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온기를 남기고 간 시인을 애도하며
- 김정헌 유고시집에 부쳐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I.
김정헌 시인은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우리 곁에 남아 아직도 숨 쉬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6일 양은순 고문님의 아드님이신 김정헌 시인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무너지는 슬픔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가 떠난 지 아직 일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 <부산펜문학 19집>(2022년)에 <어제>와, 제13회 중구거리시한마당 시화집(2021년)에 <찾잔의 온기>라는 유고시를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김정헌은 1982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 국문과, 부산경상대 방송영상학과에 적을 둔 바 있으며, 2009년 여름 <시와 산문>지에 시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2010년 <문화와 문학타임> 소설 부문 신인상 당선, 2015년 여름 <문화와 문학타임> 시나리오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써야 하는 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시집 한 권 소설집 한 권 시나리오집 한 권도 남기지 못한 채로 저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아직 수만 리 가야 할 생이 남은 청춘을 왜 데려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 시인은 산사에서 시도 쓰고, 문예지 편집일도 돕고, 어머니가 하는 대학원 과제 타이핑도 해주고, 각종 문화단체 공문도 서류도 챙겨주던 성실하고 과묵한 청년이었습니다.
Ⅱ.
우리 사)국제펜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원이기도 해서 그의 부고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젊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두 분 월강 큰스님과 양은순 고문님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고, 그 슬픔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번도 아니라 두 번씩 장례식장을 드나들고, 마지막 발인하는 것도 지켜보고, 공원묘지까지 배웅을 했습니다. 온마음을 다해 마지막까지 김정헌 시인이 가는 길에 동행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일 년 동안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저 세상에 보내고 홀로 남은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산펜을 대표하여 저는 그를 잘 보내드렸습니다. 편안하게 영면하리라 믿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그 당시 그가 남긴 시 <어제>를 읽고, 부산펜단체톡방에 이렇게 문자를 올렸습니다.
“고 김정헌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 시인은 부산펜문학에 <어제>라는 유고시를 남기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편안하게 영면하시리라 믿으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인은 <어제>라는 시를 통해, 라캉의 상징계적 질서인 언어의 존재성과 시의 자족적 정신을 시종일여한 시심으로 읽어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김정헌 시인의 간절한 시관을 시가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시공과 언어의 관계성을 묘파한 시인님, 천당에 가셔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 부산펜회장 권대근 올림”
곧 9월에는 광주펜이 주최하는 제25차 영호남문학인교류한마당 행사가 나주에서 열릴 것입니다. 젊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라도 땅 밤하늘을 걸었으면 했는데, 아쉽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뜬 시기였지만, 이미 정헌 시인은 그 즈음에도 투병을 하면서 양산부산대병원 입퇴원을 수시로 할 때였습니다. 양운순 고문님이 경주에서 개최된 제24차 영호남문학인교류한마당 행사를 위해 경주로 오다가 정헌이의 부름을 받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곧 슬픈 소식이 찾아왔습니다. 자식과의 영원한 이별, 이렇게 무서운 별리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누구에게나 고통입니다만 가장 큰 고통은 그 젊은 시인의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금어사 ‘양은순 문학의 길’에 핀 어떤 꽃이 행복을 의미한다면, 아마도 그 꽃은 고 김정헌 시인을 애도하기 위해 피었고,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부산 동래구 미남로 146번길 11 광혜병원 장례식장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니다’는 화환들이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그 꽃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2022년 12월 18일 오전 11시, 부산영락공원까지 장의차를 따라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2월 16일 오후 3시 36분 양은순 고문님으로부터 공식적인 부고장이 접수되었습니다. 우선 전화를 드려 위로했습니다. 덤덤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월강 큰스님의 음성에 말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방문을 했습니다. 고요한 장례식장, 코로나가 종식이 안 된 상태라 마스크를 쓰고 있던 고문님은 저를 보자마자 마스크를 벗어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빨리 많이 얼굴이 축날 수 있는지 얼굴은 온통 슬픔의 무게로 무겁게 보였습니다.
가족과 김정헌의 이모가 울부짖고, 김정헌의 형인 소설가 김정렬과 형수가 손님 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이라 애도에 참석하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때였습니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빈소에서 요기를 좀 하면서 상주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죽음 앞에 있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밥을 먹는 생의 부박함이라니. 오래 아팠던 고인은 병원과 사찰을 드나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끔 안부를 물으면 양 고문님으로부터 좋아졌다는 말도 들었던 때도 있었는데, 그해 2022년도는 부쩍 병원행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23년 새봄을 맞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은근한 기대도 했는데 며칠 새 갑자기 악화되어 세상을 버렸다고 합니다. 위로가 되는 것은 정헌이 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함께 어머니와 있을 수 있었던 것, 편안하게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은 타인의 죽음에서 발견됩니다. 나의 죽음은 머리로 떠올릴 수 있으나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제삼자의 죽음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이미지와 숫자로 지나쳐갑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 앞에서 인간은 세계의 단절과 세계보다 더 큰 한 인간과의 끝나지 않는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김정헌 시인과의 인연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삶 앞에 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은 삶의 영역에서 필수적인 명복의 언어로 생각되는 의례와 종교적 절차를 거치는 것입니다. 그 알 수 없는 상태에 대한 한계를 직감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남은 우리가 고 김정헌 시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신체의 온기가 다 가기 전에 손을 꼭 잡는 일이며, 온기가 다한 신체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며,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은 일이겠지요.
후썰은 <현대를 위기의 시대>라 진단합니다. 현대인은 현재 더 이상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유지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진단의 핵심입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은 김정헌 시인의 사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김정헌의 유고시 <찾잔의 온기>와 <어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지금 여기는 김정헌 시를 평하는 자리가 아니고 발문을 쓰는 자리이기 때문에 문학적 평가는 생략하겠습니다. 시가 예술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문학성과 철학적 텍스트를 생성해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세상읽기의 장을 열어주는 김정헌 시가 가진 그 가공할 만한 철학적 힘 때문에 독자들은 진실을 생명으로 하는 이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할 것입니다.
Ⅲ.
김정헌 시인의 시 모두가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시를 읽어낸다는 것은, 그 숨겨진 의미를 우리 사회의 현실과 비교하며 차근차근 이해해나가는 것입니다. 시의 강을 큰 호흡으로 횡단하며 시인의 고뇌에 동참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은 시가 주는 촉촉한 감동에 젖어 들게 될 것입니다. 삶과 유리된 예술은 삶을 해칩니다. 인간행위의 모든 산물은 삶과 격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입니다. 그의 시정신은 현실의 재현하려는 노력에 근거하고, 한 개인의 내면 속에 녹아있어 타인과의 공유욕구를 불러낸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 하겠습니다. 그의 시, 세상의 현상학이 말해주듯이 그는 늘 타자와의 화해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를 통해 말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온기>가 필요하다고, 시적인 순간의 삶이 가장 섬세한 언어로, 그에 합당한 언어로 드러나고 조직되었다는 점에서 김정헌은 진정한 시인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