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문밖에서
성경 본문 : 요한 계시록 3장 20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9월 8일 주일 오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우리는 매주 <요한 계시록>을 공부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 계시록> 3장 20절 말씀입니다.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1) 문밖에서 :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1) '서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테카'(*)는 현재 완료 시상으로
이미 오셔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2) '두드리노니'의 헬라어 '크루오'(*)는 현재 시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두드리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사랑을 알리시는 모습으로
불신앙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초청과 약속의 말씀이다(Mounce. Trench).
(3) '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세상이다(Swete. Beckwith).
<마태복음> 24장 33절 말씀에
33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야고보서> 5장 9절 말씀에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마음을 의미한다(Mounce. Johnson).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앞 절에서 현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권면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의 '문'은 현재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제를 나누어야 하는
<라오디게아>교인들의 마음을 지칭한다(Ladd).
(4)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 회개를 기다리시는 예수님
성도들의 심령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간절하심이 가슴 속 깊이 느껴져야 한다.
<아가서> 5장 2절-4절 말씀에
2절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절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마는.
4절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누가복음> 12장 36절-37절 말씀에
36절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절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 들리라.
<요한복음> 10장 7절 말씀에
7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베드로 전서> 3장 20절 말씀에
20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 누구든지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1) 누구든지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 하나님의 말씀
본문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의 권면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의 결과를 나타낸다.
<신명기> 26장 7절 말씀에
7절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창세기> 27장 22절 말씀에
22절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욥기서> 37장 2절 말씀에
2절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
(2) 내 음성을 듣고 :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이사야> 50장 4절-6절 말씀에
4절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절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학자의 귀가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고. 될 일의 말씀이
들리는 사람이 된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신다고 하였는데. 이는 곧 될 일의 말씀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를 다른 성경에서는 머릿돌이라고 하였다.
<스가랴> 4장 7절 말씀에
7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마태복음> 21장 42절 말씀에
4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모퉁이의 머릿돌은 말 그대로 건물의 밑바닥 모퉁이의 머릿돌.
곧 주춧돌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 곧 <이스라엘>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 모퉁이의 머릿돌로 왔지만 교만하고 어리석은
그 땅의 건축자들(이스라엘의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은 그 돌을
하찮게 여겨 무시하고 내던졌다. 그 결과 예수님은 이방 교회의
머릿돌이 되어 교회를 세워 은혜 시대를 열어 놓으셨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은 자신을 불신하는 자들에게는
거침돌이 되어 그들 스스로 돌에 걸려 깨질 것이고. 또한
심판 날에는 심판주가 되어 불신자들을 쭉정이 같이 구별하여
영원한 불구덩이 속으로 흩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2절 말씀에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러므로 머릿돌은 천년왕국을 건설하실 예수요.
천년왕국을 건설하시는 말씀과 진리를 의미한다.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은 말씀이 들린다.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심령의 공허가 물러가게 된다.
<이사야> 24장 1절-3절 말씀에
1절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2절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
3절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게 된다.
(3) 문을 열면 : 주님을 영접하면
문을 열라 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라는 것이다.
유명한 <홀만 혼트>의 예수님이 문밖에
서 계시는 그림을 다 보셨을 것이다.
그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문 바깥쪽에는 문고리가 없고.
안에 만 문고리가 있다. 그러므로 안에서 문을
열어야 만 들어갈 수 있다.
요즘은 이웃 사람끼리도 마음의 문을 안 연다.
목사끼리도. 장로끼리도. 성도끼리도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 밖에. 교회 밖에 계신다. 교회들이 타락하고
혼합주의. 종교 다원주의가 성행하므로 예수님이 그 속에 계실 수 없다.
3) 더불어 먹고 :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1) 주님 -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 주님께서 직접 찾아가신다.
(2)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① '먹고'라는 헬라어는 저녁식사를 의미하는 데이프논[deipnon]에서
유래하였다. - 단어의 시제로 볼 때 저녁은 종말을 상징한다.
② 식사의 방법으로 입증된다.
③ 본문의 문맥적 구분으로 입증된다.
<누가복음> 22장 29절-30절 말씀에
29절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절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 더불어 먹으리라
천국에서 누리게 될 가장 친밀한 교제의 약속으로
'먹고 마신다'는 말은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① 아침은 '아크라티스마(?κρατ?σμα)'인데 마른 빵 조각을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을 말한다.
② 점심은 '아리스톤(?ριστον)'으로 도로가 나 가로수.
광장에서 먹는 도시락을 말한다.
③ 저녁은 '데이프논(δε?πνο)'인데. 오래 앉아서 이야기하며
먹는 친교의 식사를 말한다.
여기서 먹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마태복음> 24장 45절 말씀에 보면
'때를 따른 양식'이다. 여기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저녁은 특징적으로 종말을 의미한다.
아침은 구약 시대를. 점심은 신약 시대를 예표 한다면
저녁은 종말 시대. 재림의 때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마지막 때 작은 책. <요한 계시록>이 열릴 것이며.
주님의 재림의 복음이 너희 안에 들어가서
이 말씀의 교제가 있겠다.
너와 내가 말씀으로 교제하고.
말씀으로 하나 되는 것을 얘기한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는 문을 열어야 하고 열심히 믿어야 한다.
마지막 때는 <요한 계시록>이 확 열릴 것(역사 속에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일곱 영. 성령의 농사가 여물 때 늦은 비가 쏟아지듯이.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작은 책 <요한 계시록>이 폭발적으로
죽은 영혼들을 살려내고 주님이 오신다. 따라서 지금은 열매 맺을 때다.
<아가서> 5장 1절 말씀에
1절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 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아모스> 9장 14절 말씀에
14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누가복음> 17장 8절 말씀에
8절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야고보서> 5장 3절 말씀에
3절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