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으로 사유한 현상 이전의 언어들
-박선경 작품론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뉴스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장마가 연 며칠 이어진다. 이 비로 인해 누군가는 이익을 취하고 누군가는 비통에 또 잠길 것이다. 그런 때 박선경 시인의 시 다섯 편을 받아보며 몰아치는 비와 바람을 생각했고 그중 <안녕>과 <선물>, <새로운 길>이란 시에서 ‘바람’이란 시어가 눈에 들어왔다. 계절과 일기에 상관없이 시인은 시를 쓴다. 마치 쓰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미안하거나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대다수 문인들이 겪는 강박증일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도 유별나 모든 것이 시적 세계로 상관되어 유입됨은 물론이고 변화된 풍경을 통해 상상 속 사유를 촉발한다. 그 과정은 관념처럼 모호해지다 여러 번의 시적 갈등을 겪다 이내 선명한 형상 이미지로 구체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선경 시인의 시 다섯 편은 그런 시적 상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삶의 순간으로 다가온 사물에 대한 천착과 사유가 연륜으로 체화된 본성을 자극하여 시적으로 발현한 것이다.
바람이
호명하면
허공으로
파도치며
떨어지는 꽃
땅에 일생이 묻히고
나의 마지막 인사
“안녕”
또, 바람이 분다.
-<안녕> 전문
계절의 변화에서 발생한 비와 바람 그리고 눈과 바람은 이종 세트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변화를 거듭하여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로 그 계절에 맞는 풍경을 보여준다. 박선경 시인의 시 안에 풍경은 바람과 꽃으로 환기되면서 삶으로 변주를 이룬다. 그 바람과 꽃은 실재한 풍경이 아닌 상상 속 이미지를 삶으로 전환하여 인식된다. 비와 눈이 강한 바람에 의해 허공에서 땅으로 떨어지듯 인생사도 생의 풍랑을 만나면 때론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박선경 시인도 그런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바람이/ 호명하면”이란 말로 언젠가 닥칠 인생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가 거쳐 가야 할 그 길을 담담히 맞이하겠다는 결의처럼 들리지만, “허공으로/ 파도치며/ 떨어지는 꽃”의 시구에는 생에 대한 미련이나 안타까움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허공은 허방과 달리 아차 하면 무한 추락을 예고한다. 한순간 허방을 잘못 디뎌 몸이 상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례는 산업 현장에서 추락재해의 원인이 되어 중대 재해를 유발한다. 그런데 화자는 상상 이상의 ‘허공’에서 ‘파도’ 치듯 꽃(사람)을 흔들어 기어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생살이의 고통을 말한 것으로 순연한 삶의 마감이 아닌 생로병사에 이르게 된다는 생의 비유와 같다. 하지만, 박선경 시인은 꽃이라는 풍경을 통해 이미 죽음에 이른 과정을 학습하였기에 고통에 겨워하는 마음을 털어버린 듯하다. 화사하게 핀 절정을 내려놓고 무한 허공에서의 낙화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그런 과정이 언젠가는 사람에게도 닥칠 운명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 끝장을 보려는 듯 ‘바람’은 알게 모르게 꽃을 덮치려 들 것이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며 언제그랬냐는 듯 또 다시 계절과 합을 이뤄 존재를 알리듯 꽃은 필 것이다.
들판에
비누 거품 같은 메밀꽃 펼쳐져 있다
그 곁에서 바람은 비눗방울 날리고
사람들 맑은 시인의 눈을 얻어
세상으로 돌아간다
너울, 너울
물길 터지듯
사람 사는 땅, 불이 켜진다
-<선물> 전문
산과 들은 꽃을 피워 생동하는 계절을 알린다. 화자는 메밀꽃의 만개를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마치 비눗방울을 터트리듯 하얗게 핀 풍경에 도취된다. 여기에서도 가만히 있는 메밀꽃을 흔들어대는 바람은 여지없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마음 안으로 번져와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화자뿐만이 아니라 만개한 메밀꽃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그 사람들 가슴마다 메밀꽃은 각기 다른 감흥으로 생명성에 대한 환희를 만끽할 것이다. 더불어 복잡한 세상살이에 찌든 마음을 위로받고 그들은 자신들의 처처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 돌아가 어두웠던 마음을 환하게 하듯 “너울, 너울/ 물길 터지듯/ 사람 사는 땅, 불이 켜진다”라며 자연으로부터 사람들은 긍정과 활력을 충전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화자도 그래서 행운처럼 시 한 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시인은 실재한 사물에 또 다른 시적 세계를 부여할 수 있으니 남들보다 더한 고뇌에 빠져들어야 한다.
갑자기
앞이 뿌옇게 보이게 된 엄마에게
의사는 수술해도 마찬가지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걷는 게 무서워
꼼짝도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는
적막강산
돌아보면
바람 앞에 등불
무수한 발자국 위로
왼발, 오른 발
걷는 연습을 한다
허공을 걷듯
두려움의 몸짓은
익숙한 골목길에서도
허우적거리고
자식들도 엄마 보폭에 맞춰
흔들, 흔들
우리 가족
고비 고비
산 넘고 들 넘는다.
-<새로운 길> 전문
풍경으로 대변되는 사물은 형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풍경을 형상체로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감각기관은 눈이다. 언제부턴가 시력이 저하되어 “갑자기/ 앞이 뿌옇게 보이게 된 엄마에게/ 의사는 수술해도 마찬가지라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치료를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로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껏 해온 일상적인 생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방 안에 은거하듯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 상책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도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오로지 감각으로 전달되는 촉감으로 “허공을 걷듯/ 두려움의 몸짓은/ 익숙한 골목길에서도/ 허우적거리고” 온갖 노력을 다해 거리 이동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당사자인 엄마뿐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많은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래도 가족이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엄마의 시간을 함께 하며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처음부터 세상에는 익숙하고 편해진 것은 없었다. 마음에 담아놓은 것들을 죄다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1.
떠나야 하는 것일까
재개발 현수막이 흩날리고
철거하라는 글씨가 말없이 번지면서
내일이 없는 빈민가의
정적
파문이 일었다.
2
머무는 곳이 그저 고향인 사람들
이리저리 모여들어
함께 웃고 우는 언덕이었다.
밀려오는 포크레인에
무성한
세월, 공들인
나무가 잘려나가고
무너지는 집
3.
누군가
버려진 피아노로
리스트의 ‘위로’를 연주하고
뿔뿔히 흩어지는 길에서
주민들과
뒤엎어진 대지는 관객이 되어 위로 받는다
-☛은 밥상뉴스 ‘리스트의 위로’는 대전시, 재개발 퍼포먼스 기사 ‘막다른 골목’ 프로젝트인
-<막다른 골목> 전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다가왔고 시간이 흘러 낯익은 풍경이 되었다. 그 풍경 속에 그들만의 시간이 축적되어 나름대로 의미가 되었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 추억 속 삶의 근거가 된 곳을 흔히들 고향이라 생각하며 아련한 기억으로 향수되곤 한다.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곳은 도시 재개발로 철거가 될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많은 말들이 난무하였을 테고 그런 현실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다. “떠나야 하는 것일까/ 재개발 현수막이 흩날리고/ 철거하라는 글씨가 말없이 번지면서/ 내일이 없는 빈민가의/ 정적/ 파문이 일었다.”라며 절망적인 상태를 피력하고 있다. 철거될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조만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어떤 사회적 압박에도 항거할 수 없는 열악한 그들을 위해 연대하고 있는 화자의 심정을 시적으로 환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오랫동안 그들(철거민)이 정 붙이며 살아온 마을이 포크레인에 의해 해체되면서 사라지고 만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상실감은 매우 큰 것으로 그 누구도 치유해 줄 수 없다. 오직 그들만의 기억으로만 감당해야 한다. 연대하는 행동단체 회원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버려진 피아노로 ‘리스트의 위로’를 연주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잠시 분위기를 추스르는 정도라서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엄한 현실은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다.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도 없다. 그런 답답한 현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사유의 행로에 나섰다.
나는 바위
아니, 저벅 저벅 천년의 사막을 걷게 된 낙타
때로는
새가 되어야 했던
지난날
주름 보따리, 풀어놓으면 한도 끝도 없지
요약하여 나이 많은 여자
이제, 선긋기에 능해지고
속셈이 생긴
구미호
-<구미호> 전문
삭막한 사회의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생각에 몰입해 보는 것이다. 현실을 ‘바위’라고 상상했을 때 그때부터 상황은 시적인 변주를 통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그 안에 축적된 듯 바위처럼 견고하다. 부동의 바위가 단단한 것의 속성으로 읽힌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그 바위가 뚜벅뚜벅 사막을 걷는 ‘낙타’로 변태하여 과거를 되밟아가며 또 다른 생의 이력인 “때로는/ 새가 되어야 했던/ 지난날”에 당도한다. 여한 없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했지만, 마땅치 않았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허사 같았지만, 소중한 현재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주름 가득한 몸이 전부다. 그런 현재의 모습에 좌절하지 않고 능숙한 화장술로 변신을 시도한다. 누구나 하는 것으로 세월을 극복하는 처세술인 셈이다. 세상살이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은 법을 화자만의 요령으로 대처해 가는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이다. 따라서 ‘구미호’란 말은 사유의 전복을 의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박선영 시인의 시 다섯 편을 아우르고 있는 시어 속에서 ‘바람’이란 말에 주목했고 그 의미가 시 의식 전반에서 어떻게 변주되면서 환기되는가를 보았다. 화자가 말하고자 한 ‘바람’은 단순하게 대기 속에서 발생한 기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며 겪는 크고 작은 사건의 교차 속에서 과거뿐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를 시적인 세계로 형용한 것이다. 그 일상처럼 맞이한 시간은 즐거움과 고통으로 인식할 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간다.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난관에 처해 위태로운 고비가 되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살이를 바람 잘 날이 없는 일상으로 표현한다. 그런 삶의 다양한 현상을 타자화된 삶의 모습으로 재현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