가 그 능력을 다 발하고 나면 또 다른 은혜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하십니다. 아무리 많이 퍼부어주셔도 나간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십니다. 아무리 많이 퍼내고 또 퍼내도 전혀 고갈되지 않고 끝없이 솟아나는 샘 같으십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은혜는, 오늘도 쉬지 않고 계속 쌓이고 있는 은혜는, 앞으로도 영원히 쌓이게 될 은혜는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합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열매가 넘칠 때도,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평안할 때도, 견디기 힘든 혹독한 고난 중에 있을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도,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고생하고 있을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품은 뜻들이 어떤 어려움도 없이 너무나 순조롭게 다 이루어지고 있을 때도,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도무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을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도, 사사건건 틀어질 때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고해와 같은 힘겨운 인생을 사는 동안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 모든 환경, 모든 사건, 모든 관계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은혜가 능력을 다하고 나면 또 다른 은혜가 쉬지 않고 부어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형을 피해서 도망가고 있던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창28:13b)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일찍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언약을 맺으셨던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28:14)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티끌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후손이 방해하는 세력들을 모두 다 끊어버리고 점점 번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어디로든지 확산하도록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이 그와 그의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을 복의 통로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a)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맺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장 안전하게 돌봐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소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손, 모든 족속이 그의 후손을 통해 복을 받게 하겠다는 당신의 약속이 완벽하게 다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잘 섬기고 있었을 때가 아니라 욕심에 눈이 어두워 죄를 짓고 도망가고 있을 때 약속해 주셨습니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인생의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렇지만 야곱이 정말로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있었던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넘어지고 쓰러져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 속으로 찾아오십니다. 절대로 찾아오시는 것만으로는 끝내지 않으십니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축복까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베풀어주십니다. 도무지 부끄럽고 죄송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쉬지 않고,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답은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얻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고후12:7)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께 너무 많은 것을 받은 자신이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시조차 은혜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을 각오까지 하면서 이스라엘을 인도했던 모세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부르셨습니다.
그대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냈다가는 목이 곧은 성민 이스라엘을 자신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고 돌변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작도 자신이 하고, 마무리도 자신이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에 관한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모세를 섬기겠다며 덤벼들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시도 은혜입니다. 거절도 은혜입니다. 어제도 은혜였습니다. 오늘도 은혜입니다. 내일도 은혜일 것입니다. 영원히 은혜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패도 은혜입니다.
막으심도 은혜입니다. 은혜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저와 여러분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줍니다. 은혜를 통해서 불행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선물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은혜가 이미 저와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습니다. 은혜는 벅찬 감격, 뜨거운 가슴, 형통함과 승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그러진 일상, 위태위태한 발걸음, 공허한 마음 안에도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폭풍이 몰아닥쳤을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창세 이후 한 번도 그치지 않은 은혜를,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십니다. 촘촘하게 박혀 있는 무수히 많은 절망들 속에서, 가슴 시린 어려움 속에서, 정신없는 일상 한복판에서, 형통한 날에도, 곤고한 날에도, 두렵고 막막한 날에도, 낙심과 자책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도, 무엇보다 모두 잃어버렸다는 절망이 들 때도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부어주고 계시는 은혜를 생각할 수 있다면 주어진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아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는 은혜를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오늘도 여전히 쉬지 않고 쌓이고 있는 은혜를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이후로 영원히 쌓이게 될 은혜를 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고해와 같은 인생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절망을 얼마든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의 은혜가 능력을 다하면 또 다른 은혜를 쉬지 않고 부어주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복된 2023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