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김형석의 「백세 일기」 (3/4)
3부.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는다>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인가]
50대 남자가 어려서부터 아버지 친구이면서 자기를 사랑해주던 노인에게 세배를 드리면서 “백수(白壽) 하시기 바랍니다!” 이전 같으면 반기면서 덕담도 하고 먼저 세상 떠난 아버지 얘기도 하셨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밖으로 나와 친구인 아들에게 그 얘기를 했다. 아들이 “뭐? 백수하시라고 그랬어? 명년이면 백수가 되셔. 1년만 더 사시라고 했구먼…”이라면서 걱정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가 큰일 났다 싶어 다시 들어갔다. “세배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제야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멀리서 왔는데 놀다가 가게. 명년에 또 오게나”라면서 반기더라는 얘기다.
[나 말고 다른 이에게 갚아라]
지금 캐나다에 사는 J씨가 대구에서 발행한 일간지 기사를 보내왔다. ‘지난 가을에 B라는 여의사가 세상을 떠났다’로 시작하는 기사였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편입된 수도여자의과대학 재학생이었다. 졸업 후에 개인병원을 운영하면서 최근까지 많은 환자를 돌봐주었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지방 강연을 갔을 때다. 한 30대 남성이 찾아와 뜻밖의 인사를 했다. 내가 학비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대학을 졸업했단다.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장학금을 준 일이 없을 텐데요”라고 반문했다. 자기가 고생하고 있을 대 의사 B가 장학금을 주면서 “이 돈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대학 다닐 때 김형석 선생이 도와준 것이다. 너에게 주는 것은 김 선생을 대신해 주는 것이니까 너도 이다음에 사정이 허락하면 이 돈을 가난한 학생에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보다 진한 사랑]
“김 선생은 잘못을 저지르고 부인한테 사과한 적이 없소?” A 교수의 느닷없는 질문이었다. “있기는 하지만 나는 절대로 공처가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야기를 먼저 해야 A 교수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옛날얘기를 했다.
1960년 초에 내가 미국에 가 머물고 있을 때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환화를 원화로 바꾸면서 옛날 돈을 모두 무효화시켰던 것이다. 그 때 한국에 있던 아내는 내가 몰래 숨겨둔 돈이 있지 않을 까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는 큰딸과 아들에게 “너희들, 나와 함께 아버지 서재에 올라가 책갈피를 들춰보자”고 했다. 책 케이스 속에서 지폐뭉치를 찾아냈다.
미국에 있는 내게는 귀국하면 가족회의를 열어 따져보아야 할 사건이 발생했다고만 했을 뿐 그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난 뒤였다. 하루는 아내가 발설하고 애들이 합세해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궁지에 몰린 나는 “너희들도 이다음에 나 같은 처지를 당해봐라. 내 친구 교수들은 사모님 몰래 비자금을 만드는 게 보통이란다. 그래도 나는 책 케이스에 넣어두었으니 정직한 편이다” 말하고는 용서를 빌었다.
내 얘기를 들은 A교수는 “그 당시에는 누구나 다 그랬는걸. 큰 잘못이 아니지”라면서 웃었다. 그의 얘기는 내용이 좀 달랐다.
어디서 강연을 하면서 “여러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아시지요. 부자간이나 형제 사이는 혈연관계입니다. 한 번 인연이 맺어지면 죽을 때까지 그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다. 그 뜻을 강조하기 위해 ”젊은 여러분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도 싸우거나 이혼을 하면 그 후부터는 남남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피는 물과 다르다는 예로부터의 가르침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강연을 들은 사람이 A 교수의 부인과 가까운 지인이었다. 그날 강연 내용을 부인에게 알려주면서, 그것이 남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까지 과장했던 모양이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A 교수의 부인이 “그래, 우리는 헤어지기만 하면 그뿐이지요? 몇 십 년의 애정은 아무것도 아니고요”라고 따져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물었더니 “내가 잘못했다 했지요. 그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거든요”라면서 멋쩍어했다. A 교수의 성격과 표정으로 보아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쉽게 사과하면 되나. 나 같으면 ‘당신은 사랑이 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먼’ 하고 응수했겠다”고 했더니, A 교수도 “아차, 그걸 내가 몰랐구나”라면서 아쉬워했다.
[마지막이 될 주례를 마치고] 유정민 이야기
나도 여섯 번의 결혼 주례를 했다. 첫 주례는 대원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1978년 1학년 담임 반 학생이었는데 1981년 졸업 후 7년이 지나서 연락이 왔다. 정말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장을 찾아갔다. 결혼 전 신부와 찾아오지 못하고 혼자 왔었다. 신랑 집에서는 적극 결혼을 반대했지만 신랑이 그냥 밀고 나갔다. 신부가 소아마비로 못 걸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결정 후 아기까지 잘 낳았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신랑이 좀 수줍어하고 얌전한 편이었다. 그런 제자가 결혼을 한다니 정말 <사랑은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3단계] (유정민 요약)
한 대학교에서 한-일 친선 교류를 도모하는 평화포럼이 있어 한국 측 기조강연을 맡았다. 강연장에 ‘100세 철학자 김형석’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요사이는 나이를 팔아먹고 사는 것 같았다. 아는 철학 교수는 학생으로 30년 교수로 30년을 사니 인생이 끝났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정년을 맞으면 생산적인 인생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60을 넘기고 나니까 그때부터 강의다운 강의도 하고 학문에 대한 의욕이 솟았다. 그래서 학교 교육은 끝났으나 시회 교육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했다. 70대에 들어서는 <역사철학>, <종교의 철학적 이해>를 썼고 김태길 교수의 <한국인의 가치관>도 76세에 나왔다. 앞으로의 인생은 배움 30년, 직장 30년, 사회인으로 30년으로 보아도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100세, 나의 비결]
1985년 내가 연세대학교에서 종강식을 가졌다. 후배들의 진출을 고려했고, 한 대학의 교수로 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대학 정규 강의를 끝내기로 했다. 사회교육에 전념하며 대학 특수 과정 강의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독서 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에 도움을 주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 하는 자유로운 봉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경험을 얻었다.
대학을 끝낸 후에 철학적인 저서를 몇 권 남겼고 대학에 있을 때보다 더 성숙된 강의, 강연을 했다. 이론적 학문과 더불어 실천적 진실과 진리에 뜻을 모았다. 70대가 끝나면서 반성해보았으나 내가 정신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90이 될 때까지는 그 정신적 위상을 지켜보자는 의욕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내 사상이 일을 만들고, 일이 지적 수준을 계속 유지해주었다.
그러는 동안에 90을 맞게 되었다.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김태길, 안병욱 교수가 활동 무대에서 떠나갔다. 곧 내 차례가 될 것이라는 허전함이 엄습해왔다. 정신력에는 변함이 없고, 창의적이지는 못해도 그 위상은 유지할 수 있는데 신체적 여건이 뒤따르지 못했다. 그때 얻은 교훈은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면 60에서 70까지는 정신적으로 성장, 성숙할 수 있고 그 기간에 맺은 열매가 90까지 연장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체험과 자신감이었다.
90고개를 넘었다.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가꾸고 키워가자는 다짐을 했다. 정신적 기능과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모르겠는데 신체적인 늙음은 계속됐다. 정신과 육체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인간적 성장은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후배와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모범과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의지는 감소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그 정성 어린 노력이 나를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까지 이끌어주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한 기간은 40에서 60대 중반까지였고 지금 와서는 97세에서 100세까지가 되었다. 올해 4월이면 만 100세가 채워진다. 그때까지는 지금의 삶과 일을 연장해갈 생각이다.
30대까지는 건전한 교육을 받는 기간이다. 60대 중반까지는 직장과 더불어 일하는 기간이다. 60대 중반부터 90세까지는 열매를 맺어 사회에 혜택을 주는 더 소중한 기간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댓글 그분의 삶과 생각이 참으로 부럽고 아울러 송구할 뿐이요
읽으면서 '참 바르게 사셨구나'했어요. 신문 연재용이라 길지 않고 생활에서 일어나는 글이라 마음에 와 닿더군요. 하여간 닮고싶은 진정한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