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편. 說卦傳.
제 1장. -----2 ☰ ☱ ☲ ☳ ☴ ☵ ☶ ☷
◎ 아래는 참고 사항으로 일독을 권한다.
"이는 모두 천지와 자연의 수이고,
'參天兩地(삼천양지)'의 '參兩(삼량)'도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름1, 둘레3에 이르러 삼이 되고 변1, 둘레 4에서
陽(양)이 되는 것은 그 이치가 또한 여기에서 나왔다.
책수를 헤아려 爻(효)를 정하는 법은 넷으로 세기 때문에
3⨯4=12이고 2⨯4= 8이다.
매 세 번 의 변화가 한 爻(효)가 되기 때문에
12⨯3=36 老陽(노양)의 過渫(과설)이고,
8⨯3=24 老陰(노음)의 過渫(과설)이고,
2⨯8=16, 1⨯12=12, 16+12=28 少陽(소양)의 과설이고,
2⨯12=24, 1⨯8=8, 24+8=32 少陰(소음)에 과설이다.
이 네 가지는 老陽老陰(노양노음), 少陽少陰(소양소음)의
자수가 參兩(삼량)에서 나오는 것이다.
4에 老陽老陰(노양노음), 少陽少陰(소양소음)의
모수를 곱하면 4⨯9=36 老陽(노양)의 과설이고,
4⨯6=24 老陰(노음)의 과설이고,
4⨯7=28 少陽9소양)의 과설이고,
4⨯8=32 少陰(소음)의 과설이다.
그 법은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參兩(삼량)에 근본을 두고 있다.
세 번 변하여 문장을 이루기 때문에
하나의 기수는 4가 되고 3⨯4=12 는 老陽(노양)의 남은 책수이다.
하나의 우수는 8이 되고 2⨯4=8, 1⨯8=8, 8+8=16은 少陽(소양)의 남은 책수이다.
2⨯4=8, 1⨯8=8, 8+8=16은 少陽(소양)의 남은 책수이다.
이 네 가지는 남은 책수로 老少(노소), 陰陽(음양)의 爻(효)를 정한다.
參兩(삼량)의 수에 의지하여 爻(효)를 정하니, 그 법이 다름이 없다.
그러나 老陽(노양)과 老陰(노음)은 지극하면 변하기 때문에
老陽(노양)과 老陰(노음)을 써서 爻(효)의 변화를 관찰한다.
參兩(삼량)의 법으로 서로 사귀고
老陽老陰(노양노음), 少陽少陰(소양소음)의 책수를 곱하면
老陽(노양) 2⨯36=72가 되고, 老陰(노음) 3⨯24=72가 되고,
小陽(소양) 3⨯16=48, 2⨯12=24, 48+24=72가 되고,
少陰(소음) 2⨯24=48, 3⨯8=24, 48+24=72가 된다.
이 老陽老陰(노양노음), 少陽少陰(소양소음)의 수는 서로 參兩(삼량)이 된다.
八卦(팔괘)는 參兩(삼량)으로 四象(사상)을 정하고
끝내는 하나로 돌아간다[終歸于一,종귀우일].
3⨯72=216은 곧 乾卦(건괘) 六爻(육효)의 책수이고,
2⨯72=144는 곧 坤卦(곤괘) 六爻(육효)의 책수이다.
이 乾,坤(건,곤) 두 책수는 參兩(삼량)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미루어 乾卦(건괘)의 爻(효) 192를 셋으로 나누면 64이고,
乾卦(건괘)의 책수 36을 곱하면 2,304 (36⨯64)가 된다.
坤卦(곤괘)의 爻(효) 192를 둘로 나누면 96이고,
坤卦(곤괘)책수 24를 곱하면 또한 2,304(96⨯24)가 된다.
총괄하여 말하면 乾卦(건괘)의 책수 6,912는 2,304에 3을 곱한 것이다.
坤卦(곤괘)의 책수 4,608은 2,304에 2를 곱한 것이다.
이 두 편의 책수는 '參兩(삼량)'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모두 「하도」의 생수가 ' 參兩(삼량)'의 근본이 되고
[河圖生數爲參兩之本,하도생수삼량지본]
조화와 자연의 오묘함이라는 것이다[造化自然之妙,조화자연지묘].
'陰(음)과 陽(양)에서 변화를 보아 괘를 세우고
[觀變於陰陽而立卦,관변어음양이입괘],
굳셈과 부드러움에서 발휘하여 효를 낳는다
[發揮於剛柔而生爻,발휘어강유이생효],는 것은
시초를 세워서 卦(괘)를 占(점)치는 것이다.
卦(괘)를 占(점)치는 방법은 老,少(노,소) 陰陽(음양)으로
六爻(육효)의 剛柔(강유)를 정하는데,
변하지 않는 爻(효)로 말하면,
少陽(소양)은 나아가도 지극함에 이르지 않고,
少陰(소음)은 물러나도 극에 이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두 少陰(소음)과 少陽(소양)은
그 굳셈과 부드러움을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爻(효)로 말한다면,
陽(양)은 나아가 지극함에 이르는데,
나아감이 지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변하기 때문에,
老陽(노양)이 변하여 少陰(소음)의 爻(효)가 되고,
陰(음)이 물러나 지극함에 이르는데,
물러남이 지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변하기 때문에,
老陰(노음)이 변하여 少陽(소양)의 爻(효)가 된다.
이 두 老陰(노음)과 老陽(노양)은 나아가고 물러남을 지극히 하여,
서로 변하여 움직이는 爻(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수로 말하면,
192 陽爻(양효)는 모두 乾卦(건괘) 36책을 얻어 9를 쓰고,
192 陰爻(음효)는 모두 坤卦(곤괘) 24책을 얻어 6을 쓴다.
이는 모두 卦(괘)를 세우고 爻(효)를 낳으니,
모두 乾(건)과 坤(곤)의 문에서 나오고,
하늘에서 셋을 취하고 땅에서 둘을 취하지 않음이 없다.
조화는 어긋나지 않음을 말하고[和者言不乘,화자언불승],
따름은 거스르지 않음을 말한다[順者言不逆,순자어불역],
도덕은 곧 이른바 도를 드러내고 덕행을 신묘하게 하는 것이다
[道德者顯道神德行,도덕자현도신덕행].
이치는 어지럽지 않음을 말하고[理者言不亂,이자언불난].
의는 이른바 음양의 의이다[義者陰陽之義,의자음양지의].
이치를 궁구한다는 것은 이른바 신명의 덕에 통하고
[窮理者通神明之德,궁이자통신명지덕]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는 것이다[類萬物之情也,유만물지정야].
명에 이른다는 것은 이른바 넓게 포괄하고
세세하게 이룬다는 것이리라[至命者範圍曲成也,지명자범위곡성야]."
결론적으로 道(도)에 조화하고 덕에 따르는 것이[和道順德,화도순덕]
卦(괘)를 세워지는 방법이며[卦所以立,괘소이립],
義(의)에 맞게 하는 것은 爻(효)가 세워지는 방법이다[理義爻生,이의효생].
性(성)이란 이치가 지극한 곳이기 때문에[理之極處,이리극처]
性(성)을 다한다 하였고,
命(명)이란 性(성)이 거기에 근거하기 때문에[性之自處,성지자처]
마음이 이른다고 하였다.
이쯤에서 여헌 선생과 함께 동해 구경을 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 以至於命(이지어명)'에 대한 강을 들어보자.
"아, 물, 물이라고 말하나 그 크고 작고, 깊고 얕을 물 뿐이겠는가.
내 평소 물을 본것이 가두어 놓은 물로는 작은 것은 우물이고,
큰 것은 연못일 뿐이었으며,
흐르는 물로는 작은 것은 시냇물이고,
큰 것은 江河(강하)일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기를 '가두어 놓은 물로는 연못보다 큰 것이 없고,
흐르는 물로는 江河(강하)보다 큰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제 바다에 나와 보니 연못과 江河(강하) 모두,
다시는 내 눈에 큰 물이 될 수 없었다.
똑같은 물인데도 서로 비길 수 없음이 이와 같단 말인가.
그러나 이 마다가 이렇게 크고 이렇게 깊은 까닭을 연구해 보면,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고 모으고 모아 이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 근원을 연구한다면
이 바다는 곧 강하와 시냇물인 셈이다.
그로므로 水神(수신)에게 제시하는 자들이
河水(하수)를 먼저하고 바다를 뒤에 함은 이 때문이다.
우리의 학문에 있어서도 이러한 道理(도리)가 있다.
性(성)을 다하고 천명을 아는 것[盡性知命,진성지명]이,
반드시 효도하고 공경하고 충성하고 성실함에 근본하며,
신명의 이치를 연구하고 조화를 아는 것[窮神知化,궁신지화]이
또한 물 뿌리고 청소하고 응하고 대답하는
사이에서[灑掃應對,쇄소응대] 말미암는다.
효도하고 공경하고 충성하고 성실함이
애당초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나,
性(성)을 다하여 천명을 앎에 이르고[盡性知命,진성지명],
물뿌리고 청소하고 응하고 대답하는 것[灑掃應對,쇄소응대]은
다만 淺近(천근)하여 행하기 쉬운 예절이나,
신명의 이치를 궁구하고 조화를 앎에 이를 수 있으니
[知於窮神知化,지어궁신지화].
멀고 크고 높고 깊은 道(도)의 뜻을 둔 자[志遠大高深者,지원대고심자]는
진실로 가깝고 작고 낮고 얕은 일을 종사하여야 하고
[固當從事近小卑淺,고당종사근소비천],
가깝고 작고 낮고 얕은 일을 하는 자는
멀고 크고 높고 깊은 道(도)를 채우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데 오늘 나와 함께 이 바다를 구경한 자들은
그 큰 것이 작은 것을 쌓음으로 말미암아, 커지고,
깊은 것이 앝은 것을 합함으로 말미암아 깊어짐을 안다면,
오늘날 구경한 것이 어찌 다만 바다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