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있는 성삼일당교회 부속 건물인 서점의 벽면에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한국 기독교 역사 서두에 언급되는 나오는 비문으로 당에서 기독교가 대유행을 했다는 내용의 비문이다. 이는 당시에 한반도에 있었던 삼국과 통일 신라에 경교(기독교)가 전파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므로 한반도에 기독교가 7세기에 전파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비문이다.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지만 한문 실력이 없는 나로서는 대충 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사진의 한문을 눈여겨 보다가 고전번역위원인 조태영 교수님이 생각나서 번역을 부탁드렸다. 다음은 교수님께서 보내신 번역문 전문이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성경 역본이 아님과 아울러 이 한 개의 좌대는 경교가 당나라 시대에 유전된 것을 기술한 비석이다. “대진”은 로마를 가리킨다. 경교는 지금 동방 시리아정교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독교의 한 갈래에 속한다. 비석은 서기 781년에 세워졌는데 17세기에 서안에서 출토되었고 현재 서안비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석은 도사린 용이 부조된 비 머리와 비 몸과 거북 대좌(구좌)의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비의 높이는 약 365센티미터이고 너비는 약 99센티미터이다. 전문은 1780 개의 한자와 수십 개의 시리아 문자로 되어 있다. 석비에 기록하기를 당태종 정관 9년(635년)에 옛 페르시아로부터 온 규아라본의 전교사가 있었는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두루 경로를 거쳐 중국에 들어왔다. 지나는 길에 “우전” 등 서역 옛 나라들에 도착하였고, 하서의 주랑을 거쳐 수도 장안에 당도하였다. 타획준은 장안 일대에서 전교하였다. 후에 경교 경전 《존경》을 가지고 와서 중국 글로 번역하였다. 비문은 오히려 대량으로 유교 도교 불교의 경전과 중국사서 가운데 있는 전고를 인용하여 경교의 교의를 밝혀 기술하였고, 인류의 타락, 메시아의 강생, 구세주의 사적 등을 차례대로 밝혀 기술하였다. 성경 번역 방면에 있어서는 비문이 제시하는 것에 “경교를 밝히 밝힌다는 말은 우리 당에 귀속된다; 경전을 번역하고 절을 세우라. 살든지 죽든지 배를 타고 건너라” “24경 두루마리에 옛 법을 설명한 것이 있다.” “경전 가운데 27부가 남아 있다.” 등이 있다. 성경의 부분 혹은 전부가 이미 중국 글로 번역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장 고본인 시리아 정교회가 사용하는 《시리아어 페쉬타본 성경》의 신약 부분은 22권만 있고 《베드로후서》, 《요한2서》, 《요한3서》, 《유다서》와 《계시록》가 빠져 있다. 그런즉 시리아 정교회 가운데 유전하는 정경 강목과의 불일치는 비문 가운데 있는 27부라는 것이 《신약성경》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 어렵게 하는 까닭이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서안에 있다니 몇 년 전에 비림박물관을 스쳐지나왔는데. 아는 만큼 밖에 볼 수 없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해 본다.
사진을 보고 그대로 번역해주신 조교수님께 감사드린다,
2024년 5월 18일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