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_백선욱
비앙드 드 그리종 Viande des Grisons
샤모니Chamonix에 도착한 시간은 초저녁. 기차역을 나서자, 오래된 영화 세트장 안으로 들어선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눈으로 하얗게 잠겨 있는 마을. 인형의 집 같은 건물들은 반쯤 몸을 드러낸 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통나무 외벽에 달린 창에는 주황빛 등이 하나씩 켜져 있고, 1990년 2월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두블 에스프레소로 여행의 노고를 달래며 메뉴를 뒤적였다. 작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비앙드 드 그리종.’ 스위스 그리종 지방 방식의 소고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랑스 땅 안에 있으면서도 스위스의 기운을 머금은 샤모니의 속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이다. 이름만으로도 이국의 공기와 시간이 배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일, 도전해 보기로 하지.
그날 밤은 샤모니 중심가의 작은 호텔에 묵었다. 통나무로 정갈하게 지어진 건물이었고, 실내는 짙은 잣나무 향으로 가득했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보니, 어둠과 눈이 겹쳐진 하늘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밤. 말없이 내리는 눈발을 바라본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이곳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시간을 잊은 밤이 지나간다.
평소엔 먹지도 않던 아침 식사를 했다. 호텔 조식으로 나온 크루아상 하나와 오렌지 주스를 간단히 입에 넣었다. 움직일 준비를 위한 의식 같은 식사였지만, 고소하고 바삭한 크루아상과 신선한 주스는 겨울 날씨에 과분할 정도로 입에 착 붙는다. 잠시 후 케이블카를 타고 산 위로 향했다. 몽블랑Mont Blanc의 정상을 향하여. 워낙 높은 지역을 향하는 코스라서 중간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정상을 가려면 한 번에 가는 협궤열차Tram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공중에서 눈 쌓인 알프스를 내려다보며 가고 싶었다.
해발 4,808미터. ‘하얀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몽블랑은 서유럽의 지붕이자 알프스의 여왕이라 불리는 산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그러워 보이지만, 그 안엔 광활한 침묵과 위험이 숨어 있다. 올라갈수록 눈은 더 희어졌고, 공기는 더 얇아졌다. 말수는 줄고, 생각은 깊어졌다. 공기의 밀도마저 시간이 압축된 듯 느껴졌다. 어느 순간 양쪽 고막에 강한 압력이 느껴진다. 급히 코를 막고 힘차게 숨을 불어 기압에 적응해 본다.
케이블카를 바꿔타는 중간역에서 한 무리의 청년들을 만났다. 내 또래 혹은 그 아래 정도의 쾌활한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등에 배낭과 스키를 메고 있다. 상기된 붉은 뺨에는 들뜬 열정이 보인다. 눈인사로 친근감을 나누었다. 신기하게도 여행 중에는 모두가 쉽게 이웃이 된다. 정신없이 바깥 경치에 넋을 놓고 있는데 케이블카가 부드럽게 멈춘다.
마침내, 나는 몽블랑의 정상에 섰다. 사방이 눈의 절벽이었고, 바람은 살을 깎듯 불어왔다. 구름은 먼발치 아래에서 유영 중이다. 그 사이로 마터호른과 융프라우가 저 멀리 뾰족하게 솟아 있다. 평평한 길을 따라가면 독일 국경의 융프라우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한다. 청년들이 손 인사를 하고 서둘러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도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고, 뒤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 당당한 뒷모습이 유독 오래 눈에 남는다. 다시 주변을 바라본 순간, 말이 사라졌다. 어떤 사진 속 장엄함도, 다큐멘터리의 웅대함도 비할 바가 아니다. 오직 눈앞의 실재와 대면한 나. 젊은 패기로 온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던 교만한 마음이 한순간에 부서졌다. 나는 너무나 작았다. 그저 요란한 키치Kitsch일 따름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갑자기 불어온 눈이 섞인 바람에 몸을 한차례 떨었을 때였다. 멀리 건너편 산자락을 타고 알록달록한 작은 점들이 내려온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무도 밟지 않은 설원을 거침없이 활강하고 있다. 그러다 설벽 끝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공중에 내던져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었다. 떨어진다. 그런데. 하얀 허공에서 선명한 색색의 낙하산들이 꽃처럼 하나둘 피어난다. 그 모습은 그대로 자유 자체다. 같은 세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나는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절벽 끝에서 날아오르는 젊음. 어떤 기분일까.
수만 가지 감정이 북받친 채 천천히 샤모니로 내려왔다.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감흥에 젖어 있다가,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아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그래, 비앙드 드 그리종. 잠시 후 나의 최애 맥주 쾨니히 필스너König Pilsener와 함께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짙은 나무 플레이트 위에 반투명하게 저민 비앙드 드 그리종 슬라이스가 반달 모양으로 놓여 있고, 가운데에는 루꼴라와 베이비 채소 약간, 그 위로 파슬리 잎 하나가 포인트처럼 올려있다. 옆에는 바게트 몇 조각과 잘게 썬 코르니숑도 따라 나왔다. 돌돌 말려있는 모양이 얼마나 얇은지를 가늠하게 한다. 비아드 드 그리종은 스위스식 저장 소고기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겨울의 만년설 속에 묻었다가, 봄이 되어야 꺼내 먹는다고 한다. 시간을 통째로 저민 음식. 고기 위엔 아직 녹지 않은 얼음 결정이 희미한 윤기로 맺혀 있었다.
한 점을 입 안에 넣는 순간, 폭죽이 터진다. 모든 것이 되살아난다. 낙하산이 꽃처럼 피어나고, 절벽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나는 듯 활강한다. 그리고 마주한 침묵의 설산과 겸허함. 내가 한없이 작아진 그 순간, 젊음의 웅지가 다시 깨어난다. 그 모든 감정이 눈사태처럼 밀려 내려온다. 얼음 끼의 여운이 남은 입안에는 짠맛도, 고소한 맛도 아닌 시간의 맛을 머금은 알프스가 있었다.
어쩌면 그날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접시에 담긴 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내 인생의 각인된 문장 하나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깊이 기억에 남았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깊이 자신을 내려놓았고,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처음으로 진짜 ‘맛’을 느꼈다.
그것이 내 인생 일미, 비앙드 드 그리종