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고요하지만 거룩한 밤
Text Ish 9,1-7
(1)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드디어 강림절 4번째 주일입니다. 오는 화요일이 성탄절 전야, 이브이고 수요일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이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고 해피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금년 성탄절에도 은혜를 많이 받으셔서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크리스마스’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강림절 넷째 주일을 맞아 사9,1-7절 말씀을 본문으로 ‘고요하지만 거룩한 밤’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하여 함께 은혜받고자 합니다. 제가 잡은 제목에서 ‘고요하지만’은 강생하는 메시야를 영접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는 상태와 영적인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하는 말이고, 제목의 ‘거룩한 밤’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고 기다리지도 않으며 흑암의 상태에 놓여있던 그 밤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 사역을 하실 메시야가 강생한 밤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시간까지 고요한 밤 상태에 있던 분들이 계신다면 꼭 거룩한 밤을 경험하는 은혜와 복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먼저, 1-5절을 봅니다. “(1)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 1-5절 말씀은 ‘고요한 밤’ 상태의 세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었고,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흑암 아래에 있었으며, 멸시를 당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4절에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 아래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구하셔야 할 세상, 주님이 오셔야만 했던 세상은 바로 그런 고요한 밤 같은 세상이었고 흑암 속 세상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인생은 고통받고 있었고,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흑암 아래에 있었으며, 멸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멍에와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두려워하며 사는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메시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었던 ‘고요한 밤’이었습니다. 여기서 고요하다는 말은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그 밤이 시끄러운 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들의 욕망을 추구하고, 세상의 오염된 즐거움에 빠져 있으며, 배부르게 못할 것들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분주하여서 메시야의 강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어두운 밤’이요, ‘고요한 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세상에 취하고 세상에서 사망의 잠을 자는 밤이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는데, 사람들은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사7,11-12)라고 하며 사망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하시고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사8,8)고 하시는데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잠을 자는 고요한 밤’, 어둠에 갇힌 ‘어두운 밤’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나름대로 아주 상세하게 조사하여 데오빌로에게 보낸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한밤중에 태어나서 구유에 뉘어져 있는 것을 인근에 있던 목자들이 목격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은 한밤중에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 전하여 주었는데, 천군과 천사들이 나타나 그 메시지에 화답하는 찬양을 하였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밤중 고요한 밤에, 천사들만의 축하 노래를 들으며 태어나신 것을 누가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고 ‘해피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우리도 세상에 취하여 사망의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목자들처럼 천사가 전하여주는 메시야 탄생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얼른 달려가서 천사들이 말한 대로 나를 위해 구주로 강생하셔서 구유에 뉘어 있는 주님을 뵐 수 있어야 합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이신 주님을 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은혜로운 성탄절을 위해 오늘과 내일이 잠에서 깰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주님, 주님의 은총과 도우심과 구원을 위해 내가 지금 부르짖나이다. 오시옵소서!’ 하고 지금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아멘.
3. 다음, 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6절 말씀은 이 어두운 밤, 고요한 밤을 거룩한 밤이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망의 잠을 자고 있어 흑암이 짙게 드리운 어돕고 고요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이 죄 많은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사, 구하여주시려고, 사랑의 주님께서 찾아오신 ‘거룩한 밤’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가 그 말씀입니다. 그 아기는 어깨에 정사를 메고 이름이 기묘자 혹은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는 메시아시라고 말하여 줍니다.
죄를 지어 타락한 인생을 구하시는 일이 그냥 천국에 데려다 놓는 것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죄성이 소멸하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죄성이 처리되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들여다 놓아도 견디지 못하여 있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이 소개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에는 성문이 닫혀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문지기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치고 있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계21,22-27)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조종하시는 로봇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요즘 인공지능을 갖춘 맞춤형 로봇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지요? 그 로봇은 각 개인에게 순종하도록만 설계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기분 좋은 말만 하고, 기분 좋게 하기 위한 노래도 들려 주며, 필요로 하는 것을 척척 알아서 해주는 로봇 시대가 온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이 그런 인공지능형 로못 같은 존재로 만드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리모콘 같은 버튼으로 조종해서 말 잘 듣게 하는 그런 인간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43,21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데, 죄인인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인은 더 심합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그를 위해 즐거이 희생하고 마음을 쓰는 일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번거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여 누군가 마음을 맞추어 사는 것을 기피합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데 뭣하러 사서 고생하겠느냐고 합니다. 이는 타락의 극치입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마22,36-40 신10,12)고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는 사랑의 수고로 얻는 기쁨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는 수고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 했고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며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몸소 거치셨던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이렇게까지 하시는 주님의 첫걸음이 바로 ‘성탄’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성탄이 일어난 밤은 지극히 ‘거룩한 밤’인 것입니다.
여러분, 제발 이기심과 자기 편의주의를 회개하십시오. ‘혼밥, 혼술’을 당연시하지 마십시오. 사랑의 수고를 헛된 일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성탄’ 하셨습니다. 주님을 본받아 거룩한 밤의 뜻과 의미를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사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마지막으로 7절을 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구절은 성탄의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이루시려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말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통치에 관한 말씀입니다.
세상의 나라들이란 금으로 시작되어 철과 진흙으로 끝나고, 점차 시들어 버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탄의 주님께서 만드실 나라는 번창하는 나라가 될 것이며, 마침내는 완전케 될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평화의 왕이신 그의 성품에 합당한 평화로운 통치가 될 것이며, 신중하게 또 정의롭게 다스려져, 그 통치의 위대한 목적에 부합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 나라의 기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모든 일은 잘 처리될 것이니 결코 불평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구원 사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완성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주님의 열심으로 이 모든 것을 수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모든 도전을 극복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처음 타락 때부터 세우신 인간 구원 프로젝트를 완성하시기 위해 마지막 사역자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다고 무시할 것입니까? 인간 스스로 하는 회개와 스스로 결단하는 믿음을 인간에게 생성하게 하기 위해 지극히 겸손한 모습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며 사는 인생을 다 구원하시려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주님은 탄생하십니다. 무지한 인간은 종종 강력한 왕이나 군사적 지도자를 메시야로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낮고 연약한 모습에서부터 구원을 시작하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절)
이 성탄절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인간의 교만과 자기 의를 내려놓고, 단순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응답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영광스럽고 영원히 쇠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시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붙들어 너를 보호하며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맹인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사42,6-7)
이 은혜와 복이 2024년 성탄절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