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준 (1546~1615)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의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이다.
1546년 허륜의 서자로 태어나 어머니는 노비였기에 법에 따라 노비의 신분이엿으나, 아들의 신세를 가엾게 여긴 아버지의 도움으로 노비의 신분에서 풀려나 중인이 되었다.
고향을 떠나 당내의 명의인 유의태의 문하에서 의학을 배웠다.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신분이라면 차라리 의술을 배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병을 고쳐줘야겠다고 결심했으며, 찾아오는 환자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친절하게 치료해 주었고, 그러자 나라 전체에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선조 7년 나라에서 의원을 뽑는 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때부터 혜민서, 봉사를 거쳐 전의로 발탁되어 왕실의 진료에 많은 공적을 세웠다.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어의로서 왕을 위주까지 호종하여 공으로 호성공신 3등에 올랐고,1606년 양평군에 봉해지며 숭록대부에 가자되어 의인으로는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중인 출신에게 품계를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대간의 반대로 직위는 취소되었고,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치료를 소홀히 했다는 죄로 파적, 유배를 갔다 광해군 원년에 다시 복직되었다.
허준은 선조의 명을 받아 그동안 계속해서 의학서적을 써오고 있었다.
1610년(광해군 2년) 마침내 16년간의 연구 끝에 25권의 방대한 한의서인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의 체질에 맞는 치료법과 우리나라 땅에서 나는 약초 등을 연구하며 조선 한방 의학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본과 청나라에도 간행될 만큼 의학적 가치가 뛰어나 조선의학 내지 동양의학의 성전이 되었다.
선생은 우리 나라가 낳은 대표적인 명의.의학자로서 한의학 주아홍의 거봉이자 동양의 의성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별세 후 숭록대부에 추록되었다.
저서로는 <동의보감>,<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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