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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모세 오경, 토라)을 보는 시각의 다양성( 유대인, 천주교, 개신교) Diverse Perspectives on the Law (Pentateuch/Torah): Jewish, Catholic, and Protestant Views
샬롬! 세월의 빠름은 말로 다 표현이 어렵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은 120개국 약 50만 명이 넘었고 100만 명으로 가는데 그 자료가 다 있습니다. 주로 제 나이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남녀 많이 읽습니다. 가끔은 한국보도 미국에서 더 많이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10 대부터 모든 연령층에서 다 보십니다. 벌써 깊은 가을 10월도 열흘이 넘게 갔습니다. 모기도 없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입니다. 먹고 살 것이 확보가 된 우리와 같은 나이 층은 조용히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며 공부하는 것이 가장 시간을 보내는 일에 유익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 와서 겨우 100년을 사는데 대부분 남과 경쟁을 하고 집단이 국가와 민족이 경쟁을 하고 때론 전쟁도 합니다. 인간이 시간을 가장 장 보내는 일은 아마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제는 아래와 같이 동영상도 보고 이를 해석을 해서 한글로 보고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분들의 설교나 강의를 한글로 번역해서 공부할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풍성해지는 좋은 계절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세 오경은 첫 구약 성경의 5권의 책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내용을 기록한 책이며 율법 혹은 토라라 불립니다. 히브리 성경책에 있고 히브리 성경을 2000년도 전에 그리스어로 번역을 해서 70인역이라 했고 이를 천주교는 라틴어로 번역을 했고 다시 종교 개혁으로 루터등이 독일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을 했읍니다. 러시아는 약 1000년 전에 러시아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정교회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구약 성경 39권은 순서가 달리 배치가 되기도 하고 첨가가 되기도 했고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 동영상은 히브리어 구약과 그리스어 구약과 천주교 성경과 개신교 성경의 모세 오경의 내용이 다르게 이해가 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개신교인은 모세 오경을 개신교적인 시각에서 봅니다. 그런데 모세 오경을 보는 시각이 유대인과 천주교인 개신교인이 각각 다릅니다. 이를 아래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니 영어로 보시고 한글 번역도 보시면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모세 오경은 히브리 시각도 있고 천주교 시각도 있고 개신교 시각도 있는데 조금씩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모세 오경을 모세에게 주신 분이시고 모든 말씀을 다 우리에게 주신 분이니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고, 바울 사도는 유대인으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분으로 율법도 잘 알고 신약도 잘 아시는 분이니 유대인보다 모세 오경을 더 잘 이해할 것이,고 이런 바울 사도의 글과 예수님의 말씀을 공히 다 가지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유대인의 이해보다 더 모세 오경을 깊이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모세 오경의 전통은 무려 3500년이 되니 이 긴 세월을 쉬지 않고 모세 오경을 연구했으니 이들의 연구가 2000년이 된 기독교나 혹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독교 역사가 이제 400-150년이니 우리는 이들 연구를 잘 배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먼저 동영상을 아래 영어 텍스트로 보시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번역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청하신 유튜브 동영상(5 Biggest Differences Between the Jewish Torah 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은 유대교의 토라(Torah)와 기독교의 구약성경(Old Testament) 사이의 주요 차이점 5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상 내용 요약 (한글)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모세오경)와 기독교 성경의 구약성경은 공통적으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어 많은 부분이 겹쳐 보이지만, 성경의 범위, 배열 순서, 번역 및 해석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상은 이 두 경전 사이의 가장 큰 5가지 차이점을 통해 두 종교가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유대교 토라와 기독교 구약성경의 5가지 주요 차이점
전체 범위와 구성 (Scope and Composition)
유대교 (타나크, Tanakh): 유대교 전체 성경은 토라(모세오경),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통틀어 타나크라고 부르며, 총 24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구약성경):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유대교 타나크와 담고 있는 역사적 내용이나 본문은 거의 같지만, 책을 나누는 방식과 분류에 따라 개신교 기준 총 39권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2. 책의 배열 순서 (Order of the Books)
유대교: 마지막 책이 역대기(Chronicles)로 끝나는 등 역사적·신학적 흐름에 따른 고유한 전통적 배열 순서를 가집니다.
기독교: 헬라어 구약 번역본인 칠십인역(Septuagint)의 영향을 받아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순으로 주제별 분류에 맞게 재배열되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Malachi)로 끝나며, 이는 곧바로 신약성경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적 연결성을 강조합니다.
3. 원어 텍스트와 번역 (Original Text and Translations)
유대교: 전통적으로 히브리어 원문 본문(마소라 본문, Masoretic Text)을 가장 권위 있는 기준으로 삼고 엄격하게 보존해 왔습니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초대 교회 시절부터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Septuagint)*을 많이 사용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각국 언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사용해 왔습니다.
4. 신학적 해석과 관점 (Theological Interpretation)
유대교: 율법(미츠봇, Mitzvot)의 실천과 하나님과 맺은 계약(Covenant)의 준수를 삶의 중심에 둡니다. 토라는 유대인 공동체가 대대로 지켜야 할 법과 지침으로 기능합니다.
기독교: 구약성경 전체를 다가올 메시아(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과 그림자로 해석합니다. 즉, 구약이 신약(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을 통해 완전히 성취된다는 관점을 가집니다.
5. 권위와 추가 경전과의 관계 (Authority and Additional Texts)
유대교: 기록된 토라 외에도 구전 율법인 탈무드(Talmud)와 미슈나(Mishnah)를 토라와 동등한 권위를 가진 중요한 전통적 해석서로 인정하고 함께 연구합니다.
기독교: 구약성경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완성된 것으로 보며, 구약 이후에는 기독교 고유의 신약성경(New Testament)을 동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합니다.
1. 동영상 영어 전체 텍스트 (Full English Transcript with Timestamps)
1부: 서론 및 도입부 (Introduction)
the Torah and the Old Testament are not the same i know that might sound shocking especially if you spent your whole life thinking they were just two names for the same holy book but today I need to tell you something most people never hear in church or synagogue there are massive fundamental worldshifting differences between the Jewish Torah 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we're not talking about minor edits or little footnotes we're talking about additions removals reordering of books and completely different theological interpretations that have shaped the very core of two global faiths do you really know what separates these two sacred writings or have you like so many others been walking in the dark holding a Bible without ever knowing what's missing or what's been added
let me take you on a journey that most believers never dare to take a deep dive into the five biggest most important differences between the Torah and the Old Testament you'll discover how just one verse when translated differently can shift an entire doctrine how one book included or excluded can define whether your faith leans on the law or on grace
these aren't academic debates these are the roots of everything you believe by the end of this video you'll not only understand the difference you'll feel the impact in your own spiritual walk whether you were raised in the church or in the synagogue or you're simply hungry for divine truth I promise the fifth difference we uncover will shake your foundation
because here's the reality the Torah is not simply the Jewish version of the Bible it's a sacred ancient text painstakingly preserved in Hebrew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without alteration
meanwhile the Christian Old Testament comes in different versions depending on the denomination catholic Protestant Orthodox each one holding a slightly different collection of books some include the Apocrypha others don't some reorder the books entirely and the way each group interprets these writings it changes how they see God how they define sin and how they understand salvation itself
this isn't about religion this is about truth about uncovering the original intent behind God's word and realizing how that intent has been reshaped across centuries so let me ask you what version of scripture are you following and has anyone ever explained what was changed along the way if not you're about to learn something that could change your understanding of faith forever
this is not a message of division but a revelation of depth it's a call to know your spiritual roots and recognize how sacred texts can guide or misguide your path depending on how they're handled if you're ready to stop living on borrowed beliefs and start walking in divine clarity then you're exactly where you need to be
each of these five differences we'll explore today will open your eyes and open your heart to truth that's been hidden in plain sight before we move on I want to ask for your help if this topic already speaks to you if it made you pause and think for even a second hit the like button subscribe to this channel and share this video with someone who needs to hear this message also tell me in the comments what country you're watching from i love seeing how this message is reaching people all around the world
are you ready to uncover the roots of your faith and see the word of God with new eyes let's begin right at the very beginning with what the Torah truly is and how it sets the foundation for everything that comes next
2부: 기초와 배경 (Foundations of Torah and Old Testament)
to truly understand the differences between the Jewish Torah 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we must go back to the roots not just the beginning of the texts but the very soil from which these two spiritual paths emerged
in Jewish tradition the Torah meaning instruction or law refers specifically to the first five books of the Bible Genesis Exodus Leviticus Numbers and Deuteronomy these are believed to have been given directly by God to Moses on Mount Si
the Torah is not merely a historical record it's the divine blueprint for life covering everything from creation to covenant from purity to justice it's written in the sacred Hebrew language copied with surgical precision by scribes for thousands of years each letter is sacred each scroll is holy in Jewish life the Torah is not just read it's lived
on the other h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while including those same five books of Moses expands beyond them depending on the denomination it includes a variety of other books historical poetic prophetic that form a broader narrative pointing toward the arrival of the Messiah
for Protestants it usually contains 39 books for Catholics 46 for the Orthodox even more and here's the key the way these books are arranged translated and interpreted shapes the way Christianity views God's plan for humanity
where the Torah ends with the Israelites on the brink of entering the promised l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often ends with prophetic words anticipating the coming of a savior it's not just an extension it's a reorientation of the narrative
the language also matters deeply while the Torah is kept in its original Hebrew respected studied and read aloud in synagogues worldwide the Christian Old Testament has passed through a long journey of translation from Hebrew to Greek in the Septuagent to Latin in the Vulgate and into countless languages across time
and with every translation comes a layer of interpretation words carry weight and sometimes they carry a new meaning altogether that's why two people can read the same verse and walk away with two completely different spiritual revelations
think of Proverbs 4:7 wisdom is the principle thing therefore get wisdom that wisdom begins by understanding the foundation of the scriptures you trust
what's astonishing is how similar these texts appear on the surface yet how dramatically they diverge beneath you might read about Abraham Moses or David in both texts but the message the timeline the theological intent can differ drastically
this isn't just about different interpretations it's about how God's voice is heard across two traditions in the Torah emphasis is placed on law obedience and covenant in the Christian Old Testament especially through the prophetic books emphasis often shifts to grace fulfillment and divine redemption
both speak truth both hold power but they speak to the soul in different ways shaped by different purposes and perhaps the most important thing to remember is this these differences aren't just theological they're deeply personal they shape how people pray how they raise their families how they see suffering and how they understand their role in God's plan
that's why this exploration matters so much when you understand where your faith comes from and how the sacred texts were formed you begin to walk in spiritual clarity not just tradition
3부: 첫 번째 차이점 - 책의 순서와 배열 (Difference 1: Order and Arrangement)
so now that the foundation is laid and we've seen how these texts differ in structure language and purpose let's look deeper into the first clear distinction how the order and arrangement of the books themselves reveal two very different paths of divine understanding
let's begin with what might seem like a technicality but in truth it reveals a spiritual paradigm shift the way these sacred texts are organized structure is never neutral in scripture the order of the word is as inspired as the word itself
in the Jewish faith the Torah stands alone it is the central most sacred portion of the Hebrew Bible known as the Tanak an acronym for Torah law Niveim prophets and Ketuim writings but the Torah those five books of Moses takes absolute precedence everything else flows from it every prayer every commandment every celebration it's not just a beginning it is the heartbeat
the Torah ends in Deuteronomy with Moses overlooking the promised land passing the torch to Joshua there is no prophetic forecast of a coming Messiah in that final scene instead there's a deep and reverent focus on obedience covenant and the faithfulness of God this completion of instruction is viewed not as a cliffhanger but as a fulfilled divine foundation
now contrast that with the Christian Old Testament where structure takes a different path though it includes the same five books of Moses they are positioned within a broader restructured cannon
for example in most Christian Bibles the final book of the Old Testament is Malachi a prophet who declares "See I will send the prophet Elijah before that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comes." Malachi 4:5
that one verse sets the stage for Jesus arrival in the New Testament it creates anticipation suspense a spiritual yearning that the gospels immediately pick up this is not a coincidence this reordering of books is intentional it's designed to create a literary and theological bridge between old and new law and grace
while the Jewish Tanakh ends with 2 Chronicles which closes with a decree allowing Jews to return from exile and rebuild the Christian version ends with a call for repentance and preparation for the coming of the Lord
this shift in structure reshapes the narrative and spiritual experience entirely one sees God's covenant as a completed system of law ongoing and everlasting embedded in everyday life the other presents the law as a forerunner something pointing to a greater fulfillment in the person of Jesus
think about the difference this makes in the life of a believer in Judaism a young boy studies Torah to prepare for his bar mitzvah his right of passage into responsibility under God's law in Christianity many children are taught Bible stories as shadows of what is to come types and symbols meant to be fulfilled in Christ
the result two entirely different ways of understanding scriptures function one is instruction for life the other a prophecy of salvation when you rearrange the books you rearrange the story and when you rearrange the story you reshape the theology
that's why this difference is more than editorial it's spiritual the Jewish order emphasizes identity through law memory and historical covenant the Christian order reinterprets that same history through the lens of messianic expectation and redemptive climax
it's like telling the same family story but changing where you start where you end and what moments you emphasize one narrative centers on God dwelling with his people through obedience while the other centers on God becoming flesh to redeem them from that same law both paths lead to the divine but they journey through very different terrain
and here's where you come in when you open your Bible or scroll through a Bible app have you ever considered who chose the order of the books you're reading or why because once you do you start to realize something profound
the structure of scripture doesn't just inform what you believe it informs how you believe it shapes your expectations of God your interpretation of life and your sense of purpose in the grand story of salvation
4부: 두 번째 차이점 - 언어와 텍스트 전통 (Difference 2: Language and Textual Tradition)
this is just the beginning now that we've unpacked how the arrangement of books sets the stage for everything that follows let's look even deeper into the very language that carries the word of God across generations and how in translation divine meaning can either be preserved or profoundly altered
let's pause for a moment and reflect on something deeply sacred language is not just communication it's creation in the beginning God spoke the world into existence genesis 1:3 every word he uttered carried life form and divine power so when we speak about the language of scripture we are speaking about the vessel that carries the voice of God himself
the Jewish Torah has been preserved in Hebrew meticulously copied by scribes letter by letter for over 3,000 years it's a language of covenant of identity of divine intimacy
in Hebrew every letter holds symbolic weight every root word weaves through generations of meaning it's not just linguistic it's sacred DNA this original tongue was never taken lightly in Jewish tradition it's chanted sung recited aloud in synagogues with deep reverence
when a Jewish child learns to read the Torah they're not just reading they're entering a holy conversation that began at Sinai
but when Christianity expanded beyond the Hebrew world into Greekeaking communities and eventually to the entire Roman Empire there came the necessity to translate and that's where everything began to shift
the earliest major translation known as the Septuagent rendered the Hebrew scriptures into Greek it made the Bible accessible but also opened the door to subtle reinterpretations
one of the most powerful examples is found in Isaiah 7:14 the Hebrew text uses the word Alma meaning young woman but the Septuagent translates it as Pathnos meaning virgin this one change becomes the theological foundation for the virgin birth of Jesus in Matthew 1:23
now ask yourself how different is the message when we say young woman versus virgin that single choice of word reshaped an entire doctrine and shows how the language of translation can become a bridge or a barrier
another powerful example lies in Psalm 22:16 the Hebrew text says "Like a lion they are at my hands and feet." But in many Christian translations the phrase becomes "They pierced my hands and my feet," seen as a prophetic reference to crucifixion this again shows how a shift in language becomes a shift in prophecy
and this isn't about one group being right or wrong it's about how words carry weight and how spiritual meanings can evolve based on interpretation
imagine reading a love letter written by someone who speaks a different language every translation may be close but not exact one version might make you weep another might make you miss the meaning altogether that's the delicate holy responsibility of handling God's word through translation
for the believer this isn't just about linguistic curiosity it's about how we hear the voice of God do we read his promises as he spoke them or as others have interpreted them for us are we building our faith on the original command or on a translated reflection of it
it's crucial to remember that the deeper one goes into the Hebrew meanings the more richness layers and revelation are uncovered
the Hebrew word shalom for instance is usually translated as peace but in its root it means completeness wholeness restoration so when Jesus says in John 14:27 "Peace I leave with you," the Jewish ear hears far more than tranquility they hear healing restoration divine balance
that's what's at stake when we move from original word to interpreted word and so we arrive at a powerful reflection how can we fully grasp the heart of God if we don't understand how his words have been shaped over time
this isn't a call to learn Hebrew or Greek though that can be beautiful it's a call to seek discernment to recognize that the Bible you hold is not only holy but also historic translated and curated understanding this gives you spiritual clarity humility and a hunger for depth
5부: 세 번째 차이점 - 추가된 책들과 외경 (Difference 3: Inclusion, Exclusion, and Apocrypha)
and now that we've seen how language can transform theology let's explore the books themselves which ones were added which were removed and what that means for how different faiths define truth and authority
here's a truth many believers discover far too late not every Bible contains the same books yes you heard that right depending on which tradition you follow Catholic Protestant Orthodox or Jewish your Bible may be missing entire books or may include writings that others see as non-cononical
these texts are often referred to as the apocrypha or duterro canonical books and their presence or absence represent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theological and historical differences between the Jewish scriptures 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for example books like Tobit Judith Wisdom of Solomon Sirak and one and two Mcabes are included in the Catholic Old Testament but are not found in the Jewish Tanak or most Protestant Bibles
why the answer is layered in history translation and most of all authority these books were part of the Septuagent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Hebrew scriptures widely used in the time of Jesus and the early church
many of the earliest Christians especially Greekeaking Jews would have been familiar with these texts however centuries later as the Jewish cannon was formalized these writings were not included they weren't seen as part of the original Hebrew tradition
in response to this during the Reformation Martin Luther and other Protestant leaders also chose to remove these books questioning their divine inspiration and doctrinal value but the Catholic Church affirmed their sacredness at the Council of Trent in the 16th century
so today depending on which Bible you open you may or may not find references to guardian angels intercession for the dead and wisdom teachings outside the traditional Torah framework and that matters deeply
you see these books don't just add stories they add world views in second Mcabes for example we see the practice of praying for the dead a foundational concept in Catholic theology tied to purgatory
in Tobit we see named angels like Raphael whose presence expands the angelic hierarchy and spiritual imagination of believers in Wisdom of Solomon we find philosophical reflections on justice immortality and the soul that shape Christian views on heaven and moral virtue
but for the Jewish tradition these writings though sometimes respected as literature do not carry divine authority they are not read in the synagogue they are not part of the Torah cycle and they are not seen as divinely revealed law
this difference creates a dividing line of spiritual practice a Catholic might turn to Sarak for advice on family life and discipline while a Protestant may never have heard of the book a Jewish reader will study Talmudic commentary on Leviticus while others reflect on apocryphal reflections about angels and wisdom
the presence or absence of these books subtly forms the way believers see God's expectations heaven justice and how to live a holy life it's like looking at a stained glass window where certain colors are present in one version and absent in another the picture shifts the light changes and what you see of God's character is influenced accordingly
and this raises the deeper question what do you consider sacred what voices have shaped your faith are you trusting a complete picture of divine revelation or just the fragments you've inherited
this is not about fear or division it's about discernment and spiritual curiosity understanding why these books were included or excluded leads us to examine our faith more intentionally what have we been taught what have we questioned and what has been left out
6부: 네 번째 차이점 - 신학적 해석의 차이 (Difference 4: Theological Interpretation and Perspective)
now with this awareness of textual inclusion and exclusion let's explore how the same exact passages of scripture shared between Jews and Christians can produce completely different theological interpretations shaping not just doctrine but daily life and the destiny of the soul
let's face a spiritual reality that's as humbling as it is profound two people can read the same scripture pray over the same verse and walk away with completely different revelations that's not a sign of confusion it's a reflection of context tradition and theology
nowhere is this more evident than in how the Jewish and Christian faiths interpret key passages in the Torah
for Judaism the Torah is primarily a record of covenant law identity and divine order every commandment from the shama in Deuteronomy 6:4 to the dietary laws in Leviticus 11 is a guide to living in alignment with the holiness of God
the focus is not on prediction but on obedience it's not about what's coming it's about how to live now the commandments aren't optional they are lifelines to sacred living binding the Jewish people in a relationship of action and devotion
but in Christianity especially through the lens of the New Testament those same passages are often viewed prophetically as shadows of Christ christians see Jesus as the fulfillment of the law Matthew 5:17
so passages like Genesis 22 where Abraham nearly sacrifices Isaac are seen as foreshadowings of God offering his son the Passover lamb in Exodus becomes symbolic of Jesus the lamb of God john 1:29
Isaiah 53 which speaks of a suffering servant is widely interpreted in Christian theology as a detailed prophecy of the crucifixion yet in Judaism these same texts are understood in a completely different light isaiah's servant is interpreted as Israel itself a nation bearing the burden of exile and injustice genesis 22 is about obedience and faith not a blueprint for atonement
same words different worlds this theological divergence is not just academic it has shaped the spiritual experience of billions
in Jewish thought the Messiah is still awaited a future political and spiritual leader who will restore Israel bring justice and establish God's kingdom on earth in Christianity the Messiah has already come in the person of Jesus and will return again to complete the work
this difference in messianic expectation transforms how each community sees time history and even suffering one sees exile and persecution as tests of covenant faithfulness the other as the consequence of rejecting the Savior and in between these views lies a sacred tension one that calls for understanding not condemnation
let's bring it home how does this affect your life well if you read a passage like Psalm 22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as a Jew you may read it as David crying out in despair modeling raw honest prayer but a Christian reads those words as the voice of Jesus on the cross matthew 27:46 fulfilling prophecy
the emotional takeaway is different the theology is different and that difference shapes how you pray how you suffer and how you hope that's why it's essential not only to read scripture but to understand how your tradition frames it
are you being taught to see yourself as part of a people keeping covenant through law or as a soul redeemed by a Messiah who fulfilled the law on your behalf
and now we arrive at a crossroad if interpretation can so deeply affect belief if the same verse can lead to different visions of God then how do we walk in clarity
the answer is this with humility with hunger and with a desire to seek the heart of God beyond mere doctrine true spiritual maturity comes from seeing scripture not just through inherited lenses but through eyes of discernment
7부: 다섯 번째 차이점 및 결론 (Difference 5: Halakha vs Grace, and Conclusion)
and that journey leads us to one more crucial difference the one that touches every aspect of daily faith how each tradition views the law itself is it the unchanging path to holiness or was it fulfilled and surpassed by grace
let's dive now into the fifth and final difference the living tension between haka and grace
here we arrive at a difference that's not just theological it's deeply personal daily and defining the way we respond to God's commandments shapes our behavior our mindset and our understanding of righteousness
in Judaism the Torah is not only a holy book it's a divine contract a living set of instructions that guides every area of life this is what's known as halaka from the root word halak meaning to walk it's not just law it's the way one walks with God
observant Jews don't see the Torah as something burdensome or outdated it is a sacred privilege to keep the commandments from how to prepare food to how to treat your neighbor to how to honor the Sabbath each mitzvah commandment is a spiritual doorway the Torah is not fulfilled it is live as it says in Deuteronomy 30:14 "The word is very near you it is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so you may obey it."
now contrast that with the Christian perspective particularly as shaped by the New Testament the Apostle Paul once a Pharisee deeply trained in halaka writes in Romans 6:14 "You are not under the law but under grace."
for Christians the coming of Jesus is seen as the fulfillment of the law not its cancellation but its purpose is now complete in him the law was a tutor as Paul says in Galatians 3:24 leading us to Christ so that now salvation comes not through obedience to the law but through faith in Jesus
this shift is radical it moves the believer's focus from external regulation to internal transformation from striving to earn righteousness to receiving it as a gift and that shift creates two very different spiritual atmospheres
one where you measure your faith by how well you walk the path of the commandments and another where you measure it by how fully you rest in God's unmmerited favor
but let's be honest both paths require discipline both require surrender the Jewish believer must rise each day committed to the law mindful of rituals and timing honoring the sacred rhythm of Jewish life
the Christian though not bound by the 613 commandments is called to live by the spirit producing fruits of love patience and purity not to earn salvation but to reflect it and here lies the nuance grace is not license grace is empowerment
in Titus 2:1-12 Paul writes that grace teaches us to say no to ungodliness so while the paths are different the goal is the same to walk in holiness before a holy God
what does this mean for your everyday life well if you're Jewish obeying the Torah is your sacred service it's how you show love for God and preserve a covenant that stretches back to Sinai lighting candles on Shabbat wearing zitz fasting on yum kipur these are acts of devotion not legalism
if you're Christian grace means you trust that Jesus has done the work and now you live as a redeemed vessel led by the Holy Spirit empowered to do good works not to be saved but because you are saved
in both cases action matters but the motivation differs one is rooted in obligation to the covenant the other in response to redemption already received and so we see how this final difference touches the very heartbeat of faith
how does a soul stay right with God is it through daily obedience or through trust in a sacrifice already made can both be true in different contexts or are they mutually exclusive paths these are not simple questions but they are sacred ones
and now that we've walked through the five biggest differences between the Jewish Torah and the Christian Old Testament we've come to a new place not division but deeper understanding so before we part let's reflect together what does all of this mean for you and how will it change the way you read believe and walk with God from this day forward
now that you've seen these five powerful differences tell me how has this changed your view of the Bible were you aware of these distinctions between the Torah and the Old Testament or did this open your eyes to something new something deeper about your own faith
drop your thoughts in the comments i truly want to know which of these differences surprised you the most and how does it affect the way you see your spiritual journey let's build this community around understanding truth and reverence for the word of God
and if this video helped you see scripture in a new light don't keep it to yourself like this video subscribe to the channel and share it with someone who's hungry for truth and don't forget to turn on the notification bell so you don't miss the next revelation we'll be diving into
speaking of next revelations don't go anywhere the next video you'll see on screen will take you even deeper into the hidden truths of the Bible that most people overlook
전체 텍스트 한글 번역 (Full Korean Translation with Timestamps)
1부: 서론 및 도입부 (Introduction)
토라와 구약성경은 같지 않습니다. 만약 평생토록 두 이름이 똑같은 거룩한 책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며 살아오셨다면 그 말이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교회나 회당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유대교의 토라와 기독교의 구약성경 사이에는 엄청나고 근본적이며 세계관을 뒤흔드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수정이나 작은 각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의 추가, 삭제, 순서 재배정, 그리고 두 세계적인 신앙의 핵심을 형성해 온 완전히 다른 신학적 해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거룩한 경전을 갈라놓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무엇이 빠졌고 무엇이 더해졌는지도 모른 채 성경을 쥐고 어둠 속을 걸어오셨습니까?
대부분의 신자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여정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토라와 구약성경 사이의 가장 크고 중요한 5가지 차이점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단 하나의 구절이 다르게 번역될 때 어떻게 전체 교리가 바뀔 수 있는지, 어떤 책이 포함되거나 제외됨에 따라 여러분의 신앙이 율법에 기지 혹은 은혜에 기지 판가름 나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여러분이 믿는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이 영상이 끝날 무렵에는 차이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적 여정 속에서 그 영향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자랐든, 회당에서 자랐든, 아니면 단순히 신성한 진리를 갈망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밝힐 다섯 번째 차이점은 여러분의 기반을 흔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토라는 단순히 성경의 유대교 버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변형 없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히브리어로 뼈를 깎는 듯한 정성으로 보존된 거룩하고 고대적인 텍스트입니다.
한편,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교파(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에 따라 서로 다른 버전으로 존재하며, 각 교파는 조금씩 다른 책들의 모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외경을 포함하고 어떤 곳은 그렇지 않으며, 어떤 곳은 책의 순서를 완전히 재배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그룹이 이 글들을 해석하는 방식은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방식, 죄를 정의하는 방식, 구원 자체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꿉니다.
이것은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뒤에 숨겨진 원래의 의도를 밝히고 그 의도가 수세기에 걸쳐 어떻게 재형성되었는지 깨닫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어떤 버전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설명해 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신앙에 대한 이해를 영원히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열의 메시지가 아니라 깊이의 계시입니다. 그것은 영적 뿌리를 알고, 거룩한 텍스트가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길을 인도할 수도 있고 그릇된 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는 부름입니다. 만약 남에게 빌려온 믿음으로 사는 것을 멈추고 신성한 명료함 속에서 걸어갈 준비가 되었다면, 여러분은 정확히 있어야 할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탐구할 이 다섯 가지 차이점 각각은 눈앞에 가려져 있던 진리를 향해 여러분의 눈과 마음을 열어줄 것입니다. 넘어가기 전에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주제가 이미 여러분의 마음에 와닿았다면, 단 1초라도 멈춰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이 채널을 구독하며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할 누군가에게 이 영상을 공유해 주세요. 또한 댓글로 어떤 나라에서 시청하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이 메시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닿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신앙의 뿌리를 파헤치고 새로운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준비가 되셨습니까? 토라가 진정 무엇이며 그 다음 오는 모든 것의 기초를 어떻게 놓는지, 바로 그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부: 기초와 배경 (Foundations of Torah and Old Testament)
유대교 토라와 기독교 구약성경의 차이점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텍스트의 시작뿐만 아니라 이 두 영적 경로가 태어난 바로 그 토양, 즉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가르침' 또는 '율법'을 뜻하는 토라는 구체적으로 성경의 처음 다섯 권,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킵니다. 이것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주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토라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창조에서 계약까지, 정결에서 정의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삶의 신성한 청사진입니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서기관들에 의해 수술용 메스 같은 정밀함으로 필사된 거룩한 히브리어로 쓰여 있습니다. 모든 글자가 거룩하고 모든 두루마리가 신성합니다. 유대인의 삶에서 토라는 단순히 읽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모세오경이라는 동일한 다섯 권을 포함하면서도, 교파에 따라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등 메시아의 도래를 가리키는 더 넓은 서사 형태의 다양한 책들로 확장됩니다.
개신교는 보통 39권을 포함하고, 가톨릭은 46권을, 정교회는 그보다 더 많이 포함합니다. 그리고 핵심은 이 책들이 배열되고 번역되며 해석되는 방식이 기독교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토라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에서 끝나는 반면, 기독교 구약성경은 종종 구원자의 오심을 기대하는 예언적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서사의 재방향 설정입니다.
언어도 매우 중요합니다. 토라는 원래의 히브리어로 보존되며 전 세계 회당에서 존중받고 연구되며 크게 소리 내어 읽히는 반면, 기독교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에서 칠십인역의 그리스어로, 벌게이트의 라틴어로,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언어로 이어지는 기나긴 번역의 여정을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번역에는 한 겹의 해석이 따릅니다. 단어는 무게를 지니며,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똑같은 구절을 읽고도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영적 계시를 얻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잠언 4장 7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그 지혜는 여러분이 신뢰하는 성경의 기초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놀라운 것은 겉보기에는 이 텍스트들이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얼마나 극적으로 갈라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두 텍스트 모두에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 대해 읽을 수 있지만 메시지, 타임라인, 신학적 의도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두 전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리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토라에서는 율법, 순종, 계약에 강조점이 놓이는 반면, 기독교 구약성경에서는 특히 예언서를 통해 은혜, 성취, 신성한 구속으로 강조점이 자주 이동합니다.
둘 다 진리를 말하고 둘 다 능력을 지니지만, 서로 다른 목적에 의해 형성된 다른 방식으로 영혼에게 말을 건냅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 차이들이 단순한 신학적 문제가 아니라 매우 개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방식, 가족을 기르는 방식,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탐구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이 어디에서 왔으며 거룩한 텍스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할 때, 여러분은 단순히 전통이 아닌 영적 명료함 속에서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3부: 첫 번째 차이점 - 책의 순서와 배열 (Difference 1: Order and Arrangement)
기초가 다져졌고 이 텍스트들이 구조, 언어, 목적에 있어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았으니, 이제 첫 번째 명확한 구분인 책들의 순서와 배열이 신성한 이해의 두 가지 다른 길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사소한 기술적인 문제처럼 보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 봅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영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드러냅니다. 이 거룩한 경전들이 조직된 방식, 즉 성경에서 구조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말씀의 순서는 말씀 그 자체만큼이나 영감받은 것입니다.
유대교 신앙에서 토라는 홀로 우뚝 서 있습니다. 그것은 토라(율법),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머리글자를 딴 '타나크'로 알려진 히브리 성경의 중심이자 가장 거룩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토라, 즉 모세의 그 다섯 권은 절대적인 우선권을 가집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로부터 흘러나옵니다. 모든 기도, 모든 계명, 모든 축제는 단순히 시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박동과 같습니다.
토라는 신명기에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내려다보고 여호수아에게 바톤을 넘겨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는 다가올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예고가 없습니다. 대신 순종, 계약,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깊고 경건한 집중이 있습니다. 이 지침의 완료는 끊어진 듯한 결말이 아니라 성취된 신성한 기초로 여겨집니다.
이를 기독교 구약성경과 대조해 보십시오. 기독교 구약성경에서는 구조가 다른 길을 택합니다. 모세오경이라는 동일한 다섯 권을 포함하지만, 더 넓고 재구성된 정경 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기독교 성경에서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입니다. 그는 이렇게 선언하는 예언자입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5)
바로 그 구절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위한 무대를 마련합니다. 그것은 복음서가 즉시 이어받는 기대감, 서스펜스, 그리고 영적 갈망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책들의 재배열은 의도된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 율법과 은혜 사이에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다리를 놓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유대교 타나크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도시를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서로 끝나는 역대하로 끝나는 반면, 기독교 버전은 회개와 주의 오심에 대한 준비의 촉구로 끝납니다.
이 구조의 변화는 서사와 영적 경험을 완전히 재형성합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계약을 일상생활에 내재된 지속적이고 영원한 율법의 완성된 체제로 보는 반면, 다른 한쪽은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더 큰 성취를 가리키는 선구자로 제시합니다.
신자의 삶에 이것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교에서는 어린 소년이 하나님의 율법 아래 책임을 지는 통과 의례인 바르 미츠바를 준비하기 위해 토라를 공부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성경 이야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도록 의도된 그림자, 모형, 상징으로 배웁니다.
그 결과 성경의 기능을 이해하는 완전히 두 가지 다른 길이 생깁니다. 하나는 삶을 위한 지침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의 예언입니다. 책을 재배열하면 이야기를 재배열하는 것이 되고, 이야기를 재배열하면 신학을 재배형성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차이는 단순한 편집상의 차이를 넘어 영적인 것입니다. 유대교의 질서는 율법, 기억, 역사적 계약을 통한 정체성을 강조하고, 기독교의 질서는 동일한 역사를 메시아적 기대와 구속적 절정의 렌즈를 통해 재해석합니다.
이것은 똑같은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맺으며 어떤 순간을 강조할지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한쪽 서사는 순종을 통해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에 중심을 두고, 다른 한쪽은 바로 그 율법으로부터 그들을 구속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에 중심을 둡니다. 두 길 모두 신성한 곳으로 이어지지만, 매우 다른 지형을 통과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분의 역할이 나옵니다. 성경을 펼치거나 성경 앱을 넘겨볼 때, 여러분이 읽고 있는 책들의 순서를 누가 정했는지, 왜 그렇게 정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일단 그렇게 해보면 심오한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구조는 여러분이 무엇을 믿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어떻게 믿는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여러분의 기대, 삶에 대한 해석, 그리고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의 목적의식을 형성합니다.
4부: 두 번째 차이점 - 언어와 텍스트 전통 (Difference 2: Language and Textual Tradition)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책의 배열이 앞으로 올 모든 것의 무대를 어떻게 마련하는지 살펴보았으니, 이제 세대를 거쳐 하나님의 말씀을 실어 나르는 바로 그 언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번역 과정에서 신성한 의미가 어떻게 보존될 수도 있고 심오하게 변형될 수도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잠시 멈추어 매우 신성한 무언가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창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세상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1:3). 그분이 내뱉으신 모든 말씀은 생명, 형태, 그리고 신성한 능력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 그 자체를 나르는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 토라는 3,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기관들에 의해 한 자 한 자 꼼꼼히 필사되며 히브리어로 보존되었습니다. 그것은 계약의 언어이자 정체성의 언어이며 신성한 친밀함의 언어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모든 글자는 상징적 무게를 지니며, 모든 어근은 여러 세대의 의미를 엮어냅니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거룩한 DNA입니다. 이 원래의 언어는 유대교 전통에서 결코 가볍게 여겨진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회당에서 깊은 경외심과 함께 찬양되고, 노래되고, 크게 낭독되었습니다.
유대인 아이가 토라 읽는 법을 배울 때, 그들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시작된 거룩한 대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히브리어 세계를 넘어 헬라어 사용 지역으로, 그리고 마침내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면서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칠십인역'으로 알려진 최초의 주요 번역본은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겼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접하기 쉽게 만들었지만, 미묘한 재해석의 문을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가장 강력한 예 중 하나는 이사야 7장 14절에서 발견됩니다. 히브리어 텍스트는 '젊은 여성'을 뜻하는 '알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칠십인역은 이를 '동정녀'를 뜻하는 '파르테노스'로 번역합니다. 이 단 하나의 변화가 마태복음 1:23에 나오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신학적 기초가 됩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젊은 여성'이라고 말할 때와 '동정녀'라고 말할 때 메시지가 얼마나 달라집니까? 그 단 하나의 단어 선택이 전체 교리를 재형성했으며, 번역의 언어가 다리가 될 수도 있고 장벽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강력한 예는 시편 22장 16절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텍스트는 "사자같이 내 손과 발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번역에서 이 구절은 십자가형에 대한 예언적 참고로 여겨져 "그들이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가 됩니다. 이것 역시 언어의 변화가 예언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쪽이 맞고 틀리기의 문제가 아니라, 단어가 얼마나 무게를 지니며 영적 의미가 해석에 따라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쓴 연애편지를 읽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번역은 가깝겠지만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버전은 울게 만들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버전은 의미를 완전히 놓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번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섬세하고 거룩한 책임입니다.
신자에게 이것은 단순한 언어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읽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해석해 준 대로 읽고 있습니까? 우리는 원래의 명령 위에 우리의 신앙을 쌓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의 번역된 반사광 위에 쌓고 있습니까?
히브리어의 의미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풍부함, 층위, 그리고 계시가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샬롬'은 보통 '평화'로 번역되지만, 그 뿌리에서는 '완전함', '온전함', '회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노라"고 말씀하실 때, 유대인의 귀에는 단순한 평온함 그 이상이 들립니다. 그들은 치유, 회복, 신성한 균형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래의 단어에서 해석된 단어로 넘어갈 때 걸려 있는 판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력한 묵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분의 말씀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히브리어 나 헬라어를 배우라는 부름이 아닙니다(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분별력을 구하라는 부름이며, 여러분이 쥐고 있는 성경이 거룩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번역되었으며, 엄선된 것임을 인식하라는 부름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여러분에게는 영적 명료함, 겸손, 그리고 깊이에 대한 갈증이 생깁니다.
5부: 세 번째 차이점 - 추가된 책들과 외경 (Difference 3: Inclusion, Exclusion, and Apocrypha)
이제 언어가 어떻게 신학을 변형시킬 수 있는지 보았으니, 책 그 자체로 눈을 돌려 어떤 책이 추가되었고 어떤 책이 제거되었으며, 그것이 서로 다른 신앙들이 진리와 권위를 정의하는 방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많은 신자들이 너무 늦게 깨닫는 진실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똑같은 책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네, 맞습니다.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유대교 중 어떤 전통을 따르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성경에서 전체 책들이 빠져있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이 비정경으로 보는 글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텍스트들은 종종 외경 또는 제2경전 책들로 불리며, 그것들의 존재 유무는 유대교 경전과 기독교 구약성경 사이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역사적 차이 중 하나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토비트, 유디트,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마카베오 상·하 같은 책들은 가톨릭 구약성경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유대교 타나크나 대부분의 개신교 성경에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대답은 역사, 번역,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위'에 얽혀 있습니다. 이 책들은 예수님과 초대 교회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의 일부였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중 상당수, 특히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은 이러한 텍스트들에 친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 세기 후 유대교 정경이 공식화되면서 이 글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원래의 히브리 전통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와 다른 개신교 지도자들도 이 책들의 신적 영감과 교리적 가치에 의문을 품고 제거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 그것들의 신성함을 확증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이 어떤 성경을 펼치느냐에 따라, 전통적인 토라의 틀을 벗어난 수호천사, 죽은 자를 위한 중보, 지혜의 가르침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책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더합니다. 예를 들어 마카베오하에서는 가톨릭 신학에서 연옥과 연결된 핵심 개념인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관행을 봅니다.
토비트에서는 라파엘 같은 이름 붙여진 천사들을 보며, 이들의 존재는 신자들의 천사 위계와 영적 상상력을 확장시킵니다. 솔로몬의 지혜서에서는 천국과 도덕적 미덕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를 형성하는 정의, 불멸, 영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대교 전통에서 이 글들은 때로는 문학으로서 존중받기는 하지만 신성한 권위를 지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회당에서 읽히지 않으며, 토라 주기의 일부도 아니고, 신성하게 계시된 율법으로 여겨지지지도 않습니다.
이 차이는 영적 실천의 분수령을 만듭니다. 가톨릭 신자는 가정생활과 훈육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집회서를 찾을 수 있지만, 개신교인은 그 책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 독자는 레위기에 대한 탈무드 주해를 연구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천사와 지혜에 대한 외경적 성찰을 묵상합니다.
이러한 책들의 존재 유무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기대, 천국, 정의,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사는 방식을 미묘하게 형성합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판에서는 특정 색상이 존재하고 다른 판에서는 빠져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이 바뀌고 빛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여러분이 보는 하나님의 성품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 깊은 질문을 제기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신성하게 여기십니까? 어떤 목소리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형성해 왔습니까? 여러분은 신성한 계시의 온전한 그림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물려받은 파편들만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두려움이나 분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분별력과 영적 호기심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들이 왜 포함되었고 왜 제외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더 의도적으로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우리는 무엇에 의문을 품었는가? 그리고 무엇이 남겨졌는가?
6부: 네 번째 차이점 - 신학적 해석의 차이 (Difference 4: Theological Interpretation and Perspective)
텍스트의 포함과 제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이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정확히 똑같은 성경 구절이 어떻게 완전히 다른 신학적 해석을 낳을 수 있는지 탐구해 봅시다. 그것은 교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영혼의 운명까지도 형성합니다.
겸손하면서도 심오한 영적 현실을 마주해 봅시다. 두 사람이 똑같은 성경을 읽고, 똑같은 구절을 두고 기도하고도, 완전히 다른 계시를 얻고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혼란의 신호가 아니라 맥락, 전통, 신학의 반영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이 토라의 핵심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서 이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습니다.
유대교에게 토라는 기본적으로 계약의 율법, 정체성, 그리고 신성한 질서의 기록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의 '쉐마'에서 레위기 11장의 음식 규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한 지침입니다.
초점은 예측이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다가올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계명들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유대인들을 행동과 헌신의 관계 속으로 묶어주는 거룩한 삶의 생명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특히 신약성경의 렌즈를 통해 볼 때 그 동일한 구절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예언적으로 조명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율법의 성취로 봅니다 (마태복음 5:17).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거의 바칠 뻔했던 창세기 22장 같은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예고로 여겨집니다. 출애굽기의 유월절 어린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상징이 됩니다 (요한복음 1:29).
고난받는 종에 대해 말하는 이사야 53장은 기독교 신학에서 십자가형에 대한 상세한 예언으로 널리 해석됩니다. 하지만 유대교에서 이 동일한 텍스트들은 완전히 다른 빛 아래서 이해됩니다. 이사야의 종은 포로 생활과 불의의 짐을 짊어진 민족인 이스라엘 그 자체로 해석됩니다. 창세기 22장은 대속의 청사진이 아니라 순종과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같은 단어, 다른 세상. 이 신학적 발달의 괴리는 단순한 학문적 차원이 아니라 수십억 명의 영적 경험을 형성해 왔습니다.
유대교 사상에서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정의를 가져오며,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미래의 정치적·영적 지도자입니다. 기독교에서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이미 오셨으며, 그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메시아적 기대에 있어서의 이 차이는 각 공동체가 시간, 역사, 그리고 심지어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한쪽은 유배와 박해를 계약의 신실함에 대한 테스트로 보고, 다른 한쪽은 구원자를 거부한 결과로 봅니다. 그리고 이 관점들 사이에는 정죄가 아닌 이해를 요구하는 신성한 긴장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가져와 봅시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만약 시편 22장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같은 구절을 읽는다면, 유대인으로서 여러분은 그것을 다윗이 절망 속에서 부르짖으며 날것 그대로의 정직한 기도를 모델링하는 것으로 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단어들을 예언을 성취하시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음성으로 읽습니다 (마태복음 27:46).
감정적 수용이 다르고, 신학이 다르며, 그 차이가 여러분이 기도하는 방식, 고통을 견디는 방식, 소망을 품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전통이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율법을 통해 계약을 지키는 백성의 일원으로 보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대신하여 율법을 성취하신 메시아에 의해 구속받은 영혼으로 보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교차로에 도달했습니다. 만약 해석이 믿음에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만약 똑같은 구절이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으로 이끌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명료함 속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겸손함으로, 갈증으로, 그리고 단순한 교리를 넘어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자 하는 갈망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성숙은 물려받은 렌즈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분별력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에서 옵니다.
7부: 다섯 번째 차이점 및 결론 (Difference 5: Halakha vs Grace, and Conclusion)
그리고 그 여정은 일상 신앙의 모든 측면에 맞닿아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로 우리를 이끕니다. 각 전통은 율법 자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것은 거룩함으로 향하는 불변의 길입니까, 아니면 은혜에 의해 성취되고 뛰어넘겨진 것입니까?
이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차이점인 할라카와 은혜 사이의 살아있는 긴장 속으로 뛰어들어 봅시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신학적 차원을 넘어 매우 개인적이고, 일상적이며, 규정적인 차이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은 우리의 행동, 사고방식, 그리고 의에 대한 이해를 형성합니다.
유대교에서 토라는 거룩한 책일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을 안내하는 살아있는 지침 세트이자 신성한 계약입니다. 이것이 바로 '걷다'라는 뜻의 어근 단어 '할라카'에서 온 '할라카'로 알려진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방식입니다.
관례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토라를 부담스럽거나 구식인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음식 준비 방법에서부터 이웃을 대하는 방법,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계명을 지키는 것은 거룩한 특권입니다. 모든 '미츠바'(계명)는 영적인 문입니다. 토라는 성취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어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4절에 말씀하듯이 말입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이제 신약성경에 의해 형성된 기독교적 관점과 대조해 보십시오. 한때 할라카에 깊이 훈련된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14절에 이렇게 씁니다.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은 율법의 취소가 아니라 율법의 성취로 여겨집니다. 취소된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이 그분 안에서 완성된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24절에서 말하듯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구원은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옵니다.
이 변화는 급진적입니다. 그것은 신자의 초점을 외적 규례에서 내적 변화로, 의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에서 선물로 받는 것으로 이동시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한쪽은 계명의 길을 얼마나 잘 걷는가로 신앙을 측정하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 속에 얼마나 온전히 안식하는가로 신앙을 측정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두 길 모두 훈련을 요구하고, 두 길 모두 항복을 요구합니다. 유대인 신자는 날마다 율법에 헌신하고, 의식과 시기를 염두에 두며, 유대인 삶의 거룩한 리듬을 존중하며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613가지 계명에 매여 있지는 않지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반영하기 위해 사랑, 인내, 순결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을 따라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는 방종이 아니라 능력 부여입니다. 디도서 2장 1-12절에서 바울은 은혜가 우리에게 경건치 않은 것을 거절하도록 가르친다고 썼습니다. 그러므로 길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유대인이라면, 토라를 순종하는 것은 여러분의 거룩한 봉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고 시내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약을 보존하는 방식입니다. 샤밧에 촛불을 켜고, 취치(옷단의 술)를 착용하고, 욤 키푸르에 금식하는 것; 이것들은 율법주의가 아닌 헌신의 행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은혜란 예수님께서 그 일을 다 이루셨음을 믿고 이제는 구원받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하도록 능력을 부여받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구속받은 그릇으로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두 경우 모두 행동은 중요하지만 동기가 다릅니다. 한쪽은 계약에 대한 의무에 뿌리를 두고 있고, 다른 한쪽은 이미 받은 구속에 대한 응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마지막 차이가 신앙의 심장박동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 보게 됩니다.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매일의 순종을 통해서입니까, 아니면 이미 이루어진 희생 제사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입니까? 서로 다른 맥락에서 둘 다 참일 수 있습니까, 아니면 양립할 수 없는 상호 배타적인 길입니까? 이것들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거룩한 질문들입니다.
유대교 토라와 기독교 구약성경 사이의 가장 큰 5가지 차이점을 함께 걸어온 우리는 이제 새로운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분열이 아니라 더 깊은 이해의 자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헤어지기 전에 함께 묵상해 봅시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이며, 오늘 이후로 성경을 읽고,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입니까?
이 5가지 강력한 차이점을 보신 소감이 어떠신지 말씀해 주세요. 토라와 구약성경 사이의 이러한 차이점들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면 이로 인해 여러분 자신의 신앙에 대한 새롭고 더 깊은 무언가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이 차이점들 중 어떤 것이 여러분을 가장 놀라게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영적 여정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중심으로 이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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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의 로마서의 율법에 대한 시각
이제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내용으로 보겠습니다. 제가 가진 시각은 천주교와 개신교와 다르고 유대인의 시각과도 당연히 다르고 완전한 바울 사도의 시각임을 밝힙니다. 바울 사도의 글을 놓고 저와 천주교 개신교가 다릅니다. 제 글을 10년 읽어 오신 분은 바로 다 압니다.
먼저 평화의 개념을 봅니다. 위에서 기독교의 평화와 유대인의 평화에 대한 개념의 정의가 다르고 인식이 다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 했습니다. 이 평화의 의미를 개신교와 천주교는 각각 500년 2000년을 두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보편적인 유대교 평화와 기독교 평화라는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앞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옵니다.
[히브리어의 의미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풍부함, 층위, 그리고 계시가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단어 '샬롬'은 보통 '평화'로 번역되지만, 그 뿌리에서는 '완전함', '온전함', '회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노라"고 말씀하실 때, 유대인의 귀에는 단순한 평온함 그 이상이 들립니다. 그들은 치유, 회복, 신성한 균형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평화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그분의 나라와 의가 실현이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모든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한 곳도 아니요 로마 한 곳도 아니며 온 지구적인 평화입니다. 지금 시대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약 25억에 육박하며 온 지구에 모든 믿는 사람이 있으니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평화가 온 지구를 감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믿는 이는 많은 데 여전히 평화가 어렵습니까?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예수님께서 외치신 평화의 개념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함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시는 평화는 먼저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서로간에도 신뢰를 회복함입니다. 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간의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먼저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으니 회개입니다. 회개가 평화의 길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즉 죄의 문제를 갖고 절대로 인간은 평화로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시대에도 똑같습니다. 예를 듭니다. 인간이 100년을 살고 죽는다고 하면 모두가 죽음의 문제에서 큰 갈등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태어난 것은 모든 인간이 부정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갖고 사는 모든 인간이 내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죽음이라는 피하지 못할 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이 나를 기다리니 60이 되고 70이 되고 80이 되면 숙명으로 받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 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 조금 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고자 별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모든 것이 소멸하는 것을 생각할 때 즉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생각할 때 인간은 무엇 보다도 불안합니다.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모든 불신자는 이 문제 앞에서 불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이는 죽음이 극복이 된 사람들입니다. 부활이라는 놀라운 일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의 문제는 육신의 죽음이 있지만 영원한 육체의 부활이 있음을 믿고 죽음을 불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평화는 이 죽음의 극복에서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를 믿든 아니 믿든 모두에게 전쟁터입니다. 내가 살고 타인을 이길 때 우리는 평화를 누립니다. 모든 것이 쉬지 않고 몸과 마음을 놀려야 사니 이 또한 불안한 우리의 삶입니다. 이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찾습니까? 세상과 경쟁해서 이웃과 경쟁을 해서 내가 우뚝 이기고 이들을 밝고 서야 행복하고 평안합니까?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세상의 사람의 싸움의 방식이요 세상을 사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세웁니까? 평화의 왕을 따라서 동행함으로 세웁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홀로 싸우지 않게 하시려고 보혜사를 우리 마음속에 주십니다.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각 사람 마음에 선물로 주십니다.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로 어김없이 오시는 선물이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시면서 직접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법대로 살게 인도하십니다. 이부분이 사도 바울께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인데 천주교와 개신교는 아직 이 이해에 오지 않았다고 저는 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면서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그리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으로 평화를 추구합니다. 즉 성도가 한 명 한 명이 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룰 때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되어 정의가 넘치기 됩니다. 율법은 정의를 위한 법이기도 하는데 정의가 이루어진 곳에 평화가 절대로 옵니다. 이 평화를 예수님께서 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화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이들이 또 성령의 인도로 살 때 이들이 사는 곳에 정의가 세워지고 역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게 되는데 평화의 나라입니다. 이를 율법학자 바울은 로마서에서 쉬지 않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죄로부터도 자유하게 됩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이름이 세례를 받을 때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림으로 죄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으니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게 사는 영이시고 우리를 평화로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이를 바울은 로마서에 주장하는데 무려 2000년 동안 천주교도 500년 동안 개신교도 이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림으로 주장합니다.
저는 로마서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동방의 빛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아브라함의 큰 칼 즉 창세기 12장에서 26장의 내용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목사나 신부의 개인의 통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교리의 통치도 아닙니다. 만인이 인정하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그리고 모든 인류를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고도 남을 법 율법의 통치입니다. 이 율법의 통치가 구원 받고 성령 받은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의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나라가 예수님의 통치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요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빛이 나가니 한국입니다. 왜 한국입니까? 왜 한국에 사는 저와 여러분입니까? 이를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반드시 성도들을 통해서 세워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성도가 이 원리를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성도를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한 것입니다. 그리고 편지로 격려를 하고 영적인 비밀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 땅에서 로마법과 함께 율법이 시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종교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면에서도 어느 정도 자율권을 갖고 유대인 지도자들 즉 제사장과 율법학자 바리새인 등이 이들을 통치하는 것을 로마는 어느 정도 용인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복음 즉 천국 복음을 전함으로 시작이 되니 먼저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했습니다. 이방인이나 혹은 유대인이나 모두가 율법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않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도 되는 길이 열렸는데 이는 구약의 약속대로 된 것입니다. 이를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구원을 받은 성도는 반드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는 길로 가야 하는데 이것이 로마서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대로 성도가 살게 되면 정의가 세워지고 정의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이곳에 기쁨이 넘치니 하나님의 나라가 선 것입니다. 이 나라가 우선은 우리 마음에서 가장 먼저 세워지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워질 때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이 3500년 추구한 율법으로 되는 세상과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율법대로 되는 세상이 완벽하게 동일한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이 그렇게 추구하는 율법대도 통치가 되는 세상과 기독교인이 율법으로 자유롭지만 성령의 인도로 율법대로 되는 세상과 완벽하게 같은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즉 유대인은 예수님도 없이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당연히 성령의 인도도 없이 이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세우고자 하고 바울 사도와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재창조로 거듭난 인간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므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으로 이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같은 나라를 다른 방법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분의 제자 누구도 율법을 폐하려고 하지 않았고 도리어 굳게 믿음으로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생각도 할 수가 없고 이 율법이 없이 막 서는 나라는 목사가 마음대로 세우는 나라, 성경을 읽고 각자가 깨달은 교리가 마음대로 세우는 나라가 되어 수백 수천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는 나라 법이 없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율법대로 되는 나라가 곧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성도는 이제 어느 나라의 백성입니까? 독재자가 된 대형 교회 목사의 나라의 백성입니까? 오직 믿음의 법이 지배하는 개신교 나라의 백성입니까? 아니면 천주교 교리가 지배하는 나라의 국민입니까? 다 각기 자기 멋대로 세우는 나라일 수가 있습니다. 오직 율법에 의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도 포함하고 천주교 개신교 다 포함합니다. 서로 배척하지 않습니다. 서로 세워줍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되고 천주교는 이런 원리를 이해하면 되고 개신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리의 덤불을 걷고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로 와야 합니다. 개인 구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며 개인의 형통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나라의 백성으로 그분의 법 율법을 잘 배움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대인 이상으로 잘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절대로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하셨고 바울 사도도 절대로 믿음으로 율법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개역 개정, 공동번역, NIV 순서)
예수님께서는 온 우주의 왕이십니다. 율법이 있는 곳에도 왕으로 계시고 없는 곳에 있는 모든 인간이 다 예수님의 피조물로 통치의 대상이 됩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이 다 예수님의 손 아래에 있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의 통치를 피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께 최후의 심판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한 명도 예외가 없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의 기준이 율법으로 절대로 예수님 마음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개신교 교리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천주교 교리대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유대인이 3500년을 지키며 보존한 율법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살 때에는 율법이 있으면 율법대로 살아야 하고 율법이 없으면 양심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양심에 율법을 새겨두셨습니다.
율법은 천지가 하나님의 창조로 하나님의 소유라 천명하셨습니다. 즉 모든 나라의 땅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국경을 잘 정해 두셨고 국경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집과 땅을 갖고 모두가 결혼을 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율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평등합니다. 율법 앞에 특별한 인간이 없이 율법은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정의롭고 사랑이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율법을 우리는 잘 배우고 믿음을 통해서 굳게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복음이 천국복음이며 예수님의 복음이며 신 구약 성경의 핵심입니다. 바울 사도가 이해하고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해한 복음입니다. 이 나라를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성령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아래 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갑니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이도 없습니다. 모두가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나눕니다. 그리고 양식도 나눕니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며 오직 예수님 지도자로 계십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하고 가정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다윗이 왕이었을 때 왕과 제사장 그리고 관리들과 백성이 다 율법대로 살았습니다. 주어진 경계를 지키면서 절기를 지키면서 제사장은 올바른 제사를 드렸습니다. 선지자는 먼저 발생할 일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통치하시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다윗은 왕의 역할을 하고 모든 백성이 율법대로 순종했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의 말씀으로 모든 성도 즉 이스라엘 사람이나 기독교인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경하고 찬양해야 되는 가장 핵심적인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율법의 완성에 있고 예수님께서 율법의 조문 조문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해야 되는데 교리에 빠져서 헤매는 우리입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지옥에 가는 가장 좋은 길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면서 살면 바로 지옥입니다. 그리고 교리를 잘못 알고 율법을 버리면 지옥입니다. 지옥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가장 죽이 잘 맞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고 큰 자가 되는 비결이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킴에 있고 이 일이 어려우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잘 모시고 순종하면 내가 못하는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을 당당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 가고 큰 자로 살고 이 땅에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웁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이렇게 돕고자 하시는데 예수님의 말씀도 성령의 인도도 던져두고 율법도 배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믿으면 반드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천국 복음을 이해하고 유대인의 3500년의 역사를 보면 이들이 결국은 이 땅에 율법으로 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쉬지 않고 세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무려 3500년 동안 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오신 이후에 무려 2000년을 나라가 없이 살면서 이를 지켜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이방인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유대인이 없는 하나님 한 분을 믿습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 성령님께서 아예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됩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런 새롭게 창조가 된 우리가 여전히 먹고 마시며 세상이 사는데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잊고 살고 의롭게 삶에 있어서 예수님도 성령님도 없는 유대인의 바리새인 보다 더 불의하게 산다면 결단코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대도 죽어도 됩니다. 즉시 나의 상태를 점검하시고 천국에 가는 길에 있는지 지옥이 너무나 가까운지 바로 분별이 됩니다. 그리고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교리가 나를 천국에 절대로 보내지 못합니다. 천국 가는 것을 막고 방해하는 교리를 던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교리는 아브라함의 큰 칼로 잘 설명을 미리 했으니 오천만의 로마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신학교 교수 중에서 예수님도 성경도 믿지 않는 학자가 많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제 주장은 유대인의 율법에 대한 설명과 다르고 천주교, 개신교와도 다를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위의 내용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잘 보시고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예수님에 대한 예표도 맞습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지내던 1000년 동안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는 말씀을 그대로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 흘리심이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한 민족의 죄악의 용서가 아니라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율법과 예언이 다 예수님의 사역과 오심과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약 자체로 즉 율법 자체로 하나님의 법으로서 효력도 여전하고 또 최후 심판의 기준으로 유효하지만 또한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피 흘리심에 대한 예표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것도 아니요, 율법이 오직 예수님의 예표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 찬양의 대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며 또한 오실 예수님의 예표도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기준이 되는데 우리는 율법의 이 모든 기능을 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랑에 대한 규정입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규정했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에 대해서 유대인을 능가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율법의 정신을 좀더 넓히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만드신 분의 속성이 그대로 율법에 다 있으니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으신 분은 율법을 잘 배우면 알게 됩니다. 율법을 사랑하게 하고 정의롭게 살게 하고 하나님과 이웃에 신실하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핵심 혹은 정신 혹은 가장 중한 바는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십계명으로 나누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4가지 이웃을 사랑하는 법 6가지로 나눕니다. 그 중에서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 말라는 규정은 모든 한국의 목사가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부정선거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보면 가장 큰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로 국가적인 범죄로 이를 목사가 인식하지 못하고 침묵하면 이들은 다 시대의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이 아무리 잘났다해도 빵점인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의 문제에 빠져서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곧 이 사실이 온 만천하에 밝혀지니 이들이 다 망신에 망신을 당하고 변명도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게 되는데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분별력이 있으신 독자는 율법에 대해서 유대인의 시각과 천주교 개신교의 시각과 그리고 제가 설명을 드리는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다 율법에 소극적입니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율법을 소홀히 하고 천주교는 교황권과 로마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소홀이 합니다. 유대인은 오직 죽도록 배우고 지키려고 합니다. 믿는 이들이 이들보다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선물로 비교가 불가하게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존재인데 이들이 뭐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선물로 우리 안에 모시면서 예수님도 성령도 없는 유대인을 모든 면에서 이기지 못하면 절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 평화의 복음 즉 동방의 빛의 다른 부분을 또 봅니다. 복음이 로마에 들어가고 유럽에 들어가고 중앙아시아와 인도와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갈 때 우리는 이 복음과 함께 한 국가가 로마, 영국, 미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모두가 강대국으로 온 세상에 권세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고 이들이 제국주의가 되어서 전쟁을 일으시키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주민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착취와 통치의 대상으로 보고서 행한 만행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유대인에 접을 붙인 상태로 유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이 도리어 이들을 말살하고자 했던 나치 독일의 악행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국가의 유대인에 대한 학살과 멸시와 차별과 천대는 수천년을 이어서 오고 있고 이는 반드시 고쳐야 하는 악행인 것을 저희는 인정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를 따르지 않고 규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은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법 율법을 지키며 주변에 소개했고 보존했습니다. 이런 공로를 기독교인은 한 명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율법의 위치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역할 다음으로 중요하니 모든 교회보다 모든 성도보다 더 중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찬양의 대상이며 존경의 대상이며 잘 배우고 지켜야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율법이 지켜지는 곳에 있는데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먼저 집과 땅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이 되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삼대가 함께 사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먹고 사는 것이 충족이 되는 세상입니다. 특권층이 없고 인간이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며 사는 세상입니다. 전쟁의 위협이 없고 평화가 늘 있는 곳입니다. 환경적으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공기는 맑고 물은 어디서나 마실 수가 있어야 합니다. 바다가 반드시 존재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온순하고 호전적이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고 가족간에 마을간에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 즉 성경적인 율법의 질서가 완전히 지켜지는 곳이 참 평화가 있는 곳이 됩니다. 이런 평화를 1000년을 누린 곳이 있고 민족이 있다면 믿으십니까? 이곳은 분명하게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에수님의 통치가 율법이 아니라 양심의 법으로 미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거룩한 곳이며 이 세상이 희망이 되는 곳입니다. 동방의 땅입니다. 이 땅에서 나가는 평화의 복음이 동방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고 우리 진정한 조상이 사시던 땅입니다. 한반도입니다. 이 천국을 우리는 약 50-60 년전에 모든 한국의 시골에서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는 노아 홍수 후에 한반도 전라남도를 통해서 이주한 청동기를 쓰는 고인돌족의 1000년의 평화의 삶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침략이 없던 시기 기원전 약 1000년부터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 즉 철기 시대까지 우리의 진정한 조상이 누린 평화입니다. 완벽한 천국과 같은 환경을 지닌 땅에 처음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한반도 전라도를 통해서 오신 우리의 조상은 인구가 늘면 전라북도 경상남도로 그리고 북으로 동으로 이동을 해서 지금 보여주는 고인돌 유적을 그대로 남겼습니다.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학자라는 인간들은 우리 민족이 철기 시대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부터 이주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와서 보니 자신들보다 약 600년 앞선 청동기 유적이 있는 것을 보고서 어떻게든 숨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화순의 어떤 노인이 청동검과 거울을 엿장수에게 엿을 바꿔먹기 위해서 주었고 이 엿장수가 이 유물을 기이하게 여겨서 박물관에 문의하니 순식간에 한국에도 청동기 시대가 있구나 하고 이 지역을 문화재 지역으로 선포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려 100만평을 유적지로 개발하고 관광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진화론에 휩싸인 무지몽매한 자들이 이들 진정한 우리와 같은 사람인 이들을 신석기 구석기를 거치면서 진화된 원시인으로 보고서 모든 역사를 해석해서 왜곡하고 우리의 거룩한 선조를 다 짐승의 모습으로 전시를 하고 있으니 이 불경을 어찌합니까? 이집트의 약 기원 전 30000년 전의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을 아무도 진화론의 후손인 원시인으로 보지 않고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보는데 우리의 기원전 1000년의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 모든 한국인의 거룩한 조상을 아직도 미개인 원시인으로 보는 고고학계는 정신을 차려도 한참을 차려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겸손히 성경을 믿고 하나님께 큰 회개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고창군이나 화순군은 즉시 이들이 완벽한 우리의 조상으로 완벽한 사람으로 보고서 사람이 사는 모습을 구현해서 온 세상에서 가장 귀한 유적지가 되로록 해야 되는 것입니니다. 이 이유를 성경적으로 설명하는데 이 가치는 절대로 피라미드 유적을 넘어도 한참은 넘는 가치가 있음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라미드를 만들고 대묘를 만드는 왕의 모습은 독재와 수도 없는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학대하면서 사는 모습입니다. 권력을 지닌 인간이 절대적으로 모든 국민을 자신 한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게 합니다. 지금도 공산주의 독재자나 혹은 독재국가의 절대권력을 지닌 자들이 이렇게 모든 국민을 종으로 혹은 노예로 삼으면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하는데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인간이 이렇게 사는 것을 혐오하시고 종국적으로 이런 자들을 처참하게 심판을 하십니다. 이를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노하시면서 그렇게 되면 왕의 노예로 모든 사람이 살게 됨을 알려줍니다. 그래도 왕을 요구하니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왕들이 타락하게 됩니다. 율법은 이런 인간의 통치의 왕정을 막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심을 알려 주십니다. 직분이 왕도있고 제사장도 있고 관리도 있고 선지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예외없이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독재나 노예 제도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이런 세상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자본주의와 같이 자유경쟁으로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집도 땅도 없이 소망을 잃고 사는 세상을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절대로 모든 이 땅의 인간이 집과 땅을 갖고 모두가 직장도 갖고 모두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삼대가 함께 오손 도손 사는 것을 원하시며 율법은 그렇게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능력에 따른 직장과 수입의 차이를 인정하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품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드라고 하십니다. 크리스천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수도 없이 이렇게 율법은 위대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법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법은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부족하게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이런 법을 추종하지만 이런 법 체계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이 법을 최종의 법으로 이 법대로 사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면 큰 일이 납니다. 이런 법을 이기면서 모든 교인이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즉 능력이 강한 사람혹은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 교회에서 어려운 형제와 이웃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가르침이고 이스라엘은 3500년 비록 이 법대로 살지 못할 때도 많지만 놀랍게도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이 법을 따라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 율법대로 사는 것과 같이 의롭게 신자가 살지 못하면 즉 이 법을 버리고 자본주의 법에 따라서 홀로 많은 부를 가지고 나누지 않으면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상은 수백 년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상에 젖어서 성령의 감동에 따른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정의로운 율법의 요구사항을 이루는데 멀어졌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멀어져서 25억의 크리스찬이 온 세상에 있고 한국에 1.500만 명의 크리스천이 있지만 이런 원리를 알고 행하는 사람은 지극히 없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어찌합니까? 이제 100만 명을 향해서 가는 제 글을 읽는 사람은 이 진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반응을 합니까?
모두가 덜가지고 나누면 죽는 줄로 압니다. 내 것이 너무나 분명하게 확정이 되고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사유재산 인정합니다. 남의 소유 탐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노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 법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법입니다.
그런데 4500년 전에 노아 홍수 후에 모두가 죽고 새로 이 지구상에 사람이 차게 될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멀리 이동한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기원전 1000년 경 즉 약 3000년 전에 한반도에 처음 전라남도를 통해서 상륙한 우리 조상이 고인돌을 유적으로 남겼습니다. 몇 사람으로 시작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처음 이들이 한반도에 왔을 때 한반도에 아무도 없고 짐승만 가득하고 숲은 우거졌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천국과 같은 조건의 한반도가 넓게 이들에게 허락이 되었습니다. 많은 섬과 바다와 낮은 산과 들과 강이 있고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 경치가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고 인구가 늘면 동으로 북으로 이동한 증거가 정확하게 고인돌의 분포로 보입니다. 청동기를 사용하고 토기도 사용하고 온돌과 벼농사를 짓고 가축도 기릅니다. 하나님께서 가축과 들짐승을 처음부터 따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구석기를 거치면서 진화한 존재는 없습니다. 홍수로 모든 호흡하는 육지의 사람과 동물이 다 죽었습니다. 홍수후 약 1500년이 지났을 때 한반도로 옵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일본도 없습니다. 중국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인구가 온 지구상에서 약 5000만 정도입니다. 인구가 지금의 1/200인 수준입니다. 온 지구가 다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완벽한 우리와 같은 지능의 모습의 사람입니다. 절대로 진화가 덜 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완벽하게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이들이 이 한반도에 와서 바닷가를 중심으로 돌이 있는 지역에 무덤을 만들면서 정착을 합니다. 지금 보이는 논들도 수천년에 걸쳐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시골의 마을에 그대로 대를 이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은 실로 3000년이 지나도 별로 변치 않습니다. 먼저 논 농사를 짓습니다. 온돌에 살고 초가에 삽니다. 흙으로 돌로 담을 세웁니다. 그리고 마을별로 우물도 파고 농네 놀이터도 만듭니다. 그리고 씨족 단위로 모여서 삽니다. 누가 왕이 되고 권력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농사를 짓고 사는 것도 비슷합니다. 모두가 씨족이고 혈족이니 누가 누구를 지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은 넓게 열려 있습니다. 바다나 강이나 생선이 가득합니다. 물이 빠지면 조개나 소라나 줍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는 집과 땅이 모두가 소유로 있고 빈 땅도 많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결혼을 하고 모두가 삼대로 삽니다. 이런 평화가 약 3000년을 이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철기가 오기전에 약 1000년 동안 한반도에 있습니다. 이 절대적인 평화는 율법이 없이 양심의 법으로 형성이 되었는데 이는 천국과 같은 환경과 이런 환경에 서로 평화롭게 살 온순한 사람들의 조합에서 비롯이 됩니다. 아브라함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양보를 좋아하고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서 떠나면 됩니다.
모든 것이 사람이 사는데 구비가 된 지역적인 환경과 그리고 이런 환경에 적응해서 수천 년을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한국을 천국으로 만들었고 평화가 넘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철기 시대 이제는 왕권을 가지고 말을 가지고 정복을 하는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옵니다. 이들이 기록한 진화론에 기반을 둔 원시인의 역사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들을 원시인으로 보는 시각으로 모든 유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가 된 완벽한 사람인 우리가 완벽한 우리와 같은 사람의 조상을 이런 세상의 미혹으로 같이 원시인으로 보고 왜곡하며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인 청동기 시대 사람들을 재현을 해서 바로 잡아야 합니까?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를 창조주로 믿는다면, 노아 홍수를 믿는다면 창세기 내용을 그대로 진리로 믿는다면 뭐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예수님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의 역사를 바로 보고 바로 잡는데 단언코 우리 조상의 약 1000년의 청동기 시대의 삶은 완벽한 평화의 시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평화 할 때 우리가 이제는 율법을 지킴으로 누려야 하는 평화인 것입니다. 그 평화를 맛을 본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율법을 통해서 이 땅에 성령으로 만들어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한 분 한 분이 예수님의 고귀한 보혈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원리를 알면 우리 고인돌의 유적이 평화의 상징이요 천국의 모습으로 독재와 절대 왕권으로 수도 없는 사람의 피와 눈물과 죽음으로 세운 피라미드를 능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레루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인데 사실은 모든 지구의 어느 곳에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수명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데로 70-80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계절의 한계가 다 있습니다. 먹고 살아야 합니다. 어디를 간들 하나님의 눈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으로 배운 율법에 의한 통치가 일어나는 나라와 율법이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양심의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실상은 양심의 법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적으로 더 길고 온 지구에 해당이 된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일본으로 그리고 아메리카로 이주를 해서 백인이 오기 전에 적어도 1500-2000년을 온 아메리카 대륙을 넓게 쓴 인디언의 삶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로 양심의 법이 지배했던 나라인 것입니다.
천국 복음은 적어도 이스라엘이 홀로 율법을 지켜서 세우는 나라보다 더 율법을 잘 지켜야 함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경험한 예수님도 율법도 없이 경험한 1000년의 평화로운 나라보다 더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50-60이상의 한국인은 그 평화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급격한 경제력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이런 좋은 전통이 다 무너진 가운데 1500만 명의 하나님의 백성이 힘겨운 투쟁을 하면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천지가 무너져도 반드시 율법대로 선다고 하셨는데 저는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함몰이 된 율법대로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펜데믹을 통해서 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는 나이든 사람과 대도시를 강타했습니다. 미국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이유가 자유의 보장에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보장하다 보니 격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통제도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이런 코로나와 비교가 되지 않는 펜데믹이 오고 모든 인류는 율법에 근거한 즉 제사장이 문둥병이 발생하면 검사를 하고 격리를 시키는 것과 같은 검사와 격리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져만 되는 상황이 수 년 내에 반드시 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 펜데믹에 이번에도 잘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은 쇠퇴하고 통제가 되는 중국이 더 강대국이 될 것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중앙 아시아와 중동 이슬람으로 갈 것으로 믿습니다.
농지 전수조사로 모든 농지를 팔려고 내어 놓았습니다. 가서 농사를 지어야만 농지 구입이 가능하니 누가 삽니까? 중국이 이번 기회에 싹쓸이 하면 한국은 그냥 중국의 국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60세 이상의 도시인은 모두가 약 500 백만 명 이상이 농지를 사서 한국 전체로 흩어지면 펜데믹이 와도 시골에서 먹거리를 잘 준비하고 격리를 하면 이 위기를 넘기고 살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그냥 듣지 마시고 모든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다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반드시 미국이 망하는 길이 펜데믹에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인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도시에서 모여서 사는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모여서 도시를 형성하고 다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바벨탑도 그렇고 모든 일에 흩어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시고 한국 전역으로 속히 흩어지시고 생명을 보전하시고 이런 진리를 조용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 공부도 잘 하고 그 나라를 잘 세우게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부디 성령께서 감동케 하시고 흩어지게 하소서! 율법대로 되는 세상을 하나님께서 펜데믹을 통해서 만드시는 것을 보고 믿고 흩어지는 한국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주여! 제 사역과 공부를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다 주심으로 넉넉하게 배우게 하소서! 감동이 있는 분들이 잘 배우게 모이게 하시고 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