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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
성경본문 : 에스더 6: 1-9
1.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3.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 것도 베풀지 아니 하였나이다
4.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5.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 오게 하라 하니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8.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것이라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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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부모들의 손에 끌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 중 더러는 천사같이 웃고 있습니다. 큰 전시실 하나 가득 어린아이들이 신던 신발이 있고 2톤이 넘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쌓여있습니다. 아우슈비치 이야기입니다.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치에서만 학살한 유대인의 수가 일백 삼십만 명이었고 유대인 이외에도 삼십만 명의 폴란드 정치범, 소련 전쟁포로 그리고 집시들이 아우슈비치의 독가스 샤워실에서, 공기가 통하지 않는 독방에서 그리고 생체실험실에서 죽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은 빈민굴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해주겠다고 유대인들을 유혹했으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노동에 적합하지 않다고 분류된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들, 허약한 여성들은 기차역에서 곧바로 죽음의 가스실로 직행하였고 건강이 괜찮다고 분류된 사람들은 축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또한 강제 노동소에 끌려가서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일본은 얼마 전 히로시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에 아우슈비치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계획도 난징사건 기념관도 함께 세워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바람에 슬그머니 철회되고 말았습니다.
중국판 홀로코스터라고 불리는 난징사건은 1937년 12월부터 2개월에 걸쳐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면서 최고 30만 명의 중국 민간인을 학살하였고 중국 여성 이만 명을 잔인하게 유린하고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서독 총리 빌리브란트가 바르샤바의 유대인 집단 거주지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나치독일의 만행을 사죄한 일이나 독일이 유대인 개인 그리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국가차원에서 사죄하고 배상한 일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원폭이 떨어진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내세워 자신들도 전쟁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도 종군위안부와 난징사건의 책임은 피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피해자임의 큰 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에도 일본 총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곳의 기념행사에서 한 기념사 어디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그 전쟁을 일으킨 전범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야수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치를 찾으면 만날 수 있는 어느 철학자는 역사의 교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을 모르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았던 심판도 되풀이해서 받게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살아 계셔서 심판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리고 나중에도 심판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만이 페르시아의 제 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왕비가 자신을 두 번이나 초대한 일에 대해서 한껏 고조되어 있었으며 내친 김에 눈에 가시였던 모르드개를 죽일 계획을 세워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제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왕의 결재만 받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밤에 왕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사람을 시켜 왕실일지를 가져오게 하여 읽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바로 지금 하만이 죽이려고 하는 모르드개라는 이름을 보게되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자기가 암살의 위기에서 건져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아직 그에게 아무 포상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어 대신들을 찾았습니다.
그 때 마침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결재를 받으러왔던 하만과 만났습니다.
왕은 하만에게 자신이 높이 영광을 돌릴 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 때 큰 착각을 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왕으로부터 존귀함을 받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예우로 대하라고 자문을 하였고 이에 왕은 하만에게 직접 모르드개에게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모시고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하만은 죽을 상이 되었지만 왕의 명령을 다 수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하만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깜짝 놀란 그들은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13절)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감격적인 장면에서 큰 기적을 보았습니다. 모르드개는 죽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었습니다. 당시 왕으로부터 무척 신임을 받는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는 일에 대해서 왕의 허락을 받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르드개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죽을 뻔했던 모르드개는 나라의 제 2인자인 하만을 마부로 데리고 온 성중을 다니면서 존귀함을 받게 되었으니 정말로 기적중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을 보면서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에스더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는데 성경은 모르드개가 하만의 손에 이끌려 영광을 받고 존귀함을 받는 것이 에스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일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시면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시는가? 우리는 이것을 먼저 보아야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의지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흔히 그 일에 그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절대적인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거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들어서 쓰십니다. 단지 누군가 나선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만들어 가시는데 무임승차할 뿐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시거나 하시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적어도 6장에서 모르드개를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일에 있어서는 에스더를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말하면서 왕 앞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왕은 에스더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결심한 것은 죽을 결심이 아니라 결국 복 받는 선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복받을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신 때입니다.
바로 우리는 전장 5장에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결단과 아울러 일을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의 일은 에스더가 아니라 누구라도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시작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늉만 해도 좋습니다.
능력도 힘도 아무것도 없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일을 다 만들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간에,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일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시작하지 않습니다.
저가 시작하기만 하면 저는 복받을텐데 이렇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는 아직 신앙훈련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바다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 훈련시킨 후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바다를 열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열두 명의 제사장들을 앞세워 먼저 발을 디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물이 있는 그대로 받을 디딜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하나님께서 먼저 공급해주시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수3:15-16)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먼저 물에 발을 내딛었을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대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음은 착각에 대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착각 중에는 해도 괜찮은 것이 있고 때로는 하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서는 아니 될 착각이 있는데 이런 착각은 죽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에 정말로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만이 착각한 일이 있습니다.
왕이 역대 왕조실록을 보다 모르드개의 혁혁한 공을 안 후 그를 높이기 위해서 하만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가 자기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6절). 이 정도의 착각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서는 아니 될 착각 즉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착각하면 큰일납니다. 정말로 망하는 길이고 죽는 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신 일을 자기가 하나님의 고집을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죽는 길로 가는 착각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하여 대승하였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신 다곤이 이스라엘 신 여호와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빼앗아서 자신들의 다곤 신당에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삼상5:2-12).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을 이길 것이라는 것도 큰 착각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은 당신이 모욕을 당하고 수치 당하는 것을 참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것 또한 그냥 보시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든지 간에 현명한 사람들은 이것을 압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더 잘 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페르시아의 사람들도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13절)..
그 사람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영화 '베어'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서운 맹수에게 쫓기고 쫓기던 아기 곰이 마지막으로 외나무 다리에 올라가서 발톱을 세우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러자 그 아기 곰을 잡아먹으려던 맹수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꼬마 곰은 자기가 소리질렀고 자기 발톱 때문이라고 착각하였는데 사실은 그 뒤에 산더미만한 어미 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아기 곰은 몰랐지만 그 맹수는 어미 곰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아기 곰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 더 알 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너무 느긋하게 일하셔서 마치 살아계시지 아니하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벼락같이 일하실 때는 정말로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일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판의 날이 더뎌진다하여 심판이 오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상당히 늦추셨습니다.
각각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는 것을 보시지 못하시고 번개처럼 역사하셔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한꺼번에 처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왔습니다. 70년 간이었습니다. 70년이란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번도 광복을 보지 못하는 기간으로 이 7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꼼짝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유대백성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모르드개의 위기에서는 즉각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살아 계십니다.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얼마나 똑똑하게 보시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을 만한 사람으로 서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세하게 보시는지 모릅니다.
한 번 체험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대하16:9)라고 기록하시고 계십니다.
온 땅을 보고 계시다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는데 한 순간 하나님께서 지금이라고 판단하신 순간이면 번개처럼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은 이 밤에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That night 라고 아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서 장대를 세운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하여금 불면증에 걸리게 하여 왕조실록을 보도록 만드셨습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14절에는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영어성경에서는 Still talking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하고 있을 때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누구에게라도 능력을 베푸십니다. 여러분들 또한 그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 이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 모르드개가 받았던 그 능력을 받아 누리기를 소원하시고 기대하시고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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