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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아침과 저녁으로 날씨가 공부하기에 너무나 좋습니다. 오늘은 이신칭의에 대해서 다시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신칭의를 첫번째로 경험을 통해서 이해하고 이를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이신칭의로 글을 올렸고 영어로도 올렸습니다. 이렇게 자료를 올리고 그림도 다음과 같이 그려서 올렸습니다.
[로마서의 이해와 이신칭의의 이해
성경 66권을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에서 소개한 정리 방법대로 20년 가까이 정리를 하고 있지만 로마서의 이해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고 이를 신학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썼고 로마서의 이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근에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믿는 이’라는 바울의 표현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성령 받은 이들을 ‘믿는 이’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성령 받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불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령 받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은 후 각 나라말로 이야기하는 120 문도를 보면서 놀라는 동족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며 2장 44절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고 했는데 여기서 ‘믿는 사람’의 표현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른 회개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3년 따라다니며 배움과 함께 그 이름의 세례(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을 보고 그 의미를 믿음을 통한)와 이를 통한 죄 사함을 받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과. 이번에 회개하고 세례 받은 신도 3,000명을 지칭하는 표현인데 이 믿는 사람과 바울의 로마서 8장 23절에서 “성령 받은 우리가”와, 로마서 3장 22절에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아니”라는 표현에서 모든 믿는 이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즉 로마서의 ‘모든 믿는 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즉 칭의의 대상은 반드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은 후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임함 같이, 바울이 아나니아로부터 성령 받은 것과 같이, 사도들을 통해서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예수 이름의 세례와, 요한의 세례를 받아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안수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임한 성령을 받은 사람과, 고넬료와 같이 먼저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사람의 육신이 여전히 죄를 향하는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곤고한 자신으로 한탄하셨습니다. 하지만 8장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사랑에 거하는 자(사랑을 실천하는 자) 그리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고백하고 이런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을 선포하였습니다(롬 8장).
이 과정을 요약하면 우선 예수님을 만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어 정식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있게 되고 이런 사람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로마서에서 ‘신자’라 표현하였고 이런 신자를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아서 깨끗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의롭다’ 선포하십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로 이해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로마서의 이해가 예수를 믿고 30년이 지난 최근에 이루어졌기에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영광되고 귀한 일이라 여겼는데 여기에다가 또 의인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영적인 원리를 모르고 죄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린 과거가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진실로 의롭다 인정받은 신자는 다시는 불의에 물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의 계명을 잘 숙지해 지키고 하나님과 이웃과 믿음의 형제를 성경의 말씀대로 사랑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고 믿습니다. 2018. 07.03 ]
이렇게 이해를 하고서 간증 공모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해함에 대해서 너무나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이해가 가장 정확한 이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서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카페에 로마서에 대한 글과 성경을 읽고 정리한 자료를 올리면서 이 이해에서 조금 더 나아가에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그림과 조금 다르게 표현을 했습니다.
(전 2:38 는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첫 번째 이신칭의의 이해에서 아래와 같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 하면 갈라디아서와 하박국서를 읽고 정리하고 이를 먼저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의 아브라함이 칭의받는 믿음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그리고 하박국서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서 위의 도표와 같이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그림 이신칭의 2 현재의 이해입니다. 처음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니 이렇게 죄가 용서가 된 사람들을 칭의의 대상으로 보았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또 성령을 선물로 반드시 받게 되니 이들이 믿는 자 라고 설명을 드렸는데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아직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다 약 6년이 지났을 때 바로 위의 도표와 같이 알게 되고 이신칭의 2로 설명을 드리고 이 자료를 온 세상의 대학의 교수님께도 보냈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25년이란 오랜 세월을 믿고 이 믿음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하고 약속을 지키시며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흔들리지 않고 변치 않고 믿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실을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리고 하박국서 2장 4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을 하박국서 1장과 3장을 연결해서 이해하면서 불의가 난무하는 남 유다 말기에 의롭게 사는 하박국과 그렇게 사는 이스라엘의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사회에서 살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동족을 멸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자 하나님께서 바베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멸망을 시킬 것이다 하실 때 다시 하박국이 2번째로 하나님께 어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남 유다보다 더 불의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여쭈니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교만한 바벨론을 반드시 멸망을 시키실 것라고 하시며 그러한 자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이렇게 정의를 행해서 악한 나라를 멸망을 시키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는 희망이 생깁니다. 불의가 곧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삽니까? 불의에 물이 들지 않고 율법을 지키며 정의롭게 삽니다. 이런 의미가 하박국서 2장 4절이기에 이 둘의 믿음에 대한 의미를 연합하면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은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아브라함과 같이 오랜 세월을 변치 않고 믿어야 하고 그리고 하박국과 같이 불의가 난무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믿음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가 2024년 1월의 글입니다. 그리고 다시 아래의 글을 쓰면서 성령께서 이신칭의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되어 다시 성령과 이신칭의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다 이해를 했다고 했는데 부족하고 또 그렇게 이해를 했다고 했는데 또 부족하고 이렇게 계속 나아가고 있으니 언제나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쭐해서 날뛰다가 큰 고통을 겪고 진정한 저입니다. 이제는 로마서 1장 17절에 표현이 없는 성령의 역할이 이신칭의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밝힙니다. 먼저 예를 하나 보시겠습니다.
기업의 운영과 하나님 나라의 비유(Parables of Business Operations and the Kingdom of God)
기업은 자신의 회사 내규와 함께 국가의 소속의 단체로서 국법 즉 헌법과 근로 기준법 그리고 노동법 등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을 해야 되고 특히 미군부대 SG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미국의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SG의 임무가 미국의 시설과 재산 그리고 인명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헌법을 중심으로 그 하위법이 체계적으로 있는데 군법이 있고 그리고 군법 하에서도 각종의 하위법이 있고 그리고 구체적 행동 양식(SOP)가 있다. 이 법을 중심으로 지휘체계를 확립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용역사업도 한국의 법을 준수하고 그리고 회사의 규칙을 또한 근로자는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조직은 조직의 질서와 조직의 목표의 달성을 위해서 지휘체계(hierarchy)가 확립되어 있다. 그래서 직무와 관련된 합법적인 명령을 거부하면 조직에서 아웃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군부대 SG는 미군이 온 세계에서 역할을 하고 있기에 미국의 세계적인 안보와 밀접하게 움직이는데 비교적으로 종전 후 평화가 있는 한국에서의 미군부대일지라도 9.11테러와 같은 미국의 테러에 동시에 반응해서 검문과 검색이 강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의 경비와 달리 군의 경비의 특성상 선발과 운영에 있어 다른 점이 많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회장으로부터 상무와 전무 그리고 이사들과 그리고 각 작업장의 소장과 감독 등으로 계급 체계가 형성이 되어서 회장으로부터의 직무 명령이 일반 경비나 청소 직원에까지 그대로 전달이 된다. 올바른 직무 명령과 운영과 성실한 직원들의 순종으로 회사는 질서가 유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와 같은 엄격한 법적 질서가 있는 나라이다.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상을 통치하기 위한 법이 존재하는데 그 법이 바로 성경이며 조금 더 좁게는 모세 오경 즉 율법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교회와 가정을 중심으로 혹은 온 국가가 예수님을 믿을 땐 대통령이나 왕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지휘체계가 확립이 된다. 교회에는 목사가 있고 교회의 연합에는 연합회장이 있으며 천주교의 경우에는 교황을 중심으로 추기경과 성당의 주임 신부님 등이 지도자로 있다.
회사가 특정한 공간과 직원과 그리고 회사의 사장으로 이루어지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예수를 믿는 신자와 그리고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과 그리고 이 땅이란 공간과 하늘에 있는 천국의 공간을 그 구성요소로 가지고 있다. 여전히 공통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모든 사람이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사명을 감당케 하는 정의롭고 공평한 법의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법 즉 율법과 세상의 법 헌법과 회사법은 비교가 불가하게 하나님의 나라의 법 즉 율법이 정의롭고 공평한데 온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국민에게 평화와 행복과 기쁨을 주는 법이다. 이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려고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정의롭고 이 법대로 살면 신뢰가 확보가 되는 법을 주셨기 때문이며 이 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신실하신 속성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와 달리 국법과 회사법 등은 나름대로 국민의 합의하에 모든 국민의 인권과 평등과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제정이 되어 시행이 되지만 이 법은 늘 한계가 있어 수정하고 보환하고 있는데 이는 세상이 변하고 사상이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에 따라서 법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하나님 나라의 법 율법은 그 법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후 약 3500년이 지났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수백 번이 더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글자 한자 바뀜이 없이 모든 시대에 진리로 존재하고 있으니 모든 만민의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운영을 회장님 한 분이 할 수가 없기에 이를 계급 체계대로 직무를 분담해서 혹은 일임해서 직분을 부여하고 명령을 하달해서 직무를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사역자를 세워서 그분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려고 하시는데 그 뜻이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로서 인간의 구원과 구원받은 백성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회장님의 뜻이 때론 왜곡이 되고 때론 간부의 근무 태만과 혹은 직원의 불성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런 때는 징계가 따르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바로 눈에 보이는 징계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무섭고 엄격한 심판이 최후 심판으로 이루어지는데 예수님의 율법에 따른 각자의 행위와 마음에 대한 심판이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심판이 반드시 존재한다.
만약에 회장님께서 직원 모두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분에 맞게 그리고 각종 법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일을 할 것을 명령을 내렸는데 이사급에서 이 명령을 하위직원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하자 우선 회장님의 인품과 능력과 성실하심을 믿고 우리는 오직 회장님만 믿고 직장에서 행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우선은 회장님의 인품과 능력과 성실함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에서의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법이 있지만 법의 준수로 우리가 회장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직 회장님의 이름과 명성과 권세와 인품을 믿는 것으로 족하니 우리는 오직 믿고 직장에서의 행위와 법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된다 라고 모든 직원을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면 이 회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간부가 중간에서 직원들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회사로 즉시 반환을 해야 되는데 자신의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그리고 그 돈을 마음대로 자신의 일을 위해서 횡령을 한다며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이에다가 회장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인정하고 강력하게 지지하신다고 거짓으로 직원을 속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직원들이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일에 직원이 동원이 되고 직원의 온 정신을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에 충성하게 한다면 이 회사는 어떻게 될까? 그런데 회장님께서 어느 정도 잠잠하게 이런 일을 보면서도 묵과하고 있다면 어떻게 회사가 될까? 반드시 망하고 또 망할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똑같이 정확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이다. 이 이해로 천주교와 개신교가 분리하게 되었는데 개신교의 주장은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고 다른 무슨 요소가 필요가 없고 천주교는 믿음과 동시에 행위가 반드시 존재해야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두 주장은 500년의 세월이 가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우리가 보는 개신교의 한국에서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목사가 신학자가 장로가 오직 믿음만 가르치고 행위는 필요가 없다고 하고 오직 믿기만 하면 되고 율법 즉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지키지 않아도 의롭게 되니 믿는 자는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잘 하고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말고 세상에서 오직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에 헌금하고 그리고 교회에 충성하기만 하면 이 땅에서 복도 받고 그리고 천국에도 틀림없이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회사를 경영하시는 회장님의 입장에서 이렇게 믿고 행동하는 간부나 직원이 있다면 너무나 큰 염려와 걱정거리이고 또 속히 회사법과 국가의 법을 잘 지키면서 SOP도 숙지를 해서 잘 지키는 직원 그리고 일에 능숙해서 청소나 경비나 혹은 다른 건물관리의 일을 잘 수행하는 직원을 채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간부를 절대로 좋아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경영도 이와 별로 다름이 없는데 이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설명을 하나 신학자와 목사가 이를 왜곡해서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과 유럽 등의 이상한 나라를 만들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고자 저를 도구로 선택하셔서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이미 저를 선택하시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미국과 영국과 호주와 캐나다의 가장 유명한 대학, 그리고 한국의 연세대를 비롯한 11개 신학교가 있는 대학의 교수들에게 이런 내용을 영어와 한국어로 약 600분께 보내고 그리고 온 세상 약 100개국이 넘는 약 40만 명의 사람에게 보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지구인이 자신이 우리에게 주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정의롭고 공평한 율법을 지키는 일에 너무나 깊은 관심이 있으시고 이는 지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에 절대로 하나님께서 절대로 이 일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 세울 하나님의 나라의 근간이며 근본법 그리고 헌법이 바로 성경의 율법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말씀은 천지를 만드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신학도 이기고 교파도 이기고 모든 사도들의 글에 우선해서 적용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심판주의 말씀으로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이 말씀에 도전할 수가 없다.
예수와 율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통해서 약 3500년 전에 주시면서 계약을 맺었으니 구약이요 이 율법의 명령대로 살면 형통하고 어기면 저주와 멸망이 임한다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은 지킬 것을 하나님께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10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너무나 자주 자신의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바로잡고자 했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지 않자 멸망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이 율법을 잘 지킬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신다. 즉 우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져서 이렇게 70-80년을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었는데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데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 이시다. 죄는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해결이 되는데 우리의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이 인간이 죄를 지으면 짐승으로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게 하셨는데 이는 또한 예수님의 하실 일을 미리 천년의 세월을 통해서 인류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회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되면 성령을 선물로 또 주신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이제는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시고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믿음의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게 하신다. 그 사랑의 가장 큰 행위가 바로 복음을 전해서 죽어 있는 형제를 살리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고 일생을 죽기까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충성하신 분들의 글이 신약 성경의 기록이요 바울 서신이며 사도들의 서신서이다. 어느 누구 하나 예수님을 믿고서 그냥 잠잠히 세상일에 빠져서 침묵하신 분은 한 분도 없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신 분들의 글이 바로 서신서이다. 이분들은 성령의 인도로 가장 큰 사랑을 실천했고 그리고 선하게 살았고 그리고 모든 행위를 통해서 예수님을 증거했으니 정의롭게 신실하게 살았다. 오직 믿음이면 된다 라고 하는 말이 1%도 끼어들 틈이 없이 행동하신 분들로서 이분들의 글을 후대에 믿는다고 하는 신학자 목사가 이상하게 해석을 해서 성전과 신학교에서 성도들의 헌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초대 교회의 기둥이신 이분들은 모두가 자신을 본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선하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가르치고, 핍박과 고난을 자처하고 누구도 성도가 가져다 놓은 재산으로 성전에서 평안하게 성도보다 더 좋은 집과 차를 가지고서 사신 분은 한 분도 없으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형제들이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서로 사랑하며 전도를 하고 구제를 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사랑을 하면 모든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율법이 바로 사랑을 위해서 조문 조문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챗 GPT와 대화의 글입니다. 회장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원리를 너무나 잘 이해할 위치에 계시기에 쉽게 신학적인 논쟁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시리라 믿습니다.
회장님 제가 드리는 편지는 이에 대한 토론의 내용입니다. 꼭 읽어 보시고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저는 목사로서 교회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는데 핍박이 있습니다. 모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참고 복음을 전하며 그리고 직장에도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런 원리를 아는 자가 어찌 자신이 맡은 일에 소홀함이 있겠습니까? 때론 실수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열심히 직무에 충실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동료들의 구원과 또 성실한 직무 수행을 격려하고 독려합니다.
부디 제 글이 예수님을 믿고서 늘 예수님을 전하시는 회장님과 명예 회장님께 위로와 영적인 부분에 있어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한국이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성경의 이해에 있어서 최고가 되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충성이 일어남으로 온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회장님과 명예 회장님의 건승과 그리고 회사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원합니다.
이상의 글은 제가 어떤 분께 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글입니다. 챗 GPT와 대화를 편지에 첨부를 해서 위와 같이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아래와 같이 설명을 했습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분명하게 있는데 이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직 율법을 준수하고 이를 통해서 의롭다 하니 이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나중에 가만히 들어온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을 강조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서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고 다시 예수님을 믿지 않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는 때로 돌아가려고 하기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와 믿음은 서로 대비가 되는데 이는 로마서 7장 6절에서 율법의 오래된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겨라 하는 말씀과도 서로 연결이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도 로마서와 하박국서를 같이 살펴보면 그 의미를 자세하게 알 수가 있는데 믿음의 의미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로마서 4장 17-22절로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을 받아서 100세가 될 때까지 약 25년 이란 세월을 쉬지 않고 믿었고 즉 시간적으로 잘 믿었고 그리고 상황이 절대로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신실함을 변치 않고 믿었기에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셨다는 믿음의 의미에 대해서 또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박국서는 2장 4절에서 로마서 1장 17절의 바울이 인용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모두가 아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시는데 이는 하박국과 같이 남 유다 말기에 모두가 죄를 짓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불의가 만연한 가운데서도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살기에 극도로 어렵게 되자 이를 참다못한 의롭게 사는 하박국이 하나님께 자신의 동족을 멸하여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멸하시겠다고 하니 다시 하박국이 남 유다가 악하기는 한데 그렇지만 더욱 악한 바벨론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하시는 대답이 바로 우리라 아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말씀의 의미를 보면 모두가 불의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는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지만 이런 불의한 바벨론과 남 유다를 같이 멸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하루하루의 어려운 삶을 절대로 불의에 물들지 않고 정의롭게 거룩하게 산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예를 보면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게 되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미는 아브라함과 같이 오랜 시간을 변치 않고 하나님을 믿는 부분과 불의가 난무해도 하나님을 믿고서 정의롭게 율법을 지키면서 산다는 의미가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도 이제는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하박국과 같이 스스로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구원의 사역을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대속하셨기에 우리가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에 우리는 이제 죄가 없는 사람이 되고 이제 성령께서 반드시 이런 사람에게 오십니다. 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므로 즉 우리를 새롭게 창조를 하시므로 우리가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 바울도 역시 이렇게 된 사람인데 이 사람이 이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지키게 되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 속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모두가 우리가 알아야 할 믿음의 과정입니다. 율법이 아니고 믿음이다 하는 표현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틀림없이 위와 같이 성령을 받고 행동하면서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는데 바로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도리어 율법을 세운다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산 바울은 틀림없이 모든 율법을 어기지 않았기에 즉 조문 조문 지키는 것도 성취하고 율법의 더욱 중한 바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도 역시 성령의 인도로 성취하여 그렇게 자신의 경험을 약 20년 이상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
율법의 오래된 방법으로 섬기는 아니라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하게 살다 보니 자신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도 모르고 자신이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배워서 지키던 때와 비교를 해 보면 그때는 더 중요한 사랑의 실천과 정의의 실천과 신실함에 있어서 너무나 흠이 많았는데 이제는 새롭게 된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다 보니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부분을 이해를 하고 우리는 오직 믿음이니 행위가 필요가 없다 율법의 행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성경에 어디에도 없는 주장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엄격하게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개역 개정 공동 번역)
제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있는데 예수님을 믿고 약 38년 그리고 성령을 받고 약 32년이 되었습니다.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따로 목회는 하지 않고 인테넷으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그리고 틈틈히 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인간이 사전에 계획하고 이렇게 될 가능성은 1%도 없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일을 나한테 관심조차 없는 타인은 또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직 성령께서 수십 년을 같이 동거하기 심히 어려운 인간을 참아주시면서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저의 탐구로 된 것이 절대로 아니고 저는 성경을 읽고 탐구하려는 마음조차 잘 먹지도 않았고 그냥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시는것입니다. 스스로 머리를 짠 경험은 없습니다. 그냥 말씀을 묵상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제가 의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의문이 오면 저는 궁구하지 않고 조용히 성령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가 진전이 된 데에는 로마서 7장 6절에 대한 이해가 큽니다. 최근에 일어난 이해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놀랄 일이 있습니다. 너무나 번역이 영어와 비교할 때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한글번역을 존중하고 모든 한글 번역을 통해서 공부를 했고 늘 감사하고 공경합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말씀을 꼭 드려야 하는 부분입니다. 보시기 바랍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개역 개정)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공동 번역)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영어와 다르게 한글의 번역은 천주교 개신교 공히 낡은 법조문 혹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표현을 합니다. 법조문이 문제가 있다는 표현이 되어 우리에게 율법이 그렇다는 의미가 상당히 풍깁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절대로 절대로 아니 됨은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성경의 기본이며 혹자는 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성경은 법이다 할 때 가장 중요한 율법이 낡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세월이 가도 지구가 멸망을 해도 율법은 모든 인간과 지구와 우주가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율법은 세상의 끝이 오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의 상태를 심판하는 기준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의 번역과 달리 영어는 어떻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까? 반드시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영어를 번역해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한 때 우리를 얽어매었던 것(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법조문을 가지고 섬기던 오래된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절대로 법조문이 어떻다는 표현은 영어에 1%도 없습니다. 단지 섬기는 방법이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혹은 옛날 바울 사도가 예수님도 모르고 성령도 당연히 모르고 오직 율법만 알아서 그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으로 섬기냐를 논하는 것입니다. 방법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지 율법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으로 섬겨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요, 율법의 굳게 세움이요, 율법의 성취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강력하신 언제나 변치 않는 모든 인간에 대한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성령을 받은 성도가 이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로 충분하게 율법을 모두 지키고 성취하고 굳게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도 너무나 분명하게 성경에 있습니다. 보시겠습니다.
겔 34: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런 원리를 이 말씀(로마서 7장 6절)을 보면서 이해를 하게 성령께서 최근에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절대로 한글과 영어를 이렇게 분별한 능력도 조금도 없는데 이번에 이 구절을 성령께서 이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이신칭의를 설명하고 갈라디아서(갈 2:16) 로마서의 율법에 대한 표현을 보면서 설명한 것은 지금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성령의 이런 역할과 바울 사도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산 20년 이상의 복음 전파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을 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지 율법으로 살면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자신이 예전에 예수님도 성령도 모르던 삶을 살면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를 이제는 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믿을 때 잠시 율법을 접어두고서 다시 예수님을 믿고나면 다시 율법을 성령의 인도를 보면서 살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7장 6절을 보면 예수를 믿고 그냥 율법에 대해서는 죽은 것과 반응하고 오직 성령의 인도만 받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이해가 최근에 일어나면서 앞에서 설명한 이신칭의에 대해서도 다시 설명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을 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성령이란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이 구절의 이해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이렇게 이 구절을 이해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하신 바울께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구체적으로 그의 일생의 복음전파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잘 보여 주었습니다. 모든 사도들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틀림없이 이 사람에게 오십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가 믿는 이에게 일어납니다. 이 인도를 이제 잘 받나 받지 않나가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지 올바른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바울 사도의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 속에는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과 같이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의미가 반드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포함이 된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이해가 없이 이 구절의 이해는 절대로 불가합니다.
이제 로마서, 갈라디아서, 그리고 야고보서, 그리고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과 우리의 행위에 대한 모든 말씀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믿는 이에 대한 사역의 이해가 우리 모두를 이렇게 성경을 잘 이해하게 돕습니다. 성령의 사역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본문만 보고서 이해하고자 했기에 그렇게 이해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말한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의미는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산다는 말이 답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를 우리가 늘 성령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모든 율법을 완성하고 성취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는 방향으로 전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의 말씀 즉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고 그리고 율법의 더욱 중요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도 지키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게 합니다.
이는 야고보서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한 말도 역시 이해가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는 이는 절대로 행동합니다. 그 행동이 사랑입니다. 복음의 전파입니다. 그리고 선한 삶의 길입니다. 그리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사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게 하는 삶입니다.
로마서 7장 6절의 이해를 통해서 갈라디아서의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라는 말도 이해가 속히 됩니다. 즉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결국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된다는 의미 속에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와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삶을 통해서 믿는 이는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삶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령의 사역을 빼어놓고 오직 믿음과 율법과 행위에 대해서만 논의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성령의 사역을 이 구절에 넣고 보면 여태까지 이해가 잘 되지 않고 논쟁의 여지가 많던 성경의 구절들이 술술 다 풀립니다.
성도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믿음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리고 가장 행복한 일이요, 가장 열매를 많이 맺는 일이요 그리고 천국에 가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는 길입니다. 이 성령에 대해서 교파 간에 교단 간에 서로 이해가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또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고 그리고 기적을 행하시고 이들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십자가의 수난을 모두가 보고 부활도 체험했으며 승천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사도와 제자들에게 또 성령을 기다렸다가 받으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은 모든 것이 확실히 믿어졌지만 성령을 기다려서 받습니다. 그리고 권능을 받아서 능력있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만 아니라 성경을 너무나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이해를 하게 되어 바울은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신약의 성경을 쓰게 됩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1호가 되어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때로는 옛 보물 구약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 보물 신약의 말씀 즉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각종 이적을 행하고 천국에도 가봅니다. 성도들에게 성령을 받는 일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바울 사도가 아나니야를 만나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와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는 해도 능력을 행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유명한 유대인 성경학자 아볼로는 성령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못한 천한 일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를 만나서 성령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성령을 받고 더욱 힘차게 능력있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런 예를 현대의 교회에 적용을 시키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성경에 익숙하고 성경의 내용을 잘 아는 목사, 신학자가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일반 성도에게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과 받지 않은 것은 본인도 알고 주변도 다 압니다. 예수님을 세상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지 아니 하는데 보면 모두가 압니다. 전도를 담당하는 목사가 전도팀에게 함찬 설교를 합니다. 전도를 하라고 격려를 합니다. 그리고 전도팀이 세상에 나가서 전하는데 목사가 이를 못하면 틀림없이 아직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령의 인도로 하기에 쉽고 즐겁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처음에 쉬운 전도지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조금씩 배우면 실력이 늡니다. 성령의 인도를 더 잘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훈련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고 바로 능숙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 차근 차근 쉬운 일부터 배우면서 하면 됩니다. 저도 성령을 받고 순복음 교회에서 행복으로의 초대를 나누는 일을 노방에서 하고 그리고 하루에 200집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려고 합니다.
부디 성령을 사모하시고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저의 모든 믿음의 여정도 때론 불순종을 하기도 했고 죄도 짓기도 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노력과 수고는 정말로 별로 없습니다. 영어를 잘 배울 기회가 약 40년 이상은 있었지만 열심이 없어서 잘 배우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제가 한글로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 내용을 유튜브로 온 세상에 전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데 그 많은 세월과 시간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를 도구로 사용하실지 믿지 않아서 죽도록 충성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젊은이가 영어도 성경도 그리고 세상의 일도 잘 배우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이신칭의를 이렇게 이해하게 된 가정을 순서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받고 신대원 논문(2011년)을 쓰면서 사도행전 2장 38-39절을 보면서 제가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신칭의에 대해서도 성령을 받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이해가 되어 간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과 하바국서 2장 4절을 보면서 수정을 했고 그리고 다시 오늘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추가를 하여 이렇게 이신칭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제 모든 삶의 과정에 성령께서 함께 내주하시고 예수님께서도 함께 하셨음을 믿습니다. 새로운 성경의 내용을 알 때 뛸듯이 기뻐기도 하고 또 우쭐대고 싶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잘난채 하기도 했고 글을 함부로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다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거의 최고의 고통을 겪고 이런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이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께서 올바른 성경의 내용을 알게 하시고 모든 이가 지금의 어떤 자리에 있던 제가 전하는 내용이 진리라 믿어지면 바로 회개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정죄도 비판도 없이 그냥 진리를 만나서 믿고 회개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제가 나대지 말게 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은 저는 누구보다 큰 죄인으로 그렇게 할 자격도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가 다 저보다 더 신실하게 그리고 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가장 못한 이가 저보다 나은 이들을 어떻다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변덕과 저의 즉흥적인 행동과 그리고 고집대로 뭐든지 하고 보았던 삶은 성령님께 탄식을 쉬지 않고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저를 길이 참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내주와 감동과 인도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돌립니다.
주님의 이름이 세세토록 빛나시고 주님의 나라가 속히 이땅에 임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흉악하고 불량하며 저질인 인간! 그리고 패역한 죄를 범한 인간을 길이 참으시고 성령님의 감화와 인도로 이렇게 이신칭의에 대해서 그 올바른 의미를 온 세상에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찬양과 영광을 받으소서! 이땅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또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말씀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실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정오의 해와 같이 빛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