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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 그 천년세월을 곰탕으로 우려낸것인가 ? /처음처럼 작
영남 예술대학의 남도 예술문화기행을 하면서 지나가는 동선에 따라 그 면면을 영상 스켓치로 올리고 있는데,
오늘은 나주 목의 객사와 관아, 그리고 나주 먹을거리중 가장 잘 알려진 나주 곰탕을 스켓치 하였다.
금성관이라고 이름하는 나주목 객사는 남도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아주 잘 다듬어 가꾸어 진 것이라 할수 있다.
우선 안동호반에 놓여진 이색적인 나무다리 < 월영교 >를 산책하다보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산 중턱에 처다 보이는 고건축 기와집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서 보고 있는 나주목 객사 와 같은 안동의 옛 예안 현 ( 선성현 ) 객사 인데,
나주 목 객사를 돌아보면서 누군가 안동에 있는 객사와 같은 것이란걸 언급하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 몰라서 그런지, 아님 규모가 비교되지않아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이번 남도 예술 문화기행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가는곳 마다 문화해설사 선생님들의 전문적 해설과 열정이라 할수 있다.
역시 이곳 객사에도 어김없이 나이도 조금 지긋한 아주머니라 불리울 정도의 여성 문화해설사 께서 아주 상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조곤조곤 설명을 곁들여 안내해 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설명인 즉슨 객사의 규모가 한국의 대표 객사라 할만하다는 것이고 보통 객사와 구별되는 것은 임금의 몽진때나 남도를 지나다니는 정부 고관대작들의 머물곳으로 쓰여진, 친절한 안내 말맵씨를 빌리면 요즈음 서울의 신라호텔같은 오성급 특급 호텔이었다는 설명이다.
사실 객사란 초하루 보름에 임금이 계시는 곳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는 중심 건물을 두고 좌우로 머무는 객실을 겸한 시설이 있는 것인데,
이곳은 그것 뿐 아니라 목사와 관찰사의 송덕비를 모아두었다거나 읍성의 관아가 그리고 최근까지 나주 군청이 자리하고 있다가 정비사업을 통해 정리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정돈 되어 있었다.
해설사가 특히 역점을 두고 설명하는것 중엔 월대와 박석 내삼문,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세길의 통로길을 힘주어 설명하였고
동학혁명으로 남도가 모두 동학군에 점령당하였으나 남도의 웅부 중심인 나주목 만이 점령되지않아 결국 농민혁명이 실패하고 말았다는 내용을 두번씩 강조하였다.
일제시에도 11.3 학생의거의 곳이었고 5. 18 광주 시민의거시에도 이곳 나주가 중심이었던 것으로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가 이곳을 중심으로 휘돌아 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객사를 나서면서 만나는 관아 관찰부 문루를 지나쳐 가고 말았지만 이곳 구석구석을 찬찬히 답사해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나주에서 맛볼수 있는 대표음식이 나주 곰탕,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 라고 한다.
우리는 점심때가 되어 그 유명한 맑은 국물의 나주 노안곰탕을 먹게 되었다. 입맛이란 정말 제각각이고 자기 입에 맞아야 하는것이지만 내 입맛에는 안동의 중앙재래시장에 있는 옥야식당 국밥이 훨씬 맛있다 싶은데 우리 일행들은 유명세 덕분인지 다 잘 먹었다 하니 내 입이 입이 아닌 모양이다.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올라 남도 끝자락 목포를 향하였다.
목포 ! 유달산아 기다려라 !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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