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공사
성경본문 : 에스라 4:11-20
11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은
12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의 수치당함을 참아 보지 못하여 보내어 왕에게 고하오니
15 왕은 열조의 사기를 살피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훼파됨도 이 까닭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한 저희 동료와 강 서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의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열왕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주재하는 큰 군왕이 있어서 강 서편 모든 땅도 주재하매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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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중단된 공사(4:11-20)
사람들은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을 때 종종 공동체를 파괴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본래 표면에 떠올라 있던 우호적인 태도, 목적의식, 사명감, 구호 등은 사라지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언행이 드러납니다.
드러난 의도
종종 우리 주변에는 정치적 논리가 신앙의 이름으로 위장하고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고 나섰던 모습이 바로 그렇습니다. 혹자는 사마리아인들은 순수한 신앙의 동기로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유다 지도자들이 민족 감정을 앞세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러한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만약 그들의 의도가 순수한 신앙이었다고 하면, 정말 하나님의 전이 온전하게 중건되기를 원했다면, 자신들이 배제되었다고 해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중단하게끔 정치적 공작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성전이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심중의 의도는 협의 과정보다도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함
본문에서 그들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표현과 방법을 동원해서 유다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골자는 이것입니다.
‘유다는 패역하고 악한 성읍(12절)이며, 세금을 내지 않아 제국에 피해를 줄 것이다(13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잠재적 반역세력이고 과거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15절)’.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고소 어디에도 ‘성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왕에게 정치적인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이들은 단지 ‘성곽’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역’이라는 예민한 용어가 등장하고, 바사 제국의 관리들의 서명까지 동원했으며(8-9절), 역사까지 끄집어내어 모함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출 20:16).
날마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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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거짓 증거가 나라 잡는다.
옛것을 낡은 것이라 하여 업신여기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리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도 있듯 옛것 안에 들어 있는 지혜는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무슨 수식어를 덧붙이겠는가.
계몽주의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말씀에 대한 회의와 교만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서 그 절정에 달한 것 같다. 말씀을 거룩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코드가 되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여기에 십계명은 외치고 있다. 십계명은 낡은 것도 아니요 시효가 다 된 율법이 아니라고. 십계명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중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우리 시대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회에 거짓 증거가 너무 판치고 있다.
가정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국가적 단위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면 가정에서는 전화벨이 울리면 “집에 없다고 그래”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부모들의 거짓말 때문에 애꿎은 아이들이 거짓 증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 간에 오해가 발생한다.
그 원인도 거짓 증거에 내재하고 있다.
개인 영업장에서 영수증 처리기가 조작되고,택시 미터기에도 기계가 조작되고 심지어는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식품에도 가짜가 있다니 거짓 증거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은 기업대로 분식회계다,이중장부다 하여 거짓 증거가 기술적으로 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짓 증거가 사람을 잡고 있다.
올해는 지방선거도 있다. 선거철이 되면 난무하는 흑색선전,상대방 사생활 파헤치기,모함하기,무고하기 등 기막힌 전술의 거짓 증거들이 미디어를 타고 사람을 홀릴 것이다. 우리는 최근 거짓 증거가 남긴 또 하나의 서글픈 사례를 체험했다.
황우석 교수의 생명공학 연구를 중심으로 벌어진 거짓 증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까지 놀라게 했다.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와 지명도는 하루아침에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국민의 마음까지 상처를 입었다. 거짓 증거가 나라를 잡는 형국이다. 거짓 증거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온 국민이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 29:18) 삶도 문화도 거짓 증거의 희생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묵시를 붙잡을 일이다. 필사적으로 붙잡을 일이다. 거짓 증거는 필경 나라를 잡겠지만 묵시는 나라를 살릴 것이다.
출처: 한태환목사 예화집/추태화(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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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사마리아인들은 어떤 주장으로 유다를 모함하고 있습니까? (12-16절)
2. 사마리아인들이 본래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보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13, 16절)
3. 몸 담고 있는 교회나 다른 공동체에서 당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을 때 당신이 취하는 태도는 어떤 것입니까? 최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한 방법으로 어떤 일의 본질을 왜곡시킨 경험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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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며
그뜻을 따라 소망 주에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붙드셔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시고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소망중에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