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디스(스스로 망가지기)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귀를 더욱 쫑긋 세우게 됩니다.
나레이터의 명징한 내용분석과 단호한 음성이
뭔가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줄 것 같아서입니다.
SBS-TV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해설을 맡고 있는
김상중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압권입니다.
그런 그가 ‘셀프디스’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KBS-TV ‘개그콘서트’에서
완전히 망가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은 옛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바보연기를 하더군요.
사실 이 방송사에 나갈 드라마 홍보 때문이었고,
그걸 그대로 털어놓아 웃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걸 본 느낌은 “참, 저런 소탈한 일면도 있구나.
빼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구나.”라는 거였습니다.
‘셀프디스’는
‘스스로(self)를 깎아내리는(disrespect)’ 말의 합성어입니다.
쉬운 말로 근엄한 사람이 예기지 못한 모습으로 확~ 망가지는 것입니다.
셀프디스는 코미디의 주요기법으로 활용됩니다.
성직자나 고위 관리, 교장선생님, 대학총장...이런 사람들이
입에 검은 장을 묻혀가며 짜장면을 먹거나
바지 앞 지퍼가 열린 채 거리를 걷거나
단상에 오르려다 꽈당 넘어질 경우
웃음의 효과는 아주 큽니다.
2012년 영국왕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찰스 왕세자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했는데요,
거듭 “폐하(Your Majesty)”라고 하다가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말을 멈췄습니다.
사람들이 숨을 죽였죠.
찰스 입에서 나온 말은 유아가 어리광을
부리듯 한 목소리로 여왕을 향하여
‘엄마(Mummy)’라고 한 것입니다.
영국 왕실이 얼마나 근엄하겠습니까?
그것도 고위 왕족이 좀처럼 듣기 어려운
‘평민 투’로 말을 했으니, 객석에선 웃음이 쏟아졌습니다.
찰스 왕세자가 나이 예순다섯 되도록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처지를
스스로 풍자해 축제 분위기를 띄운
대박 중 대박의 말이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연예인 못지 않게 정치인들도 간혹
‘셀프 디스’ 홍보 전략을 구사합니다.
‘디스(dis)’는 ‘경멸하다’라는 뜻의
영어권 속어이기도 합니다.
이거 한동안 화제가 된 영상물인데요,
오바마 대통령이 제대로 망가진 적이 있습니다.
건강보험 개혁을 지지해달라며
유투브에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 내용이 ‘대통령이 저렇게까지!’할 정도로
자신을 냅다 깔아뭉개더군요.

그는 우유에 쿠키를 적셔 먹으려다
쿠키가 우유 컵에 들어가지 않자
“고마워, 오바마~”라며 한숨을 지었습니다.
요즘 미국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안 풀릴 때
‘다 오바마 때문’이라고 비아냥 대며
“Thanks, Obama”라 한다죠.
오바마는 그 푸념을 자신에게 내뱉었습니다.
가끔 코미디언 같은 행동을 한다든가 그러면서
주위 사람을 웃기는 오바마,
참 소탈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입니다.
바라는 것은, 우리 대통령께서도 개그프로그램에 출연하셔서
심하게 한 번 망가져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볼 수 없을까요?
..................말글스튜디오/김재화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