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권이 없는 유아에게 주는 세례(침례)와 관련하여 천주교나 장로교회와는 달리 성결교나 감리교 그리고 침례교회는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세례 곧 침례에 대한 성경적 입장은 (막 16: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는 것이다. 침례의 조건은 믿음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믿음이 결부되지 않는 침례를 언급하거나 주장한 곳이 없다.
우리의 영원한 모본이 되신 예수님은 어떠한가?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요단강에 나아가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분은 죄가 없는 분으로 침례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말리는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3: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우리가 이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셨다. 그분이 침례를 받은 시기는 그분의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였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 일원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거룩한 예식으로 침례를 공적으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이것은 유아 세례에 대한 명령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성서적 침례에 관한 명령이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은 저들이 다 자라서 침례 받을 때까지 방치될 것인가?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어린 시절 모세의 율법을 따라서 예식을 행하였다.
(눅 2: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눅 2: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눅 2: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비록 예수님의 부모들이 그분을 첫아들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지만, 누가의 기록을 통하여 시므온이 그 아이를 안고 축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유아 세례보다는 어린이 봉헌식이 성경이 보여주는 유아들에 관련한 예식의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로써 부모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올 것이며 그 아이가 다 자라서 스스로 믿음을 고백하고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까지 그 부모의 지도하에 둘 것이며 하나님이 그 아이를 지켜 주시도록 아이를 안고 축복할 것이다. 어떤 교리적인 이유로라도 성경이 용인하지 않은 일을 전통과 신조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며, 진리가 아니다.
(계 22: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비록 침례가 구약 시대의 할례를 대체한 신약의 성례이긴 하지만 할례와 침례는 엄연히 다른 측면이 있다. 할례는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과의 언약으로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자동으로 행하는 예식이었지만 침례는 단체 혹은 자동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 신앙에 대한 구원의 표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대로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어떤 전통이나 신조보다 말씀을 더 높이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