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기 전 느닷없이 소백산으로 가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느닷없이 소백산으로 가기로 했다. 오랫동안 남쪽 지방에 살았던 탓에 경상남도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에는 겨울마다 눈 보는 게 일상이라는 걸 몰랐다. 아이젠을 처음 사서 겨울 산을 오른 건 설악산의 울산바위에 올랐던 때였다. 설악산의 아름다운 설경을 보고 나니, 대한민국의 산하가 겨울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설악산에 다녀온 이후, 매년 겨울마다 설경으로 유명한 명산에 오르자고 다짐하였다. 설경으로 따지면 케이블카로 쉽게 오를 수 있는 덕유산이 가장 유명하지만, 소백산의 설경 또한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소백산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되는 산으로,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의 경계가 된다. 영주에는 불국사 못지않게 유명한 부석사가 있으며, 단양에는 대한민국 최대 사찰인 구인사가 있는 등 굳이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소백산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소백산 등산로 입구가 영주시내에서는 거리가 꽤 되므로, 상대적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단양읍에 가서 소백산의 설경을 느껴보기로 했다. 소백산 등산을 즐기기 전에 천태종의 본산으로 유명한 구인사에 들러 조계종에 속한 절과 어떤 점이 다른 지도 보고 싶었다.
국립공원 이야기 46 - 천태종 구인사
구인사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천태종의 본산인 절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절로 알려져 있으며, 계곡 하나에 빼곡히 늘어선 건물들로 유명하다. 영주봉 정상에 있는 적멸보궁까지 포함하면 계곡 전체부터 산 정상까지가 구인사 사찰 경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지만 설법보전, 대조사전, 관음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기도실 내지 대중생활실이라 대부분의 전각을 주로 불공드리는 기능으로 사용하는 조계종의 사찰과 구조가 다르다.
구인사의 역사는 한국 천태종의 중창조인 상월원각 대조사부터 시작된다. 법명이 상월이고 법호가 원각인 스님은 1911년 강원도 삼척군에서 밀양 박씨 가문으로 태어났다. 1930년에 중국과 티베트 등지에서 곤륜산, 오대산의 문수도량과 아미산의 보현성지를 순례한 뒤 1936년에 귀국해 1945년에 소백산에 들어가 초가집 형태로 구인사를 창건했다. 그 뒤 천태종의 교세가 확장되어 1966년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 대조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을 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기존 불교가 수행을 하지 않고 재물에만 관심을 두는 행태를 비판하고, 참된 불교는 수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태종의 교세가 크게 확장된 건 2대 종정인 남대충 스님이 부임하면서였다. 구인사에 가서 3일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불교 신자들이 구인사로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천태종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어버렸는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게 소화한 스님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90년대에만 하더라도 구인사의 스님들은 낮에 농사를 짓고 밤에 수행을 하여 피골이 상접할 만큼 수행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인사의 일반 신도들 또한 그에 준하는 수행을 요구하여 새벽에 정진하는 소리가 구인사 계곡을 가득 메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옛날이야기로, 천태종 또한 조계종처럼 불공과 의례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새로 지은 판도암, 광명당, 역사박물관 같이 으리으리한 건물들은 종교의 세속화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최대의 사찰, 천태종 구인사
소백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을 꼽으라고 하면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영주의 부석사라고 할 수 있겠다. 부석사에 묻혀 가려져 있지만 불교 신도들에겐 아주 유명한 구인사 또한 소백산이 품고 있는 절이다. 부석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구인사는 비교적 최근에 창건되었으며 사찰 대부분의 건물이 콘크리트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사찰은 크기만 크고 실속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구인사는 터미널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계곡을 가득 메운 사찰의 규모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산 너머 반대편의 부석사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도 아닌데, 구인사는 어떻게 유명한 절이 되었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 답을 찾으러 해가 바뀌기 전 눈이 잔뜩 내린 구인사 계곡으로 향했다.
구인사 터미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계곡을 가득 메운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인다. 오래된 절과는 다르게 사찰 건물들이 4,5층은 되며, 건물의 규모답게 추운 겨울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다. 규모는 대단하지만 사찰 자체로만 보면 특이하거나 아름답다고 볼 수도 없는데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곳 구인사를 찾는 것일까.
건물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 구인사를 품고 있는 봉우리 정상에 있는 적멸궁으로 가면 그 답이 나온다. 적멸궁은 천태종의 창시자인 상월원각의 묘역이다. 한국 불교의 병폐에 대해 비판하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으려 했던 그는 조계종 대신 천태종이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다. 일반 신도들은 그의 가르침을 얻어 실천이 중심이 된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인사의 교세는 점점 커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이렇다 할 문화재 하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사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대부분이 현대식 건물인 구인사 경내에서 그나마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건물은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대조사전과 정상에 있는 적멸궁을 들 수 있다. 대조사전은 완주 금산사의 미륵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크고 웅장한 법당이다. 3층으로 된 목조건물인 대조사전은 구인사 답지 않게 전통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현대에 지어진 걸 감안하더라도 아름답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걸작인 건물이다. 고즈넉한 맛은 덜하지만 계곡을 가득 채운 사찰 경내를 거쳐 대조사전에 다다르면 구인사에 온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삼국시대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온달산성으로 가다
구인사가 오래된 절이 아니라 실망한 사람들은 인근 영춘면의 온달관광지로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온달관광지는 자연・역사・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드라마 촬영장으로 유명한 고구려 테마파크,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곽인 온달산성,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품인 온달동굴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고구려 테마파크는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의 드라마 촬영지로 남한에서는 익숙지 않은 고구려를 재현한 곳이다. 요동 땅을 지배했던 고구려답게 건물이 웅장하며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금성과 비슷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비록 고구려가 남긴 건물은 아니지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테마파크 뒤편으로 온달산성으로 가는 길이 있다. 충청도 일대는 삼국시대에 '중원'으로 불리었으며, 5~6세기에 삼국이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해 격전을 펼친 곳이었다. 따라서 중원지역에는 삼국시대 성곽의 밀집도가 굉장히 높으며, 온달산성 또한 그중의 하나다.
온달산성은 고구려와 신라가 6세기에 격전을 벌인 곳으로 추정된다. 온달 장군이 아단성을 되찾아오겠다며 원정을 떠나 전사한 곳으로 온달산성과 아차산성이 꼽히며, 그 이유로 이 산성에 온달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특히 6세기에는 신라가 영토를 확장해 중원으로 진출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차산성보다는 온달산성을 구 아단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온달산성은 신라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온달이 죽은 곳으로 보는 것에 무리가 있다. 성벽의 형태는 물론이고, 수구문지를 비롯해 체성부의 외견상 구조 등 모든 것이 신라가 지은 증거가 된다.
둘레 683m의 소규모인 온달산성에 올라서면 남한강이 한눈에 보여, 이곳에 산성을 쌓은 이유가 짐작된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 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 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산성에서 내려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온달동굴로 들어간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석회동굴 안에 들어서니 다채로운 모양의 종유석이 나를 맞이한다. 신동국여지승람 제14권 충청북도 영춘현의 고적 조항에도 기록되어 있어 그 역사가 깊다. 단양에는 온달동굴 외에 수많은 석회동굴이 있어 동굴 탐사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중 하나에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소백산에 올라 칼바람을 맞다
엄청난 규모의 사찰인 구인사의 설경을 보고, 온달산성에 올라 눈 덮인 남한강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백산에 올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눈으로 하얗게 칠해진 남한강을 마주한 단양읍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겨울이 느껴질 정도로 단양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하지만 소백산에 오르지 않는다면 단양에 왔다고 할 수 없다. 소백산에서 흘러내린 수많은 계곡이 남한강을 이루며, 소백산의 능선은 대한민국의 어떤 산과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한다. 특히 겨울철 눈 덮인 능선은 덕유산의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소백산의 겨울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능선에 오르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맛볼 수 있는데, 그것은 소백산 겨울의 또 다른 상징인 '칼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