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강해 (12)
다윗의 길을 걸어간 히스기야
왕하 18:1-8
I. 서론
오늘부터 몇 주 동안, 히스기야에 관련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주일학교를 어릴 때 다니신 분은 유다 왕 히스기야에 대해서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히스기야를 떠올리실 때,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십니까?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참으로 특이한 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히스기야가 남쪽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에, 북 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1절,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호세아는 북 왕조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북 왕조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멸망했고, 히스기야는 부친 아하스와 함께 BC 729년부터 통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유다를 통치한 지 6년이 지난 시점에서 북 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비록 분단된 조국이었지만, 히스기야는 동족 이스라엘의 패망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이제 남 왕조 유다를 침략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히스기야는 선왕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지독하게 악한 왕이었습니다. 1절,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역대기를 기록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아하스의 악함을 지적했습니다. 대하 28:2-4,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대하 28:24-25,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아하스는 바알 우상을 만들었고, 자신의 자녀들을 불살라 우상에게 바쳤고, 여호와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전의 문을 닫아 버렸던 것입니다.
셋째, 아버지 아하스의 악정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왕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3절,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한국에서는 세종 대왕과 같다는 것이 대통령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이고, 미국에서는 아브라함 링컨과 같다는 것이 최고의 찬사이듯이,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같다는 것이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다윗과 같은 왕이라는 칭호는 오직 네 명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첫째, 아사 왕(유다의 3대 왕) 왕상 15: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둘째, 여호사밧 왕(유다의 4대 왕) 대하 17:3-4,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셋째, 히스기야 왕(유다의 13대 왕) 왕하 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넷째, 요시야 왕(유다의 16대 왕) 왕하 22: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히스기야가 그 중의 한 명이었던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히스기야는 남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북 왕조 이스라엘이 패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악한 왕이었지만, 그는 다윗의 행위를 따른 선한 왕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머지 구절에서도 히스기야가 왜 선왕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칭찬을 다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본론
1. 첫째, 히스기야는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3~4절,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본문에 나오는 “정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시면, “ha-ya-sa”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옳게 행하다”의 의미입니다.
출 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여기서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말씀은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의롭게 행했다 / 옳게 행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히스기야가 어떻게 여호와 앞에서 옳게 행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4절,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한 마디로, 우상을 유다 땅에서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 땅이 더 이상 우상 숭배의 장소가 되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의를 행했다, 정직하게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4절 말미에 특이한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을 구원해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시대까지 이스라엘 사람은 이 놋뱀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놋뱀을 치료의 신인 것처럼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히스기야가 깨부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구원의 상징이었던 놋뱀을 숭배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게 된 것이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그 대상을 바꾸어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올려놓고 다른 것을 예배하게 된 것이다. 예배하는 인간! 이것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입니다. 동물도 어느 정도의 지적 능력과 정서적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영적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동물은 예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가 비슷해도 침팬지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종교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무언가를 올려놓고 그것을 예배하고 섬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었습니다.
5-6절,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기에 인간 세계와 하나님 세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마음이 좋은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녀가 계속 부모를 의지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자녀가 경제적으로 부모를 의지할 때, 부모가 도와줄 능력이 없으면, 도와주지 못하니 마음이 아플 것이고; 부모가 도와줄 능력이 있더라도, 자녀가 독립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부모를 의지한다면, 이것 역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 하나님을 멀리했는데, 위급한 상황을 만났다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께 너무 많이 도와달라고 간구해서 더 이상 간구하는 것이 염치가 없는 행동이라고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간 수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5절,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지독하게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히스기야가 최고의 찬사를 받은 왕이 된 이유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놓여 있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문제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면했습니다. 잠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3. 마지막으로, 히스기야는 형통한 왕이었습니다.
7-8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 히스기야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형통한 삶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형통한 삶을 살았을 때,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여호와를 따랐을 때, 받은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대상 18: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 히스기야는 다윗의 길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통한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통함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 중, 형통한 삶을 산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통한 삶을 살았다고 설명한 구절을 보면, 그 형통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형통했다”는 것이 “고난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서 노예로 팔림을 당했고, 보디발에게서 오해를 받아 옥살이까지 당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셉을 여전히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에게도 고난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고난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가장 큰 두 가지는 앗수르의 침공과 자신의 죽을 병이었습니다. 이 모든 고난 가운데서도 그는 다시 일어났고,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히스기야는 국내외의 나쁜 상황 속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앞선 왕의 우상 숭배로 온 나라가 우상으로 가득찼었고, 국외적으로는 앗수르가 계속 위협했습니다. 이러한 나쁜 상황 가운데서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형통한 삶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 처해 있든지 하나님만을 의지합시다. 하나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형통한 삶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