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ftCRwdIXa4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에스라의 나무 강단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합니다. 오늘은 107번째 강의로, '바리새인'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종파가 나오는데, 그중에 가장 큰 종파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이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성경에 직접 연관된 사실들을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구약에는 나타나지 않고 신약에만 나타납니다. 헬라어 복수형인 '파리사이오이(Pharisaios)'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약에 기록되어 있어 헬라어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히브리어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페루쉼(Perushim)'으로,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파라쉬(Parash)'라는 동사에서 왔는데, '분리하다', '구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이방인들로부터 분리되고, 다른 유대인들로부터 분리되어 독특하게 별도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바리새인이라는 말이 신약 성경 복음서에 약 88회 나오고, 사도행전에 9회, 빌립보서에 1회 나와 합계 98회 등장합니다. 아주 많이 나옵니다. 한 단체가 98회나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성경 역사와의 관계가 긴밀하고 두터웠다는 뜻입니다. 당시 신약 시대에는 유대의 3대 혹은 4대 사상파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그리고 셀롯파(열심당)입니다. 셀롯파를 빼면 3대 사상파이고, 넣으면 4대 사상파가 됩니다. 오늘 바리새인을 시작으로 하여 이 종파들을 하나씩 공부해 가겠습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시기는 BC 600년경부터 BC 16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BC 600년경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세 번에 걸쳐(BC 605년, 597년, 586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때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완전히 파괴한 뒤 성전 기물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이 포로기부터 역사적 배경이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은 70년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BC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한 뒤, 2년 후인 BC 537년에 칙령을 내려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스룹바벨의 주도로 성전을 완공한 것이 BC 515년이며, 이를 '제2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성전이 파괴된 지 약 70년 만에 성전이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외세의 힘을 빌려 지은 성전이었기에, 내부에서 정당성에 시비를 거는 사상가들이 생겨났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의 손을 빌려 성전을 짓는 것이 마땅한가?" 하는 문제로 내부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 당파가 서로 자신들이 유대교(유대주의)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동안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제사장들은 성전 의식을 주관하고, 서기관과 학자(후대의 랍비)들은 토라 연구를 주 업무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구전 토라(Oral Torah) 역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졌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구전 토라란 성경(모세오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율법을 뜻합니다. 이들은 구전 토라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지키고 해석하며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훗날 바리새파의 핵심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대는 BC 4세기 헬라 시대로 접어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쪽으로 진군하여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 접경까지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이 지치고 식량이 부족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회군하던 중,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33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천하를 정복한 그가 죽기 직전, 장군들이 후임자가 누구여야 하는지 묻자 그는 "힘센 자가 가져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에 제국은 네 명의 장군에 의해 네 부분으로 나뉘게 됩니다.
카산드로스 장군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지역을, 리시마코스 장군은 소아시아(오늘날의 튀르키예) 지역을, 셀레우코스 장군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은 이집트와 아프리카 지역을 맡아 각각 왕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본격적인 헬라 시대가 시작되었고, 헬라 문명이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BC 167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왕이 유대 땅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재물과 성물을 약탈하고 강력한 헬라화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금지하며 "십계명을 지키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말며, 성전 제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심지어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머리를 제물로 바치게 했으며,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금지했습니다.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이러한 박해에 항거하여 일어난 대대적인 사건이 바로 BC 167년에 시작된 '마카베오 전쟁(마카베오 반란)'입니다. 이 항거를 이끈 인물은 마타디아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하스몬 가문(하스몬가)으로 불리는 이 제사장 집안의 지하 독립군은 헬라 군대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했고, 마침내 BC 165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수복했습니다. 이방 신상들을 쓸어내고 성전을 깨끗이 하여 다시 봉헌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에 예수님이 겨울 수전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던 기록이 나옵니다. 이 수전절에 대해서는 우리 어휘 연구 34번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BC 141년, 제사장들과 온 회중은 총회를 열어 마타디아의 아들인 시몬 마카베오를 대제사장과 지도자로 추대했습니다. 이는 하스몬 제사장 가문이 왕권을 잡으며 '하스몬 왕조'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가문이 왕권을 차지하면서 정통성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왕권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제사장 가문이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 사회 내부에서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에 왕위 계승과 정통성을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졌습니다.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다 마카베오의 후계자인 요나단 시대와 관련하여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을 역사상 처음으로 언급했습니다. 이들은 모든 유대 백성이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지키던 정결 예법을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레위기나 민수기에 나타난 정결 규례를 제사장들만 지킬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이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향한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신학적 신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대교의 핵심 교리로 전수되어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의 생활 규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유대 율법에 대한 가장 전문적이고 정확한 해석자로 자처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엘리트 계층이었던 사두개인들과 대조적으로 일반 백성들의 강력한 지지와 호위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훨씬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성향을 띠었습니다.
또한 율법을 해석할 때 사두개인들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24장과 신명기 19장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형상해법(Lex Talionis)에 대해, 사두개인들은 문자 그대로 상대방의 눈을 상하게 했으면 그의 눈을 뽑아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이를 더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눈을 상하게 한 만큼의 물질적인 가치를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훗날의 탈무드 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유대인들의 일상과 종교 생활의 뿌리가 바로 이 바리새인들의 정서와 원칙에 닿아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스몬 왕조와의 관계는 늘 순탄치 않았습니다. 하스몬 가문은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중시하느라 바리새인들을 멀리했고, 둘 사이에는 앙금이 깊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엘르아살이라는 바리새인이 하스몬의 영주이자 대제사장인 요한 힐카누스 면전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전쟁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잉태된 자가 아니냐"라며 출생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던졌습니다. 이에 격분한 요한 힐카누스는 바리새파를 멀리하고 사두개파의 편을 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알렉산더 얀네우스 왕 역시 사두개인들의 편에 서서 성전 예식을 주관했고,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은 결국 유혈 사태와 내전으로 번져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참극을 빚었습니다. 그러나 얀네우스 왕은 임종을 맞이하며 그의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 여왕에게 "나라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바리새인들과 화해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여왕은 이 권고를 받아들여 바리새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바리새인들은 사네드린(유대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정치적·종교적 영향력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살로메 여왕이 사망한 후, 바리새인들의 지지를 받던 첫째 아들 힐카누스 2세와 사두개인들의 지지를 받던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2세 사이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형제간의 갈등은 내전으로 치달았고, 결국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정복하는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로써 하스몬 독립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요세푸스 자신도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기록에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동정적인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훗날 랍비들이 율법의 해석을 모은 '미ishna(미슈나)'와 'Talmud(탈무드)' 역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정세는 다시 요동쳤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를 찾아가 "하스몬 가문의 왕권을 완전히 폐지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난입하여 안식일에 제사를 집도하던 제사장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바리새인들은 이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하스몬 왕정을 종식시키고 힐카누스 2세를 실권이 없는 대제사장으로만 임명했습니다. 이후 유대의 통치권은 시리아 총독과 로마의 협력자인 이두메(에돔) 출신의 안티파테르 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안티파테르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 파사엘은 유대의 군사 행정관이 되었고 둘째 아들 헤롯은 갈릴리의 군사 행정관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이들을 앞세워 유대를 간접 통치했습니다. BC 40년,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인 안티고누스가 로마의 혼란을 틈타 삼촌인 힐카누스 2세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과 대제사장이 되자 헤롯은 로마로 탈출했습니다. 헤롯은 로마의 실력자였던 마르크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지지를 받아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공식적인 '유대인의 왕' 권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왕권을 차지한 헤롯의 통치 말기에 마침내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됩니다.
헤롯은 에돔 족속이었기에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통성 결여의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사두개인들은 헤롯을 반대했으나 헤롯은 세력을 얻기 위해 대중적 지지 기반이 넓은 바리새인들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헤롯은 민심을 얻고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이 지었던 노후한 제2성전을 대대적으로 중건하고 확장하는 대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적과 왕위 위협에 극도로 민감하여 아내와 똑똑한 친아들들까지 의심하여 살해하는 등 잔혹한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하스몬 가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린 그의 포악함 때문에 결국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온 유대인들의 인심을 잃었고, BC 4년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바리새인들이 확립한 신학적 유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명확히 체계화된 교리집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몇 가지 확고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첫째, 영혼의 불멸과 육체의 부활을 강력히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부활을 부인하는 자, 토라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는 쾌락주의자들은 내세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둘째, 신명기 6장 4절의 쉐마 말씀에 근거하여 유일신 사상을 확고히 고수했습니다. 셋째, 여호와를 경외하고 토라를 배우는 것을 참된 지혜로 여겼습니다. 넷째, 자유 의지와 하나님의 예정(예지) 사이에서 독특한 절충안을 가졌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인간에게 100% 자유 의지가 있어 하나님의 개입은 없다고 보았고, 에세네인들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극단적 예정론을 믿은 반면, 바리새인들은 "인간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주어졌으나,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운명을 미리 아신다(예지)"고 믿었습니다. 랍비 아키바가 미슈나에서 "모든 것은 예견되어 있으나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사상을 대변합니다.
다섯째, 내세관에 있어서 선한 자의 영혼은 부활하여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이나 악인의 영혼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여섯째, 실생활에서 온 백성이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법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유지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신조와 규범은 오늘날 현대 유대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한편,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바리새인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BC 3세기에 살았던 '소코의 안티고노스'가 있습니다. 그는 제자들인 사독과 보에투스를 가르쳤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주인을 섬기는 종처럼 행동하지 말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인을 섬기는 종처럼 행동하며 하늘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라." 즉 보상을 바라고 행하는 선은 가식에 불과하며, 이익과 손해를 떠나 선 그 자체를 위해 선을 행하고 악은 그 자체로 피해야 한다는 고결한 도덕성을 주창했습니다.
이제 신약 성경 속 바리새인들의 실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98회나 등장하는 이들은 예수님 및 사도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첫째,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할 때 자신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며 극도로 가혹한 책망을 쏟아냈습니다. 둘째, 예수님 역시 이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모든 백성이 침례 요한의 회개를 받아들였으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요한의 침례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들이 행하는 형식적인 의로움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가르침과 교훈)을 주의하라"고 엄히 명하셨습니다.
다섯째, 마태복음 23장에 이르면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극도로 엄한 저주와 독설을 부어주십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가로막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으며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꾸짖으셨습니다. 또한 이들이 겉으로는 정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시며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를 무려 여덟 번(8화)이나 선언하셨습니다. 헬라어 어원인 '우아이(Ouai, 화 있을진저)'가 신약 전체에 44회 나오는데, 그중 8회가 마태복음 23장 한 장에 집중되어 바리새인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송장 뼈로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았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씻으나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만을 즐겨하는 이들의 허영심을 무섭게 폭로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비방했고, 예수님이 하시는 기적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함했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트집 잡았으며, 결국에는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모의하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을 시험하고, 올무에 걸리게 하며, 책잡기 위해 덫을 놓았습니다.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때도 속으로 '저가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죄인인 줄 알았을 텐데'라며 마음으로 비판을 삼갔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매우 훌륭하고 긍정적인 발자취를 남긴 세 사람의 유명한 바리새인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의 진리를 묻고, 훗날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침향과 몰약을 가져와 정성껏 장례를 치러준 사네드린 공의회 의원 '니고데모'입니다.
둘째는 사도행전 5장에 등장하는 사네드린의 존경받는 율법 교사 '가말리엘'입니다. 사도들을 핍박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며 지혜롭고 객관적인 중재안을 내놓아 사도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셋째는 바로 신약 최고의 사도인 '바울'입니다. 바울은 청중들 앞이나 빌립보서 3장에서 스스로를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지독하게 철저했던 바리새인식의 훈련과 학문적 배경이 거꾸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파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훼손된 유대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고 토라를 수호하고자 눈물겨운 개척의 물결 속에서 피어난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토라를 사랑하고 정교하게 연구하여 민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율법의 세부 조항을 해석하고 규제하는 데만 매몰된 나머지, 율법의 본질인 공의와 사랑과 긍휼을 잊어버리고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바리새인(Pharisee)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영단어에서도 '위선자(Hypocrite)'라는 악명 높은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바리새인의 누룩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머리로만 해석하고 남을 판단하고 괴롭히며,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아 남들마저 천국 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어리석은 바리새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역사와 행태를 올바로 이해하고, 거울로 삼아 경건한 믿음의 삶을 온전히 정립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108번째 시간에는 이들과 철저한 대조를 이루었던 사두개인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핵심 요약정리
본 강연은 신약 시대 유대교 최대 종파였던 바리새인(Pharisees)의 역사적 기원, 교리적 특징, 그리고 신약 성경에 나타난 위선과 실상을 다룹니다.
1. 바리새인의 명칭과 기원
2. 신학적 유산과 사두개인과의 차이점
3. 신약 성경에서의 실상과 위선
4. 결론 및 신앙적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