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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대한 감격 (로마서 16장 25~27절) 황명환
어떤 교도관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계시다 안 계시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려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사형 집행장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에게 이제 마지막인데 유언을 하라 그러면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 이 죄인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복음을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지 않는 것인데요.
그리고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 믿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살인범이 어떻나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기 위해 천국 갑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렇게 하고 죽는다는 거야.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 주먹 믿고 살던 사람은 유언을 해라.
그러면 갑자기 이놈들 너희들이 나 죽이고 편히 살 줄 아냐 두고보자 하고 원망하고 공포에 질려서 발광을 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죽는다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복음은 위대하구나
그러면서 저는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사형수와 다른 게 뭐지 어차피 나도 죽을 목숨인데 그런데 내가 지금 저 사람처럼 죽는다면 나는 저렇게 깨끗한 믿음을 고백하고 갈 수 있을까 오히려 나는 의인인 척하면서 세상의 자랑과 근심에 붙들려 사는 보잘 것 없는 인생 아닌가 그러면서 다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교회 다니는 것은 너무너무 다르다.
나는 교회만 다니는 무엄한 그리스도인 되지 않고 진정 그리스도를 만난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다짐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마지막으로 갈라놓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의 결론인데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의 내용을 정리하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가 세 가지인데요. 첫째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 복음이 나에게 어떻게 전달되어 왔는가 이 계시의 전달 과정을 말하고 세 번째는 복음의 결과 그 효과가 뭐냐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25절 앞부분을 잠깐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그랬습니다.
그냥 읽으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서 아무것도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헬라어로는 카이라고 하는 접속사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카이를 오늘 본문은 엔드로 번역한 거거든요.
그리고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근데 이 카이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즉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뜻으로 해석을 하면 나의 복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이런 뜻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이 뭐냐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게 정의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서를 마치는 16장 끝에서 복음이 뭔가를 다시 정의를 내립니다.
복음이란 뭐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다. 여러분 복음이 뭐라고요?
맞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복음이 뭐죠?
이렇게 물으면 대답이 어려워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왜 예수님 자신이 복음인가 하면 예수님이 인간 되어 우리를 위해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어요.
예수 안에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과 하나님이 만납니다.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입니다. 아멘이죠. 예수님이 복음이야 정확하게 우리 마음에 새겨두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주제는 그 복음이 어떻게 나에게 왔느냐는 것인데 이것을 계시의 전파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죠.
25절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그랬어요.
여러분 복음은 처음에는 어떻게 됐냐면 감추어져 있던 거예요.
그런데 누가 감추려고 감춘 게 아니에요. 인간들이 이해를 못하고 깨닫지를 못해서 감추어진 결과를 가져온 거예요.
사실 하나님은 복음의 신비를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을 수 있도록 이스라엘 속에 제사 제도를 두셨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문화, 그 제사 제도를 지키고 그 문화 속에 파묻혀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오해를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면 드릴수록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걸 깨닫지를 못하고 내가 제사를 이만큼 드렸으니까 너보다 의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기 교만에 빠짐, 인간의 죄와 교만과 어리석음 때문에 계시가 왜곡되고 감추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불완전한 제사에 집착하게 되고 자기 의로 구원받으려고 몸부림을 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됐느냐 26절이죠.
같이 한번 26절 전반부를 읽겠습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롬 16:26)
그랬습니다.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의 비밀이 밝혀졌다는 거예요.
그 감추어졌던 복음이 예수님이 인간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만 천하의 그 복음의 비밀이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명령을 했습니다. 누구에게 명령을 했나요?
26절에 나오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그랬어요.
하나님이 누구에게 명령하신 거예요? 선지자들에게 뭘 명령하셨어요?
글로 기록하라고 무를 내가 구원자를 보내겠다고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하는 말씀을 외치고 글로 기록하라고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셨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구약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구약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백스토리가 되는 거죠.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겠다는 얘기고 신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일을 하셨다는 얘기로 갈라지는 거죠.
역사가 스티브닐이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어요. 예수님은 역사의 모래 시계다 그랬습니다.
역사의 모래시계 재미있는 표현이죠. 과거의 모든 사건과 인격이 다 한 사람을 통하여 수렴된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미래가 발산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 역사의 핵심에 누가 계신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거죠.
그런데 세속 역사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갈라지는 거죠.
BC와 AD로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던 시대가 BC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그 복음의 비밀이 나타난 것이 AD죠.
그래서 역사에 모래시계가 바로 예수님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말이죠. 여기에 오늘 본문에 계시의 전파를 나타내는 세 단어가 나오는데 첫째가 감추어졌다.
두 번째가 나타내셨다. 세 번째가 알게 하신다. 이렇게 됩니다.
복음의 신비는 감추어졌었는데 예수님을 통하여 완전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타난 복음이 이제는 알려지는 거죠.
나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을 알게 됐죠 누구를 통해서 알게 됐죠?
내가 복음을 알게 된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인간은 복음을 알게 되는 모든 과정에서 철저히 수동적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된 다음에는 깨닫게 되요.
이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이 복음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가 있었는지 그리고 이제 이 복음을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말입니다.
정리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처음에 감추어져 있었어요.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어요. 그리고 나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공식을 이해하셔야 돼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의 고안자가 아닙니다.
복음은 인간의 창작품이 아니라는 거예요. 복음의 고안자가 누구죠?
하나님 아버지세요.
그리고 그 복음을 나타내시는 분 계시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이 복음은 땅끝까지 알려집니다.
여기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이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초대교회 시절에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자 하늘에서 천사장 가브리엘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일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기를 원합니다.
그랬어요. 그러자 주님이 하신 말씀
“내가 한 일을 팔레스타인의 몇 사람밖에는 알지 못한다.” 그랬어요.
“그럼 주님 그 위대한 사건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내 제자들과 충성스러운 성도들에게 그것을 알리라고 명했다.
그랬어. 그러자 가브리엘이 말합니다.
“주님 인간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게으른데요.
어려움이 오면 그 위대한 부탁을 얼마든지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대답합니다.
“나에게 다른 계획은 없다. 나는 그들을 믿을 뿐이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복음의 비밀을 알리는 일은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인 거죠.
이것을 위해 몸부림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감당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세 번째 주제는 뭐냐 하면 이 복음의 효과야. 복음을 받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느냐는 거예요.
여기에도 세 단어가 나오는데 우리 26절을 천천히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롬 16:26)
그러니까 믿어 믿는다는 말 그다음에 순종한다는 말 그다음에 견고해진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복음은 먼저 알려져야 되는 거죠. 그럼 들을 수 있죠.
들으면 믿게 되죠. 그런데 여기 많은 성도들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나는 복음을 듣고 믿었다. 그래서 구원받았으면 끝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여러분 끝이 아닙니다. 그게 시작이죠.
내가 믿고 구원받았으면 그 다음부터 뭐 해야 돼요?
복음의 효과가 세 가지죠. 그렇죠 믿고 순종하고 견고하게 된다죠.
내가 믿었어요. 구원받았습니다. 그다음에 할 일이 뭐예요?
순종하는 거죠. 이게 우리가 할 일이죠. 그럼 순종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견고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 말씀 위에 확실히 서게 된다는 거예요.
이게 복음의 효과입니다. 여러분 혹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해보셨나요?
“나는 예수를 믿는데 왜 이렇게 믿음이 약하지 확실한 뜨거운 믿음 위에 서서 흔들리고 싶지 않은데 왜 나는 이렇게 믿음이 약할까?”
질문해 보셨나요?
그 이유가 뭐죠? 견고해지기 전에 뭐가 필요하냐고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할 때 마지막에 남아있는 요단강을 보면서 이 강을 건너려고 할 때 강이 갈라지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너희가 요단강으로 발을 담그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강이 갈라질 거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아니 갈라달라고요. 그럼 지나가겠다고요가 아니에요.
그거는 믿음이 없을 때 처음에 홍에 가를 때는 갈라놓고 지나가게 했지만 믿음이 자란 후에는 이제는 너희가 들어가면 갈라질 거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강 물속으로 발을 들여 담갔더니 어떻게 됐어요?
강이 갈라졌어요. 신비한 역사가 일어났어요. 순종의 결과입니다.
그걸 보면서 놀라죠.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맞구나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구나 하는 걸 견고하게 그 믿음을 갖고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그럼 그런 견고한 믿음 앞에 뭐가 있냐는 거죠. 순종이 있었던 거야
여러분 내 믿음이 견고해지려면 뭐 해야 된다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거죠.
여러분 내 믿음이 약한 것은 하나님 책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반드시 견고한 믿음을 주셔서 흔들리지 않고 이 세상을 능히 이기도록 약속해 주셨어요.
순종하고 견고케 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들이 견고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죠.
우리가 사모하는 것들이 우리 인생을 견고하게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좋은 학벌도 우리 인생을 좀 견고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름다운 외모도 우리 인생을 잘 만나게 하는 것 같고, 돈이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고 사랑하는 사람, 자녀 이런 것들이 다 우리 인생을 견고하게 해주는 것들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되죠. 이런 것들이 결코 견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해야 되지만 굳게 붙들 것이 못 된다는 걸 알게 돼요.
꽃은 마르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했어요. 진정으로 강하고 진정으로 견고해서 우리가 끝까지 붙들 게 뭐냐
복음밖에 없죠.
이 복음이 죄를 이기고 절망을 이기게 하는 거, 죽음을 이기게 하고 천국 들어가는 능력을 부여해요.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을 가져와요.
이것은 복음뿐이에요.
저명한 신학자이면서 목사였던 불트만 박사는 말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20대에 많은 철학과 종교를 공부하였다. 그런데 복음은 그 모든 것에 비해서 너무 단순하게 느껴졌다.
30대에 이르러 내가 추구했던 철학과 종교들이 내 삶의 궁극적인 대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딜레마에 빠졌을 때 복음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40대가 되어서 인생의 모든 문제와 싸우면서 복음을 의지했을 때에 복음은 내게 능력으로 나타났다.
50대가 되어서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쌓아놓은 것이 다 허무하게 느껴질 때 복음은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되었다.
60대가 되어 친구들이 하나씩 세상을 떠나고 내 손에 잡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할 때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하나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복음은 심오하며 위대하며 중요한 것을 떠나서 나의 유일한 것이 되었다.
아멘이죠. 인생을 살아가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가 의지하고 견고히 붙들 것은 점점 더 복음뿐이라는 것, 더 깊이 깨닫는다는 것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요.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집착을 해요.
여러분들은 뭘 붙잡나요? 자녀를 붙잡나요? 건강을 의지합니까?
여러분이 이미 잡았고 여러분을 잡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붙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를 더욱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신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복음을 정리했습니다. 복음이란 뭐지 복음이 나한테 어떻게 오게 되었나.
그리고 이 복음의 효과가 얼마나 위대한 건가 이걸 깨달으면서 복음은 정말 대단한 거다.
내가 이것을 알고 전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마지막에 찬송을 부르는 거예요.
그게 27절입니다. 27절을 봉독합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으로써 로마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1년 넘도록 로마서를 통하여 말씀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잘 들어주신 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로마서는 복음이 뭔지를 가장 정확하게 전하는 말씀이죠.
이 로마서만 잘 소화를 해도 절대로 복음이 뭔지 흔들리지 않게 될 거예요.
한 번 들어서 이해가 안 되면 듣고 또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에 또 있죠. 저는 어제 이 로마서 강의 마지막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우리 수소 교회 성도들이
나의 복음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그랬어요.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바울이 나의 복음이라는 말을 하거든요.
여러분 나의 복음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래요. 자기식으로 믿고 이게 복음이야라고 말하는 내가 복음이 아니고 올바른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복음에 반응하는 것까지를 합쳐서 나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거야.
사람마다 자기의 복음이 있어야 돼.
니가 믿는 복음은 뭐지? 니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야?
그럴 때 아 나는 내가 믿는 복음은 이거야. 이것이 내가 믿는 복음이고 내가 이 복음을 어떻게 사랑하고 그것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고백할 때 그 사람은 자기의 복음을 가진 자가 되는 거야.
복음에 대해서 1년 넘도록 듣고 나의 복음이 없으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죠? 견고한 인생이 결코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바울은 율법적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었어. 자랑거리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몰랐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나서 깨닫게 된 게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알게 돼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용서받은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런데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실패하는 거예요. 거룩해지려고 해도 거룩해지지 않고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절망에 빠집니다.
그 절망에 고백들이 로마서에서
생생하게 들려지지 않아요. 오호라 나는 권고한 사람이로다.
그죠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할 수가 없고 원치 않는 악만 행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줄 것이냐고 탄식하여 좌절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복음을 재발견해요.
정말로 내가 견고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내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요.
오히려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법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내 삶에서 그런 고백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아가 죽었다고 말만 하지 실제 우리의 자아는 잘 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용서받은 것까지는 기독교예요.
근데 그다음에는 내 힘으로 좀 더 진실하게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율법주의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복음을 아는 것 같아도 진정한 복음을 못 누려요.
복음으로 시작하고 율법으로 끝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현실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목사님 제가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왜요? 그랬더니
“내 죄가 십자가의 피로 용서받은 것은 믿습니다.
아무리 진실하게 살려고 해도 안 돼요. 그럴 때 저는 묻습니다.
나 정말 그리스도인인 거 맞아?”
제가 얘기를 했어요.
“넘어지는 것은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아무리 귀한 집 자녀라 할지라도 잘 넘어집니다.
여러분 어린애가 걸음마 배울 때 넘어지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넘어지는 거예요.
그러나 성장을 하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문제는 뭐냐?
넘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성장을 오해한다는 데 있어요.
내가 더 거룩해지고 착해지고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을 우리는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성장이란 내 존재의 변화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존재론적으로 예수님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나는 똑같은 죄인이에요. 5년 전에도 죄인이었고요.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은 나은가?
지금은 내가 거룩해졌어요.
노! 똑같습니다. 여러분 100년이 지나가도 의로워지지 못해요.
그걸 확실히 인정해야 돼요.
내가 예수님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내가 거룩해져서 예수님 닮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그 순간마다 십자가에 죽었다는 걸 고백하는 거야.
주님 나는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것을 고백할 때마다 주님의 죽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죄와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에요. 많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믿지만 복음을 몰라요.
죄 용서는 예수 피로 받고 그 다음에는 율법주의로 살아가요.
용서의 은혜는 누리는데 자아를 십자가 앞에서 처리하지 못해요.
그래서 복음의 기쁨을
못 누려요. 바울은 진정한 복음이 뭔지를 알았어요.
예수의 십자가로 내 죄를 씻을 뿐 아니라 순간순간 내가 예수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죽으면 죽을수록 성령이 나를 덮어서 죽은 나를 부활시켜 믿음의 힘으로 살게 하고, 내가 죽는 만큼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그는 경험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에요. 예수의 피로 용서받은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의 힘으로 완전해지려고 몸부림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안 됩니다. 틀려먹었어요. 예수님이 나 위해 죽으신 것을 여러분 고백하죠.
그리고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 앞에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 아니야 그렇죠 머리로만 인정하지 마시고 순간순간 주님 나는 십자가 앞에 죽었습니다.
그럴 때 십자가의 능력이 나를 건져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가 견고하게 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이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의 복음이 있습니다. 로마서를 끝마치면서 나의 복음은 뭐지?
여러분의 자녀가 엄마 엄마가 믿는 복음이 뭐예요?
그렇게 물을 때 대답할 말이 있기를 바래요. 복음이 뭔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안 되고 또 자기 딴에는 믿는 것 같지만 이 본문에 나오는 것과 다른 복음을 믿고 자기가 복음 믿는다고 그러면 안 될 거 아니에요 그렇죠.
나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복음을 받아들여야 돼요.
번서는 그리고 거기에 나의 응답이 들어가야 돼요.
내가 믿는 복음은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복음에 내 생명을 걸었다.
이게 바울의 복음이었어요.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무엇인가 헌신하게 되어 있다. 위대한 것에 헌신하지 않으면 시시한 것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랬어요.
그러면서 세개의 캐치프레이즈를 말했습니다.
첫째가 그레이 커미션입니다. 위대한 사명이죠.
두 번째는 그레이 커미먼트 위대한 헌신입니다.
세 번째는 그레이 그리스챤!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다.
위대한 사명에 위대한 헌신을 하면,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그레이트 처지 위대한 교회가 되는 거예요.
나의 복음이 뭐냐 물어볼 때 모른다고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의 진술을 가르쳐 주신 것을 깊이 이해하고 그 복음에 여러분의 결단이 들어가기를 원해요.
나의 복음으로 만드세요. 그리고 그 복음에 헌신하세요.
그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거예요.
그럴 때 후회 없는 멋진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들은 말씀을 놓고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 앞에 나가겠습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주님 나에게 복음에 대한 감격을 주시고,
나도 누구에겐가 그 복음을 알리는 사람 되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사랑 많으신 주님
오늘 로마서를 마치면서 복음에 대한 감격에 대하여 말씀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고안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내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신 멋진 복음, 우리 힘이 아닌 절대적인 하나님 은혜로 오늘 내게 주어진 영원한 가치 있는 복음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복음에 대한 감격을 우리에게 새롭게 하여 주소서 나도 복음을 알게 된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였습니다.
절대로 이제 내가 알게 된 복음이 나에게서 끝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로 복음을 알고 복음을 알리는 자로 살아가도록 새 힘을 주소서 두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내 멋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고 거기에 올바르게 응답하는 나의 복음, 나의 복음을 가진 자로 살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믿는 게 복음이라고 그러나 나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를 통하여 올바른 믿음이 뭔지, 복음이 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음의 내용을 우리가 잘 이해하게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머리로만 하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내가 믿는 복음은 이것입니다.
이 복음은 나를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나는 이 복음을 이렇게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고백할 것이 있는 우리로 살게 하여 주소서 세 번째 기도 제목입니다.
성전 건축이 안전하게 마무리되게 해 주시고, 이 건축을 통하여 복음이 널리 알려지는 일에 사용되게 해주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주께서 먼저 우리를 이끄사 오늘에 이르게 하셨고, 지금까지 안전하게 잘 지어지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안전한 공사가 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게 하여 주소서 또 하나의 건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복음을 세상 끝까지 알리는 데 귀하게 사용되는 성전 되게 하여 주소서
살아계신 하나님 지금까지 로마서를 통하여 말씀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복음이 뭔지, 그 복음이 어떻게 나에게 오게 됐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만이 복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복음은 내가 만들거나 찾거나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
이제 그 복음을 믿고 순종하면 내 인생은 더욱 견고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소서 네가 믿는 것이 뭐냐 내 믿음이 뭐냐고 물을 때, 나의 복음은 이것이라고 대답할 줄 있는 우리 수소의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