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章 불교 경전 - 교판敎判
화엄종의 경전 분류 -종밀 5교판
우리는 외식을 하고자 할 때, 이왕이면 전문 식당을 찾으려고 한다. 칼국수를 먹고 싶으면 칼국수만 파는 식당을 찾고 싶고, 냉면을 먹고 싶으면냉면 전문 식당으로 가고 싶다. 그런데 전문 음식점을 찾을 때의 마음과 막상 음식을 주문할 때의 마음은 다르다. 동행인이 여럿이라면 물낸면과 비빔낸면 가운데 어느 하나로 통일하기도 쉽지 않다.공기밥을 주문하더라도 어떤 이는 잡곡밥을, 다른 이는 쌀밥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한 종류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음식점을 찾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식당에 여러 가지의 다른 선택도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칼국수집이라도, 최소한 대여섯 가지의 다른 메뉴를 마련한다. 화엄종 계통의 교판 가운데, '불교 속에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서 참으로 다양한 메뉴의 가르침을 제공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종밀종밀 대사가 불굘르 다섯 부류로 나눈 교판이다. 종밀 5교판의 기본 골격은 앞에서 살핀 바 있는 현수 5교판과 다를 바 없지만, '인천교人天敎' 즉 "천상락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라는 표현과, 가르침의 단계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는 구분이 있다. 종밀 대사의 5교판은 첫째 '인천교', 둘째 '소승교小乘敎', 셋째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 즉 "중생의 흔들리는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는 대승의 가르침." 넷째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 즉 "중생이 가지는 모든 종류의 집착을 부순는 대승의 가르침." 다섯째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 즉 "불법의 진리를 전부 드러내는 최고의 궁극적인 가르침."이다. 첫째 인천교는 최고의 목표를 천상락에 두는 사람을 위한 기복적 가르침이다. 세간적인 선업을 지어서 그에 상응하는 좋은 감응을 받는다는 것이 주된 가르침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접할 수 있는 서양 종교가 이 단계쯤에 속한다. 서양 종교는 무조건 자기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자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는 스스로 없어지고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 속의 인천교는 저 수준보다 높다. 하늘이 궁극적인 이상이 아니고, 그곳에 태어 난다고 해도 영원히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지은 복을 다 까먹으면 다시 아래로 내려 와야 한다. 또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은 천상계가 아니고 인간계이다. 지옥은 너무 괴로워서 도를 닦기 어렵지만, 천상은 너무 편해서 도를 닦기 어렵다. 『제위경提謂經』등의 가르침이 이 인천교에 속한다. 둘째, 소승교는 모든 교판에서 가장 낮게 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교보다는 높다. 인천교를 이 소승교 아래에 배치한 종밀 대사의 번뜩이는 지혜가 놀랍고 통쾌하다. 서양 종교가 아무리 큰소리 쳐도, 저 가르침은 기껏해야 소승교보다 낮은 인천교에 속한다. 그리고 불교내에도 인천교가 있다. 지하철에서 "불교는 어려워서 알 수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철학이요 종교가 아니다." 라고 떠드는 일부 서양 종교 광신자들에게, "저들의 종교는 기껏해야 인천교에 속하고, 그것은 불교의 많은 메뉴가운데 최저의 염가품일 뿐"이라고 알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대승법상교와 넷째 대승파상교는 현수 5교판에서의 만법유식萬法唯識과 일체개공一切皆空의 가르침을 두 부류로 갈라 놓은 것이다. 『해밀심경』등은 망심이 움직여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반야부 불경은 만법이 공하다는 것을 알려서 반야 지혜를 깨우치게 한다. 다섯째, 일승현성교는 현수 5교판의 대승종교大乘宗敎, 돈교頓敎, 원교圓敎를 하나로 묵은 것이다. '일승一乘'이라는 말은 "최고 도는 궁극적인 대승"을 의미하거니와, '현성교顯性敎'에서의 '성性'은 현상 이면의 본체를 나타낸다.
화엄종 종밀 대사의 5교판 인천교人天敎 삼세업보와 선악의 인과를 가르침 소승교小乘敎 무아를 설함 대승법상교大乘法相敎 중생의 흔들리는 마음의 상태를 설함 대승파상교大乘破相敎 중생이 가진느 모든 종류의 집착을 부수는 대승의 가르침 일승현성교一乘顯性敎 불법의 진리를 모두 드러내는 최고의 궁극적인 가르침
2017년 10월 20일 慧命 합장
[지명스님의 한권으로 읽는 불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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