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吟枯木猶生喜 (용음고목유생희)
고목 속에 용이 우니 기쁨이 솟아나고
髑髏生光識轉幽 (촉루생광식전유)
해골에서 빛이나니 알음알이 깊어지네
磊落一聲空粉碎 (뇌락일성공분쇄)
벽력같은 큰 소리 허공을 깨부수고
月波千里放孤舟 (월파천리방고주)
달그림자는 작은 배를 천리나 멀리 띄워 보내네
靈通廣大慧鑑明 (영통광대혜감명)
신령스런 신통력과 광대한 지혜로 거울처럼 밝아
住在空中映無方 (주재공중영무방)
허공에 계시면서 비추지 않은 곳 없네
羅列碧天臨刹土 (나열벽천임찰토)
늘어 선 푸른 하늘 불국토에 임하시어
周昭人世壽算長 (주소인세수산장)
두루두루 비추어 인간 세상 수명 관장하시네
* 선종禪宗 사찰에서 그 종파를 연 조사祖師를 봉안한 절집을
조사당이라고 한다. 조사전이 없는 절에서는 영각影閣을 짓고,
국사國師를 배출한 절에서는 대신 국사전國師殿을 짓기도 한다.
고려시대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가 국사전을 짓고 16국사의
영정을 모시는 것이 그 예이다. 영각을 지은 사찰은 그곳에
이름 있는 선사의 영정을 모시고 제의를 받든다.
교종이 소의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 데 반하여
선종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심법에 의지하는 바 크다.
때문에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전해 받는 제자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으로 깨달음의 정도와
경계를 증명하고 인증 받아 법을 전한다. 이를 인가印可라 한다.
후일에 의발衣鉢을 전하는 제도나 인가의 제한이 사라졌지만,
처음에는 한 제자에게만 인가를 하고 그 징표로서
의발을 전하였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생긴 것이
일종일파一宗一派 사자상전師資相傳의 기풍이며,
이 때문에 문중 스승에 대한 공경이 깍듯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조사에 대한 존숭은 더하여 부도(浮屠:舍利塔)를
세우고 탑비를 건립하는 외에 사찰 경내에 따로 전각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제의를 받들었다.
이렇게 조사를 존숭하기 위한 전각이 바로 조사전이다.
조사전은 사찰 내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살림집에서의 가묘家廟나 유교 서원의 후묘선학後廟先學
배치법을 따른 것이다. 이는 조령祖靈과 생령生靈이
한자리에 모여 살고 있음을 표방한 것이며, 후인들이 선인이
가던 길을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건축 구조상으로는 한국 사찰에서 보이는 층단식
가람배치에서 가장 깊은 곳은 가장 높은 곳이며,
아래로부터 올라오던 동선이 우주공간으로 승화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사전 건물은 국보 제19호로 지정된 부석사 조사당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소박한 건물이
고려 말의 독특한 건축구조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李自綠 이자록 / Jhalo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