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 행함으로 받는 기도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7장 11절~14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4년 9월 11일 수요일>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장 11절~14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어떤 기도를 하였습니까?
응답 될 줄 믿습니까?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까?
치료된 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응답 된 줄을 믿고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믿고 안수를 받았으면 나은 줄로 믿고
나은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4장 20절 말씀에.
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창세기> 12장 1절-3절 말씀에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믿었습니다.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99살 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시리니 그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리라.”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바랄만한 처지가 아닙니다.
그의 나이가 벌써 99살입니다.
아내의 나이도 89살이나 되었고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도저히 자기 처지로는 아들을 바랄 수 없는 나이이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니
그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브람>이라는
자기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사래>라 하지 않고
<사라>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열국의 아비이다.”
“내 아내는 열국의 어미이다.”
보십시오.
아들하나 없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수많은 자식을 둔
열국의 아비요 열국의 어미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내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나 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백 살에 낳은 아들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나이가 <120살>이 넘었습니다.
또 낳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번제로 잡아 드립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었던 것입니다.
<요나>를 아십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어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가다가 결국은 풍랑을 만나
배에서 던짐을 받고.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꼼짝없이 죽은 신세이지만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살려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를 보십시오.
<요나서> 2장 9절 말씀입니다.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보십시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육지에 토해냄을 받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서> 2장 6절 말씀입니다.
하반 절에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서> 2장 2절 말씀입니다.
하반 절에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기 보면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응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아직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이미 응답된 것처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말씀을 볼까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 앞에 왔습니다.
얼마나 그 성이 견고한지 싸움은커녕
<가나안> 사람들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수아> 6장 2절-3절 말씀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념겨 주었으니
3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믿었습니다.
백성들도 믿었습니다.
1)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2) 그 다음에는 언약궤를 세우고 모든 백성이
하루에 한 번씩 여리고성을 돕니다.
이튿날도 돕니다.
사흘째도 돕니다.
그렇게 엿새를 돌고. 는 이레째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일곱 바퀴를 도는 겁니다.
마지막 일곱 바퀴를 돌고 는 뭐라고 합니까?
<여호수아> 6장 16절 말씀입니다.
16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주셨답니다. 주신 줄을 믿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때 순식간에 <여리고>는 와르르르 무너진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행동이 따르는 믿음인 것입니다.
믿었으면 그대로 믿은 대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사도가 뭐라고 합니까?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말씀에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절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는데 나병환자 열 명이 멀리 서서
주님을 부릅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때 주님이 안수를 해 주셨습니까?
다만 말씀만 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았습니까?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 나은 것도 아닌데 이들은
그 말씀만 믿고 제사장들에게 진단서를 끊으러 가는 겁니다.
가다가 보니까 “깨끗함을 받은지라.”
깨끗함을 받고 간 것이 아닙니다.
가다가 보니 깨끗해진 것입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한 부인이 심한 <폐병>으로 앓았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아무런 차도가 없습니다. 마침내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기에 집에 돌아 와 죽을 날만
기다라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원망이나 불평함이 없이 하루하루 찬송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는데 어느 날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읽다가
<베드로전서> 2장 24절 말씀을 읽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24절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다시 한 번 상반 절을 보니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의 죄를
대신 지셨답니다. 그 죄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나의 질병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답니다.
이 말씀은 이미 과거의 말씀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그때 이미 나의 질병은
주님이 담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부인의 마음에는
믿음이 온 것입니다. 확신이 온 것입니다.
갑자기 옆방에 있던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이리와 보세요.”
깜짝 놀란 어머니가 달려오니 “엄마 이것 보세요.
이 성경을 들어보세요.” 딸은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성경을 읽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보세요. 주님이 나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답니다.
어머니 이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이예요.
과거의 일이잖아요.
그러니 저는 이미 나았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픈 사람처럼 살았어요.”
어머니가 놀라자.
“어머니 하나님의 말씀은 다 믿으라고 하졌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목욕을 하고
새 옷을 꺼내 입더니 집안을 청소합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병은 완전히 회복이 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X레이를 찍어보니 놀라운 일입니다.
불과 3주 만에 치료 불가능한 폐가
완전히 회복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야고보>사도는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었으면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은 줄로 믿었으면 나은 사람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은 것처럼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2장 말씀에서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 하셨을 때
그 중풍병자는 “주여 나는 걷지를 못합니다.”
이유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일어나라” 하시니 일어났습니다.
“걸어가라” 하시니 걸었습니다.
“자리를 들고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마가복음> 3장 말씀에서
예수께서 회당에서 손 마른 자에게 명하시기를
“네 손을 내밀라.” 하십니다.
손이 마른 사람입니다.
손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밀라 하십니다.
그때 이 사람은 이유를 달지 않습니다.
내밀라 니까. 내 밉니다.
“그가 내 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요한복음> 5장 말씀에서
예수께서 한 앉은뱅이를 보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가 그의 믿음을 행동에 옮기는 순간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간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 34절 말씀에 보면
중풍으로 상위에 누운 지 8년 된 <애니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4절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1). 우리는 우편배달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체국에 소포가 왔으니 찾아가세요.” 그러면
소포를 보지도 않았지만 즉시 달려가 소포를 달라고 합니다.
2). 의사의 말은 더 잘 믿지요.
의사가 무슨 약을 주던지 주는 대로 먹습니다.
시간을 지키라면 그대로 합니다.
3). 은행에서 당신의 구좌에 돈이 왔으니 찾아 가라면
돈을 보지도 않았지만 말만 듣고 가서 청구를 합니다.
바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는 너를 고치시는 하나님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런 말씀을 하시면 우체부의 말을 믿듯이
의사의 말을 믿듯이. 은행원의 말을 믿듯이.
그만큼 이라도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11절-12절 말씀에
<열왕기 상> 8장 56절 말씀에
<에스겔> 12장 25절 말씀에
<다니엘> 9장 12절 말씀에
<마태복음>24장 35절 말씀에
<누가복음>1장 37절 말씀에
<로마서>4장 16절. 21절 말씀에
<고린도 후서> 1장 20절 말씀에
<베드로 전서> 1장 25절 말씀에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믿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축복의 말씀을 받았으면 축복을 받은
사람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치료의 말씀을 받았으면 축복을 받은
사람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