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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불의 응답입니다. 제가 이제 와서 우리 구미 목장교회를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참 보석들이 많다. 우리 청년부들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참 참하고 원석들이 참 많다. 잘 다듬으면 정말 훌륭한 보석들이 되겠다. 그리고 우리 구미 목장교회에도 보면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야 이 보석들을 어떻게 캐내지 계속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이 되어야 될 텐데 많은 고민을 하면서 감탄을 하면서 지금 교육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오무리의 아들 아합의 시대입니다. 아합이 왕이었을 때에 그 아내 이사벨이 들어오면서 이사벨을 통해서 바신과 아세라 신이 같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천둥으로 무장하고 번개를 나타내는 창을 들고 있는 그리고 암소를 올라타고 있는 그 바신 곡물 과실 가축 등의 결실 그리고 성장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그리고 아세라 신은 바알의 아내이고 풍요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을 했을 때에는 참 어려운 때죠. 맨날 만나를 먹어야 되던 때이고 가끔 고기 새 몇 마리 먹었을 때 그런 생활을 하다가 이제 가나안 땅 풍성한 땅에 들어오면서 농경이 시작되면서 이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과시를 만들고 내 소추를 만들어서 먹는 시대가 오게 되는 거죠. 하나님의 은혜의 삶을 살다 이제 내가 농사짓는 삶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더 막 농사가 잘 되고 누구는 좀 덜 되기도 하고 또 비가 오기도 하고 비가 안 오기도 하고 근데 하나님은 그런 어떤 과시를 또 열매를 공식이 잘 거둬지려면 하나님께 무슨 어떤 제물을 드리고 뭐 하라는 건 안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냥 그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번죄를 드리고 하나님께 올바로 서는 것을 가르쳐 주셨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떻게 능력껏 살아가느냐.
근데 바알신을 보니까 성장을 나타내주고 곡식을 자라게 해주고 풍요를 해주고, 아니 어떻게 그쪽 농사가 잘 됐어 그러니까 몰랐어. 우리 집에 바알신 하나 들여놨어. 하나 장만해요.
그러면서 그런 것도 이 농사 지을 때 이거 바알신한테 한번 제사 드리고 이렇게 하는 겨 우리 다 그렇게 했어. 여태 모르고 뭐 했어
그러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그리고 국가에서도 이사벨을 통해서 그렇게 권장하고 바알신을 숭배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들은 핍박하고 숨어 다녀야 되고 도망 다녀야 되고
그런 시대에 우리도 살고 있습니다. 물질이 만능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오래 가니까 메마르게 됩니다. 3년의 가뭄이 오게 됩니다. 땅만 메마르는 것이 아니라 심령도 메마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은 생명을 의미하는데 메마른다는 거는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대결이 벌어집니다. 엘리야와 바알신과 아세라 신의 제사장들과 한판 승부가 갈멜산에서 벌어집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갈멜산으로 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벨의 상에서 같이 식사하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950명 매일 같이 식사를 했대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 모였습니다.
갈멜산에 누가 참신인지 한번 대결해 보자. 누가 하나님이신지를 한번 해보자. 그러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하나님이 참 신이지 그랬어야 되는데 아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나 혼동과 분별력이 잃은 시대를 살다 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소를 두 마리 데려다가 한 마리 너희들이 먼저 선택을 해라. 그리고 선택한 소를 너희들 제단에 쌓고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고 그리고 너희 신에게 한번 구해봐라. 불이 내려서 붓는지 불을 내려주셔서 붙는 쪽이 이기는 거야
하면서 대결이 펼쳐집니다. 아침부터 모여서 이제 저녁 무렵까지 오후가 해가 조금 뉘엿뉘엿 될 때까지 바알신의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기도하면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신을 불러냅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제 엘리야가
좋나 봐 조금 더 크게 해봐 잘 안 들리나 봐.
그러면서 조롱을 하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엔 불이 붙지 않으니 950명이 달려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붙지 않으니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예전에는 갈멜산이 바알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던 신전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지금은 무너진 제단이지만 그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을 합니다. 예배를 다시 회복을 하기 위해 기도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 그렇게 다시 수축하면서 나무를 쌓고 소를 각을 떠서 올리면서 도랑을 쫙 팝니다. 그리고 바케스 들통 4개를 가져다가 한 번 물을 떠다가 쫙 뿌립니다.
그것을 세 번 합니다. 3년 동안의 강홍을 의미하는 거죠. 그리고 12지파의 돌들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참 재미있으세요. 그러니까 모든 결정적인 포인트와 파워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이 하시는데 그것을 시작하는 시작점을 꼭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시길 원하세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해서 그것이 시작되기를 원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공동체가 함께 동참하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12돌을 거기다가 재단에다 쌓고 제단을 만듭니다. 12지파를 상징하는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가나안 땅을 들어올 때에 그 성궤를 메고 들어올 때에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쫙 갈라집니다. 홍해가 갈라졌듯이 요단강이 쫙 갈라지면서 건널 때 12지파가 각자 그 강 바닥에 있는 돌들을 하나씩 들고 나옵니다. 그래서 12개의 기념적인 비석처럼 강 건너에 세워둡니다.
그러면 그게 왜 그렇게 합니까? 홍해 물을 아니 요단강을 가는 것은 뭐 물을 퍼가지고 이스라엘 지파가 한 일도 아니고 그냥 그 일에 같이 성궤를 메고 같이 동참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 기념하도록 해주시는 거죠. 영광의 자리에 같이 세워주시는 거죠.
그런 걸 보면 훗날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 저 돌들이 뭐예요? 물어보면 저게 말이야. 우리가 요단강 건너올 때 요단강이 쫙 갈라지면서 지파별로 하나씩 들고 나온 돌이 강물 속 깊이 있던 거요. 저게 그러면서 근데 왜 우리 지파들은 없어요 그러 그게 그때 내가 힘들어가지고 못한다 그랬어 내가 힘들다고 그러는데 우리 집안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하라고 그래 말 난 못해. 근데 이런 줄 알았나 지나고 지날수록 이게 후회가 되네. 하나님이 참석해 고 그 영광의 자리를 세워주시려고 그러는데 난 그걸 몰랐어.
그렇게 되는 거죠. 이 무너진 재단을 다시 수축하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을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모르고 있는 거예요. 왜 너무 많은 세월 지났어요 너무 많은 세상의 물들에 들어져 왔어요. 그냥 상식적인 것들이 세상 것들이 그냥 당연시되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게 뒤죽박죽 되어버렸기 때문에 거기서 본질을 뽑아내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되는데 그냥 너무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다 보면 그냥 제가 늘 우리 청년들한테 계속 말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손 잡고 옛날부터 다녀서 그냥 습관적으로 다니는 그 믿음이 아니다. 나의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그죠 근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적인 삶과 혼합되어지면서 이것이 본질이 사라지고 그냥 내 몸에 밴 종교인이 돼버릴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종인 것, 주님의 내 삶의 주관자임을 인정하고 주님의 인정받는 자로 쓰임받고자 하는 일꾼이 되어지는 것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행하는 것, 주의 말씀을 의지해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에 많은 물고기들이 올라온 것처럼 밤새도록 잡았어. 밤새도록 세상을 쫓아다녔는데도 못 잡았던 물고기를 주님이 던지라 하는 대로 주님이 말씀을 의지하고 던졌더니 많은 물고기들을 건질 수 있었다는 거죠.
세상은 세상의 방식대로 해야 되고, 하나님을 믿는 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따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던 것들이 성경에서도 나오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엔 세상에 물들어 바알신을 섬기고 아세라신을 섬겼던 것, 그것을 하나님이 돌이키시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주십시오. 어두운 흑암의 시대에 옳고 그름이 분별되지 않고 신앙에 대한 핍박과 환란이 있어 믿음이 수치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교회 다녔어 몰랐네. 믿음이 수치스러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되심을 나타내는 오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영적 전쟁의 시대 그때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일들인 것입니다.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길 원하십니다. 3년의 가뭄을 통해서 3년에 메마른 심령을 통해서 그동안에 하나님이 주셨던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하나님이 여태까지 하셨던 일들이 그 있음에도 불구 그것을 듣고 자랐던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가운데에 내가 물들어서 분별하지 못하고 까먹고 잊어먹고 계속 메마름에 극을 치달해가던 그 삶, 그 삶 가운데 하나님의 되돌이키심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거기로 가면 떨어져 글로 계속 가면 안 돼 낭떠러지야 돌아서야 돼라고 하나님이 되돌이키게 하시는 겁니다. 세상을 향했던 마음을 돌이키고, 우상을 쫓았던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을 외면했던 마음을 돌이키고 그렇게 돌이키게 하시며 회복해 하시는 것입니다.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회복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제단이 다시 수축되어지는 것이죠. 무너졌던 제단을 공동체가 함께 돌을 놓음으로 다시 제단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메마른 심령에 흠뻑 젖는 은혜의 단비가 내릴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즉시로 불의 응답이 있습니다. 불의 태움을 통해서 죄가 태워지고 죄가 전멸하게 되고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성령의 불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워낙 강한 불이라 아무리 12통의 물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젖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강렬한 성령의 불이 임할 때에 다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으로 우리의 죄악을 태워주시옵소서 우리가 주저함을, 우리가 외면했음을, 우리가 주저앉아 있었음을, 세상과 분별되지 못했음을, 세상적인 것에 물들어서 세상을 쫓았음을 태워 주시옵소서. 그 불의 응답으로 모든 죄가 사라지게 됩니다. 외면하던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때 메마른 심령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한나절을 950명의 바알신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들이 그렇게 난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세상적인 그런 능력의 상징이었던 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입에서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참 신이십니다. 주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삶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모든 선지자들 그 바알의 선지자들은 다 척결이 되어지고 전멸이 되어지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중보가 시작되어집니다. 그러면서 엘리야가 저 가서 바보가 저쪽 가가지고 저기 하늘을 보고 와봐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래 또 기도해 또 가봐. 7번을 가서 봅니다. 일곱 번째 가서 보니까 저 끝에서 이 손바닥만한 손그룹 하나가 보이는데요.
근데 하나님의 일은 참 신기합니다. 점점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보여야 되는데 전혀 나아만도 여섯 번째 들어가도 전혀 7번째 딱 들어가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과정 가운데에서도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봐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거죠.
예수님께서 잔칫집에서 이 물 떠다가 포도주 관장 담당자한테 갖다 줘. 그 하인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이 물을 갖다가 포도주라고 갖다 주라고 똥 밟았네. 오늘 나 똥 밟았네. 그러면서 갖다 줬을 겁니다.
그렇지만 갖다 줬을 때에 어디서 이런 훌륭한 포도주를 샀지 그러면 똥 밟았구나 했던 생각이 바뀝니다. 두고두고 내가 말이지 저번에 말이지 어디 장치집 가가지고 이거 예수님이 갖다 줘서 갖다 줬더니 물이 포도주 아주 상급 포도주가 됐어.
그러면서 두구두구 그 기적을 얘기하는 간증거리가 됩니다. 그 사람은 평생 그 얘기를 하면서 다닐 겁니다. 왜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기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그 일에 참석했고 참여했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의 움직임을 보게 되어야 되는 것이죠. 그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 했을 때 엘리야가 됐다. 이제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손바닥만한 구름이 가끔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안 오던 청년이 나타날 때, 기도학교에 새벽에 안 오던 성도가 나타날 때 또 성도들이 모여서 왁싱을 하는 모습을 볼 때, 페인트칠하는 모습을 볼 때 온세대 예배를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런 모습들이 다 손바닥만한 구름으로 보여집니다.
아람 군대가 다 둘러싸 가지고 엘리사를 잡겠다고 왔을 때 청년이 두려워합니다. 저 군대가 우리를 쳐들어오면 우리는 죽을 겁니다. 그때 엘리사가 기도하며 청년의 눈이 열렸을 때 하나님의 불병거와 불말들이 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눈이 열렸을 때 하나님이 일하게 되심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그자가 그것을 보면 어떨까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주저앉지 않습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생기고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거대한 비구름으로 응답되어집니다. 그것이 기도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가서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외면할 수밖에 없고, 세상을 바라보면 주저할 수밖에 없고 걱정할 수밖에 없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린다면 손바닥만한 구름이 비구름으로 변하게 되고, 우리에게 부어지는 우리의 메마른 심령 가운데 부어지는 비구름이 되어지는 단비가 되어지는 그러한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