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마태 수난곡>에는 예수의 죽음 뒤에 <언젠가 나에게 죽음이 닥친다면(Wenn ich einmal soll scheiden)>이라는 합창이 나옵니다. 텍스트는 깊은 신화적 이미가 담긴 감동적인 기도이고,선율은 수 세기 전부터 부활절을 앞둔 어두운 고난주기에 많이 부르던 성가입니다. 그리고 합창 <오,피와 상처로 얼룩진 머리여(O Haupt voll Blut und Wunden)>도 이와 같은 선율이지요. 원래 이 선율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랑노래입니다. 한스 레오 하슬러(Hans Leo Haßler)가 “내 마음 나도 몰라(Mein G’müth ist mir verwirret)"로 시작하는 가사에 곡조를 붙여 만든 세속적인 노래지요. 말하자면 바흐가 이미 존재하는 노래를 자신의 음악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음악학에서 ‘패러디’라고 부르는 이 기법은 특히 초기 다성 음악에 빈번히 사용됩니다. 아마 작곡가는 종교음악이나 세속음악의 특성을 음악으로 구분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오히려 가사의 내용,아니 음악의 전반적인 배경이나 상황이 이 둘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지요. 그렇다고 음악의 배경이나 상황이 전적으로 그 음악의 종교성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수난곡이 교회가 아니라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또 바이올린 협주곡이 예배 시간에 울릴 수도 있지요. 여기서는 종교음악이냐 세속음악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헨델의 오페라나 오라토리오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와 종교적인 고난을 노래하는 아리아가 동일한 음악적 재료와 음형을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처럼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는 분석을 해야 명확히 드러날 수 있는 것이지,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그 연관성을 밝혀내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우리 문화권을 벗어나게 되면,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경계를 분명 히 하는 것은 한층 어려워집니다. 우리에게 사전지식이 없다면,인도의 불교음악을 종교음악으로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테니까요. 언어와 마찬가지로 관습과 인습에 익숙해야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음악을 접하면 일단 대략적인 감으로 종교음악인지 세속음악인지를 구분해내고, 더 많는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음향 속에 내재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출처:쾰른음대 교수진, ‘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