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쉬고 싶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 분명히 한가한 때는 아니었다, 전쟁을 시작하며 할 일들이 아직도 많았는데 왜 쉬고 싶었을까?
전쟁에서 무조건 쉬고 싶었을까?
나도 일들이 바다의 파도처럼 계속 밀려올 때 어디론가 가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며 하루라도 침대에서 쉬며 TV앞에서
아무생각 없이 지낼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들이 필요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으다.
다윗의 실수를 보며 나의 Break Time을 어떻게 보낼 지를 생각해 보자.
2> 다윗의 범죄- 다윗의 수많은 여인들,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니.."(삼하5:13)
밧세바는 이 처첩중에 하나였을까?
주변 왕국의 왕들을 본 받아서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경고하지 않아서 이런 최악의 상태까지 그냥 두셨을까?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하였으니..."
=> 나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고,사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자녀들, 일상의 꼭 해야 할 정해진 일들, 취미들... 아마 다윗이 거느린 처첩보다 더 많을 수 있다.
3> 헷 사람 우리아 장군의 믿음/ 양심의 소리에 순종함.(삼하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고하되 "언약궤/ 이스라엘/유다가 텐트안에 유하고,내 주 요압과 왕의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자리까?"
=> 다윗의 믿음이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다윗의 성공 뒤에는이렇게 믿음있고 충실한 장군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우리아"의 이 말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세지로 들리지 않았을까?
사단에게 완전히 잡혀있는 다윗! 도덕적인 양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12:14)-우리아는 그 편지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이 적혀있는 것도 모르고 편지를 요압에게 주고,요압은 그 편지대로 우리아가 전쟁 중에 죽게했다.
- 하나님과 수 많은 시간들을 보냈던 다윗!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다윗의 타락은 한순간이 아닐것이다.
지난 몇 년간 '원하면 무엇이라도 갖일 수 있다'는 관념으로 살았던것 같으다.
=> 나의 평안함과 안일한 중에 가끔 찾아오는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깨우시는 것이다.
4>삼하12장 ;하나님의 개입 - 선지자 나단을 보내심;
다윗-"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 했으니 그 양새끼를 4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나단-"당신이 그 사람이라!"
5>다윗의 회개 - "내가 죄를 범하였노라"- 시편 51편; 다윗왕의 이 진솔한 기도는 나를 대신하여
내가 말로나 마음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표현을 한 기도!
내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나아가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노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괴로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의 기도를 다 읽을 즈음에는 다윗 왕이 용서받으며
솔로몬을 다시 얻은 것을 생각하며 나의 마음에 평안이 오는 희망의 기도이다.
*6>하나님의 사랑/공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 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죽음의 두려움은 모든것이"As it is"가 되며 끝나는것이다.
내가 나의 생명과 아직도 주님께 돌아와야 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나의 죄를"하나님께서 우술초로 정결케"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기도 식구들을 씻겨주시는 일이 이루어 질때까지 멈추지 않고 간절히"생명"을 간구하는것이고
아침마다 생명을 주심을 감사하며,'내가 오늘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의 씻어야 할 죄가 나에게 있고 나의 기도식구들을
중보해야 되기 때문에 오늘 나의 삶의 가장 귀한 의무이고 목적이 된다.
다윗에게 내리신 공의 3가지.(12:9-14)
-다윗의죄;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1)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칼이 네 집을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 *압살롬의 반역(15장)/*아도니아의 반역(왕상1:5-10)
* 암놈-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버렸으므로 압살롬에 의해 살해당함(13장).
2)그 처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네 처들은..백주에 동침하리라 ; 그대로 됨(17:22)
. 3)당신이 낳은 아이가 죽으리라;그대로됨.삼하12:18
*7> 다윗이 아기의 생명을 위해 금식 기도함.; 기도의 필요성과 중요성(12:14-23)
"하나니님의 뜻이 분명한데...그래도 꼭 금식하며 울고 애타게 기도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순리대로 지켜만 보고 있어야 될까?"
=> 지난 2주동안 아직까지 직접 화잇 부인의 책을 읽어가면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마지막 날의 사건들" 을 영어로
,한국어를 오디오로 열심히 듣고 중요하다고 생각 된것은 3AM에 들어거 읽으면서 "일요일 법령"을 자세히 읽으면서
이렇게 자세히, 구체적으로 적어놓으신 것에 감사하며 ,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가만히 앉아 있지 말라"- 주님을 위해 일하도록 수년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실것을
탄원 해야 할 엄청난 책임이 온 나라의 기도하는 남녀들에게 지워져 있다
"펜 과 투표를 통하여 일요일 법령을 반대하라."
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예언이 분명한 일요일 휴업령", 어릴 때 부터 들어온 예언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나의 관념이 변했고 같은 날에 삼하 12:14-23 다윗이 아이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읽으며
"다윗이 이미 결정된 아이의 운명을 두고 왜 그렇게 울며 금식하며 기도 했을까?"하는 의문이 풀려졌다.
다윗의 애타는 기도, 자신의 잘못으로 순결한 어린 생명이 죽게 되는것 을 볼수 만은 없었을 것이고
그당시에 다윗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도 나의 자녀들의 영적 삶을 위해 탄원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아이가 죽고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다윗.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지..?"
결국,하나님 말씀하신 대로된 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자신의 뜻을 후회없이 내려놓았다.
* 기도함으로 배울 경험들 = 간절함(메어달림)+순종(내려놓음)
8>암몬의 왕성 랍바를 치는 마지막 순간을 다윗에게 양도한 "요압"(12:26-29)
*요압의 뜻/하나님의 용서와 위로?
암몬과의 오랜 전쟁 ; 삼하11:1-12:26-30
=> 다윗/밧세바와 동침/ 우리아를 죽게한 편지/ 아기가 태어남/ 이 아이의 나이 ( 몇살/몇달?)
- 이 사건들을 모두 알고있는 요압은 다윗이 아이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 때 용기를 주고 왕의 권위를 세워 주려했던
왕에 대한배려,충성심에서였을까?
나는 하나님께서 요압을 통해 베푸신 위로와 용서의 확신을 주시려고 다윗의 간곡한 간구 였던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내 입술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시51:12,15)를
응답해 주시기 위해 요압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 같으다.
*암몬과의 오랜싸움 , 아직도 암만 족속이 살고있는 요르단의 수도, 왜일까?
- 출애굽부터 이스라엘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음.
- 사사시대때 입다로 인해 잠깐 평안했던 이스라엘,
-사울왕과 다윗왕때 부터 세력이약화 되었음,
-느헤미아 시대에는 페르샤 점령 시대때 다시 세력이 살아나서 "암몬사람 도비야"는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했고(느2:19)
-로마시대에 아랍에 흡수되었음.
-아직도 그 자손이 말살 되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처럼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암몬 족속,
현제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성에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존재해있다.
-왜일까? 신2;19의 하나님의약속,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 으로 주었음이라"
이 약속 때문일까?
<나의 기도>
"다윗이 밧세바에게 행했던 일은 너무나 유명하여 성경이 출간된 이후 부터 지금까지 지난 수백년 동안 다윗의 왕가에서
일어난 불행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가정을 파괴시킨 일이다. 높은 지위에 있고, 선망과 존귀를 받는지도자라면
더욱 어깨에 짊어지는 책임들이 있고,모든 세상 사람들의 그의 삶을 본 받으려한다.
그런 위치에서 도덕적 타락의 기록을 읽든지,듣든지할 때 사람들의 마음들은 둘로 나눠진다.
지도자에 대한 존경심과 그의 도덕적 타락을 보며 한탄하는 사람과 그의 대담한 도덕성의 타락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대담하게 아무 양심상 꺼리낌없이 행해진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의 도덕성을 위해 기도드리고,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평안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