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복지 / 김륭
개가 산책을 할 때 새는 기도를 한다.
그녀가 말했고 나는 웃었다.
식물처럼
새는 왜 새가 되었는지 개는 왜 개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와 개는 마음이 잘 통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새와 개 사이에 놓인 커다란 구멍, 누가 돌로 구멍을 막아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커다란 돌처럼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새를 본다. 새는, 개와 잘 놀아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은 나보다 늙은 배롱나무에게 들었다.
내가 있어도 외로워?
외롭다는 말은 마음이 식물처럼 걷는다는 말!
배롱나무는 너무 자주 머리를 긁는다.
그녀와 내가 개와 새처럼 걷다가 잠시 멈춰 서있을 때였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고 바람이 말했다. 나는 바람과 말이 잘 통한다. 빌어먹기 딱 좋은 이 말을 나는 그녀에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대부분의 연애가 실패로 돌아간 건 태어날 때부터 식물적인 감각이 없었기 때문. 나는 그녀 그림자 밑에 발을 넣고 걷다가 여우비를 떠올렸지만,
죽었지.
마음과 마음은 더 이상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
저만치 팔랑팔랑 앞서 걷는 노란 나비를 보고 개가 펄쩍 뛰어오르고
새는 또 기도를 하고, 나는 뒤를 보고 열심히 걸었다.
바람이 오기 전에 잎을 내려놓는
식물처럼
제5회 선경문학상 수상자로 김륭 시인 선정
제5회 선경문학상 수상자로 김륭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식물복지’ 외 53편이며 상금은 1000만원. 시 전문지 ‘상상인’과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최근 제5회 선경문학상 수사자로 김륭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를 맡은 이병률 시인,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김륭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시 한 편 한 편의 제목에서부터 긴장감을 몰아가는 시들이 많았다. 시들은 낭창하고 자유로우며 재미졌다”며 “김륭 시인 특유의 음악성 또한 느껴졌는데 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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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그녀는 비가 막 돌아다닌다고
울고
지난해 많이 아팠다. 달과 비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당황했다. 불쑥,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 죽은 식물이 찾아올 것 같은 나날이었다. 생지처럼 흰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림자를 발견한 듯. 침대 위에 놓여있던 베개는 또 나를 떠날 궁리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게 많이 미안해서 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로 인해 시작된 사람이지만 나로 끝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은 아파도 마음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가 그런 거고 사랑이 그런 거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같이 살까?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아팠을 때도 아프고 난 후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 두면 혼날 것 같은, 울음이 그런 거라면 한마음에게 가는 한마음의 형식이 그런 거라면 가끔씩은 달을 식혀서 가져와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쓴 이런 구절처럼―“그녀가 병원에 간 동안 나는 살기 위해/바쁘다. 목을 가슴에 푹 쑤셔 넣고/지하수에 빠져 죽은 사람도/되어보고,”―나는 또 당황한다. 이쯤에서 나는 내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많이 미안해서 눈곱만큼이라도 아름다워졌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부족한 작품을 다독여 주신 이병률 시인님과 이성혁 평론가님 그리고 이승예 선경문학상 운영위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시인은 받아 적고 사랑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올해 제5회 선경문학상의 주인공은 ?식물복지? 외 53편을 응모한 김륭 시인이다. 철저히 이름을 가리고 한 심사에서 익히 읽어왔던 시인의 이름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시집 한 권을 분량의 시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시 한 편 한 편의 제목에서부터 긴장감을 몰아가는 시들이 많았다. 시들은 낭창하고 자유로우며 재미졌다. 김륭 시인 특유의 음악성 또한 느껴졌는데 시인이 시를 쓸 때의 ‘심적 유희’를 건네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비록 개인의 취향일 수 있겠으나 아무리 냉정하게 심사를 하려 해도 좋은 시 앞에서 마음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고기, 닭, 새, 개, 토끼, 고양이, 돼지 등등의 동물을 유기적으로 등장시켜 일상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는 기법들은 현재 김륭 시인의 매혹적인 시세계라 단언할 수 있겠다. 동시에 그 부분은 ‘한 권’이라는 시집의 형태를 만드는 데 있어 적극적인 컨셉트로도 읽혔다.
이성혁 평론가와 함께 본선에 오른 작품집을 읽는 일은 즐거웠다. 그만큼 이 상의 권위와 자리가 굳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절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다른 투고작들을 살펴보자(대표작만 명기하기로 한다). 『철길 위의 하모니카』는 시적인 몰두가 돋보였다. 시 전체를 압도하는 육중한 세계관과 특히 산문시 방식으로 촘촘한 얼개를 펼치는 기법들은 이 시인의 특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겨울을 잃고 나는』을 보내온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일상의 잔잔함을 모조리 지우는 시 쓰기 방식이라든가 우렁찬 목소리로 종횡무진하는 상상력은 또 다른 서정의 감도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다음은『관흉국』이다. ‘단점이 없다는 것이 장점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오래 즐거웠다. 그리고 쉬운 시, 잘 읽히는 시가 갖는 착함에 대해서도 오래 고민했다. 그만큼 이 시인의 시는 소통 가능한 시를 쓰고 있으며 어떤 시든 이해가 쉽다는 미덕이 있었으나 그래도 시에는 ‘뒤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응모작『환대의 식탁에서 시작된 서사』는 모호한 몇몇의 시와 이야기들로 인해 전체 시들을 읽는 동안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여러 다채로운 맛을 맛보게 해준 시들로도 행복했지만 다정한 시인으로서의 장점을 더 많은 시에 녹이거나 이어 나가면 어떨까 싶었다.
선경문학상 위원회는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투고작들을 책상 위에 쌓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했다. 투고작들의 열기만으로도 자리를 잡아가는 문학상으로서 충분히 성과를 이룬 ‘제5회 선경문학상’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열기라는 말을 꺼내서 하는 말이지만 삶을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시인은 그 사랑을 받아 적는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산처럼 솟아오르는 사랑, 불타는 모험으로의 사랑, 진눈깨비 흩날리는 벌판 같은 사랑……
시인은 받아 적고 사랑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 심사위원 : 시인 이병률(글), 문학평론가 이성혁
[출처] 제5회 선경문학상 / 김륭|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