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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 산소
히4:4-13,안식일의 의미와 하나님의 말씀
많은 사람들이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주일인가, 주일에 교회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할 때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게 됨을 감사하다고 할 때 맞는가? 아니면 지금 주일이 ‘sunday’즉 태양신을 섬기는 날인가? 오늘 4절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 칠일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고 했습니다(창2:2)여기서 ‘쉬셨다’로 번역된‘카테 파우센’은‘카타파우오’의 과거 시제로 씌여 ‘멈추셨다’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고전 헬라어는 동사로 ‘그치다, 끝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그만두다, 방해하다, 면직하다’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아포’라는 전치사, 분리가 함께 있어 하나님께서 일을 마치시고 바로 그 일들로부터 손을 떼시고 편히 쉬셨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안식일은 예배와 쉼을 특정인들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남종과 여종,그리고 외국인 나그네, 가축에게까지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신5:14)
우리가 아는대로 각각의 날들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는 종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라는 표현이 없어 이날, 일곱째 날을 천국의 쉼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육일동안 인간의 삶을 살고 저 안식에 들어갈 때는 이젠 모든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쉼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일상적인 노동의 안식인 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쉼, 안식을 누리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날에 안식에 참여하도록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켜도 안 지켜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날인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는 다르게 하루 쉬는 날로 생각을 하고 내 맘대로 하죠, 예배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말고 그것이 최고의 신으로 대하는 태도일까요? 경제적인 이권이 걸리면 바로 돌아서버리는 우리네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즉 구약에서 율법으로 주신 안식일은 법으로 하라 하셨지만 지금은 죽음에서 살려 주신 은총을 감사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심을 감사해서 자원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이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며 몸과 영혼이 주님 안에서 충전을 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평안과 쉼은 주님 안에서만 되어지는 일이니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 말씀은 6일동안에 최선을 다한 자만이 구별된 복된 날에 진정한 안식을 할 수가 있습니다.(출20:9), 게으름과 이기심으로 보낸 자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의 날에 영혼의 자유와 쉼대신 책망과 고통이 올 겻입니다.
그렇다고 6일이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내 날은 아닙니다. 온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우리는 우리의 삶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주님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믿어져야 하고 순종할 마음이 내 속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자행자지 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아서 순종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5절에서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광야에 백성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끝없는 불손종과 불신으로 그들은 그들 앞에 열려진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말씀합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과 허다한 잡족이 애굽은 나왔으나 광야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 하던 자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간 것처럼 오늘 교회 안에 불신자는 없는지요? 믿음이 아닌 종교생활은 주님나라에 갈수가 없습니다.
6절에서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못 들어간 안식에 여전히 문은 열려 있어 뒤에 남겨진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계십니다. ‘남아 있거니와’‘아폴레이페타이’는 ‘뒤에 남겨두다, 두고 가다’의 뜻인 ‘아폴레이포’의 현재 시제 수동태로 이 동사는 ‘계속해서 남아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수동태는 신적 수동태로 남겨두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안식에 대한 약속은 가나안으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유효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열려 있어 사모하고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요한의 때로부터 침노를 당하니 이 말은 천국을 얻기를 사모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1세대가 못 들어간 것은 약속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약속을 믿지 않아서 못 들어간처럼 오늘 우리도 교회 안에 들어와서 믿지 않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여기서 오늘날은 시편95편 7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95:7), 본문에서‘정하여’‘호리제이’의 원형‘호리조’는 ‘지방, 지역’을 의미하기도하고 ‘제한하다, 경계를 짓다’ 뜻이 있었는데 후에 ‘세우다, 결정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에서 헬라어는 ‘결정하다, 정하다, 임명하다, 선포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광야에서 시험의 날 이후에(히3:8)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정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새로운 시대, 회개의 마지막 기회가 제공되는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95편에서 오늘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이 성취되는 그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그날까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들어간 가나안땅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참된 안식의 예표인 것입니다. 창2:2절서 저녁도 없고 아침도 없는 언제까지나 영원한 안식, 천국의 안식을 사모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미리 말하였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느닷없이 비겁하게 오시거나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고 늘 미리미리 말씀하셔서 준비하게 하십니다.
8절입니다. 이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들어간 가나안이 약속의 성취로 본다면 그것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끌고 간 가나안은 없어질 육의 기업을 의미할 뿐 그것은 영원한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들은 수없이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자기가 편히 살기 위해서 원수들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완전히 가나안에서 원수들을 전멸시킨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은 진정한 안식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안식은 가나안에서 얻은 안식이 아닌 다른 날이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들어갔던 불완전한 안식의 땅이 아니라 그리스도예수께서 이끌고 가는 안식은 완벽하고 참되고 영원한 곳입니다. 이것은 사라질 이 땅에 안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곳에는 슬픔이나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예수께서 이처럼 완벽한 안식의 처소를 예비하려고 가셨습니다. 그 때가 되면 주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안식의 처소로 이끌어 들이시기 위하여서(요14:2,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9절입니다.
성도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안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9절에서 ‘안식할 때’‘삽바티스모스’는 ‘안식일을 지키다’를 뜻하는 동사 ‘삽바티조’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안식일의 휴식’‘안식일의 준수를 뜻합니다. 구약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단어로 이곳에서만 보이는 단어로 ’삽바티스모스‘는 본절에서 두 가지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는 천국의 축복된 완전한 안식을 가리키고 있는데 히11:10절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시는 도성, 히11:16절에는 더 나은 본향, 다시 말을 한다면 세상에서 맛볼수 없는 완전한 안식이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경험하게 될 행복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안식을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안식을 누리기 원한다면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천국의 안식을 바라보고 힘써 구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안식은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132:14)
10-11절입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죽어서 낙원에 가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저 천국의 안식이 보장된 자들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그러므로 성도는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브리서가 계속해서 주는 메시지가 뭘까요? 이미 구원을 얻었는데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서 구원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힘쓰라’는 말은 ‘열심으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사모하고 수고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이라고 했습니다. 살았다는‘존’은 자오의 현재 분사입니다. 또 ‘자오’의 뜻은 ‘생수’‘생명의 말씀’‘산길’‘산소망’등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수로 살아 있는 물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생수를 만나는 땅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는 심령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길 즉 생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면 그 길이 생명이 사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어떤 힘이 작용하여 사건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5: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에네르게스’는 ‘활동적인’‘힘있는’‘효력있는’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에네르고스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데 이단어에서 영어 에너지가 유래되었습니다. 아무튼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믿음으로 받을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자들에게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양날이 선 검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검은 육체를 벨수는 있어도 마음은 베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을 만지시고 쪼개어서 수술하시고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감찰하나니’의 ‘크리티코스’는 ‘구별하다’‘판단하다’‘판결하다’등을 뜻하는 ‘크리노’의 형용사로 ‘판단할 구 있는’‘구분할 수 있는’뜻이며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숨길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뜻, 우리의 지식, 통찰력까지도 숨길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나”했습니다.(대상28:9)
13절에서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숨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령까지 살피시는 전능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 우리 모두는 벌거벗은 것같이 들어 날것입니다.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는 것은 동물을 잡을 때 껍질을 벗겨서 알몸이 들어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은 숨김없이 들어나는 것입니다. 더 쉽게 생각할 수있는 엑스레이입니다. 사진 속에 나타나는 뼈와 신체내부를 생각하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의 속사람의 생각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울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는 짐승들을 데리고 와서 말하기를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속사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징벌을 하신 것입니다(삼상15:4-15)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질병까지 다 드러내시고 치유하십니다. 무엇을 통해서 알수 있을까요? 바로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 알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시고 고백을 통하여 치유하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말씀은 역사합니다. 그리고 치유하시고 행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주목하고 청종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거기서 오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체험하시고 땅에서도 누리시고 그리고 하늘에서도 누리실수 있기를 기원합니다...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