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소리의 이면에서 나를 만나다
― 문장과 사람, 그리고 판소리가 건네준 삶의 이야기ㅡ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는 일과 닮아 있다.첫 장만 읽고 그 책의 전부를 알 수 없듯, 사람 역시 한 번의 만남이나 몇 마디의 말만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말투 뒤에는 저마다 지나온 시간이 있고, 쉽게 꺼내지 못한 마음이 있다.얼마 전 촌장님네 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랬다.귀에 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슨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괜히 가까이 다가가기가 망설여져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상처는 병의 흔적이 아니었다.살아내느라 생긴 싸움의 흔적이었다.그 사실을 알고 나니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상처는 더 이상 흉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작은 몸이 견뎌온 시간을 말해주는 흔적이었다.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한 부분만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한다. 무뚝뚝한 말 한마디, 굳은 표정 하나, 조금은 서툰 행동 하나를 보고 그 사람의 마음까지 단정한다.그러나 조금만 오래 바라보면 알게 된다.사람에게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그래서 나는 요즘 사람을 만날 때 조금 더 천천히 마음을 열어보려 한다.그 사람의 말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귀 기울이고, 보이는 모습보다 그 안에 감춰진 이야기를 헤아려보려 한다.어쩌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인지 모른다.글을 쓰는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문장을 나누다 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줄의 문장 앞에서는 이상하리만큼 가까워진다.누군가는 오래 묻어둔 기억을 꺼내고, 누군가는 자신의 아픔을 한 문장에 담는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우리는 글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문장은 삶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었다.한 사람의 문장 속에서 그 사람의 계절을 보고, 그가 지나온 길의 굴곡을 읽었다.함께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조용해졌다.‘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그 깨달음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주었다.글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내게 문장보다 더 깊은 것을 남겼다.사람의 온기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판소리를 다시 생각했다.판소리에는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겉으로 들리는 소리 아래에는 소리꾼이 살아온 시간이 있고, 한 대목을 완성하기까지 흘린 땀과 기다림이 있다.우리가 듣는 것은 한 음절의 소리지만, 그 소리가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시간이 쌓여 있다.판소리를 배우면서 나는 조금씩 그 이면을 알게 되었다.처음에는 높은 소리를 내고, 가사를 정확하게 익히고, 장단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소리는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슬픈 대목을 부른다고 해서 목소리만 슬프게 만든다고 슬픔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쁨을 표현한다고 해서 소리만 높인다고 흥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었다.그 안에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있어야 했다.아픔을 알아야 아픔을 제대로 소리 낼 수 있고, 기다림을 알아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그래서 판소리는 내게 노래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배우는 일이 되어갔다.소리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한 대목의 추임새에도 사람의 정서가 있고, 한 호흡의 길이에도 소리꾼의 인내가 배어 있다.
소리와 글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마음을 전하는 일.글은 문장으로 마음을 건네고, 소리는 음성과 장단으로 마음을 건넨다.좋은 문장이 오래 남는 이유도, 좋은 소리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도 그 안에 진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이제 나는 글을 쓸 때도, 소리를 낼 때도 내 삶을 돌아본다.내가 지나온 기쁨과 슬픔, 만났던 사람들, 놓쳐버린 인연들, 견뎌낸 시간들이 모두 내 안에 하나의 결로 남아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는다.예순을 바라보는 지금, 더욱 그렇다.‘예순’이라는 숫자는 내게 단순한 나이가 아니다.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한 번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이정표다.젊은 날에는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 중요했다.더 빨리 가야 했고, 더 많이 가져야 했으며,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해졌다.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느냐보다 그 만남 속에서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는지가 소중해졌다.그래서 요즘은 아침의 작은 풍경도 오래 바라본다.안개 자욱한 논두렁을 천천히 걷고, 벼잎에 맺힌 이슬을 바라본다.아직 잠에서 덜 깬 들녘을 바라보며 판소리 한 자락을 낮게 흥얼거린다.소리는 안개 속으로 흩어지고, 바람은 벼 사이를 지나간다.그 순간에는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다.그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아마 이것이 내가 이제야 알게 된 삶의 여유인지도 모르겠다.
담양의 새벽도 그렇다.아직 세상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시간, 풀벌레 소리만 고요하게 들리는 새벽에 앉아 있으면 지나온 날들이 하나둘 떠오른다.잘했던 일도 있고, 부족했던 일도 있다.후회되는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밀어내지 않으려 한다.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넘어졌던 날은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흔들렸던 시간은 내 마음의 중심을 찾게 했다.그러니 지난날의 나에게 묻고 싶지 않다.‘왜 그랬을까.’대신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참 많이 애썼다.’그리고 이제는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사람의 상처를 쉽게 판단하지 않고, 말하지 못한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리고 싶다.글을 쓰는 사람들과 나눈 문장을 오래 간직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한 문장을 건네고 싶다.
판소리의 소리 이면에 숨은 마음처럼, 사람의 말 이면에 있는 삶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어쩌면 삶도 한 편의 판소리인지 모른다.때로는 느린 장단으로 흘러가고, 때로는 숨 가쁜 대목을 지나기도 한다.
웃음이 있는가 하면 눈물이 있고, 힘차게 내지르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차마 밖으로 내놓지 못한 침묵도 있다.그러나 그 모든 대목이 모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내 삶도 그러하다.기쁨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도 아니고, 아픔만으로 남은 기억도 아니다.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소리를 배우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두 번째 문 앞에 서 있다.그 문 너머에는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고,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이 있으며, 아직 내지 않은 소리가 있다.그래서 조금 설렌다.예순이라는 숫자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으려 한다.나이는 지나온 시간을 세는 숫자일 뿐, 앞으로 살아갈 마음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고, 쓰고 싶고, 노래하고 싶다.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싶다.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연을 들여다보면서.문장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문장 뒤에 숨은 삶을 읽으면서.소리의 울림만 듣지 않고 그 소리가 태어나기까지의 침묵까지 헤아리면서.그렇게 살아간다면 예순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또 다른 결을 갖게 될 것이다.
아침 햇살이 조용히 담양의 들녘을 비춘다.어둠이 물러난 자리에 풍경이 드러나듯, 살아온 시간을 지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조금 보인다.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괜찮다.지금까지의 삶이 나에게 건네준 모든 것을 품고, 이제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면 된다.글과 소리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상처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된 삶.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지나 마침내 만나게 된 나.아마 내가 쓰고 싶은 수필은 바로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사람의 겉모습 너머를 바라보고,소리의 이면에 귀 기울이며,지나온 삶을 품은 채 다시 나를 써 내려가는 이야기.그것이 내가 열어갈 두 번째 삶의 첫 문장이다.
첫댓글 사색의 깊이가 묻어나는 멋진 수필을 써주셨군요. 감동입니다.
와~우^^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