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구원하는 일
사랑에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 사랑 때문에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사랑에 그런 힘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든 간에 사랑에 대해 새롭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갈수 있다.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과거가 우리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다. 더 이상 과거가 자신을 괴롭힐 수 없다는 참신한 통찰력을 가지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반면과거에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은 살면서 고통에 맞닥뜨릴 때마다 사랑이 주었던 그 평화로움과 은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통을 이겨낼 것이다. 그러한 사랑의 기억을 통해 고통으로 산산조각 난 마음을 다시 하나로 뭉치는 순간, 우리 마음에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에 겪었던 고통은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런 고통의 기억이 삶에 반드시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그 고통의 기억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에세이집 『다음에는 불을The Fire Next Time』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고통을 감상적으로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고통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고,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살면서 어떤 일을 만나든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유의 힘을 가진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다.
존 브래드 쇼는 『가족: 자기 발견을 위한 혁명적인 방법The Family. A Revolutionary Way of Self-Discovery』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족이란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들 사이의 관계도 완전히 원만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들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능력을 그 어떤 구애나 거리낌 없이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개인의 욕구와 가족 전체의 욕구가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처럼 정상적인 가정은 구성원들이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된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정에서는 누구나 자긍심을 기를 수 있고, 개인의 자율성과 서로에 대한 의존성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학자들이 가족의 유형을 '정상적 functional' 혹은 '기능장애dysfunctional'이라고 나누기 훨씬 이전부터, 어린 시절에 깊은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자란 이들은 이처럼 두 종류의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어릴 때 입은 상처와 고통은 자라서 가정을 떠난 뒤에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자기 파괴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자기 과시적인 행동을 보인다. 고통을 위로받거나 고통에서 해방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고, 한 번 산산조각 나버린 마음은 다시 결합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상처를 치유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가끔씩 자기감정을 폭발시킴으로써 자신을 다스릴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처는 일시적인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대개 우울증이나 극심한 슬픔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떻게 헤쳐 나와야 하는지 모른 채 누군가가 자신을 구원해주기만을 마음속으로 갈망할 뿐이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이들은 결국 자기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데 흥미를 느끼고 거기에 중독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중독이 그들의 영혼에 좋게 작용할 리없다. 다른 모든 중독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구하고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중독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는 길밖에 없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한동안은 억압된 감정을 분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운 좋게도 '사랑의 길'에 접어들 수 있었고, 그 후 내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회복되기 시작했다. 소녀 시절 교회에 다닐 때 항상 이런 말을 들었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자신 뿐이며,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해야 했다. 토니 케이드 밤바라Toni Cade Bambara 의 소설 『소금 먹는 사람들The Salt Eaters』에는 어느 젊은 여성이 자살을 시도하자 나이 많고 현명한 여성 치유사들이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세요. 자신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중요하답니다. 자신을 온전히 믿는다는 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사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랍니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지원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행복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이 입은 상처와 산산조각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백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마음을 열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치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벨 훅스, <올어바웃러브> 중 12장 치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