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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巫俗의 현대적 이해
1. 무속이란
스승(師)은 15세기 문헌에는 師, 和尙화상, 巫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보아 巫가 정신적인 지도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의 화랑花郞도 훈몽자회(中, 31)에서는 화랑이 격覡으로서 박수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영남지방에서는 굿을 할 때 연주하는 악사를 화랭이, 화래기, 화래라고 일컫고 있다.
신라의 제2대 왕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次次雄은 巫로서 귀신을 섬겼기 때문에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했다.
남해차차웅의 부친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인데 두말할 것도 없이 男巫일 것이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는 男巫가 군주로서의 기능을 발휘했을 것이다. 신라의 시조제始祖祭를 주관하던 남해
차차웅의 누이 아로阿老가 무녀였을 것이고 소도를 주관하던 天君이 바로 巫였을 것이다.
단군이 《삼국유사》에는 흙토변의 壇자다. 神檀樹, 天壇의 壇과 같이 檀君은 祭壇의 우두머리, 즉
제사장祭司長을 일컬음이다. 강화도의 단군제단, 태백산의 단군제단 등으로 보아 단군은 지역마다 있는 제사장
祭司長일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檀君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될 것이다.
삼국유사 왕력王歷에 따르면 고구려 제1대 동명왕은 단군의 아들檀君之子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桓雄이 제령
諸靈을 거느리고 자연과 인간의 생활을 지배했다는 단군신화에서 최초의 무속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그 당시 사회는 청동기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祭政一致의 시대였을
것이다.
중국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따르면 고구려, 예 등지에서 각각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이라는
종교적인 축제가 있었다. 마한에서는 음력 5월과 10월에 축제가 있었고 종교적 구역인 소도蘇塗에 대한 언급도
있다.
소도가 오늘날 솟대와 맥을 같이 한다면 우리의 무속이 北方과 연결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솟대의 새가 모두 북방을 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면을 시사한다고 보겠다.
이러한 축제가 음주가무로서 풍요를 기원하거나 추수를 감사하는 농경제의적 성격을 띄었으리라 보여지며,
이러한 제의와 축제가 오늘날 나라굿이나 마을굿 등으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삼국시대 이후 중국에서 불교, 도교, 유교 등의 외래종교가 전래됨으로써 토속적인 무속은 변화를 시작한다.
불교가 인도식 무속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점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삼국 말기에 도교가
들어왔다고 보는데 중국식 무속을 띄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융합하게 된다.
무속에 옥황상제가 등장되는 것이 바로 그의 영향이다. 사찰에 칠성각이 도교의 영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고려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퉁구스족이나 몽골족은 그렇게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도 칠성을 숭배하는 사상이 짙고 칠성은 노인 7명
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도교가 도리어 북방의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고 필자는 보고있다.
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道敎에 없는 것인데 사찰에 있지 않은가.
우리의 무속에서는 칠성신이 생명을 준다고 믿으며 죽어서는 생명을 준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귀소본능이 있다.
고구려 벽화의 천장에 칠성이 그려져 있고 우리나라 관에 까는 널을 칠성판이라고 한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 우리에게 현묘한 도가 있으니 儒, 佛, 仙 3교를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유교는 사실상 종교는 아니고 철학이지만 유교의 중국식 조상숭배사상과 무속의 조상숭배사상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고려에 접어들면서 팔관회와 연등회가 나라의 종교적 행사가 된다. 두 행사가 호국과 기복적인 성격을 띄게
되고 군신과 백성이 함께 음주가무하고 무당이 천신, 용신, 산신, 하천 등에 제물을 바치는 토속적인 신앙의
성격을 띤다.
송나라의 서긍徐兢은 고려를 다녀와서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化奉使高麗圖經》에 팔관회는 고구려의
동맹제東盟祭에서 유래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토속의 종교 현상은 조선조로 접어들어 배불排佛정책을 쓰면서 변하게 된다.
초기부터 굿은 단속하는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고 무당을 서울에서 쫓아냈으며 무당을 노비, 승려, 백정들과
함께 팔천八賤의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지만 무속은 음성적으로 연면히 이어오면서 19세기 말까지 왕실에서 굿을 한 기록이 보인다.
이렇게 무속에 대한 박해가 가해지자 불교와의 융합이 급속히 진전된다.
19세기 말에 발생한 판소리는 굿을 못하게 된 무속인들이 자기들의 울분을 터트리는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일제 침략자들은 마을 단위의 마을굿이 지역주민의 유대감 형성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심한 박해를
가했다.
군화로 제상을 걷어차고 무당들을 쫓아내고 구속하며 무속을 미신이라고 외쳤다. 일제침략자들은 기독교
박해를 가했지만 기독교에서는 자기의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무속을 미신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냈다.
巫들에 의하면 일제시대보다 심했던 때가 바로 새마을운동으로 상징되는 근대화정책이었다.
굿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경우도 비일비재였고 당집을 헐기도 했다.
근대화라는 이념 앞에 무속은 걸림돌로 인식되기 때문에 맥없이 허물어졌다.
그러나 일제시대나 해방 후에 무속이 하나의 학문의 대상으로 정립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전국 및 각도 단위의 민속예술경연대회와 무형문화재 제도는 굿을 전통문화로 인식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이 무속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저술, 그리고 언론매체를 통하여 무속이 미신이 아니라 전통적인 생활
문화라고 하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무속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왔다.
유교나 일제침략자들이나 기독교에서 무속을 일방적으로 미신이라고 밀어 부치는 것은 다분히 식민지적
공리성을 띠었다고 하겠다. 종교 쳐놓고 미신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젊은이들이 우리것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아울러 일반인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는 무속인들의 홈페이지가 인터넷에 등장하는가 하면 사주카페가 여기저기 성황을 이루고
있다. 대학생들의 축제 때는 무당을 초청하여 교내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사주를 봐주는 행사도
등장하게 됐다. 특히 정치인들이 선거 때는 거의 무속인을 찾아 상담을 하며 저명한 정치인이 산소가 안 좋다고
명당을 찾아 이장을 하여 화제가 된 적도 있으며 집을 옮겼던 정치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교육과 문화수준이 향상되면 무속인이 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무속인이 줄기는커녕 1년에 1% 안팎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무속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2. 한국무속의 특성
한국무속은 고대의 신화와 제의祭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면면히 이어온 전통적인 종교현상
이다. 무속의 형식적인 특징은 굿을 통한 가무歌舞로서 신을 섬기고 가무는 엑스타시로 이끌어 신과 만나 신의
영력을 빌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오게 하는 데 있다.
종교적인 구조는 부정을 물리치면 거기에는 신성한 곳이 되므로 신과의 만남이 자유로워 인간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무당들은 신을 불러들이는 데 반하여 퉁구스 무당들은 영혼이 타계他界로 날아간다.
일본의 무당들은 우리와 같이 신을 불러들인다. 일본의 샤먼들은 고대 한국인들이 건너갔기 때문에 한국적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무당 가운데도 탈혼脫魂상태가 되어서 타계를 가는 경우도 드문드문 보인다.
특히 명두점일 때는 靈이 손님의 집이나 산소에 가서 알려주기도 하고 다녀와서 알려주기도 한다.
퉁구스의 무의巫儀의 중심은 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데 있고, 일본의 무의는 신탁을 전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굿은 가무와 제물로서 신을 즐겁게 대접하여 공수(무당이 죽은 사람의 넋이 말하는 것이라고
하여 전하는 말)를 받는 데 있다. 따라서 한국의 무속은 특히 가무가 발달되어 굿이 화려하다.
굿의 목적이자 기능은 疫神역신을 물리치고 복을 빌며 망령亡靈을 타계로 보내는 데 있는데 이것은 샤머니즘
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무속의 사고체계는 불멸의 전능자로서의 신, 인간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영생한다는
내세를 믿는 사고체계이며 신에게 현실의 복을 기원함으로써 삶의 안위와 평화를 갈구하는 순간적인 존재로서
의 희망을 추구하는 사고체계라 하겠다.
3. 무속의 종교적 의의
한국의 무속은 오랜 역사성을 지니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민족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종교적인 심성을
충족시켜 주면서 민족성은 물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의 무속은 외래종교에 대해서도 배척하는 일이 없고 넓은 포용성을 지닌다. 불교나 도교, 기타 종교로부터
적잖은 영향을 받고 있으나, 저변에 깔려있는 무속성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그 나름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종교라고 하겠다.
불교나 도교, 그리고 서양종교 등 외래종교를 무속이라는 그릇에 담고 있다고 할 만하다.
무속은 귀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연신과 조상신을 믿고 있는데 자연신을 추적해보면 조상이 천신, 산신, 용신
으로 자리하고 있다.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듯 조상들이 무속인들의 신으로서 기능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무속에서는 조상신을 섬긴다고 하겠다.
무조신화나 《심청전》 등을 보면 그 주제가 효사상이다. 그러니까 무속의 근본적인 사상은 조상을 숭배함으
로써 조상의 은덕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무속과 효사상에서 비롯했다고도 볼만하다. 오늘까지 무속이 이어오고 있는 힘은 조상숭배 사상과
효사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신도 따져보면 모두 조상들이 기능하고 있다. 조상이 천신도 되고 산신도 되고 용신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신을 한 가족으로 여기는 것이고 신과의 관계가 가족관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신과 거리가 먼 다른 종교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가정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이 높고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다.
4. 巫病
무속인도 입무入巫 과정에 신병神病이라고도 하며 무병巫病을 거쳐야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무병은
속인俗人으로서는 죽고 거룩한 존재와 교제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재생한다는 비밀적인 체험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한 무병에 내림굿을 통하여 신을 받아들임으로써 병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무병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친정아버지의 관 앞에서 절을 할
때 말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무속인 중에는 말문이 열려도 내림굿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를 무불통신이라고 한다.
또 어떤 분은 멀쩡하게 있다가 벼락치는 소리에 놀라 말문이 열린 사람도 있고 반대로 벼락치는 소리에 놀라
정상인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무녀는 신을 떼기 위해 포성을 들으면 신이 놀라 나갈 것이
라고 포성을 가깝게 들으려고 포사격장 가까이 가는 무녀도 있었다.
무병현상으로는
① 무기력해진다, ② 식욕이 없다, ③ 두통이 심하다, ④ 관절이 아프다, ⑤ 빼빼 마르다, ⑥ 불면증이 있는가
하면 도리어 잠만 잔다, ⑦ 낮과 밤이 바뀌어 낮에 자고 밤에만 활동한다,
⑧ 몸에 경련이 자주 일어날 뿐더러 쥐가 자주 난다, ⑨ 각혈, 하혈 등이 잇따라 일어난다,
⑩ 정신분열증이 있어 과대망상증, 피해망상증, 조증燥症 등의 정신질환이 생긴다,
⑪ 환청, 환시 현상이 있다, ⑫ 죽은 조상, 신상, 귀신 등이 보인다.
이렇듯 신령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신령이 자기 제자를 삼기 위해 인간시대의
가혹한 실험, 즉 죄나 업을 씻어버리기 위해 시험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무병과정을 이기지 못해 할 수 없이 숙명으로 신의 제자가 되어 불림을 받는 것이 사명이며,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면 병이 즉시 낫는다. 즉 내림굿을 하게 되면 무병현상은 낫는다.
이러한 무병현상을 내림굿이 아니고 氣치료로서도 치유되는 예를 발견할 수 있다.
氣치료로서 치유가 된다는 것은 무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학적으로는 뇌에 있는 물질인 도파민이 증가하면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환청, 환시 현상이
일어나고 과대망상증, 피해망상증, 조증 등의 정신병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아울러 불안해지면서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계의 항진亢進이 온다. 이렇게 되면 불안해지고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동공이 확장하는 등
신체의 리듬이 흩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무병현상과 거의 일치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무병현상이 기치료로서 좋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무병현상이 기와 관련된다고 여겨진다.
필자는 巫들이 예언과 치유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기의 능력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무병현상을 기의
현상으로 이해한다.
무병은 몸 안에 어떠한 계기로 기가 증폭되면 몸 안에서 그 기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의 리듬이 흩어진
다고 여겨진다. 기의 증폭은 도파민을 증폭시켜 무병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무병현상이 지속되는 동안 신체에서 기를 수용할 수 있게 되면 안정이 되는 것이다.
또 무명이 지속될 때 내림굿을 하게 되면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는데 내림굿을 할 때 강력한 기가 무병자에게
투사됨으로써 기를 조절한다고 여겨진다. 내림굿을 할 때 7~80%가 무병 중이고, 내림굿을 하게 되면 거의
무병은 낫는다. 무병을 앓지 않으면서 내림굿을 하는 사람은 2~30%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병자에 대한 굿을 하게 되면 7~80%는 낫고 2~30%는 더디다고 한다. 결국 정신질환자가 기치료로 효과
를 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無極기수련원의 최헌정 회장은 정신병은 시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기치료로서 치유가
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5. 巫人은 왜 되는가?
무당들의 가정적인 배경을 조사해 봤더니 世傳的세전적(종교적 기질)인 비율이 약 45%가 된다.
이른바 뿌리(根)가 있는 巫이다. 그 밖의 55% 정도는 후천적인 것으로 성장과정이 정서불안인 경우 이에 해당
된다. 고아이거나 일찍 조실부모하거나 계부, 계모, 부모와 의가 안 좋거나 성품이 안 좋은 부모의 환경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 하고 자란 사람이 해당된다.
요약한다면 성장과정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巫가 되는 원인이 된다고 하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애정결핍이라고 하겠다. 석가모니의 생모는 그를 낳고 2주일도 안 돼서 타계했고,
요셉은 성경상으로는 예수의 생부가 아니다. 한국식 기독교에서 대성했다고 보여지는 지도자들의 성장과정은
아주 어려웠다. 과연 애정결핍이 무당이 되는 요인이 될 수 있을까?
꽃은 부활과 사랑과 소망
무당들이 좋아하는 것을 조사해 본 적이 있다. 꽃, 물, 새, 과일, 산이었다. 꽃은 시각미와 후각미가 있고,
물은 촉각미가 있고, 과일은 미각미가 있고, 새는 청각미와 시각미가 함께 있다. 5감각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러한 면에서 무속인은 예술인의 정서를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죽어서 실려갈 꽃상여에도 꽃이 있고, 물의 신인 용이 있으며, 새가 있고, 복숭아가
있다. 그 상여는 산으로 간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저승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는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저승에서는 이승에서 볼 수 없는 아름
다운 꽃이 있고, 맑은 샘과 내가 흐르며, 맛있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고, 역시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다니며,
그곳에도 산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무녀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우리 민족의 내세관과 어떠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무녀들의 신단神壇에는 꽃이 있다. 거의 조화造花가 놓여 있다. 그 조화에서 무녀들은 꽃향기를 맡으며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는 환시幻視 현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 가운데 생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보이고 대화도 나눈다. 죽은 아이도 생전에 귀엽고 예뻐
했던 아이들만이 보이고 밉고 싫었던 사람은 꽃에 나타나지 않는다. 산 사람은 꽃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손님이 없고 한가해서 외로움을 느낄 때 신단의 꽃을 만지면 기분이 황홀해지고 순간 오르가즘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꽃은 부활, 사랑, 소망의 의미가 있다. 심청이 꽃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는 것은 무녀들이 꽃에서 죽은 애인을 만난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삼국유사》의 진성여왕 거타지居拖知 조條에도 여자가 꽃으로 변했다가 다시 부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나라의 사신을 따라가던 거타지가 풍랑을 만난다. 이 풍랑을 잠재우기 위해 골대도滑大島에 머문다.
거기서 서쪽 바다신의 자손들의 간을 빼먹는 중을 활로 쏘니 여우가 죽어 나자빠진다. 서쪽 바다의 신은 고맙
다며 딸을 거타지에게 맡긴다. 하지만 거타지는 당나라로 다시 가야 했다. 이에 서쪽 바다의 신은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한다. 거타지는 꽃을 가슴에 품고서는 당나라로 다녀온 후 다시 그 꽃을 아내로 변하게 했다.
꽃은 식물의 성기性器다. 무녀들이 신당에 놓은 꽃에서 죽은 애인, 남편, 아버지가 보인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랑을 죽어서나마 이루어 보려는 꿈의 표현이 된다. 이렇듯 무당들이 꽃을 좋아하고 꽃을 사랑하고
사랑을 느낀다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꽃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하겠다.
異性의 同化作用
굿을 할 때 보면 대개 박수는 여자의 옷을, 무녀는 남자의 옷을 입는다(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박수가 여자처럼 반지도 끼고 귀걸이도 하며 매니큐어도 칠하고 입술연지를 바르기도 한다.
이렇듯 무속인의 세계에서는 박수가 여성화하고 무녀가 남성화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의정부에 사는 김미정(巫女, 37)은 무녀가 되고 나서 아침마다 면도를 한다. 이는 남자가 되고 싶다는 잠재의식
이 생리적인 변화를 일으켜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남자처럼 수염이 난다고 하겠다.
30여 년 전에 성남시에 사는 조철래라는 박수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방안에 들어가니 화장대가 있었고
벽에는 여자옷과 여성용 손가방이 걸려 있었다.
나는 짐작 가는 게 있어 지금 혼자 살고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조철래 씨는 늘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화장을 하고 브래지어에 색깔있는 여자 팬티, 하이힐까지
신고 머리에 스카프를 한 채 시내를 한바퀴 돌고 오면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했다.
박수가 되기 전에는 길을 가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사귀고 싶고 포옹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는데, 내림굿을
하고서는 여자에 대한 그런 생각은 완전히 없어지고 도리어 멋있는 남자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여자가 되고 이성인 남자에게 성적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홍금선이라는 무녀는 길을 가다 남자 양복점에 불쑥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늘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의 심층에서는 남자가 되어 남자양복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홍금선 씨가 무녀가 되었을 초기, 여자아이인 명두가 몸주였을 때에는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몸주가
남자아이인 동자로 바뀌자 남자가 싫어졌다고 한다. 길을 가다 예쁜 여자를 보면 손을 잡고 싶어지고 저 여자와
하룻밤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조철래 박수는 이유없이 배가 불러오면서 입덧이 나고 헛구역질이 나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상상임신이라
는 진단이 내려 입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기를 낳으면 입히려고 배내옷과 기저귀도 마련해 놓았다며 옷장
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성의 생리적 현상이 있다고 한다. 내가 그건 장출혈이겠지
했더니 의사도 그리 말하며 내시경으로 장을 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왜 그걸 여자의 생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달에 한 번씩 출혈이 되고 출혈 전날 꿈에 달력에 생리하는
날이라고 표시된 동그라미가 보인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무속인들은 현실적인 성생활을 기피하는데 거의 꿈에서 성관계가 이루어진다. 조철래 박수의
경우는 꿈에서는 완전히 여자의 몸으로 바뀌어 남자와 관계를 한다고 한다. 꿈에서는 완벽하게 여자 구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상대의 성을 동경한 나머지 상대의 성으로 변하는 이성의 동화작용을 일으
킨다고 하겠다.
길춘자라는 무녀는 꿈에서 성관계를 할 때 남자로 변하여 완벽하게 남자구실을 한다고 한다.
자궁에서 성기가 나오고 성기의 크기와 길이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고 하며 오줌을 눌 때는 남자같이 서서
하는데 오줌발이 남자보다 더 멀리 나간다고 자랑까지 한다. 또한 그녀는 자궁에 불이 들어오는 경우(幻視)가
있는데 그때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 자궁이 불에 데어 물집이 생길 때도 있다고 한다.
누가 불길을 보내느냐고 했더니 하늘에 떠 있던 해가 갑자기 예쁜 여자로 변해 입에서 불을 내뿜으며 자궁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불길이 나갈 때는 자궁이 남자 성기로 변한다고 했다. 불이 들어올 때는 여자 구실을 하고 불이
나갈 때는 남자구실을 한다.
일본 신화에서도 자궁에서 불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국을 만든 神이 이자나기노 미꼬도와 이자나미노미
코도가 있는데 부인이 불의 신(火神)을 낳다가 불에 데어서 죽었다는 신화가 있다.
이는 한국의 길춘자 무녀의 자궁에서 불이 나올 때 자궁을 데어 물집이 생겼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김구순이라는 무녀는 남녀의 兩性을 한 몸에 지니고 있어 동시에 두 사람과 관계를 한다.
김구순 씨는 꿈에는 남자로 변하여 서서하게 되는데 앞으로는 여자와 한다. 뒤에 자궁이 생겨 다른 남자와 하게
되는데 앞뒤에서 동시에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양성을 지닌다는 것이 그들의 중성화 현상이라
하겠다.
안양에 있는 박근식 박수는 직접 한복을 바느질해서 동정까지 달아 입고 버선까지 만들어 신는다. 굿을 할
경우는 제물에 쓰는 떡이나 부침개 등을 직접 지져 만들어 쓴다.
김국진이라는 박수는 꿈에 성기가 여자 것으로 변하는데 자궁으로 구렁이가 들어올 때 성적 쾌감을 느낀다.
구렁이가 자궁으로 들어와 뱃속을 통하여 입으로 나올 때까지 성적 쾌감이 이어진다고 한다.
서울 도봉산 산신이 여자라는 무녀가 있는가 하면 남자라는 무녀도 있다. 그의 몸주가 남자일 경우는 도봉산
산신이 여신이라 하고 몸주가 여자일 경우는 도봉산 산신이 남신이라고 한다.
무속인들의 전생을 물어보면 여자일 경우는 남자에서, 남자일 경우는 전생이 여자였다고 한다.
죽어서는 어떻게 되겠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죽어서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을 지닌다.
무녀들은 죽어서 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율이 비교적 많은데 남자일 경우는 암컷, 여자일 경우 수컷 새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부처상을 보면 여성적인 인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인도나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의 부처상은 날카
로운 선으로 남성적인 선을 지니고 있으나 우리나라 부처상은 거의 여성적인 선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외래 종교가 무속의 중성적인 요소가 반영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이성의 동화작용도 무속인이 애정결핍에서 무가 되고 상대의 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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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범 / 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