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부문
<입선>

[입상자 약력]
장인영
2003년
이민 성균관대학교 졸업 삼도물산 사보,홍보 담당 할라 에어로빅 회원 세탁소 운영
[입상 작품]
읏따따 엇박자
무엇인가를 손에 꼭 쥐고 있는 봉달씨는 히죽히죽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누가 빼앗아 가기라도 할까봐 주먹 쥔 손을 반쯤 열고 패를 쪼둣 쳐다보는 그의 눈엔
이미 세상의 절반이 담겨있다. “여봇,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요? 태깅도 해야 하고, 옷도 분류해야 하고.. 저 겨울 외투들 좀 봐아. 저건 또 언제 문지를건데... 제발 빨리빨리 좀 해, 그러지 말고! “ 정말 소리를 안 질러야지 안 질러야지 하면서도 남편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져 버린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도 일머리가 없는지 아무리 좋게 봐줄래야 봐 줄
수가 없다.. “아, 이 사람아, 일하러 태어났냐.. 쉬엄쉬엄 하는 거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라고 내일이 있는 거고.. 사람 숨넘어 가긴.. 그건 그렇고 여보, 우리 이번에 이것만 되면 큰 집으로 이사 가자. 당신 차도 하나 뽑아줄게. 테슬라 알지? 전기차! 우리 회장님이 타시려면테슬라 정도는 돼야지. 안 그래? “여보고 저보고 간에 그 놈에 로또가 언제 되는데? 그 로또 산 돈만 모았어도 테슬란지 뭔슬란지 사고도 남았겠다, 개뿔! 사람이 자기가 피땀 흘려서 번 돈 아니면 탐내지를 말아야지 왜 공돈을 바라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그 놈에 로또가 태깅을 해줘, 터치업을 해줘?! 예순씨 목소리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위험수위를 감지한 봉달씨는 로또를 바지주머니에 슬그머니 밀어넣고는
“사람이 지나치면 아니한만 못하다 했어. 일도 숨을 쉬어가면서 해야지..”
라며 궁시렁거렸다. 매사 만사태평인 봉달씨는 오로지 일, 일, 일만 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은 몇 달만에 만나는 영어학교 동기 모임이다. 모처럼 예순씨는 오후 7시, 문을
닫자마자 세탁소를 나섰다. 벌써 이들을 안 지도 10년이
되어간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영어도 안되지, 비빌 언덕도
없지 이 땅에서 도대체 뭘하고 살아야 되나 싶어 고민 깨나 했었는데 이젠 모두 한 업종에 뿌리를 내리고 제법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삶의 큰 고비를 서로 다독이며 넘어와서일까, 지금까지도 우린
전생에 딸부자집 자매였을 거라고 할만큼 서로를 챙기고 아끼는 살가움이 있다. 그래서 낯가림 심한 예순씨도
이 모임 만큼은 빠지지 않는다.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두리번거리는 예순씨를 향해 “언니, 언니! 여기.” 하는 혜옥이 목소리가 들린다. “어휴, 이게 얼마만이야. 모두 별일 없었지?” 온 몸으로 반가움을 표하는 예순씨를 보자 다들 박꽃같이 환한
얼굴로 반긴다. “얘, 얘. 더위가 살짝 수그러들어서 그런지 니 얼굴이 좀 낫다. 지난 번에
볼 때는 영 형편없더라구.” 소영언니 눈에 안스러움이 묻어난다. “누가 아니래, 언니. 여름엔 워낙 땀을 많이 흘리니까… 오죽하면 내가 사우나에서 국을 끓인다고 할까. 우리 남편은 겨울에 잘 먹여놔도 여름만 왔다하면 바로 빠져. 공이
없다니까..” “얘, 내년 여름엔
우리 남편 보낼게. 그 사람은 살 좀 빼야돼. 에어컨 빵빵하게
켜놓고 맨날 컨비니언스 안에서만 꼬물딱 대고 있으니 살이 빠지니. 시킬 일 없니? 시킬 일 있어도 그 사람 시켰다가는 니가 지레 죽을거다, 답답해서.. 어휴 답답이.” “아니, 영미 언니. 언니네 아저씨도 그러셔? 난 우리 남편만 그런 줄 알았구만.’ 예순씨 말에 영미언니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뭐? 언니네 아저씨도 그러냐고? 내가 아는 모든 남자가 다섯 살이야. 우리 집 남자나 남의 집 남자나 다 똑같아. 아닌 남자를 본 적이
없네요.” 영미언니 말에 모두 박장대소 하자 예순씨도 모처럼 속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얘, 혜옥아, 올 겨울에 한 2주 휴가 낼 수 있니? 숙자는 벌써 사전 승인 떨어졌다는데.. ” “2주? 왜?” 느닷없는 소영 언니 말에 혜옥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남들은 겨울마다 골프치러 도미니카다, 플로리다다 가는데 이번엔 우리도 따뜻한 곳으로 여행이나 다녀와보자. 난
골프를 안 치니까 그렇고, 골프 칠 사람은 골프 치고 아닌 사람은 그냥 비치파라솔 아래서 바다 바라보면서
파도소리에, 바람에 그렇게 힐링이나 하고... 어때? 휴가 낼 수 있겠어?” “마트라.. 딱히
휴가라고는 없는 곳이니까.. 그래도 팀장한테 한번 물어볼게.” “물어보기는! 날
잡아 잡수 하면서 받아내야지.” “예순이, 넌? 남편 보고 한 2주 혼자 하시라고 해. 니가 빠져야 남편이 너 귀한 줄 알지”! “어? 어.. 언니, 난 좀 그래.. 할
일도 많고.. 그리고 알잖아.. 세탁소 플란트는 혼자 하기 힘들어..” “얘는, 세탁소 플란트만
혼자 하기 힘드니. 다른 것도 마찬가지야.. 남자들이 다
자기 덕에 가게가 돌아가는 줄 아는데 이렇게 한번씩 빠져줘 봐야 그게 아니구나 한다고.. 하여튼 잔말
말고 이번엔 너도 꼭 가자. 지난 번 2박 3일 여행도 너만 빠졌잖아.” “아니야, 언니. 난 힘들어.. 이번에 새로 보험도 하나 들었고.. 돈 들어갈 것도 많은데.. 좀 있다가 같이 갈게.” “좀 있다 언제? 좀
쉬엄쉬엄 일해. 너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너
아프다고 자식이나 남편이 알아주는 줄 아니? 엄마 입원해 있다고 자식들이 학교 안가고 친구 안 만나는
줄 알아? 남편은 남편대로 혼자 일한다고 너 보러 올 새도 없어. 아파봐. 나만 서러운 거야. 좀 놀아!” “알았어, 언니. 어찌됐건 내 생각해주는 건 언니밖에 없네. 그건 그렇고 저기, 미안한데 나 오늘은 좀 먼저 가봐야겠다.” 모처럼 이 얘기 저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예순씨는 시계를 보고는 슬그머니 일어날 채비를 차렸다. “왜, 예순씨! 우리 밥 먹고 노래방 가서 실컷 노래나 하려고 했는데..” 숙자씨
얼굴에 섭섭함이 묻어났다. “어, 내일이 친정엄마
기일이잖아. 제대로는 아니더라도 엄마가 좋아하셨던 음식 차려서 간단하게 제사나 지내려고..” “그래? 내일이 기일이야? 말하지 그랬어. 그럼 다른 날로 잡았을 텐데…” “아니야, 언니. 나 때문에 또 바꾸고 바꾸고 할 수는 없지. 노래방 가서 재미있게
놀다 가. 오늘은 나 먼저 일어날게.” “에이, 아쉽네.. 그래, 그럼. 마음
바쁠 텐데.. 다음에 또 만나면
되지.”. “얘, 몸 조심해. 더운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리고 여행 건은 남편이랑 얘기해보고, 알았지? 조심해서 가.” 왁자지껄한 인사소리를 뒤로 하고 나오는 예순씨 얼굴에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한껏 묻어있다. 제사상에 준비한 음식을 하나 하나 올리는 예순씨 눈에 눈물이
씀벅히 배어올랐다. 제사음식이라고 격에 맞춘 것도 아니고 그저 생전에 친정엄마가 좋아하시던 나물 몇
가지와 김치겉절이, 심심하게 끓인 된장국이 전부다. 빨갛게
금방 버무린 겉절이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 뜨끈한 밥 한숟가락 푹 떠서 그 위로 겉절이 하나 척
올려 드시면서 “내는 이런 게 좋아” 하고 말씀하셨는데… 친정엄마가 떠나신 지도 벌써
4년이나 흘렀다. 예순씨가 엄마한테 처음으로 이민 얘기를 꺼냈을 때, 엄마 눈이 텅 비어 보였었다. “야야, 니가 그
먼, 나무 나라에 가서 우예살라꼬.. 김서방이 대가 세기를
하나, 야물기를 하나..” 하며 말끝을 흐리셨었다. 떠나는 날 공항에서도 눈물을 꾹꾹 눌러 참으며 “야야, 니가 고생고에는 빠지지 말아야 하는데.. “하며 안스러움에 애간장이
녹아내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 나 여기
남의 나라에서도 이제 잘 살아. 엉터리 영어지만 손님들하고 얘기하면서 웃기도 하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집 몰기지도 다 갚을 수 있고 다운타운에 작지만 건물도 하나 사뒀어. 리타이어 후엔 이것저것 들어놓은 적금이랑 연금이랑 렌트 수입 합하면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보고 있지? 엄마가
걱정하던 막내딸… 이젠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사진을 어루만지며 오늘따라 유난히도 엄마가 그리운 예순씨다. 더위가 한 풀 수그러들었나 싶더니 이번 주는 내내 갑작스러운
늦더위에 습도까지 높아 다들 기진맥진이다. 뼈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다.
손님들은 잠시 카운터에 머무는 것도 고역인지 그냥 던져놓고 가버린다. 바깥기온이 30도를 넘어섰다고 호들갑이지만 세탁소 안에 있다 밖으로 나가면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이 선선하게 느껴진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세임데이를 원하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 “여보, 이것도 세임데이야. 빨리 좀 해.” “지금 몇 시야! 왜
세임데이를 받아? 받지마.!” “어떻게 안 받아, 우리
믿고 오는 단골손님인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하기나 해. 4시에 찾으러 올 거야. “아, 정말. 미치겠네. 날은 덥지, 일은
많지, 시간은 짧지. 왜 이런 날 세임데이가 자꾸 들어오냐고!
전화 해봐, 일단 필요한 거만 찾아가라고!” “말 같은 소리를 해. 이게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이야. 토요일날 맡기고 바로 찾아가서 일주일 잊고 지내려고! 손님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될 걸 전화는 무슨 전화! 빨리빨리 하면
되잖아! 손발 안 맞는 남편이랑 일을 하려니 숨 넘어가는 사람은 예순씨다. 말은 남편 보고 하라고 해놓고서는 빨래자루에 옷을 넣어 세탁기를 돌리는 사람은 예순씨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안 바쁠 때야 그러려니 하는데 일이 이렇게
밀려들 떄는 짜증에 받쳐서 저절로 목소리가 올라간다. 베짱이 같은 남편 몰아치면서 일을 하려니 오늘따라
두통에 가슴마저 답답한 게 심호흡을 해도 나아지질 않는다. 느즈막히 집에 돌아온 예순씨는 소파 끝에 걸터앉아 고개를 젖히며
오늘,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했지 싶어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잠시 눈을 감으니 몸이 껌딱지 마냥 소파에 들러붙을 것만 같다. 이러다
진짜 아무 것도 못하겠다 싶어 ‘에구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돈다. 이 시간에 들어와도 입 짧은 남편 때문에 매번 뭔가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요즘처럼 더운 날엔 간단히 먹고 들어오면 좋겠구만 외식이라고는 질색을 하는 남편을 보면 웬수가 따로 없다 싶다. 저녁 먹기 바쁘게 후딱 설겇이를 마치고 서늘한 지하실로 내려왔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더위엔 선선한 지하가 숙면을 취하기는 최고여서 예순씨는 아들이 쓰던 방에서 혼자 자고
있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그나마 여유로운 밤이다. 너무 더운
열기 속에서 일을 한 탓인지 오늘은 유난히 머리도 띵하고 가슴도 답답하다. 예순씨는 크게 심호흡을 해가며
느긋하게 밀린 드라마를 봤다. 내일은 좀 푹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밤이 깊어가도 한 회만 더, 한 회만 더 하다 새벽 무렵에야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봉달씨
기색이 영 언짢다. 아까부터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이 놈에 마누라.. 일요일이라고 모처럼 늦잠을 자나보다 싶어 가만히
두었는데 삼시세끼 꼭 챙겨먹어야 하는 봉달씨는 도저히 더 기다릴 수가 없어 지하실로 내려갔다. 서늘한
기운이 돈다. 반쯤 열린 방 안을 보니 예순씨는 여전히 꿈나라다. 지하라
어두침침 하지, 서늘하지 이 사람이 밤낮을 구별 못하나 보다 싶었다.
“여보, 여보! 지금이 몇 신줄 알아? 빨리 일어나아. 나 배고파.” 문고리를 잡고 몸을 반쯤 밀어넣고는 짜증 섞인 소리를 냈지만
아내는 미동도 없다. “아니, 이 사람이. 뭐 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라고 하면서 예순씨를 흔들려던 봉달씨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떻게 엠뷰런스를 불렀는지, 어떻게
장례를 치뤘는지 모든 게 나만 빼놓고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악착같이 일만 하더니 이게 뭐냐며 울고불고 하던
예순씨 지인들 생각도 나고, 노후에 편히 살겠다며 조금만 조금만 하더니 고생만 하다 갔다고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내 친구들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아내 유품을 정리하던 봉달씨는 아내가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폐백보자기에 손이 닿았다. 아내는 이 폐백보자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마치 자기 꿈들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것 같다고.. 보물단지 싸매듯이
사방으로 접어 돌돌 말아놓은 폐백보자기를 펼치자 커다란 봉투 안에 적금통장이며 건물계약서며 보험이며 차곡차곡 쌓인 예순씨 꿈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예순씨 심장을 꺼내보는 것 같아 봉달씨 가슴이 에려왔다. “이
사람아! 이게 뭐가 필요해.. 당신도 없는데 나 혼자 어쩌라고.. 그렇게 쉬엄쉬엄 하라고 했구만.. 내 말 좀 듣지.. 이게 뭐가 필요하냐고! “ 아무도 없는 방에서 목놓아 꺽꺽 소리
내 울던 봉달씨는 비로소 엄청난 일이 있었음이 실감되는 듯했다. 도대체 오늘이 며칠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정신이 반쯤 나간 봉달씨는 몸이 이끄는 대로 밖으로 나와 컨비니언스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떼면서도 봉달씨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똑같았다. 어제처럼 해도 떠있고, 차들도 다니고 사람들 표정도 똑같고.. 분명 나한테는 엄청난 일이 있었는데 무심하게도 세상은 똑같았다. 변한
게 없었다. 어제나 그제나 오늘이나… 어째서 세상은 똑같은데 나만 달라진 거란 말인가? 카운터 앞에 서서 담배값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자 로또
몇 장이 딸려나왔다. 그 놈에 로또 산 돈만 모았어도 집 한채는 샀겠다고 면박을 주던 아내 목소리가
같이 딸려나오는 듯했다. 봉달씨가 담배포장을 뜯고 있는 사이 컨비니언스 주인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로또를
기계에 집어넣었다. 담배 한 가치를 꺼내려는 순간 컨비니언스를 뒤흔드는 팡파레가 울려퍼졌다. “헉” 컨비니언스 주인도, 봉달씨도
순간 박제가 된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대문짝만해진
눈이 서로 마주친 순간 봉달씨는 깨달았다. 그 분이 없는 것이다. 새
차, 큰 집 주인이어야만 하는 회장님, 내 마누라가.. 양 손으로 로또를 거머쥔 채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여보, 여보, 예순아 하면서 꺽꺽 거리는 봉달씨의 울음소리가 컨비니언스를
채웠다.
[심사평]

김외숙 소설가
삶의 순간을 포착하여 압축된 언어표현과 구성, 풍자와 기지로 예상을 뒤엎는 결말을 이루는 짧은 이야기 꽁트 부문에 응모된 <아내의
소꼽>, <아프리카로 가자>, <읏따따
엇박자>, 3 작품 중 <읏따따 엇박자>가 콩트에 근접한 작품이었지만 지켜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요건을 간과한 것이 흠이었다. 콩트 <읏따따 엇박자>는 이제는 삶의 기반을 잡았지만 평안한 미래를 위해 여전히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땀 흘리며 살아가는 한 이민자 가정의 일상에서 부부가 드러내는 서로 다른 성격을 포착, 작품소재로
삼은 응모자의 시선과 습작의 흔적을 읽게 하는 표현력, 도입부에 깔아둔 복선을 결말의 반전에 접목, 콩트의 묘미를 살린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소설 또는 콩트 속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화자(narrator) 곧 시점의 일관성이 어느 부분에서 흐려진 점,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빈번하고 장황한 대화는 오히려 압축적인 언어표현을 전제한 짧은 이야기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수다로 흐른 긴 대화에 치우쳐 다 드러내지 않고도 깊은 의미를
전할 수 있도록 하는 콩트의 중요한 요건, 함축이란 기교 적용에 소홀한 점이 아쉬웠다. 심사위원: 이명자, 김외숙 소설가
[입상 소감]
겨울이라 어둠이 빨리 내린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간히 서 있는 가로등이
어둠을 쫓고 어둠이 다시 빛을 밀어내면 창 밖으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갈 길을 밝혀준다. 겨울 달은 유난히 크고 반질거린다. 마치 큐브의 얼음덩이 안에 들어 앉아 있는 것처럼.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일까,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애잔하다. 사람들과의
인연도, 흐르는 시간도, 보이는 사물도,모두… 평온한 일상의 흐름 속에서 내 존재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시퍼렇게 날 선 정신은 아니더라도 깨어 있음을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랄까.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소풍날을 손꼽는 어린 아이마냥 가슴 설레고
달떠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탈고의 흐뭇함도 따라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했는데 수상의 기쁨까지 더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매 순간순간 끊임없는 자극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소울메이트, 내 아들 상수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고, 나와 찰나의 인연이라도
있는 모든 분들과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다시 없을 큰 즐거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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