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
안드레이 루블료프(1370-1430)는 동방정교회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수도자이다. 루블료프 성인이 그린 삼위일체는 삼위일체에 관한 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공경받는 이콘으로서 신학적, 예술적 차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1. 어떻게 삼위일체 하느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그릴 수 있는가?
성부, 성령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오류이다. 성자 예수님만이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콘 작가들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세 천사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천사를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표현하였다. 아타나시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등 많은 교부들이 이 세 천사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상징으로 이해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에 비해 요한 크리소스토모, 다마스커스의 요한과 같은 교부들은 세 방문객을 그리스도와 두 천사로 이해하였다. 후자의 해석에 영향을 받은 14-15세기의 러시아 이콘 작가들은 그리스도와 두 천사의 모습을 담은 이콘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향을 거슬러 루블료프는 세 방문객을 명백한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표현하였으며, 성부 - 성자 - 성령께서 같은 하느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같은 키와 같은 얼굴, 그리고 같은 길이의 홀 (손에 쥔 막대기 - 세상을 다스리심의 상징) 을 그려 넣었다. 그러므로 어떤 천사가 어떤 위격의 하느님을 상징하는 지에 대해서 각 천사들의 제스쳐와 다른 상징물들을 통해 구별하는 수 밖에 없다.
2. 성부 - 성자 - 성령의 구분
1) 옷의 색깔
세 천사의 옷에 파란색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하며, 그럼으로써 신성 (하느님) 을 상징한다. 즉 세 분 모두 하느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 황금색 옷을 입은 맨 왼쪽의 천사가 성부이시다. 황금색은 왕권과 위엄을 상징하고 있다.
- 자색 옷을 입은 가운데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전통적으로 자색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색깔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수난의 피로써 인성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하느님을 상징하는 파란 색을 섞으면 자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성자 예수님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색이 이콘에서 자주 쓰이게 된 것이다.
- 녹색 옷을 입은 오른쪽의 천사가 성령이시다. 녹색은 생명과 젊음의 상징인데, 성령께서 이 세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는 생명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2) 각 천사의 제스쳐
성자와 성령께서는 각기 성부로 시선이 향해 계시며, 성부께서는 성자와 성령을 동시에 바라보고 계신다. 성자의 오른손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상징하는 제스쳐로 두 손가락을 펴고 계신데, 식탁 한 가운데에 있는 잔 위에 놓여져 있다. 이로써 성자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심이 암시되어 있다. 성령의 오른손은 그러한 성자의 제스처에 대해 함께 축성하시는 모습을 하고 계시다.
3) 뒤에 있는 상징물
성부의 뒤에 있는 집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 (창세 18장) 이지만, 아버지의 집, 즉 하느님 나라로 변모되어 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요한 14:2) 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성자 뒤에 있는 나무는 생명의 나무 (창세 3장; 묵시록 22장) 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십자가 나무를 상징한다. 성자 예수님의 성부께 대한 순종을 암시하듯, 나무는 성부를 향하여 겸손하게 구부러져 있다.
성령 뒤에는 산이 보이는데, 모리야산, 시나이산, 타볼 산 등 전통적으로 인간의 하느님을 체험한 곳으로서, 특별히 성령의 현존하심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3. 이콘의 전체적인 구조
Evdokimov는 이 이콘 안에서 십자가 – 가운데 천사 뒤의 나무와 가운데 천사, 식탁 위의 잔과 식탁 앞쪽에 나 있는 작은 틈이 수직을 이루고, 왼쪽 천사와 오른쪽 천사의 머리가 수평을 이루는 – 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보다, 아래의 왼쪽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천사들을 둘러싼 커다란 원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세 천사를 둘러싼 원은 신성과 영원성, 그리고 세 위격 사이의 조화로운 일치를 드러내 주고 있다.
동시에, 오른쪽 아래에서 보듯 왼쪽 천사와 오른쪽 천사의 앉은 모양은 또 하나의 커다란 잔을 형상화하고 있다. Vladimir Borozdinov는 이 잔의 이미지가 너무나 뚜렷하고 선명하기에 도저히 우연히 이루어진 형상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잔의 이미지는 희생적인 사랑과 친교를 상징하고 있으며, 성자를 희생적인 봉헌물로 가운데에 담아 형상화 되어 있다. 즉, 성자의 자기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성체성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부와 성령의 앉은 자세가 커다란 잔(성작)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모든 위격이 성체성사의 희생적 사랑에 참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의해 둘러싸인 식탁은, 세상을 초월하시면서도 구원경륜을 통해 내재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세상 -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 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 식탁 위에 놓인 잔이 세상이라는 제단 위의 성작을 의미한다면, 성부와 성령에 의해 그려지는 커다란 잔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성작을 의미하며, 이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과 하느님께서 함께 참여하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체성사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세 천사를 둘러싼 원과 천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성작의 형상은 세 위격 서로간의 사랑과 일치를 드러내 줌과 동시에 세상의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에 함께 참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인 관계를 함께 드러내주고 있다.
4. 구원론적 관점에서 바라 본 이콘의 해석
1) 이 이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세 천사들의 절대적인 상호 관계성이라 할 수 있다. Elizabeth Groppe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이콘에서 어느 한 인물이라도 다른 두 인물과의 상관성 없이 관조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 세 천사 중 어느 한 천사라도 지워진다면, 이 이콘의 구성과 아름다움, 힘은 파괴될 것이다. 세 인물은 완벽한 상호 관계성과 삼위일체적인 상호 내재성(a trinitarian perichoresis) – 혼동됨이 없이 스며드는, 서로가 서로 안에 있는 존재(a being-in-one-another) – 로 존재하고 있다." 이콘 안에 드러난 세 위격의 분리될 수 없는 내재적인 상호 관계성은 다마스커스의 요한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다른 이 안에 존재하지 않지만… 삼위일체 안에서는 정반대이다… 각 위격은 다른 위격 안에 머물고 계시다.” 이 이콘은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다른 위격들에게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 주시는 것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이콘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절대적인 상호 관계성이 성자를 안에 담은 커다란 잔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잔의 이미지는 이 이콘의 주제가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희생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의 자기 희생적인 이 사랑은 고통에 마주 대하여 살아가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깊은 구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2) 또한, 식탁에는 네 번째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 자리는 곧 우리의 자리이다. 세 위격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있는 원(圓)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원은 닫혀져 있지 않다.” 이 이콘을 바라보는 이는 이 원 안으로 초대되고 있다. 즉, 이콘은 우리를 거룩한 장소, 곧 삼위일체와 마주하여 평화와 사랑 안에서 함께 앉을 것을 초대한다. 그러나 이 평화는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초월하거나 달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을 때, 성자와 마찬가지로 성부와 성령께서 이루시는 커다란 성작 안에 스스로 앉아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이콘 안에서 삼위일체의 지극히 평화로운 사랑 안에로 초대되면서 동시에, 세상과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자기 희생적 사랑에 또한 초대되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관상하는 것은 하느님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리하여 인간 존재의 전인적 구원으로서의 신화(神化, deification)를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톨릭 여성 신학자인 Catherine LaCugna가 말하듯, “신적인 삶은... 또한 우리의 삶이다: 삼위일체는 하느님 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하느님의 삶과 서로와 함께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다.”
루블료프의 이콘에서 세 위격은 서로 간의 사랑과 내적인 평화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고통에 참여하신다는 하느님의 희생에 대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신화(deification)는 세상의 고통에서 초월하여 달관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이타적(利他的) 사랑 안에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고통과 내적인 평화의 이 역설적 결합에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댓글 아멘
아멘
자세한 설명 덕분에 이콘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더불어서 프라하의 아기 예수님도 손가락 두개에 붉은색 밴드를 감고 있는데 그 의미도 같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정화때문에 성부 하느님을 할아버지 모습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젊은 모습으로 나타낸 작가의 상상력이 현대인 보다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