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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칠갑산 장곡사
2026년 07월 17일(금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장곡사(長谷寺)는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소재한 사찰입니다.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가람으로 신라 문성왕 12년(AD 850)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澄, 804-880)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습니다.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국보 제58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화(국보 제300호), 상하대웅전(보물 제162호·제181호), 장곡사 철조비로자나좌상부석조대좌(보물 제174호), 금동약사여래불좌상(보물 제337호), 설선당(유형문화재 제273호) 등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곡사는 다른 가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하 대웅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약사여래 기도도량으로도 유명합니다.
1997년 신축된 장곡사 일주문 앞쪽
칠갑산장곡사(七甲山 長谷寺)
장곡사 일주문 뒷쪽
칠갑산장곡사(七甲山 長谷寺)
장곡사가 보입니다.
범종루
누각 향 좌측에 자리한 2층 누각 형태의 범종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으며, 내부에는 범종과 함께 찢어진 법고가 매달려있고, 한 쪽에 오래된 구시가 있습니다.
범종루(梵鐘樓) 편액
운학루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깐 2층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으로 지었는데, 전면은 홑처마이나 후면은 겹처마로 앞뒤가 다릅니다.
아래층의 가운데 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비었으며, 윗층은 두짝짜리 판장문을 설치하였습니다.
운학루(雲鶴樓)는 '구름 속에서 학이 논다'라는 의미로 원래 호서지방 사곡사(마곡사, 장곡사, 안곡사, 운곡사)중 하나였던 운곡사가 19세기 후반 폐사되면서 운곡사에 있던 누각을 옯겨온 것입니다. 그리고 1978년 보수하고 200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는데 정면에는 '운학루' 경내 쪽으로는 '칠갑산장곡사'라는 편액이 있습니다.
청학이 내려와 앉았던 명당의 건물이라는 뜻을 가진 운학루
운학루(雲鶴樓) 편액
운학루 뒤쪽
누각의 뒤편에는 칠갑산 장곡사 편액이 걸려있고,
겹처마에 4짝짜리 띠살문을 설치하였으며, 창방과 장여 사이가 넓어 그 간격에 맞는 화반을 끼웠는데, 위는 넓고 아래가 좁은 복화반을 삽입하였습니다.
창고로 사용하는 누각 2층에는 각종 편액과 미륵불 괘불탱 및 유물 등이 보관되어 있으나 폐쇄되어 내부를 볼 수는 없습니다.
운학루 뒤쪽
칠갑산장곡사(七甲山長谷寺) 편액
범종루
코끼리 가죽을 사용해서 만든 북이 있는 범종루
범종루와 장독대
하대웅전
설선당(유형문화재 제151호)
강설과 참선을 하던 선방건물로 건축된 설선당은 하대웅전과 거의 같은 때인 조선 중기의 건물로 추정됩니다. 본래 정면 4칸, 측면 3칸의 'ㅡ'형이었으나, 건물의 남쪽과 서쪽으로 2부분을 승방으로 증측하여 현재는 'ㄱ'형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건축양식은 세부 수법이 다포계 특징을 많이 따른 주심포이며, 외부로만 2출목을 둔 공포의 돌출된 쇠서의 곡선이 완만하고 힘차게 뻗어 있는 기둥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엌인 남쪽 1칸은 맞배집 부분을 고쳐 지은 부분이고, 여기에 동서로 서익사 3칸을 잇대어 늘려지었습니다. 서익사는 민간주택 구조를 취한 요사입니다.
장곡사(長谷寺) 파란색 편액이 걸려 있는데 좌측에 壬子十月 國務總理 金種泌(임자년 10월은 유신체제가 탄생된 1972년)이므로 5공시절인 1972년 당시 국무총리였넌 김종필(1926~2018)의 친필입니다.
설선당(說禪堂) 편액
요사채
하대웅전(보물 제181호)
장곡사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普照禪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하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소규모의 맞배식 건물에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건물은 특이하게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중앙 칸은 간격이 넓어서 공포가 두 개 배치되어 있습니다. 자연석의 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은 민흘림에 가까운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건물 내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을 모시고 있습니다.
창건과 관련된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에 중창하였고, 고종 3년(1866)에 이어 1906년과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대웅전(大雄殿) 편액
불단에는 독존의 약사여래불과 후불탱화가 봉안되었고, 그 외 약사불회도, 감로탱화, 신중탱화 등이 걸려있습니다.
약사불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왼손으로 약함을 받쳐 들고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하였습니다.
복장 유물을 통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고, 특히 백운 경한(1298~1374)이 지은 성불 원문과 함께 시주자 인명에 바얀테무르, 금타이지, 도르지 등의 몽고식 이름이 등장하여 당시 고려 사회에 스며든 몽고 풍속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어, 불교사, 미술사 뿐 아니라 사회사 등 고려 14세기 중반의 역사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어 2022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靑陽 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은 충청남도 청양의 장곡사에 있는 상·하 2채의 대웅전 가운데 하대웅전에 모신 불상입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넙적한 머리(육계)는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은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터워 보이며 어깨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보입니다. 옷자락에는 굵은 주름이 듬성듬성 새겨져 있고, 배에 있는 띠매듭은 율동감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데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불상의 신체는 늘씬하게 균형이 잡혀 있으며 넓은 무릎으로 인해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1959년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발원문이 발견되어,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고려시대 불상임이 확인되었으며 충청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 및 복장유물(국보 제337호)
하대웅전에 모셔진 약사불은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 치료해 준다는 불상으로,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머리는 뚜렷한 나발 형태이며,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윤곽이 분명하고 우아한 모습입니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손톱까지 세미랗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쪽 어깨에는 두터워 보이는 옷자락을 걸쳤으며, 배에 있는 치마와 띠 매듭은 율동감 있게 나타나 있습니다.
1959년에 불상 내부를 조사하면서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제작 연도를 적은 발원문과 유물을 발견하였습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년)이라는 정확한 제작 시기와 1,116명에 달아흔 발원자가 나와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고려 후기 불상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또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유일한 금동 약사여래상이라는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2022년 복장유물 13건 18점과 함께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갸름한 얼굴, 반달눈썹, 지긋이 살짝 뜬 눈, 오뚝한 코, 작은 입 등 일반 부처보다는 작은 얼굴을 한 미녀 부처님입니다. 또한 섬섬옥수에 균형 잡힌 몸매는 보는 이들에게 안정감과 친근감을 줍니다. 이러한 부처님께 기도드리면 오래 앓던 병도 금방 났습니다. 특히 마음의 병. 고려 후기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변함없이 중생들을 보살피고 계십니다.
약사불회도
약사불 좌측에 걸려있는 약사불회도는 약함(藥函)을 받쳐 들고 있는 약사불을 중심으로 주위에 10대 제자, 6대 보살, 12신장 등이 반씩 나뉘어 배치된 그림입니다.
감로탱화
약사불 우측 영가단에 걸려있는 감로탱화는 상단에 칠여래와 관음, 지장보살을 가운데로 좌우에 삼존불과 인로왕보살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는 모습을 그렸고, 중단에는 음식이 차려진 재단을 중심으로 법회를 하는 승려와 이를 구경하는 청중, 두 아귀 등이 표현되었고, 하단에는 망자가 살았던 시절에 일어난 일들을 묘사하였습니다.
신중탱화
신중단에 걸려있는 신중탱화는 위태천 동진보살을 화면 중앙에 크게 부각시키고 상단에 범천과 제석천을 두었으며 주위에 여러 권속 등을 표현하였습니다.
지장전
하대웅전 향 우측에 직교로 세워져 있는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어졌습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
지장전 편액은 수덕사 방장을 지낸 원담 진성(1926~2008) 스님의 글씨입니다.
서예가로서도 이름 높았던 분입니다. 법호 원담(圓潭)에서 둥글 원(圓)자를 동그라미 하나로 대신했습니다.
원담스님은 전북 옥구 출생으로 벽초스님을 은사로, 만공스님을 계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구례 화엄사 주지, 예산 수덕사 주지, 덕숭총림 방장을 지냈습니다.
지장 삼존상
지장보살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었으며, 좌우에는 합장한 도명존자와 두 손으로 경궤를 받쳐 든 무독귀왕이 협시하며 서 있습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지장시왕탱화로, 지장보살을 가운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시왕, 판관, 녹사, 사자, 우두, 마두 등을 반씩 나누어 좌우에 배치하였습니다.
지장보살
하대웅전 측면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하대웅전은 상대웅전보다 훨씬 낮은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입니다.
소박한 맞배지붕에 화려한 다포 양식을 가미한 것은 보기 드문 예입니다.
상대웅전 향 좌측에 요사 염화실(拈花室)이 자리하였고 있습니다.
염화실(拈花室) 편액
염화실(拈花室)
상대웅전에서 바라본 장곡사 하대웅전
상대웅전(보물제162호)
상대웅전은 하대웅전 뒤 높은 곳에 약 45도 엇갈리게 하여 세워져 있습니다.
상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말기에 고쳐지었습니다. 건물은 약간 높이 설치된 기단 위에 둥근 자리가 있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입니다. 다포(多包)식이지만 평방(平枋)이 없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가 하나씩만 배치되는 등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특징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기둥머리에는 굽 받침과 같은 고려시대의 특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쇠서(牛舌)와 보머리는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곳에는 2기의 석조대좌 위에 철조약사여래좌상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좌측으로는 철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다포집이면서 창방만 있고 평방을 두지 않은 주심포집 형식을 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의 자료가 되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상대웅전(大雄殿) 편액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 (보물 제174호)
비로자나불좌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불상은 상대웅전의 높은 석등대좌 위에 양쪽 발을 각각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결가부좌한 모습입니다.
머리는 나발 모양이며, 얼굴은 이마가 좁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지는 삼각형 모양입니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고,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지권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불상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나무로 만든 배모양인데, 머리와 몸 광배는 연꽃무늬로 장식하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습니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3단으로, 하단은 엎어진 연꽃, 중단은 8각의 돌기둥, 그리고 상단은 위로 핀 연꽃을 화강석에 새겨 만들었습니다. 이 불상은 신라 불상의 양식을 따른 고려 초기 철불의 계통을 잇고 있어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국보 제58호)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철조약사여래좌상은 상대웅전의 석조대좌에 모셔져 있습니다. 사각형 모양인 화강암 대좌(臺座)의 네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습니다. 3단 형태의 지대석(地臺石)의 상대에는 위로 핀 연꽃무늬를 새기고, 하대에는 엎어놓은 연꽃무의를 새겨 넣고 네 모서리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중대에는 앞뒤에 2개씩. 좌우에 1개씩 큼직한 눈 모양(眼象)을 조각해 화려한 느낌이 듭니다. 불상은 대좌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나발(螺髮) 형태이며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만 감싸고 오른쪽 가슴이 드러난 모양입니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놓고, 왼손에는 질병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 고려준다는 약사여래의 약단지를 들고 있습니다.
불상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만든 배 모양인데, 머리 광배는 연꽃과 모란으로 장식하고, 몸 광배의 주변은 불꽃 문양으로 꾸몄습니다.
철조아미타불좌상
비로자나불과 약사여래불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후대에 아미타불을 조성한 것으로, 아미타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응진전
응진전(應眞殿) 편액
석가모니불이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을 하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으며, 뒤에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마하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된 영산회상도를 걸고, ㄱ자 형태의 불단에 100여 구의 나한상을 안치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불과 후불탱인 영산회상도
석가모니불이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은 선정인,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였으며, 뒤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된 비교적 단순한 영산회상도입니다.
석가모니불
상대웅전과 응진전
삼성각
상대웅전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한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입니다.
삼성각(三聖閣) 편액
전각 안에는 칠성탱화를 가운데로 좌우에 산신탱화와 독성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칠성탱화
칠성탱화는 위쪽에 좌우 협시를 거느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치성광여래의 두 무릎 근처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서 있습니다. 치성광여래의 좌우에는 칠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구도입니다.
산신탱화
장곡사 산신탱화는 동치 8년(1869)에 화승 영식 화승이 조성한 불화로, 2015년 충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산신도는 소나무 아래서 호랑이를 기댄 산신의 모습이 가장 보편적인 형식입니다.
산신은 등 뒤에 웅크려 앉은 호랑이에 기대어 앉아 시선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산신은 하얀 눈썹과 수염을 한 인자한 얼굴을 하고, 푸른색 유건(儒巾)을 썼으며, 붉은 도포를 입고 선인을 상징하는 나무잎을 어깨에 걸쳤습니다.
산신과 호랑이 뒤로는 시봉을 드는 동자와 동녀가 공양물을 들고 서 있고, 황갈색에 검은 점박이로 표현된 호랑이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소위 민화풍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독성탱화
독성탱(獨聖幀)은 나반존자가 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석가모니불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에 있는 천태산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부처가 열반에 든 후에 중생을 제도한다고 합니다.
상대웅전 아래 400년된 보호수인 느티나무
뒤돌아본 장곡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