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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
도입
진(秦)나라 재상이자 진시황(秦始皇)의 아버지였던 여불위(呂不韋)는 사람을 보고 쓰는 방법으로 `육험론(六驗論)'을 강조했습니다.
이 방법은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규범이 되어 전해져 내려왔는데 사람의 됨됨이나 기량(器量)을 타진하는 여섯 가지 시험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서 그에 얼마나 빠져드는가를 보고,
둘째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서 그를 얼마나 자제하는가를 보며,
셋째 그 사람을 괴롭게 하고서 얼마나 참아내는가를 보고,
넷째 그 사람을 두렵게 해 놓고서 얼마나 나타내지 않는가를 보며,
다섯째, 그 사람을 슬프게 해 놓고서 얼마나 삭이는가를 보고,
여섯째 그 사람을 성나게 해 놓고 얼마나 개의치 않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도 자제력과 인내심과 담력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들입니다.
오늘 본분에서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과 우매자의 판별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작은 실수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은 파리가 향기름에 빠졌으면 그 전체를 버리던가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파리는 별로 중요하지도 대수롭지도 않는 적은 것이지만 내 생애 가운데 향기름 같은 가치 있는 생애를 좌우할 만한 인격이나 명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적은 우매,작은 하나의 오점이 별로 대수롭지 않는 실수가 지혜와 존 귀를 폐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작은 죄, 작은 어리석음, 작은 부주의, 작은 누룩이 작지만, 엄청난 손해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최첨단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병원이라도 조그만 실수도 사람의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수술하려고 배를 열었다가 수술 매스를 배 안에 넣고 배를 봉합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납니다.
비행기의 대형 참사들은 큰 데서 고장이 난 것이 아닙니다. 안전장치가 좋아도 조종사의 작은 실수, 착각에서 추락하여 엄청난 재난을 불러오게도 되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우리들은 큰 것에는 주의를 잘 기울입니다. 그래서 큰 데서 큰 실수가 일어나는 경우보다는 작은 것을 무시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맛있는 아구찜을 먹는데 집사람이 고기를 발겨먹다가 조심스럽게 정체불명의 작은 물체를 건져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귀고기 뼈나 혹은 이 물질이겠거니 생각했으나 꺼내 논 검은 물체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자세히 보니 죽은 파리였습니다. 그 때부터 먹었던 것이 다 넘어오려고 합니다. 심방을 가서 대접받는 자리라서 저희 부부는 모른 체 하고 남은 식사를 처리할려 하니까 보통 고역이 아니였습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음식 전체의 맛을 버려 놓았습니다. 죽어서 썩은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도 없을 때가 있고 값비싼 향유를 망칠 때도 있습니다. 큰 항아리의 물을 다 퍼내야 할 때도 있고 값비싼 음식을 버릴 때도 있습니다.
권투 선수들이 잔 펀치를 허용하면 다운되는 것입니다. 잦은 잽을 허용하면 나중에는 결정타를 맞게 되면 녹다운 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툭툭 치고 빠지며 결정적인 찬스가 나면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화생방전 세균전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조그만 병에 세균을 담아 수원지에 풀면 그 물을 마시는 모든 사람은 다 죽게됩니다.
지극히 작은 인간의 허물이나 죄 그리고 실수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 아이성에서는 크게 패하였습니다. 그것은 아간이 전리품중 지극히 작은 것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훔쳐서 자기 장막에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는 연대 기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적은 부패가 큰 부패되는 것이고 개별적 부패가 집단적 부패가 되는 것입니다.
p style="line-height:6mm;">초대교회가 막 태동하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소유를 팔아 얼마를 속였다가 두 부부가 성령을 속인 죄로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만큼 주님의 거룩한 공동체는 적은 누룩처럼 거룩성에 손상이 가는 거짓을 용납해서는 안되었기에 주님은 미리 악의 전이성을 막은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quot;하나의 썩은 사과가 한 통의 사과를 상하게 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는 것입니다.
평소에 아주 신앙이 좋고 존경스러운 분이 어느 날 작고 사소한 일 때문에 그에 대한 존경심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일 하나를 우습게 여기다가 우매자가 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큰 일만 가지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작은 일을 가지고도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옛날 속담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에 부정직하면 큰 일을 할 때도 그의 정직성을 믿어주지 않습니다. 몇 천만 원, 몇 억 원이나 되는 큰돈을 만지면서도 정직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액수에 부정직했을 때 부정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엄청나게 큰 일에 충성했지만 작은 잘못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허물어뜨릴 수 있습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 때문에 향기름 전체를 못 쓰게 되고 악취가 나듯이 우리의 작은 오점 하나가 우리의 지혜와 존 귀로 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2.선택을 잘못하는 사람
인간의 모든 삶은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선택의 자유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선택의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선악과도 있었지만 생명나무도 지어 놓으셨습니다. 모든 과일은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하는 살과를 먹게 됩니다.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지혜로웠으면 생명나무를 선택하였을 것인데 사단의 사주를 받아 우매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인간의 불가항력적 선택은 나라, 성별(남녀), 태어나는 날/죽는 날/이는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 택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의지와 판단에 의해 택하는 것-결혼, 직업, 학교 및 전공, 일반 사생활(옷. 양말. 밥이나 죽이나 라면, 반찬 골라 먹기)을 말합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거기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이것을 바로 감당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순간 선택이 10년을 좌우할 수 있고 때론 일생을 아니 영원의 세계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에 따라 죽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양들은 오른편에 두신다고 했습니다. 왼편에는 염소를 두신다고 했습니다. 오른편에 있은 양들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올바른 일을 한 의인들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은 염소들은 바르지 못한, 그릇된, 잘못된 일을 한 악인들입니다. 오른편이라고 하는 것은 바른 일, 옳은 일을 의미하고, 왼편은 그릇된 일, 잘못된 일을 의미합니다.
오른편은 좋은 선택을 하여 산 사람들 왼편은 악한 선택을 하면서 산 사람들인 것입니다. 선인과 악인의 구별점이 오른쪽 왼쪽인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의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말씀에 순종하면 오른 쪽 불순종하면 왼쪽이 됩니다. 바로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그, 결과는 하늘과 땅과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는 장면입니다.
(창13:9-11)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 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안목의 정욕을 따라 소돔을 선택합니다. 그 결과 그는 멸망의 땅 저주의 땅에서 아내를 잃은 비극도 겪게됩니다. 선택은 잘해야 합니다. 부부도 선택입니다. 종교도 선택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은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선택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을 중심으로 선택합니다. 이사를 하더라도 집을 사더라도 장사를 하더라도 신앙을 생각하며 주님을 생각하면서 선택하는 일에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매자는 항상 왼쪽에 있습니다. 어떻게 악을 행할까? 어떻게 사기를 치고 부정을 저지를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을 우매자라고 합니다.
항상 모든 일에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어두워서 그 길이 치우쳐서 망할 것을 생각하고 망할 길을 갑니다. 그러니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좁은 길 의의길 생명의 길을 선택합니다. 우매자는 넓은 길 인기가 있는 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사망의 길을 선택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길을 가고 계십니까? 생명의 길입니까? 멸망의 길입니까?
3.감정의 지배를 받는 사람
인간에게는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은 추진하려는 마음이고 이성은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은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는 제어장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정서가 흔들려 있으면 이성이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정서가 안정이 안되고 불안하고 내적 갈등이 있는 사람은 감정절제가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정 조절이 안되고 감정에 노예가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자신의 어리석음이 노출되고 맙니다.
윗사람이 화나게 해도 감정을 상하게 해도 주권자에 대한 태도가 공손한 사람이 있고 불손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 한 달을 못 다니고 계속 사표를 쓰고 옮겨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꼬워서 못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직장이 쉬운 곳이 있습니까? 공손하면 잘못도 용서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날이 오는 것입니다.
사울 임금이 이스라엘의 주권자였을 때입니다. 그는 다윗을 자기의 경쟁자로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사울은 다윗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계속 추격했습니다. 다윗은 추격을 당하는 동
안 몇 번이나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사울 임금에게 공순하게 대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나라의 주권자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매한 사울을 폐하시고 그 대신에 늘 공순했던 다윗을 나라의 주권자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나라의 지도자, 또 여러 사회 단체에서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독선적이면 안됩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공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맙니다. 자제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성숙했다는 말은 언어와 감정과 행동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감정조절이 안되기에 아무데서나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립니다. 생각이 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 전에 행동해 버립니다. 생각이 없으며 부화뇌동합니다. 참으로 불안정한 사람입니다. p style="line-height:6mm;">
4.자기분수를 모르는 사람
소크라테스 시대에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힌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런 오만하고 교만한 지식인들을 보면서 소크라테스는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작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내가 저들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우스개 소리로 만일 수학 선생님 같으면 "네 분수를 알라", 국어 선생님 같으면 "네 주제를 알라", 지리 선생님 같으면 "네 자리를 알라", 미술 선생님 같으면 "네 꼬라지를 알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진실된 모습만 알아도 교만하거나 한심한 삶은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가 건전하려면 각자가 자기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들이 말을 타고 다니고 방백들이 종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 사회가 된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그랬습니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랐던 젊은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종들은 말을 타고 방백들은 종처럼 땅에 걸어 다니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르호보암 때 나라가 쪼개지지 않았습니까?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자기가 야당하던 시절에 옆에서 자기 밑에서 고봉 노릇을 하면서 열심히 가방을 잘 들어주었다고 머리가 텅텅 빈 사람을 장관 시켜놓으면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종을 말 타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주제파악이 안되면 인생을 사는데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분수를 모르면 평생 고생합니다. 우매자는 높은 지위를 바라고 부자는 낮은 지위에서도 자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없는 자들이 자신을 포장하고 위장하고 잘보일려고 궁리하지 부자는 있는 그대로도 지장이 없습니다. 지적으로 유식한 사람은 무식하다고 해도 상처를 안 받습니다. 그런데 진짜 무식한 사람더러 무식하다고 하면 왜 내가 무식하냐고 대들면서 자기를 변명하며 포장하기 시작합니다.
방백은 종처럼 땅에 걸어다니지만 종은 말을 타고 종인 것을 가려볼려는 의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은 집이야 어떻든 자동차가 어떻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못사는 사람일수록 더 좋은 차를 타야하고 더 좋은 옷을 걸쳐야하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삶의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물질과 시간과 정신을 소모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기 자신의 수준보다 상향조정하여 살아가는 의식이 우월의식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준이하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열등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수준을 알아 수준에 맞게 지출하고 소비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결론 / 적용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약점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직면하여 주님 앞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우리 안에 사소한 실수 잘못을 묵인하면서 살아가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은 파리가 내인 생을 내 인격을 악취로 물들이는 경험을 하면서 삽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약점을 주님께 내려놓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세상 적인 것 정욕 적인 것 불 신앙적인 것을 선택하여 살아왔습니다. 이젠 주님의 편에서 신앙의 편에서 말씀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감정의 포로가 되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귀의 도구로 살았던 지난날을 회개하오니 받아 주시고 말씀이
주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성령의 포로가 되어 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내 자신을 알게 하옵소서 내가 처란 처지와 분수를 알아 지혜롭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이 시간 우매한 자의 삶을 버리고 지혜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소서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1)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주님을 의지하고 바울처럼 예수의 심장으로 살아가면 지혜자의 삶을 살아갈 수 가 있습니다.
2)내주 하신 성령 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십시오.
(갈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약함을 넘어 뛸 수가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로 우유 부단한 자가 결단력 있는 인격으로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런 기도문을 썼습니다. "주여,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는 말하지 않게 해주옵소서!" 불평, 원망, 비평, 부정적인 말들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런 말들은 절제해야 할 말들입니다. 해야 할 말은 어떤 말입니까?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은 어떤 말입니까? 감사하는 말입니다. 격려하는 말입니다. 권면하는 말입니다.
3)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나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의 지혜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지혜자입니까? 우매자입니까?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