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길을 따를 것인가” 히 5:9-10
https://youtu.be/xjun6phlmcg
1. ‘온전하게 되셨은 즉’ 예수님은 불완전한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온전하게 되셨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완전한 순종’을 말합니다. 고난은 순종의 기회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그분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값을 치루어야 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자신의 뜻’ 즉 인간의 본능을 따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위해 순종합니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자리를 히브리서는 구체적으로 ‘완전한 순종’이 있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내 일 잘하는 사람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순종되어지는 사람을 통해 구원을 이루십니다. 순종하는 순간,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인증되어지십니다.
2.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십니다. 모든 종교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속죄는 예수님만이 이루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도움이 안 됩니다. 결국은 죄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예수님의 길만이 살게 됩니다. 잘 섬겼는데 아프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주님이 더욱 기대됩니다. 눈을 뜨고 물속에서 길을 찾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기만 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살아납니다.
3.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12지파 중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그런데 제사장 계열은 레위 지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실 수가 있나요?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인 아브라함이 큰 자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때 등장한 이 사람은 족보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등장한 사람입니다. Typology 모형론입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3-2. ‘목사님, 예배가 너무 좋아요.“ 새로 오신분이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십니다. 정작 나는 인도네시아 방문팀을 섬겼는데, 구원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더군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으로 내길 걸어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뒤에 있던 길이 앞으로의 내 길이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내 성격, 내 기질, 나의 옛날버전은 버립시다. 우린, 예수님의 반차를 따라가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신다고 하여도, 우린 기꺼이 예수님 계열에 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라인만 선명한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