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통일의 주인공 다윗 Date 2014.8.17
Text 2Sml 1,11-12&17-18
(11)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 (17)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 지난 주간에는 과거의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려고 애쓰시던 박영근 성도께서 실형을 선고받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비록 교회에 나오신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교회생활에도 누구못지 않는 적극성을 보이셨었는데 짧지 않은 수감기간 동안 우리 성도들 모두 애정을 가지고 보살펴드려야 하겠습니다. 새 생활을 하고자 하던 결심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면회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편지도 옥중에서 신앙을 더 키우도록 격려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분을 형제로서 포용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간 4박5일 일정으로 연회에서 주관하는 백두산 통일기도회에 다녀왔습니다. 가 있는 동안 이정헌이라는 26살 청년과 한 방을 썼는데 믿음이 없는 친구였습니다. 거창 백용현 목사님의 처형 아들인데 백두산 간다니까 이종 형제들과 여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온 청년이었습니다. 4박5일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에 새벽2시까지 전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하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헤어지기 전 감독님의 특별 기도까지 받게 했고 마중 나온 거창 대동교회 목사님 내외분에게 당장 이번 주일부터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하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동행했던 목사님 장로님들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축하해줬습니다. 아버지는 무교, 어머니는 불교신자인 불신가정 젊은이의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에는 다른 마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길의 최대수확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북녘선교회와 함께 심양, 집안, 단동 지역에 갔다가 거기는 고구려가 무려 400여년 동안이나 수도로 삼았을 정도로 바로 우리 땅이요, 우리 동족들이 우리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는 동네이며, 무엇보다도 1896년 중국 한족들과 침략자 일본인들의 핍박 속에서도 제일 먼저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주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을 뵈면서, 그 동포들을 너무 몰랐고 무시까지 하는 우리 국민들이었음을 뜨겁게 회개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을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평화통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의 상징인 백두산에서 기도한다는 목적으로 갔다가 남북평화통일을 넘어 중국 조선족 동포들을 포함하는 모든 한민족 전체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명을 깨닫고 왔습니다. 아직 영토까지는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 한 겨레요 한 민족이며 한 동포임을 자각하는 마음과 정신의 통일부터 하는 통일운동이 일어나야 하겠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소리 내어 기도할 수는 없었지만 영토의 통일, 국가간 통일에 앞서 마음과 정신의 통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기도를 뜨겁게 하였었습니다.
평화통일?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어느 일방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통일이 아니라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마5,3ff 말씀의 복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난 주일날 설교시간에 함께 나누었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8복이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나라와 민족 통일로 가는 길이며 가정과 가문, 그리고 자신의 인생길을 복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이 기억나십니까?
지금 제가 박영근 성도 얘기, 한 청년을 전도한 이야기, 북녘 땅을 방문했던 이야기, 지난주일 설교 이야기 등등을 말씀드렸는데, 지금 제가 이런 얘기를 무슨 뜻으로 하고 있는지는 아십니까? 우리 성도들이 먼저 한 가지 일부터, 자기 자신부터, 사랑을 원칙으로 하는 마음과 정신의 통일을 위해 일하는 통일운동가들이 되자는 이야기입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이런 8복을 받은 사람의 대표격인 다윗의 이야기를 삼하1,11ff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2. 여러분, 다윗이 누굽니까?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모범적 신앙인, 성전건축의 기초를 닦은 사람, 하지만 남의 아내를 간통하고 그 죄를 숨기려고 더 무서운 죄를 짓기도 했고, 그 결과로, 자식이 일으킨 반란에 피난을 해야 했던 보통사람이기도 한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만나는 다윗은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룬 사람입니다. 열두지파로 구성되어 있던 당시 히브리인들을 진정으로 하나가 되게 하였고 나라를 이웃의 이집트, 앗수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강국으로, 주변국들에게 선진의 길을 보여주는 문화대국으로 만드는 기틀을 이룬 사람이 다윗입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하1장을 보면, 전쟁을 치르는 중에 사울 왕과 왕자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당시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과 싸워 이기고 시글락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른 곳, 곧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전투 중이었는데 그만 그 전투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습니다. 그 소식을 한 병사가 다윗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다윗에게 잘 보여 상이라도 받을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소식에 옷을 찢으며 애통해 했고 저녁때까지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금식을 하며 애도하였습니다. 사울 왕의 전사에 대하여 조문을 하는데 친히 조가를 지어 부릅니다.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다 그 노래를 배워 부르게 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애도하였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19-27까지 다윗이 친히 지어 모두 함께 부르게 한 그 슬픈 노래의 내용이 나와 있는데, 이 노래에서 다윗의 진심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노래에서 사울과 요나단을 “이스라엘의 영광, 두 용사”(19절), 요나단의 활과 사울의 칼이 전장에서 “뒤로 물러가거나” “헛되이 돌아오지” 않았다(22절),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23절),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23절), 요나단의 사랑은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26절) 등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저도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축사나 조사를 써서 발표하는데 늘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고 진실과 진심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다윗이 지은 조사에는 그의 진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다윗의 조사를 읽으며 크게 놀래야 합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이 다윗의 이 진정어린 조가에 뿅~ 갔습니다. 왜요?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그 때까지 사울 왕이 다윗에게 한 일을 안다면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국의 왕이 나라의 군사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겠다고 한 사람이 사울 왕이 아닙니까? 악령으로 인해 머리 아픈 자기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찬양하고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주는 사람에게 갑자기 창을 던져 죽이려든 사람이 사울 왕이잖습니까? 그렇게 쫓겨다니면서도 왕이 무방비상태로 자기에게 등을 보이는 것을 두 번씩이나 손을 대지 않고 살려주지 않습니까?부하들은 난리를 떨었습니다.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삼상24,4) 더 놀라운 일도 있지요. 몰래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찔렸다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이에게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어떻습니까? 다윗이 가식을 떠는 것 같습니까? 의심이 된다면 삼하 2장을 읽어보십시오. 사울 왕이 죽은 소문이 났을 때, 그 때에도 따르는 이들은 이제야 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왔다며 왕으로 옹립합니다. 하지만 이 답답한 다윗은 그 뒤로도 7년6개월을 헤브론에서 유다지파 사람들만의 왕으로 지냅니다. 왜요? 무력으로 한 사람이라도 뜻을 억누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의 시신을 거두어준 사람들에게 후한 상을 내려주기도 하였고(삼하2,5ff)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갈 때 욕을 퍼붓는 시므이에게 부하들은 당장 죽이겠다고 난리가 났지만 다윗은 저가 욕하는 것은 저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시켜 욕하는 것이니 내가 어찌 분노하겠느냐며 말린 적도 있지요.(삼하16,10) 끝까지 자신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하고 사울의 집에 충성하던 아브넬이란 장수가 죽었을 때, 다윗은 큰 인물을 잃었다며 도리어 적장을 죽인 부하 요합을 공개적으로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입니다. 이 마음, 이 정신, 이 자세와 실천이 통일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요? 정치를 모른다구요? 아닙니다. 순수함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며 좋아서 옷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는 순수한 신앙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었던 시글락 사람들이 다윗이 없을 때 아말렉 사람들의 기습을 받아 처자식들이 사로잡혀 가니까, 흥분을 해서 판단력이 흐려진 사람들이 다윗에게 죽이려고 달려들 때에도, 다윗은 그 사람들의 심정을 안다며 그들을 해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위로를 얻는 그런 사람입니다.(삼30,6) 동포를 사랑하는 것, 지도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이지요. 요즘 명량 영화가 화제입니다. 매일 하루에 일백만 명 넘는 관객이 찾는 영화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국가 지도자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이 영웅을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렇게 애국애족의 원칙을 믿었고, 실천하였으며, 따르는 이들과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마침내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 통일을 지켜냈습니다. 강성대국으로 발전시켰습니다.
3. 뭘 조금 해 놓구선 안 알아준다고, 내가 더 잘났다며, 자세하고 큰 소리치고, 삐치고, 한 가지라도 더 챙길려고 눈치를 보고, 또 챙기고... 통일요? 그럴듯한 목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통일을 달라고 눈물로 부르짖는다구요? 북한을 욕하고 반대당을 욕하기 전에 이런 후안무치하고 졸렬한 자신의 마음부터 회개하세요. 조금 도아주다가는 은혜도 모른다며 그만두고, 내 먹을 것도 없다며 아까워하고, 그래서는 통일 어림반푼어치도 없습니다. 설령 8.15 광복절처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다 해도 금방 또 갈라져 싸울 터이니 소용이 없습니다. 어쩌면 나라를 통일시키는 업적보다 자신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더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우리는 잊고 사는 우리 땅, 저 중국 동북삼성을 지키고 사는 조선족 동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야 합니다. 북한 동포들을 진정으로 도와야 합니다. 지금 내 곁에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지쳐 있는 사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 옥에 가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돌봐야 합니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 공정하게(?) 나누어 싸가려는 졸렬하고 치사한 짓을 그치세요. 교회에 반찬 얻으려고 오십니까?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나 주세요. 조금만 마음을 쓰면 그것으로도 좋은 일 할 곳 많습니다.
이것이 다윗 왕의 통일대업을 이룬 비결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