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는 잃어버린 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것으로 이 기록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무엇이며 참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사모한 삭개오
삭개오란 사람은 원래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가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에게 죄인이라고 경멸 당한 이유는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로마정부의 세관에서 일했을 뿐 아니라 높은 벼슬을 가지고 있었고 그같은 직분 덕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데 있었습니다. 그는 처세와 돈을 버는 일에 대단한 재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 한가지 신체적인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는 아주 키가 적은 난쟁이 측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토색한 재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항상 마음에 걸렸고 가난한 자를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 일에 있어서 그 세리는 아마 이 삭개오의 경우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부자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마음에 평안을 얻지는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때마침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시게 되었는데 이 소문이 온 여리고에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보기 위하여 길거리로 나왔으며 세리장 삭개오도 나온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 보기를 얼마나 갈급했으며 그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했는가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그는 갖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많고 키는 작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매우 조급했습니다. 이때 한번 뵙지 못하면 한평생에 예수를 볼 기회가 없을 줄 알고 결사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입니다. 여리고 성에서 삭개오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세리장으로도 유명하거니와 부자로서도 이름이 나 있고 더군다나 난쟁이로서도 심심지 않게 알려져 있어 그의 이름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삭개오가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그리고 어린이들도 많이 있을 그 자리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뛰어 다녔으니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씩씩거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사모하는 사람은 그까짓 남의 비웃음이나 이웃의 웃음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라 그를 위하여 죽는 것도 내가 유익함이라"고 하는 우리의 믿음은 그까짓 주위의 동정에 신경쓸 것이 없는 것입니다.
2. 삭개오를 부르신 주님
삭개오는 길가에 있는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체면이나 인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를 만나려는 심정이라면 자신의 사회적인 체면이나 남이 판단하는 인격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를 만나려고 하는 일념만이 있을 뿐입니다. 삭개오가 그러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그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대로 지나쳐 가시지 않으시고 삭개오가 있는 쪽을 우러러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과 삭개오와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미 삭개오가 그 뽕나무에 올라가 있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길을 걸어가시던 주님이 뽕나무 위를 우러러 보셨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내 양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잃은 양인 삭개오의 이름을 모르실 리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양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 역시 우연히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 이에는 성령의 역사가 따랐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간절함을 주시고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로 그리스도 앞에까지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삭개오는 이처럼 필연적인 연유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만남도 이런 것입니다. 그곳에는 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잃은 양을 목자에게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따랐던 것입니다.
3. 삭개오의 태도
이 같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삭개오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를 찾으시려고 이 뽕나무 밑으로 나오신 주님의 그 은혜를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어찌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급히 내려오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는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평생 처음 마음에 기쁨이 넘쳤고 평안이 깃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게 되면 이 삭개오와 같은 기쁨과 평안이 깃들 줄로 믿는 것입니다. 다음에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이름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영접은 그의 심령의 영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 모시고 가서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해 드린 것입니다.
4. 삭개오의 회개
주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기쁨으로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눅19:8). 세리란 남의 것을 토색하지 않을 수 없는 직업입니다. 아마 삭개오는 많은 사람에게 4배씩이나 갚을 보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나누어주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돈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주님이 돈보다 더 자기에게 행복을 주고 기쁨을 주며 평안을 주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결단이야말로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 회개한 회개의 열매인 것입니다.
회개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삭개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원래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양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을 만나 다시 아브라함의 자손의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데 삭개오는 이런 믿음으로 회복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삭개오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일에 있어서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있어서 회개의 열매를 맺는 일에 있어서 그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삭개오의 기쁨과 평안이 우리에게 깃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